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 직업, 연예인 싫다. 사업가, 건축가 같은 활동적인 남자 좋아
- ‘하늘이시여’ 아니었으면 일본에서 번역공부 시작했을 것
- 결혼 전 일본유학, 부모로부터 1년간 독립 꼭 하고 싶어
- 핫팩 6개, 내복 입고 ‘가문의 영광’ 촬영,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 혀 짧단 얘기 이젠 신경 안 써요
“네, 어제 끝났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추워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정말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다 촬영이 겨울 내내 이어져서요. 핫팩 아세요? 몸에 붙이는 거. 그걸 6개씩이나 붙이고 촬영 했다니까요. 방한조끼나 내복도 입었고요.”
“‘가문의 영광’이 주말연속극 시청률 1위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봤어요?”
“정말요?”
SBS 주말드라마 ‘가문의 영광’에서 명문 종갓집 막내딸 ‘하단아’ 역을 맡아 열연한 윤정희(29)는 ‘시청률 1위’란 얘기에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 몰랐구나 싶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오랜 팬인 기자도 기뻤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몇 년 전부터 시나브로 팬이 됐다. 언젠가 꼭 한번 만나야겠다고 별렀던 배우 윤정희를 4월9일 서울 강남의 한 와인바에서 만났다.
각설하고, 윤정희는 이런 사람이다.
미스코리아(경기 미) 출신으로 딱 3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늘이시여’‘행복한 여자’‘가문의 영광’, 모두 주말드라마였는데 하나같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니까 1년에 한 편꼴이다. 지난해 개봉한 첫 영화 ‘고사-피의 중간고사’도 흥행에 성공했다. 164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드라마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도 CF, 예능프로, 드라마 단역에 짬짬이 얼굴을 내밀었다. 최근엔 ‘윤정희를 캐스팅한 작품은 뜬다’는 노골적인 기사도 나올 만큼 ‘흥행퀸’ 자리에 올랐다. 어떻게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는지가 궁금했는데 답은 이랬다.
“제가 나온 수원여자대학교 연기모델과는 입학시험에 실기 전형이 없었어요. 호기심에 원서를 썼다가 (연기) 공부를 하게 됐죠. 그 나이 때 흔히들 그러잖아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 저도 비슷했어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도 그래서 나갔고. 처음엔 그냥 재밌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최근작인 ‘가문의 영광’에선 30대 초반의 민속학 교수 ‘하단아’역을 맡았다. 10년 전 신혼여행을 떠나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미안해 겨울에도 외투를 입지 않는 우울한 캐릭터.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명문 종갓집 하씨 집안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청학동에서 자란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신혼여행길에 난 교통사고로 청상과부가 됐다. 첫날밤도 못 치른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사고 당시 생긴 상처를 친구삼아 수절을 결심하고 “내 소원은 빨리 늙어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불쌍한 여자다. 악연으로 만난 ‘싸가지 없는’ 이강석(박시후 분)과 사랑에 빠진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신인
드라마 ‘하늘이시여’를 잡은 건 배우 윤정희에게 한마디로 ‘행운’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혀가 짧다’ ‘연기가 안 된다’는 등의 비난이 드라마 방영 기간 내내 이어졌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무대 뒤에서 이를 악물었다. 발음 교정을 위해 볼펜, 코르크 마개, 심지어 탁구공까지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했다.
▼ 요즘도 입에 물고 연습해요?
“가끔 해요. 그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안 좋다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제 경우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더라고요.”
▼ 이번 드라마 하면서는 발음이 안 좋다는 말도 쏙 들어갔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생각 못했어요.”
▼ 발음 문제 때문에 고민 많았죠.
“네, 그런데 단점을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부각되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숨기려고만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좀 (연기가) 편해져서 그런지 그냥 감정을 더 살리는 데 신경을 쓰고 발음문제는 별로 생각을 안 해요. 시청자들도 제 연기를 보면서 감정문제에 더 관심을 써 주시는 것 같고….”
▼ ‘하늘이시여’를 촬영할 때 어머니로 나왔던 한혜숙씨에게 많이 혼났다던데.
“선배님들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돼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신인이 하나 와서 연기도 잘 못하니 답답하셨을 거예요. 드라마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혼났어요. 한 선생님 집에 불려가서도 혼났죠. 그때 배운 걸로 지금 사회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맙죠.”
생각이 많을 때는 공방에서 흙을 만지는 단아한 여자.
“그런 소리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저도 여자니까 ‘예뻐졌다’는 말도 듣기 좋지만 연기가 좋아졌다는 말이 제일 듣기 좋아요.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연기가 정말 늘었는지 어쩐지. 기자님 보시기에도 정말 늘었어요?”
▼ ‘하늘이시여’‘행복한 여자’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정말 감사합니다. 기분 좋아요.”
▼ 인기배우가 됐는데 실감이 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직 몸값이 싸요. 저렴한 가격에 연기하고 있답니다. 제일 쌉니다. 그냥 저는 ‘인복이 많다’ 그렇게 생각해요. 좋은 사람들의 덕을 보는 것 같아요. 저 때문에 드라마가 잘된 건 정말 아니구요. 제가 그냥 대표로 받는 기분이랄까.”
저렴한 가격…,나름 재치있는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재밌는지 까르르 웃었다. 웃을 때면 투명한 잇몸이 살짝살짝 드러났다. 조명 때문인지, 자그마한 얼굴에 빛이 났다.
“누군가는 가장 한국적인 배우라고 평가하던데….”
“그래요? 그런데 왜 다음 작품은 안 들어올까요.”
또 웃는다. 이번엔 깔깔거린다. 생각해보니 드라마에서 윤정희가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단아하고 약간은 우울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서 그랬나 싶다. 수시로 깔깔거리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많은 시청자가 드라마 속 윤정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해요. 어때요 그런 평가?
“맞아요. 근데 그게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하긴 제가 보기에도 그간 맡은 역할들이 하나같이 불쌍해요. 지금은 그냥 ‘내가 지금부터 풀어가야 할 숙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하단아와 윤정희, 서로 닮은 데가 있어요?
“글쎄요. 저와는 좀 동떨어진 인물이랄까. 그냥 지켜주고 싶은 캐릭터죠. 저도 사실 좀 고리타분한 면이 있고 그래서 종종 정형화된 틀에 얽매여 사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 캐릭터가 이해도 되지만, 그 친구는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답답하잖아요.”
▼ 하단아 같은 사랑 해봤어요?
“좀 다른데…. 저도 오랜 시간 짝사랑을 한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5~6년 정도. 한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 예전의 나를 떠올리기도 했지요.”
▼ 상대역인 이강석은 어때요? 실제 그런 남자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요? 냉혈한? 좀 건방진? 싫습니다. 건방진 남자 싫어요. 이상형은…글쎄요, 외모는 잘 모르겠고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기자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도움을 받아 체크리스트를 하나 준비했다. 본인소개, 상대희망조건, 본인의 성격테스트 등이 담긴 4장짜리 질문지였다. 혹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윤씨는 너무나 좋아하며 응해줬다.
결혼정보회사 체크리스트
“결혼정보업체에서 쓰는 체크리스트예요. 한번 해보실래요?”
“오~ 재미있어요. 정말요. 이런 인터뷰 처음 해봐요.”
긴장한 듯, 수줍은 듯하던 윤씨의 눈이 갑자기 초롱초롱해졌다. 신기해했고 궁금해했다. 인터뷰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윤정희는 아주 빠르게 체크리스트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체크리스트를 따라가며 자신의 이상형, 원하는 남성상, 본인의 취향 등을 꼬치꼬치 중얼거렸다. 기자는 듣기만 했다.
“종교는 아무래도 관계가 없어요. 학력은…아무래도 남자니까 저보다는 높은 게 좋겠죠? 그러면 대학원 졸업? 아니 뭐 대학졸업 이상이면 되겠다. 직업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와~ 이렇게나 많은 직업 중에서 골라야 돼요? 그런데 이런 식이면 ‘사’자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다 좋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말하자면, 체크리스트에는 상대 희망조건 중 직업란에 무려 23개 항목에 30개가 넘는 직업이 적혀 있었다. 파일럿, 미용사, 요리사, 의사, 변호사 등 아주 구체적이었다.)
“안 되겠다. 직업은 좀 있다가 해야겠어요. 나이는 오빠였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너무 많으면 좀 그렇고. 지금 제가 우리 나이로 서른이니까…1~6살 연상 정도? 키는 저보다 작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다지 중요하진 않아요.”
“키 작은 남자도 괜찮아요?”
“하이힐 안 신으면 돼요. 괜찮아요. 거주지는 아무래도 연애를 해야 하니까 서울 근처가 좋겠죠? 혼인경력? 이런 것도 있어요? 호호호, 이것만큼은 절대 안 되죠. 이혼경력자는 불가능. 건강은 양호해야죠.”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흥행퀸’
“직업이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직업이나 좋다고 생각해요. 아~ 그래요. 이런 직업은 정말 재밌겠다. 요리사, 파일럿,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연예인은 어때요?”
“뭐 나쁘지는 않지만…글쎄요, 그래도 저와는 다른 사람이면 좋겠죠? 너무 어려워요. 건축가도 있네요. 좋을 것 같아요. 예쁜 집을 같이 지어서 살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조건을 따져서 만나는 사람하고 사랑이 가능할까요?”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을 가진 남자는요?”
“답답할 것 같아요. 제가 좀 조용한 성격이니 남자는 좀 활동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약사, 의사, 변호사 그런 직업은 좀 답답할 것 같아요.”
체크리스트 페이지를 넘겼다. 이번엔 주관식 문제. ‘자기소개’와 ‘희망상대 스타일’을 쓰는 공란이 있는데 윤정희는 한동안 펜만 만지작거릴 뿐 자기소개를 쓰지 못했다. ‘편하게 쓰세요’라고 몇 번을 말해줬지만 망설임이 길었다.
“대학 때 이후로 이런 건 처음 써 보는 데요. 머리가 멍해요. 안 되겠어요. 상대방 스타일부터 쓸게요.”
그러고는 거침없이 두 줄을 써 나갔다. 슬쩍 보니 이랬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여성을 배려할 줄 아는 분이라면 좋겠어요. 자기 일에는 열정을 갖고 있고 활동적인 분!!’
“그런데 이렇게 쓰면 (남자친구를) 찾아 주시나요?”
“결혼정보업체에서 찾아준대요.”
“에이~ 그런 거 말구요.”
실망한 듯 보이는 윤씨를 달래려고 “좋은 남자 소개해줄까요” 라고 말하려다 기자는 책임을 못 질 것 같아 그만뒀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도중 윤씨는 “쓰다 보니 쓸 게 많아지네요”라며 뭔가를 더 적었다. 글씨가 또박또박하고 단아하다. 추가된 내용은 이랬다.
“게으름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난데 저랑 함께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OK!”
다음은 성격성향테스트.
테니스, 수영 등 취미나 여가에 해당하는 항목이 32개 있고 관심이 있다 없다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다. 윤씨가 대뜸 물었다.
“관심과 잘하고 못하는 건 서로 다른 거죠?”
“그렇죠. 관심있는 것에 체크하세요.”
윤씨가 관심이 있다고 체크한 항목은 딱 절반인 16개였다. 항목은 대충 이렇다. 테니스, 수영, 볼링, 스키, TV, 연극, 영화, 댄스, 여행…. 가만히 보다가 기자가 한마디 던졌다.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이 있는 거 아니에요?”
윤씨는 “그런가” 하며 슬쩍 눈치를 봤다.
마지막 항목은 가치관.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럴 때 나라면 이렇게 행동한다고 표시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인연을 ①확고하게 믿는다. ②믿는 편이다. ③믿지 않는다’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배우 윤정희가 각각의 상황에서 고른 ‘선택’을 재구성해 그녀의 성격을 소개하면 이런 식이다.
윤정희는 인연을 믿는 편이다. 친구는 깊게 사귀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다소 신경을 쓴다. 하지만 말로 하기에 난처한 것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할 때도 당사자에게 직접 말을 하는 직설적인 구석이 있다. 타인의 나쁜 습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며 감정표현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면 자주 눈물을 흘리며 고궁이나 정원을 거니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차가 지나지 않는 깊은 밤에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터프함(?)이 있고 여성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패션에 있어서는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편이며 신중하게 쇼핑을 한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다”는 주의다. 자녀 교육을 위해 생활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아이가 재능이 있을 때에만 그러겠다’는 것.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가정에도 충실한 남편을 원하며 남성의 액세서리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교통사고 현장 등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면 상황을 살피거나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신속히 현장을 떠난다.
세번의 사랑…진짜 사랑은 한 번
▼ 남자 얘기 조금만 더 하죠. ‘가문의 영광’에 나오는 남자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만 골라볼래요?
“강석이요.”
▼ 아까는 건방져서 싫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따지면 작은오빠는 바람둥이였는데 자상한 남편이 됐잖아요. 강석이도 나만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고.”
▼ 현재가 중요하다 그런 거네요? 연하남자는 싫다고 했는데?
“어려 보여서 싫어요. 동갑도 어린데.”
▼ 연하 만나본 적 없어요?
“연하는 없었고 동갑은 한 명. 사귀는 동안 서로 잘 안 맞았어요. 대학 때였는데 전 그때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어요. 근데 남자는 생각이 좀 어리더라고요. 군대도 가야하고. 게임 같은 데 빠져 있거나 하는 거 보면 싫었어요.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너도 공부해!’ 하기도 했는데 ‘차이가 크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짝사랑한 남자도 동갑이었어요. 오빠를 만났다고 마냥 기댈 수는 없겠지만 듬직한, 내가 좀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좋겠어요.”
‘너도 공부해!’ 하는 대목에서 윤정희는 갑자기 목소리에 힘을 빡 줬다. 잠시 당시의 기분으로 돌아갔나 싶었다. 기자는 갑자기 커진 그의 목소리에 잠깐 당황했다.
▼ 그동안 만났던 사람 중에 혹시 아쉬운 사람이 있어요?
“만난 사람이 한 명이에요. 풋사랑, 짝사랑은 다 빼면요. 진짜 사랑은 한 번인 셈이죠. 지금 그 사람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어요.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니고. 그때 나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해준 사람인데 하는 생각은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이죠.”
대화를 정리하면, 윤정희는 지금까지 3명의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한 번이었다. 첫사랑은 짝사랑, 대학시절 게임 좋아하던 동갑내기와의 사랑은 풋사랑이라고 그녀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현재 만나는 남자는 ‘없다’고 했다.
▼ 결혼해서 하단아처럼 살라면 살 수 있겠어요? 한복 입고 새벽밥 짓고 하루종일 청소하는 전형적인 새댁.
“한 달? 두 달까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혼이고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면요. 평생을 하라고 하면…휴~ 답답해서 그걸 어떻게 해요.”
▼ 결혼 적령기가 됐는데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요?
“아직은 없어요. 결혼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도 몇 개 있고요. 그건 꼭 하고 싶어요. 3개월 정도 일본에 공부하러 가는 것, 1년 정도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사는 것. 결혼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 거 다 해본 뒤에 좋은 사람 생기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 주제는 다시 성격테스트로 돌아갔다.
“성격성향테스트, 이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랑만 가지고 살순 없잖아요. 어릴 때부터 전 조용한 걸 좋아했어요. 꽃향기 맡으며 산책하고 등산하고 그런 거. 앞으로 만날 남자친구나 남편도 그랬으면 해요. 등산을 좋아하는 내게 ‘산에 왜 가’ 그러면 좀 이상하잖아요.”
▼ 사랑하는 사람과 꼭 같이 하고 싶은 거 또 있어요?
“스키, 테니스요. 골프는 관심은 많은데 제가 못 쳐요. 실내연습장에선 해봤는데. 남자가 잘하면 같이 하면서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남자가 집안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하하하.”
▼ 춤에도 관심이 많다고 적었네요?
“춤 배우려고 알아보는 중이에요. 드라마가 끝나면 뭘 해야겠다고 항상 계획을 세우거든요. 재즈댄스는 해봤는데 어려워요. 제가 팔다리가 길어서 리듬을 못 따라가요. 방송댄스 배우는 데가 있대요. 그런 춤 배우고 싶어요.”
▼ 춤을 왜 배우려고 해요?
“드라마 캐릭터 때문인지 너무 기운이 처져서요. 가끔은 드라마 캐릭터에 빠져서 ‘내가 누굴까’하는 고민에 빠질 때도 있어요. 내가 정말 이랬었나 그런 기분요. 나를 좀 ‘업’시켜줄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독서도 좋아한다고 표시했네요?
“열심히 읽는 편이에요. 가리지 않고 읽어요. 드라마 끝나면 서점 가서 놀곤 해요. 팬들이 서점에 있는 절 알아보고 책을 선물해주기도 해요. ‘가문의 영광’ 찍으면서는 ‘엄마를 부탁해’‘즐거운 나의 집’을 읽었어요.”
엄마 몰래 일본 여행
드라마 ‘가문의 영광’이 인기를 모으면서 윤정희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종 패션 전문지뿐 아니라 방송, 일간 신문에도 최신 유행하는 세련되고 단아한 스타일의 전형으로 윤정희가 무슨 샘플처럼 소개되고 있다. ‘가문의 영광’이 방송된 뒤에는 인터넷에 어김없이 ‘오늘 윤정희가 입고 나온 옷이 어떤 제품이냐’, ‘액세서리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는 등의 문의가 수십개씩 올라와 인기를 실감케 한다. 참고로 인터뷰하던 날 오후, 낮기온이 20。C를 넘는 후텁지근한 이날 윤정희는 몸에 딱 붙는 약간 빛바랜 청바지, 몸에 살짝 붙는 편안한 스타일의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팔에 칭칭 감긴 번쩍번쩍한 팔찌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촬영용 의상으로는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흰색 원피스에 발가락이 살짝 드러나는 흰색 구두를 준비했다. 화장은 짙지 않았다. 그냥 ‘하단아’다웠다.
“하단아식 패션 좋아해요?”
“좋아요.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스타일 좋아하거든요. 재킷에 바지나 치마. 평상시엔 청바지에 티셔츠 잘 입고요.”
“헤어스타일은 어때요?”
“개인적으론 긴 머리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짧은 머리가 제게 어울린다고 해요. 영화 ‘고사’ 때나 ‘가문의 영광’에서 짧은 머리를 해서 익숙해지셨나 봐요. 머리가 좀 빨리 길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윤정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기와 일본어 중 어떤 걸 할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기사에는 일본어를 꽤 잘한다고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어 얘기를 꺼냈더니 기다렸다는 듯 얘기를 쏟아냈다. 밝게 변한 표정은 마치 “내가 일본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묻는 듯했다.
▼ 일본어 공부 요즘도 해요?
“일본어 공부 정말 좋아해요. 뭔가 배우는 게 좋아요. 직업이 이래서 꾸준히 하지 못해 아쉽지만요. 신인 때 연기하면서 아침에 일본어학원에 다녔는데 그러다 빠졌어요. 그때는 ‘연기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 ‘일본어를 잘하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천대를 받아야 되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게 어울리는 곳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 그러다 보니 일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그러다 ‘하늘이시여’에 캐스팅되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때 ‘하늘이시여’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거나 일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고생 많았네요.
“전 한다고 마음먹으면 하는 스타일이에요. 특히 공부는 그래요. 공부는 한 만큼 나온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운이 많이 따르지만 공부는 내가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고 믿어요. 뿌린 대로 거둔다고. 전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자신을 잘 믿는 편이거든요.”
▼ 일본어 실력은 어느 정도예요?
“궁금한 거 물어보고 기본적인 의사소통할 정도는 돼요. 근데 아직 잘 안 들려요.”
깔깔깔 웃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연기와 일본어, 둘 중 하나를 해야겠다고 고민했을 만큼 애정을 가지고 공부했다니 ‘일본어 실력은 어떨까’ 싶었다. 길을 물어보는 상황, 물건을 고르는 상황 등을 내주고 일본어를 시켜봤다. 기대 이상에 발음도 좋았다. 물론 일본어를 못하는 기자가 윤정희의 일본어를 평가할 방법은 없었다.
“일본에 가본 적 있어요?”
“네, 작년에요.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 혼자 다녀왔어요. 오사카에서 신칸센 타고 도쿄로 가는 일정으로요.”
“공부한 보람은 있던가요?”
“길 물어보고 간단한 것들 물어볼 정도는 되더라구요. 그냥 재밌었어요. 그 여행이 혼자 하는 첫 여행이었어요. 국내에서도 혼자 여행한 적이 없거든요.”
“무섭지 않았어요?”
“무섭기보단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혼자 여행하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게도 되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진다고 하던데 전 엄마 생각밖에 안 났어요. 그래서 돌아와서는 엄마를 꼭 안아줬어요. ‘엄마 사랑해’ 하면서요. 엄마는 제가 혼자 간 줄 몰라요. 친구랑 간다고 거짓말했거든요.”
“이 기사 나가면 들통이 날텐데.”
“신동아 기사 못 보게 해야죠. 하하하.”
맨발로 줄행랑
드라마로 얼굴을 알리기 전에 윤정희가 그나마 ‘괜찮은 연예인’ 소리를 들었던 건 예능 프로에서다. 2003년 방송된 ‘장미의 전쟁-산장미팅’(KBS)에서 그룹 신화의 멤버 이민우와 8주 연속 커플이 되면서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했지만 인기가 좋았다. 그때도 역시 단아한 모습이 경쟁력이었는데, 상대가 당대 최고 가수라는 것도 도움이 됐다.
▼ 예능 프로그램은 어땠어요. 본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힘들었어요. 전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춰요. 그런데 보여지는 부분이 그런 게 크잖아요. 그때 이후로 많은 사람이 ‘걔는 끼가 없어’라고 판정하더라구요. 예능 프로에서의 모습만 보고 ‘넌 안돼’ 그런 거죠. 연기를 시켜보지도 않고 말이죠. ‘하늘이시여’ 전까지 계속 그랬어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요.”
▼ 그래도 꾸준히 예능 프로에 나갔잖아요.
“영화 홍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말고는 그때 이후로 안 했어요. 제가 말발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저랑은 예능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전 그냥 연기자일 뿐이죠.”
▼ 춤 배우겠다고 했는데, 혹시 예능 준비하려는 건 아닌가요?
“전혀 아니에요. 그동안은 사실 취미가 쉬는 날 도자기, 그릇 만드는 거였어요. 안양 집 근처에 공방이 하나 있거든요. 생각이 많을 때 흙을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데 이제는 나를 좀 ‘업’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배우려는 거예요.”
여배우의 길은 험하다. 도처에 암초가 있다. 이런저런 시기도 많고 스캔들이 친구처럼 따라 붙는다. 또 그래야 인기배우라는 소리도 듣는다. 윤정희도 다르지 않았다. 얼굴을 알린 지 몇 년 안됐지만 심심하면 스캔들이 터졌다.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윤정희가 불씨를 제공한 면도 없진 않았다. 스캔들 상대는 평소 친해 등산을 같이한 김제동, 우연히 밥을 같이 먹었던 김환 아나운서, 오빠▼ 동생 하는 사이인 배우 김석훈 등이었다. 전혀 다른 얘기지만 3월20일에는 달리던 차에 불이 나는 황당한 사건도 겪었다.
▼ 스캔들도 많았죠.
“처음엔 신기했어요.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런 마음? 그런데 점점 안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여자로서 상처받는 것도 있고 상대에게도 미안하고요. 석훈오빠에게 특히 미안해요.”
▼ 혹시 스캔들이 났으면 하는 남자 연예인은 없어요?
“네? 없어요. 연예인에 관심 없어요.”
▼ 차에 불도 났죠?
“하하하~ 아시네요. 자고 있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있는데 얘들(코디, 매니저)이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느낌이 안 좋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맨발로 막 뛰었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큰일날 뻔했어요.”
▼ 최근 장자연씨 자살 사건으로 연예계가 시끄러워요. 기분이 어때요. 같은 연예인으로서.
“마음 아프죠. 힘이 없는 신인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켜서 생긴 일 아닌가요?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신인 때 서러움을 많이 당해서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긴 해요.”
▼ 장자연씨 같은 일은 당한 적 없었어요?
“없었어요.”
▼ 욕심나는 역할이나 캐릭터 있어요?
“지금 생각으론 기존의 이미지만 아니라면 다 좋을 것 같아요. 악역은 꼭 해보고 싶어요.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희애 선배님 역할 같은 건 정말 탐이 나요.”
▼ ‘아내의 유혹’의 김서형씨 같은 역 말이죠?
“네, 그것도 좋아요. 드라마를 꼼꼼히 보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알아요. 해보고 싶어요.”
▼ 안티팬이 많아질텐데 괜찮겠어요?
“에이~ 그런 거 무서우면 아무것도 못하죠.”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처음에 했어야 할 질문을 하나 꺼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며느리 삼고 싶어하는 분이 많다던데.”
이 질문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윤정희와 인터뷰를 하기 전 소속사인 ‘웰메이드스타엠’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서였다. 이 관계자는 “요즘 윤정희씨를 한번 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몇몇 재벌가에서도 며느리 삼고 싶다며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 종종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윤정희씨가 불편해 했다”는 말도 전해줬다. “아무래도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캐릭터가 단아하고 차분해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다소 민감한 질문이라 비교적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는데 윤정희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정말요? 몰랐어요.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겠죠. 예쁘게 봐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촬영을 하면서 윤정희에게 “자신의 가장 큰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편안함이요” 그런다. 잠시 생각하더니 “과도하게 이쁘지 않은 편안함”이라고 나름 분석까지 내놓는다. 물론 기자는 “과도하게 이뻐요”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식탐이 많다는 윤정희는 인터뷰 내내 답을 쓰지 못했던 결혼정보회사 체크리스트 ‘자기소개’란을 인터뷰가 끝나고서야 채워 넣었다.
‘30살이고 170cm 키에 발랄한(?) 여자랍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