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스킬’보다 ‘탤런트’ 낙관보다 비관이 명약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 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입력2003-02-25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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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가뜩이나 경영여건이 열악한 벤처기업들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하지만 이는 탄탄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호기일 수도 있다. 벤처기업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역경을 견뎌내면서 면역성을 키워야 한다.
    ‘스킬’보다 ‘탤런트’ 낙관보다 비관이 명약

    안철수 사장(오른쪽)이 직원들에게 ‘인터넷 대란’의 주범인 웜 바이러스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2002년 6월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선전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4년 전 참패의 수모를 씻어내고 눈부신 영광을 안았다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쟁쟁한 외국 선수들에 비해 ‘몸값’도 낮고 개인기도 모자랐지만, 탄탄한 팀워크로 무장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머쥔 월드컵 대표팀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팀워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팀의 힘은 개인이 아니라 팀워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해 보인 것이다.

    지금 전반적인 경기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여건이 열악한 벤처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월드컵 대표팀처럼 도약을 위한 분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 벤처기업의 구성원 각자는 진정한 전문가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전문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전문지식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전문적인 지식만 가진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문지식 외에 가치관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당수 회사들이 가치관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은 대개 구성원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냐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스킬(skill)’과 ‘탤런트(talent)’는 둘 다 재능을 뜻하지만 정확한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지금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능력을, 후자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뜻한다. 필자는 지금의 능력, 즉 스킬보다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능력, 즉 탤런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탤런트의 핵심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가치관이 중심에서 자리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탤런트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벤처기업의 구성원은 모두 젊다. 이는 그들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시기임을 뜻한다. 생각할 것, 고민할 것, 공부할 것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치관을 만들어나갈 시점인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가치관을 정립해서 일관성 있게 견지하고 현실에서 적용해 나가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가 아닌가 한다.

    전문가가 갖춰야 할 셋째 요소인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조직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의 크기는 ‘전문지식×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는 수학식으로 도출될 수 있다. 비록 전문지식을 많이 쌓았다 할지라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0점이라면 그의 역량은 0점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왕도가 없고,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는 것인지 세부적인 지침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필자 나름대로 생각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상식 범주의 차이에 대한 인정이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상대방에게는 상식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내 상식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각자가 자신의 상식만 고집하면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게 된다.

    둘째, 용어의 정의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같은 용어를 놓고 합의를 하더라도 저마다 갖는 생각은 다르다. 어떤 지방에서는 호의적인 말이 다른 지방에서는 불쾌감을 일으키는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충돌하기 쉽다.

    셋째, 불만이 있거나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자기 주장만 강조하기보다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는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민감한 부분에 대해 서로 용기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유심히 살펴보면 사원, 부서, 혹은 가족관계에도 민감한 부분이 있어 절대로 말하면 안 되는 화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은 채 관계를 지속하면 서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관계다(The communication is the relationship)’는 말이 있다. 언뜻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명제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은 관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하며, 관계의 지속 또는 단절 여부도 커뮤니케이션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데 인식이 미치면 이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표현하기에 민감한 부분까지 드러내놓고 같이 고민해야 관계가 급진전될 수 있다. 사람이 얼마나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가는 그런 관계를 얼마나 지속해나가느냐에 달린 것 같다. 마찬가지로 조직 내에서도 구성원 간의 수직적,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우리 몸의 혈액 순환처럼 원활히 이뤄져야 공동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가 수월해진다.

    실행은 전술의 근간

    그러나 이러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해서 그 기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실행이다.

    필자는 최근 경영 도서 ‘실행’을 읽었다. 이 책은 뛰어난 CEO 중의 한 사람인 하니웰의 래리 보시디(Larry Bossidy)와 유명한 컨설턴트이자 작가인 램 차란(Ram Charan)이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실무 경험과 이론적 고찰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실행’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훌륭한 회사에서 똑똑한 CEO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비전과 올바른 전략에 따라 일을 하는데도 제대로 결과를 내지 못해 결국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실행 능력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실행 능력의 부족은 관리자들이 높은 수준의 전략에만 몰두하고 실행 과정 또는 현장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관리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회사는 원인도 모른 채 서서히 나락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행을 전략적인 부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전술의 근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관리자들은 실행 과정의 깊숙한 곳까지 개입해서 올바른 질문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실무자들이 같은 과정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실행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행의 풍토가 문화 자체에 스며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책임과 권한에 대한 역할 정립도 필요하다. CEO를 비롯한 관리자들이 할 일은 직원들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직원들이 할 일은 기업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리자가 할 일은 직원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므로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와 권한을 줘야 하며, 직원들은 그 목표와 권한 하에서 실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방법을 선택하여 일의 성과를 일궈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진정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업이 실행력을 갖추는 것 외에 벤처기업이 안정적인 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구성원 각자가 냉혹한 현실과 자기의 위치를 엄격하게 직시하는 동시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강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단순히 좋은 기업에 머물지 않고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한 11개 기업을 모델로 공통점을 연구 분석한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위대한 기업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스톡데일 패러독스’ 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결국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베트남전 당시 미국 장군으로서 8년간의 혹독한 포로 생활을 견뎌낸 스톡데일이라는 인물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용어다.



    스톡데일은 끔찍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결국엔 살아남았으며, 그 자신뿐 아니라 다른 많은 포로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에 따르면 포로들 가운데 낙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죽고,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극심한 절망과 나약함에 빠지지만, 현실주의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하여 미리 각오를 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역경에 대한 면역성을 키워야 한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CEO부터 각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합심한다면 오히려 견실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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