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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나이 들어도 모든 걸 거는 사랑에 대한 꿈은 멈추지 않죠”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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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운관 속 그녀는 강하다. 독하다. 권력의 생리를 꿰뚫었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걸 휘두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카메라가 멈춘 순간의 그녀는 부드럽다. 미소를 잃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게 ‘여배우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물었다.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여배우가 나이 먹으면 초조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들 하시는데 저는 전혀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지난해에는 지난해의 내 나이를 사랑하고, 올해는 올해대로 올해의 내 나이를 사랑하고 마흔이 되면 마흔의 내 나이를 사랑하면 되잖아요.…주름이 있으면 어때요. 20대는 그런 주름 못 만들어요. 20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30대가 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잖아요.”

1995년 그녀가 ‘신동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드라마 ‘결혼’과 영화 ‘장밋빛 인생’으로 무려 아홉 개의 국내외 연기상을 수상한 직후, 본인 말로는 ‘한참 잘나가던 때’였다. 당시의 인터뷰에서 전진우 전 동아일보 대기자는 ‘내면을 응시하며 생의 진실을 좇는’ 최명길의 눈빛에 주목했다. 삶의 고통과 인간의 허위의식을 다루는 작가주의 영화 속 그녀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후 그녀의 행로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정치계에 첫발을 디딘 작가 김한길과의 결혼, 두 아이의 출산, 선거판을 누비는 국회의원 부인과 장관 사모님으로 살아가는 동안 ‘용의 눈물’ ‘대왕세종’ 같은 사극에서는 권력의 생리를 꿰뚫는 냉혹한 왕비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십수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카리스마를 가진 여성의 상징 같은 배우. 문득 궁금해졌다. 그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터뷰 장소는 일산 KINTEX의 드라마 촬영현장 인근. 재벌가의 정략결혼과 첫사랑과의 재회, 불륜과 배신, 복수를 다루고 있는 ‘미워도 다시 한번’은 고전적인 소재에도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최명길씨의 역할은 주인공인 대기업 CEO 한명인 회장. 그 주에 찍어 그 주에 방영하는 빡빡한 촬영일정 때문에 인터뷰는 저녁 7시에야 시작됐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진기자의 카메라 플래시에 피곤했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빛난다. 역시 경력 28년의 프로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 제 장모님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세요. 사인을 꼭 받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웃음) 1980년대 스타일의 줄거리와 전개가 중년 시청자를 흡입하는 것 같더군요. 최명길씨를 비롯해 박상원, 전인화 같은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그 세대에 어필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 드라마가 의미가 있어요. 그동안에는 젊은 층 위주의, 10대를 타깃으로 만든 드라마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실패하면 ‘40~50대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는 역시 안돼’ 할 테니까 부담도 많았죠. 분명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다행히도 진지하게 연기하는 걸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니 안도감을 가져요. 아직 이런 스타일이 통하는구나 하는. 선배 연기자들한테 격려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운 좋게도 나름 중심 있는 배역을 맡아왔지만, 요즘 제 나이 또래의 연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주인공의 이모나 고모 정도였잖아요. 이 드라마를 계기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연기할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 눈썹 그린 모양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쪽으로 치켜 올라간, 사나워 보이는 눈썹 화장이라고 할까요.

“의도적인 건 아니고요, 제가 눈썹과 눈의 사이가 좀 넓은 편인데다 연기할 때 눈을 치켜뜨는 버릇이 있어요. 눈썹의 모양에 따라 인상이 많이 달라지죠. 그런 눈썹 모양이 드라마 속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 자리에 앉을 때도 항상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를 취하더군요. 팔을 살짝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도 눈에 띄고요. 강한 인물의 고전적인 포즈랄까요. 그런 자세를 이미지 트레이닝할 때는 누군가를 염두에 두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누굴 흉내 내는 건 아니에요. 역할에 맞는 자세를 연구한 거죠. 물론 CEO라고 해서 꼭 그런 자세를 취하진 않죠. 대중이 갖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대리만족의 기대치가 있어요. 드라마 주인공이 그 이미지에 못 미치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죠. 연기자는 실제보다는 그 이미지에 맞춰서 인물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앉아 있는 자세 하나로도 포스를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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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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