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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미노타우루스의 심장, 올빼미의 눈으로 신화가 된 남자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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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기억하는 천재는 대부분 아쉽게 요절해 전설이 됐다. 그러나 피카소는 자타공인 천재였음에도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여인들은 90세에도 ‘젊은이’로 불린 그의 곁을 내주지 않았으며, 그는 죽기 직전까지 붓을 들었다. 화폭이든 여인에게든 쉴 새 없이 천재적 욕망을 뿜어내는 것이 그의 질긴 운명이었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소설가 김훈이 한 시사주간지 편집국장이던 1995년의 일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그해 시작된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돼 광주를 방문했다. 김훈은 백남준 인터뷰를 직접 하고 싶어 했고, 미술 담당 기자가 미리 광주에 내려가 백남준과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았다. 김훈은 인터뷰 당일 새벽 고속버스 편으로 광주에 내려갔다. 약속 장소는 광주시립미술관 앞, 김훈과 담당 기자는 미술관 앞에 서서 백남준을 기다렸다.

약속시간 오후 3시를 좀 지나 멜빵바지 차림의 백남준이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기자가 얼른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 저희 국장이 오셨습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뭐라고? 난 약속한 적 없는데?” “아니, 약속하셨잖아요. 국장께서 서울에서 오셨는데….” “몰라, 나 바빠. 지금 가야 돼.” 백남준은 기자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뒤뚱거리며 가버렸고, 기자는 하늘이 노래지는 걸 느끼며 김훈에게 보고했다. “백 선생이 약속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인터뷰를 못 하겠답니다.” 그는 당연히 호되게 ‘깨질’ 각오를 했지만, 김훈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뀐 채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천재는 그럴 수 있어.” 그리고 그 길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 에피소드는 캐나다로 이민한 당시 기자 성우제가 쓴 에세이집 ‘느리게 가는 버스’에 실려 있다(후일담에 따르면, 김훈은 결국 서울에서 백남준과 인터뷰했다고 한다).

이 기막힌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왜 내 머릿속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떠올랐을까? 모르긴 해도, 생전의 피카소는 백남준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 왕이라 칭했던 오만과 독선, 예술을 위해 어떤 것도 희생하는 아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전대미문의 창조성과 에너지까지 백남준은 피카소와 닮은꼴이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피카소말고도 신화로 남은 화가는 많다. 생전에 그림 한 점 팔지 못했으나 지금은 범작마저 몇백억원에 팔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고, ‘영광을 막 잡으려는 순간에 죽다’라는 묘비명처럼 서른여섯에 요절한 모딜리아니도 그렇다. 물랭루즈의 꼽추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멀고 먼 남태평양 타이티까지 흘러갔던 고갱, 그보다 훨씬 시대를 앞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 미술계에는 전설과 사실을 넘나드는 화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들과 확실히 다르다. 우선 그는 1881년에 태어나서 1973년에 타계했으니 ‘현대의 산물’이다. 생전의 피카소를 만났던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고, 피카소의 일상을 담은 1950년대 기록영화도 남아 있다. 우리는 이 많은 기록을 통해 피카소의 키가 몇 센티미터였는지, 그가 어떤 억양의 프랑스어를 썼는지, 그림 그리는 순간에 표정과 손놀림이 어떠했는지 등을 모두 알 수 있다. 빛바랜 신화로 채색되기에 그는 너무나 근거리에 있으며, 전설적 천재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



또 피카소는 생전에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성공과 명예, 부를 다 얻었다. 그는 한 세기에 가까운 긴 생애 동안 3만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의 가치는 현재 상상을 초월한다. 2004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초기작인 ‘파이프를 든 소년’(1905)이 1200억원에 팔려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3위를 기록했다. 피카소 작품의 가격은 그가 살아 있을 당시부터 형성돼 있었다. 1960년대 그의 소품 하나가 1억6000만원에 팔렸다. 당시 피카소는 유화만 500점 이상 소유하고 있었고, 수채화나 데생 등은 이보다 훨씬 많이 갖고 있었다. 이 작품들의 가치만으로도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였다.

피카소는 왜 유명한가

단순히 작품 가격만으로 피카소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피카소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예술가다. 예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은 안다. ‘피카소 미술학원’이나 ‘피카소 레스토랑’처럼 그의 이름은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괴팅겐대학교 미술사학과 카르스텐-피터바르케 교수는 피카소의 위대함을 ‘진보적인 예술과 전통적인 예술, 두 가지에서 모두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피카소의 천재성은 20세기 정신을 가장 독창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방식으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칭호를 듣기에 합당한 거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현대미술의 상징임에도 많은 사람이 피카소가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그가 왜 위대한 화가인지는 잘 모른다. 피카소를 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피카소가 어떤 그림을 그렸죠?” 하고 물어보라. 아마 열 명 중 아홉 명은 대답을 못할 것이다. 열에 한둘 ‘아비뇽의 여인들’이나 ‘게르니카’를 기억해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다시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건가요?” 하고 묻는다면, 거기에 답할 사람은 100명 중 1명쯤 될 것이다. 놀랍게도 ‘게르니카’가 ‘스페인 내전 중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서 벌어진 공습과 학살의 참상을 고발한 벽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그럼 그 그림이 왜 위대한 거죠?” 하고 물어보라. 이 질문까지 통과할 사람은 정말이지 1000명에 한 사람 만나기도 어렵지 않을까?

이것이 피카소의 모순이다. 20세기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하며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화가이나, 작품보다 작가 개인이 훨씬 유명하다는 것. 이는 화가에 대한 모독일지 모른다. 왜 사람들은 피카소라는 이름은 기억하면서도, 정작 그가 그린 그림은 기억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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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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