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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시대 지식인 / 소설가 김훈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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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끼리 찔러 죽인 비극, 깊이 반성해야
  • ● 박정희, 땅을 덮는 업적과 하늘을 찌르는 죄악
  • ● 인문학은 남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성
  • ● 규제 완화, 민영화는 ‘공정한 약육강식’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다. 나라 세우기, 산업화, 민주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70년이었다.

밖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일군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안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선 자리는 왠지 초라하고 불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광복 70년은 영광과 고뇌의 역사였다.

광복, 정부 수립, 6·25전쟁,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 그리고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역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광복 70년을 맞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를 만나 우리가 걸어온 길과 선 자리, 그리고 걸어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진행은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가 맡았다.

첫 초청자는 소설가 김훈이다.

김호기 광복 70년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했을 때 태어나셨으니 선생의 삶은 광복 70년과 거의 일치합니다. 소회가 어떠한지요.

김 훈 좌충우돌하면서 전진과 후퇴를 끝없이 반복했어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혁명적인 것은 없었죠. 광복, 6·25, 5·16도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죠. 광복 이후 북한의 토지개혁인 무상몰수, 무상분배도 전혀 혁명적인 게 아니에요. 토지의 주인이 지주에서 국가로 바뀌었을 뿐이고 농민은 준농노의 처지와 과히 다르지 않았어요. 4·19도 혁명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고액과외, 입시지옥, 노사갈등의 문제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어요. 발전적으로 순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게 아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규모가 더 커진 것이지요. 오래전 넘어진 자리에 가서 다시 넘어지는 게 반복됐어요. 얼마나 더 전진과 후퇴를 계속해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입니다.

광복·산업화·민주화를 보는 눈

김호기 광복 70년은 선생과 저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부친인 소설가 김광주 선생에 대해 쓴 글을 봤습니다. 김구 선생과 인연이 각별했더군요. 김광주 선생에게 광복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김 훈 아버지는 1910년생이에요. 태어나던 해 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거죠. 만주에서 청춘 시절을 보냈는데, 김구 선생을 흠모하고 존경했어요. 아버지는 평생을 유랑민으로 살았어요. 그때 상하이에 모인 수많은 망명 청년은 유랑민 그 자체였어요. 아버지가 당시 쓴 글을 읽어봤더니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조국을 저주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고 괴로우니까 조국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씀도 했어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 세대의 유랑은 계속됐어요.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증오했고 이승만을 증오했어요. 박정희 독재를 증오하면서 북한 공산정권도 증오했어요. 현실사회에서 발붙일 수 없는 지식인이 된 거죠. 해방된 조국에 와서 오히려 더 처참한 모습으로 유랑이 다시 시작된 셈이에요. 아버지는 6·25 때 서울 잔류파였는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썼어요. 전쟁이 그들의 유랑민 심성을 더 심화한 거지요.

김호기 소설가 황순원도 ‘움직이는 성’에서 유랑민으로서의 한국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으로 유랑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쓴 글을 보면, “산을 등지고 흐르는 물을 앞에 두르는 낙원에, 아버지와 우리는 한 번도 갈 수 없었다”(‘광야를 달리는 말’)는 구절이 나옵니다. 낙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한 것 같습니다.

김 훈 내가 자랄 당시 고등학교 때까지 국민소득이 100달러를 못 넘었어요. 중학교 때는 세계 최빈국이었어요. 필리핀의 원조를 받고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보았어요. 지금 4만 달러 시대로 가자고 하니 놀라운 거죠. 아버지가 디아스포라의 유산을 받고 태어났듯이 우리 세대는 야만적인 권력의 폭행과 무시무시한 가난을 유산으로 받고 그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것이죠. 그리고 나는 그런 시대를 살면서 인간의 역사가 민주적인 원칙과 방식에 따라서 전개되리라는 신념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인왕산 자락 서울성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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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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