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내가 1973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언론인이라기보다 기자직에 종사했다는 게 맞아요. 72년 유신체제가 등장하고 이어 긴급조치가 취해졌어요. 야만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거죠. 박정희 시대는 그 업적이 온 땅을 덮는 동시에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해요. 땅을 덮는 업적과 하늘을 찌르는 죄악은 한국 현대사에 각인돼 있고, 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그리고 민주화는 사실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바꾼 거예요. 사람을 영장 없이 끌어다 며칠씩 패고 불구로 만들어 내보내고 그랬잖아요. 그런 야만적 악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게 한 30년에 가까워오지만, 그 역사는 일천한 거예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할 수 없게 된 게 얼마 안 된 거예요. 그것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을 갖게 되는 거죠.
인문학의 위기
김호기 작가로서 최근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요.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출발이자 기반을 이룹니다. 이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요. 선생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문학기행 1·2’(박래부 기자와의 공저)였습니다. 우리말을 무척 사랑하고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도 있듯이, 언어와 삶, 삶의 역사와 철학을 다루는 이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요.
김 훈 동서양 고전을 읽는 것을 포함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가 인문학이겠죠.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진정한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유지하는 게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논어’를 보면 공부하라는 말이 나와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게 책 읽으라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공자가 공부하라고 말한 것은 책을 읽으라는 게 아니고 네 마음을 똑바로 하라는 얘기죠. 마음을 똑바로 한다는 것은 남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남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 인간에 대한 완성을 모색하는 것이에요. 이게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이 쇠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한자(漢字) 교육을 없애 고전을 읽지 못하게 된 데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책 읽기로서의 인문학은 급속히 쇠퇴한 게 아닌가 싶어요. 광복 이후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한글을 과학화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었지만 한자를 말살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야만적인 정책입니다. 한자든 국어든 다 우리말이에요.

‘세월호’ 천막이 있는 광화문에서.
김호기 대학 안에서 보면 타자에 대한 공감, 위로, 배려 등에 관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사랑과 위안과 공감은 물질적 삶과 더불어 삶의 또 다른 중심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위안과 공감은 구체적인 것들인데, 추상적인 서구 이론들이 캠퍼스에 공허하게 떠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읽은 게 ‘자전거 여행 1·2’입니다. 풍경과 지리에 원래 관심이 많았습니까.
김 훈 지리와 풍경에 대한 느낌을 마음속에 저장하는 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해요. 글을 쓰는 하나의 바탕이 되는 것이죠. 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풍경에 대한 느낌을 풍부하게 간직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김호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만경강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김 훈 풍경은 다 똑같아요. 어느 게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히 추악하지는 않은데 계절마다 다르죠. 섬진강 쪽이라든지 지리산 밑이 참 뛰어나게 아름다운데 다 특징적인 표정을 갖고 있어요. 동해 바다는 일자(一字)밖에 없잖아요. 바다에서 해가 뜨니까 기상이 가득 차요. 얼마 전까지 울진에 있다 왔거든요. 아침마다 새로 해가 뜨니까 동해 바다는 새로 창조된 새벽의 바다 같아요. 서해 바다는 갯벌이고 석양 해가 지니까 한없이 막막한 느낌을 주는 바다죠.
만경강은 감조하천이에요. 바다를 받아들이는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강 중류까지 올라가요. 또 만경강은 자유파행 강이에요. 한강은 양쪽에다 도로를 만들고 상류에 댐을 만들어 지금은 거대한 짐승을 잡아다가 우리에 가두어놓은 꼴이 됐어요. 만경강은 자유파행이 됐는데 이제는 안 되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