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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음으로 지은 누비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

‘무기교의 기교’로 세계 누비는 ‘누비장’ 김해자

“텅 빈 마음으로 지은 누비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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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음으로 지은 누비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

방한용 누비옷에는 솜을 넉넉히 두고 볼록하게 골을 내어 보온성을 높였다.

해마다 여러 도시에서 퀼트 전시회를 열고, 퀼트 전문잡지까지 내는 일본은 일찌감치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잡지에 소개하거나 전시회에 초대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다른 작가의 전시실과 똑같은 규모의 전시장에 전시되는 것을 두고 일본의 안목이 모자란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2010년 도쿄 세계 퀼트 박람회에서 그가 주요 작가로 선정된 것도 일본에서 쌓은 그의 인기와 지명도 덕이었다. 박람회 주최 측에서 관람객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그는 1위에 올랐고, 주최 측은 그의 경주 공방에 찾아와 공방의 크기와 구조를 실측해서 전시장을 공방과 똑같이 재현해낼 정도로 성의를 보였다.

‘퀼트’가 아니라 ‘누비’다

다른 우리 공예품도 그렇지만, 그의 누비에 더 큰 관심을 보인 곳도 일본이다. 주름옷으로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미국과 프랑스, 일본 지부장 등 다섯 명이 그를 찾아온 것은 2000년대 초. 지부장들은 그의 공방을 참관하고 이세이 미야케를 위해 버선을 맞춰갔다.

“잘 때 발을 따뜻하게 해줄 목이 긴 누비버선을 만들어줬지요. 면에다 솜을 두어 발이 편안하도록 한 버선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해자 명장이 일본에서 초대전을 열 때면 이세이 미야케가 직접 찾아오고 함께 식사도 하는 사이가 됐다. 때로 김 명장이 지갑 등을 누비로 만들어 선물하면 미야케는 쓰지 않고 전시한다고 한다. 김 명장 자신은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이세이 미야케 쪽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찾아온 것은 아무래도 미야케의 대표작인 ‘주름’과 누비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오목누비는 주름옷에 가깝고, 미야케의 초기 주름 작품은 우리 누비옷 그대로라는 것이 김 명장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전통 누비 바느질이 없단 말인가.



“일본의 누비질은 거의가 장식적인 스티치에 불과하고 그래서 부분적으로만 써왔어요. 우리처럼 천 전체를 다 누빈다거나 골이 오목하게 파이는 누비 바느질이 없어요.”

그가 보여준 일본 잡지에는 그의 작품이 소개돼 있고, 일본 작가나 기자들이 그를 소개한 책자나 기사도 꽤 됐다. 특히 나오키상 수상자로 유명한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소개하는 책에서 그를 인터뷰하고 그의 누비 바느질을 불교 수행법과 비교하는 내용을 실었다. 그동안 한국 불교를 기복신앙으로만 치부했던 이츠키 히로유키는 김해자 명장의 누비에서 무념의 공(空) 상태를 추구하는 불교정신을 읽어냈다. 그의 누비는 바느질을 넘어 한국의 불교문화까지 새롭게 알린 셈이다. 경주 공방까지 찾아왔던 히로유키는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인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전 도쿄도지사)를 김 명장에게 소개했고, 이시하라는 김 명장에게 옷을 맞추기도 했다.

김해자 명장이 누비옷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불교와 관련이 깊다. 본래 누비옷은 승려가 입는 납의(衲衣)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납의는 말 그대로 ‘기운 옷’을 말하며, 이 기운 옷을 입은 ‘납자(衲子)’는 곧 승려를 뜻한다. 누비가 납의에서 나왔다는 설은 조선시대 후기 자료에 따른 것이다. 영조 때 문신 이의봉이 우리나라와 주변국의 어휘를 비교 정리한 ‘고금석림(古今釋林)’에서 납의를 누비라 풀이했고,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승가에서 입는 기워 보수한 납의를 누비라고 잘못 옮겨, 해진 옷을 기웠다는 뜻의 누비를 새 옷감에도 쓰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텅 빈 마음으로 지은 누비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

제자와 함께. 그가 이끄는 누비문화연구원의 전국 지부에서 2년간 공부한 사람은 3년째 되는 해부터 그의 경주 누비 침방에서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문헌사료가 있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은 남는다. 기운 옷과 누빈 옷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승려는 누비옷을 입되, 해지면 기워서 입었기 때문에 납의는 일명 ‘누더기 옷’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불교가 일반화하기 전인 상고시대나 삼국시대 초기에도 이미 동물의 털이나 명주솜 등을 넣은 누비옷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고구려 벽화의 무사 옷이 누비로 만든 갑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므로 솜을 넣고 누빈 누비옷이 곧 기운 옷이라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후기 학자들이 ‘누비’를 곧 ‘납의’로 해석하고, 납의를 잘못 발음해서 누비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통사람이 쓰는 입말이 아닌 한자어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비를 뜻하는 한자어로는 음차한 ‘縷飛’ ‘縷緋’로 쓰는가 하면 ‘납의(衲衣)’라고 표기한 것도 보인다.

박물관 유물을 스승으로 삼다

유래야 어찌 됐건 누비옷이 승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출토 유물에서는 호사스러운 각종 누비옷이 많이 나오고, 군포납세 중 누비옷을 납부한 기록도 보이지만 최근까지 누비 바느질 기법이 전승돼온 곳은 절집이었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누비옷을 많이 입어왔고, 또 왕실의 침방 나인들은 모시던 분이 돌아가시거나 나이가 들어 궁궐을 나오게 되면 보통 절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스님들은 다 손수 옷을 해 입어야 하잖습니까. 그러니 누비 승복을 만들면서 누비 바느질의 전통이 절집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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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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