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하는 엄마에게 여성성이 부여될 때 참된 여성이 완성
- 아버지의 외도,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죠?
- 내 소설 주인공들이 나약하다고요? 천만에요
- 아무리 불가능해도 사랑은 계속 해야
- 글 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절망 느껴
- 이 생에서 다 쏟아내고 다음 생에선 작가로 태어나지 않겠다
그대 신경숙(46)을 만나기로 한 날, 조성식 기자는 아침 출근길 승용차 안에서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곡을 몇 번이고 들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리메이크한 그리스 노래인데 이 곡에 번안가사를 붙인 사람이 바로 그대다.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8시에 떠나네’ 2절)
1999년에 나온 그대의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이 노래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야학과 노동운동을 하던 주인공 김하진(오선주) 패거리는 동네 다방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들의 본거지에 모여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켜라’는 구호문을 만들거나 야학에 걸어놓을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그런데 그들 중 이 노래를 다방 DJ에게 신청하는 사람은 매번 곡목을 ‘8시’에서 ‘7시’로’ 바꾼다. 일종의 암호였던 것이다.
이 노래가 조 기자의 가슴에 꽂힌 데는 그대의 소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실 그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몇 년 앞서 나온 ‘깊은 슬픔’과 ‘외딴방’이지만 그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제목부터 멋있지 않은가. 꽉 닫힌 명사형 제목으로 주제를 생경하게 드러낸 두 작품에 비해.
인터뷰는 그대를 덮친 감기 탓에 하마터면 깨질 뻔했다. 그대는 애초 인터뷰하기로 한 날 아침에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기사 마감이 임박한 10월13일 오후에야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장소는 서울 평창동의 한 미술관. 맑은 공기와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그대는 북한산 자락인 구기동과 평창동 일대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의자가 고작 서너 개인 미술관 찻집에서 기다리는 기자 앞에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은 그대가 긴 머리채를 흩날리며 나타난다. 동화에 나오는 마법사처럼. 이제 인터뷰가 진행되면 알게 되겠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그대가 펴낸 장편소설들을 꾸준히 읽어온 기자는 그대의 모습에서 지헌(‘엄마를 부탁해’)과 리진(‘리진’), 산이(‘바이올렛’), 하진(‘기차는 7시에 떠나네’), 은서(‘깊은 슬픔’)의 흔적을 찾고 있다. 그들이 그대의 분신이라고, 상징적인 의미의 분신이 아니라 실제로 닮았다고 여기면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졌다”
기자는 그대의 인상이 9년 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세련됐다고 느낀다. 어느덧 훌쩍 중년에 접어든 그대에게서 원숙한 아름다움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인터뷰 중간에 밖에 나가 사진을 찍을 때 그대는 “세련돼졌다”는 기자의 말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부드러워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사람이 좋아졌다는 거지” 하며 쿡쿡 웃었다.
아픈 탓인지 그대는 오늘따라 얼굴 윤곽이 뚜렷하다. 누군가에게 그대가 ‘만년 소녀’라는 느낌을 준다면 검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에도 공을 돌려야 마땅하리라.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야 그렇다 치고.
그대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오래 전 방송국에서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를 할 때 알았다. 원어로 들어 가사 뜻도 몰랐지만, 처음 듣는 순간 얼음장에 짱 금이 가듯 가슴이 갈라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자리에 앉은 그대는 가방에서 하드커버의 양장본 ‘엄마를 부탁해’ 두 권을 꺼내 조 기자와 사진기자에게 기념으로 준다. 맨 뒤 판권에 ‘초판 100쇄 발행/ 2009년 9월14일’이라고 적혀 있다. 언론은 이를 두고 “한국문학 사상 최단 기간 내 100만부 돌파 소설”이라고 요란을 떨었다. 전작들에 비해 대중성이 강하긴 하지만, 순수문학작품인 이 소설이 100만부를 돌파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대라고 예상했겠는가.
그대는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생강차에 감기약을 탄 것이다. 감기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서다. 기자에게 “이렇게 가까이 앉아 얘기하면 감기 옮길지도 모른다”고 농을 건넨다. 자신도 남편에게서 옮은 것이라며.
이런 몸으로 그저께와 어제 1박2일에 걸쳐 강원도 양양에 다녀왔다.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하는 동인문학상 최종심사 때문이다. 양양에서 심사위원들은 합숙을 하며 장시간 토론 끝에 네 편의 후보작 중 한 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아직 신문사에서 공식발표를 안 했기에 그대는 “누가 선정됐느냐”는 조 기자의 물음에 답변하지 않는다.
7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그대는 지난해부터 이 상에 관여해왔다. 심사위원들은 매달 한 차례씩 모여 후보작품들에 대해 토론해 왔다. 오래전 황석영씨는 이 상에 대해 “거대 언론사의 문인들 줄 세우기”라고 강하게 비난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기자가 황씨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대는 “내가 심사위원 하기 전의 일이라 그 사정을 잘 모른다”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상의 심사위원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평소 놓치는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심사를 맡게 되면서부터 매달 새로 출간된 책들을 읽게 됐지요. 한창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문학계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좋아요. 예전에는 80년대 문학이니 70년대 문학이니 해서 어떤 특징으로 묶여 규정됐지만, 요즘은 4·19세대, 386세대, 88만원세대 등 여러 세대의 특징이 뒤섞인 느낌이 들어요. 지금 젊은 작가들은 매우 다양하게 써요. 제가 보기엔 진짜 문학의 본질을 다루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서울 평창동 미술관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신경숙씨.
그대는 요즘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에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10월13일 현재 76회를 맞았다. 인터넷 연재가 처음인 만큼 그대는 독자들이 매회 글을 읽고 보이는 반응, 즉 댓글이 흥미롭기만 하다.
“내 독자들은 참 이상해요. 작품 이야기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제는 제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소통하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연재를 시작할 때 그대는 알라딘 측에 일주일에 두 번은 독자들의 댓글에 화답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래서 요즘은 2, 3주에 한 번씩 들어가 독자들에게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정도다. 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중 하나는 외국에 있는 독자들이 다는 댓글이다. 그대는 캐나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지에 있는 유학생들의 댓글을 통해 그곳 생활을 알게 되는 뜻밖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인터넷에 소설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다. 주로 악성 댓글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그대는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글을 보지 못했다.
“알라딘이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고요. 또 오랫동안 제 작품을 읽어온 분들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미묘한 정이 생겨 (댓글이) 오래 안 보이면 궁금하기도 해요. 내가 적극적이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독자들끼리 서로 메일 주고받고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좋아요.”
그대는 평소 밤 11시께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곤 했다. 그런데 인터넷 연재를 하면서부터는 일어나는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처음엔 알람소리에 깼지만 지금은 몇 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글쓰기는 오전 9시까지 계속된다. 9시 반쯤 동네 요가원에 가서 한 시간 남짓 요가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몇 시간 잔다. 약속은 웬만하면 오후에 잡는다. 가끔 영화도 본다. 한때 광화문에 있는 시네큐브극장에 자주 다녔다.
“새벽 3시에서 아침 9시까지는 순전히 내 작품을 위한 나만의 시간이에요. 그렇게 딱 정해놓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모든 것과 단절된 독자적인 시간을.”
이제 본격적으로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대가 어느 인터뷰에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듯 100만부는 누구에게나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수치로 느껴진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길이가 416㎞다. 이 책의 세로 길이가 22㎝(0.22m)니 100만부를 잇대어 늘어놓으면 220㎞에 달한다. 즉 경부고속도로 시작지점에서부터 책을 늘어놓으면 서울-부산의 중간 지점까지 깔리는 것이다. 쉽게 계산이 안 된다고? 그대를 만나기 며칠 전에 기자가 계산해본 것이니 그냥 믿어도 좋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 작품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색다른 형식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4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는데, 각 장의 화법이 다르다. 첫 장은 큰딸의 시점에서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너’라는 2인칭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2장은 큰아들의 시점에서 ‘그’라는 3인칭 화법으로,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3장은 ‘당신’이라는 2인칭 화법으로 진행된다. 1인칭 화법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엄마가 화자로 나서는 4장뿐이다. 에필로그는 1장과 마찬가지로 큰딸이 화자인 2인칭 시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는 기자의 말에 그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나중에 기자도 인터뷰를 끝내고 기사를 정리할 때쯤에는, 두 작품이 여러 명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과 추리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언뜻 비슷하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 시점과 화법이 다양하고 모든 화자의 얘기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만 전개된다는 점에서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예요. 서울역이라는 누구나 다 가볼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의 내밀한 부분을 다 알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난 다음 가족이 한 사람씩 등장해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복원해가는 작품이에요. 처음 쓸 때 연극무대를 생각했어요. 모노드라마처럼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통해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을 복구하는 거죠.”
그대는 왜 엄마만 ‘나’라는 1인칭 화법으로 말하게 했을까.
“나라는 존재를 수만 개로 분화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엄마인 것 같아요. 엄마는 다른 가족에 비해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고 말하면서 사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이 소설 안에서는 엄마한테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냐면, 엄마를 얘기하면 다른 존재들의 삶이 다 이끌려 나와요. 이 소설도 그렇잖아요. 다들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딸은 어떤 존재인지 아들과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드러나요. 관계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존재가 엄마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작가로서 이 세상 엄마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이 ‘나’였어요.”
엄마에 대해 그대는 정말 할 말이 많다. 그대는 엄마를 양파껍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다 드러나지 않는다.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말을 해도 부족하다. 따라서 엄마 스스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엄마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100만부나 팔렸지만 조 기자의 아내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주변에서 읽어본 사람들이 슬픈 얘기라며 읽지 말라고 했다나. 그대에게는 답답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뇌졸중을 앓아온 ‘엄마’는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직전 아버지를 놓치고 난 뒤 행방불명된다. 뇌 이상으로 정신을 놓고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4장에서 엄마는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기억들을’ 주체하지 못해 자식들과 남편이 사는 집을 차례로 돌며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끝내는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아가 죽은 엄마를 만나기에 이른다. 기자는 이것을 이승을 떠나기 직전 혼의 방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대의 해석은 어떤가.
“환상이에요. 삶과 죽음의 경계인 거죠. 이 작품은 슬프라고 쓴 게 아니에요. 읽으면서 울었다면 슬퍼서 운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내면에 갇힌 엄마하고 대화하느라 울었을 거예요. 이 세상의 어떤 존재든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은 나쁜 시간이 아니에요. 엄마와 굉장히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래요. 엄마를 생각하다보면 결국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가 뭔지 깨닫게 되죠. 엄마에게는, 정말 편한 관계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예의도 지키지 않아요. 타인에게는 비치지 않는 나의 못난 모습이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다 드러나죠.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울었다면 슬픔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나 정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런 의미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 완성된 문장
그대는 언제부터 엄마의 얘기를 쓰려고 맘먹었던가. 열여섯 살 때였던가. 그대는 고향(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해 6월 엄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고등학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도착한 날 밤 내 앞에 앉아 꼬박꼬박 조는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이 작품이 잉태된 거예요. 집필은 1년 동안에 이뤄졌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오랫동안 쓰였다 지워졌다 했지요. 4장의 마지막에 엄마가 자기를 낳아준 엄마의 무릎에 누워 말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마지막 문장이….”
기자가 끼어든다.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아닌가요?”
“맞아요.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문장은 10년 전에 제 마음 안에서 완성된 것이에요. 열대여섯 살 때 생각한 엄마와 나이 들면서 생각하는 엄마가 달랐지요. 내 마음속 엄마가 자꾸 바뀌면서 여러 차례 갈등을 겪는 바람에 뒤늦게 작품을 쓰게 됐어요.”
기자가 슬쩍 ‘아버지’ 얘기를 꺼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한국 남성의 전형으로 그린 것이냐고.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허허롭고 무심하고…. 그대는 “우리 시대에는 그런 아버지 모습이 보편적이었다”고 말한다. 항상 (엄마와) 나란히 걷지 않고 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랑이나 따뜻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고….
“엄마를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더 무심한 건지 모르지요. 아버지도 많은 풍파를 겪으며 한 시대를 통과해온 존재잖아요. 시대 분위기가 낳은, 장점과 결점이 다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 속 아버지가 참 좋아요. 솔직한 모습이죠. 누구를 억압하는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방랑기가 있어 집에만 있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보여준 최상의 모습이라고 봐요, 나는.”
기자는 뜻밖이라는 듯 다시 질문한다. 여성으로서 밖으로 나돈 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건가. “그렇다”고 그대는 거듭 말한다. 그대의 발언은 어쩌면 가정에 대해 근원적인 죄책감과 중압감을 가진 상당수 남성에게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기자는 내색하지 않고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
작품에서 엄마의 비밀은 엄마의 존재를 한층 실존적으로 부각시킨다. 엄마의 비밀은 다름 아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이다. 외도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쌓인 정이 두텁다. 엄마는 그 남자와 깊이 교감하고 소통한다. 아버지에게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마음으로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장면이 삽입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가 한결 높아졌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평범한 소재와 줄거리가 단단해졌다고. 그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대는 웃음을 보이면서, 그러나 정색해 말한다.
“굳이 넣은 게 아니고요. 그 장면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했어요.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었던 장면이에요. 왜냐. 우리는,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인 줄 알잖아요. 이름도 없고. (작품에서) 엄마 이름을 ‘박소녀’라고 지은 것도 일부러 그런 거예요. 엄마로만 인식되면서 제거돼버린 여성,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있잖아요.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이런 말들 때문에 가려진 엄마의 욕망이나 꿈을 보일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엄마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엄마도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서 기자와 그대의 대화를 순서대로 옮겨보자.
“저는 그 대목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그렇죠. 그리고 엄마가 나만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그런 소통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 내가 그렇듯이 엄마도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외도―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데―를 물타기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어요.”
“(웃음) 아니, 물타기가 뭐예요? 그리고 그게 무슨 외도예요? 사랑이지요. 사랑이고 꿈이고 삶이죠. 우리가 꿈꾸고 욕망하는 것을 엄마한테도 부여한 거지요.”
엄마에게도 비밀이 있다
아버지의 외도는, 1993년에 출간된 그대의 단편집 ‘풍금이 있던 자리’에 포함된 같은 이름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소재였다. 아버지가 집에 들인 새 여자의 캐릭터와 자식들 간의 묘한 갈등관계가 ‘엄마를 부탁해’와 꼭 닮았다. 기자가 이를 지적하자 그대는 “그런가” 하고 만다.
“작가의 시선이 아버지의 외도를 비난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어요?”
“자식들에게 외도를 하는 아버지는 비난의 대상 아닌가요?”
“그래서 비난하나요, 그 자식들이?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될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상황이 개입되어 있을 거라고 보지요.”
“‘풍금이 있던 자리’에 나오는 그 여자(아버지의 새 여자)에 대해서도 거부감보다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 같던데요.”
“엄마와 그 여자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한 거예요. 엄마에게는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삶을, 그 여자에게는 엄마가 노동을 하면서 잃어버린 여성성을 부여한 거지요. 아름다움의 개념이랄까요. 두 개가 하나가 돼야 (참된 여성이) 완성되는 거죠. 둘 다 여성의 내면에 들어있는 것인데, 각각 볼 수 있게 분리해놓은 거예요. 그 여자도 엄마가 될 가능성이 있고 엄마도 그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서로에게 거울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신경숙씨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부드러워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웃었다.
그대는 그 여자의 떠남을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규정한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갓난아이한테 퉁퉁 불은 젖을 먹이고 뒷문으로 나가는 걸 본 다음날 그 여자가 떠나잖아요. 말하자면 더 큰 사랑이지요.”
기자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그대의 장편 ‘바이올렛’을 읽고 나서 주인공의 ‘답답한’ 캐릭터에 대해 화가 났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는 그대의 장편소설들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의 성격이나 이미지, 상처 받은 내면이 엇비슷하다고 여겨왔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말수가 적고 나약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심한 자의식에 갇혀 있고….
‘깊은 슬픔’의 은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절망해 자살하고,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김하진은 오선주로 불리며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시절 단 한 번의 관계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배었는데, 경찰의 폭행으로 유산하고 고문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자신에게 아이를 배게 했던 노동운동 동지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다. 꽃집에서 일하는 ‘바이올렛’의 오산이는 단 한 번 눈길을 준 사진기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열병을 앓다 엉뚱하게도 화원 손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한 조선 후기의 궁녀 리진은 프랑스에서 결혼생활을 하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귀국한 후 자살한다.
하지만 그대는 기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오독(誤讀)’이라고 언짢아한다.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나약하지 않다면서. 언뜻 약해 보이지만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한 ‘외딴방’에 대해 “작가의 자폐적 기질이 보인다”라는 평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대는 “글에 몰두할 때 작가들은 다 자폐아처럼 보인다”라며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다.
그대는 정말 이런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기자의 질문은 질기다.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유부남을 사랑한 주인공이 함께 해외로 떠나기로 한 약속을 깨고 그 남자를 떠나는 것도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냐고. 적극적인 여성이라면 그 사랑을 이루려 하지 않겠느냐고. 감기 때문에 밍밍하게 가라앉은 그대의 목소리가 뜨거워진다.
“아니요. 나는 성찰하는 인간을 그리는 게 글 쓰는 사람의 기본 임무라고 봐요. 그 여자는 소극적인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깊이 성찰한 끝에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 거예요. 그것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고. 그 남자와 함께 떠나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지만, 고향마을에 갔다가 어린 시절 엄마의 자리를 잠깐 차지했던 그 여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여자의 마음에 가까이 간 거지요. 그런 성찰에 따른 적극적인 행동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 작별이.”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선택 때문에 슬프고 힘들잖아요?”
“그런 시간은 견뎌내야지요. 그 남자를 따라 떠났다고 해서 힘들고 슬픈 시간이 없었을 것 같아요. 천만에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지요.”
“그렇겠죠.”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로 들릴까봐 걱정인데, 나는 이 여자가 진짜 자기가 할 수 있는 사랑에 가장 가까이 가는 방법을 택했다고 봐요.”
“은서를 죽여서 미안해요”
기자가 “이타적인 사랑이네요” 하자 그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감정을 식힌 듯 차분히 말을 잇는다.
“내 소설에 일관되게 흐르는 감정은 연민이 아닌가 싶어요. 서로를 밀쳐내고 저항하는 것보다는 좀 안되게 여기고….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보통사람들이에요. 자신의 일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이들이에요. 결코 약자가 아니에요. 은서만 해도 그래요. ‘깊은 슬픔’의 첫 문장이 ‘사랑이 불가능하다면 살아서 무엇 하나’예요. 결국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여자가 자기 갈 길을 간 거지요. 그 여자가 왜 약하다는 거예요? 오히려 고집스럽고 강하지요. 그렇잖아도 은서를 죽여서 미안해 죽겠는데… 문학 텍스트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었지만. 작품을 일반화해 보면 안 된다고 봐요. 작가마다 특성이 있고 추구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기자를 화나게 했던 ‘바이올렛’은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증보해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배드민턴 치는 여자’에서는 이름도 없이 그냥 ‘그녀’로 표현되지요. 어느 날 내면에 소통되지 않는 사랑의 욕망을 품게 된 그녀의 일상을 시적 언어로 꼼꼼히 추적해가죠. 10년 후 ‘바이올렛’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쓰면서 그녀에게 ‘오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 소통되지 않은 사랑의 욕망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굴절돼가는지, 느닷없는 폭력 앞에 어떻게 쓰러져가는지를 오산이의 30년도 채 안 되는 인생 속에서 펼쳐봤어요. 오산이를 식물성의 상징으로 생각하며. 마지막에 포클레인 위에 올라가서 흙으로 스스로를 매장하면서도 노트에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쓰지요.”
그렇다면 리진의 죽음은 뭔가. 이건 좀 경우가 다르다. 리진은 겨우 A4 용지 한 장밖에 되지 않은 기록으로 존재하는 여자였다. 그걸 그대가 생생한 역사적 인물로 살려냈다. 리진은 근대와 봉건을 한몸에 지닌 인간이다. 조선에서는 궁녀로, 파리에서는 외교관의 아내로 살았으니 말이다. 사료에 따르면 리진은 조선으로 돌아와 다시 옛날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에 절망해 금종이를 먹고 자살했다.
“나는 리진을 한 나라의 왕비이면서 상상할 수 없는 죽임을 당한 명성황후와 정신적인 모녀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로 처음부터 설정했어요. 어머니의 죽음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왜곡되는 것을 보며 그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애도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죠. 궁을 떠날 때 입은 옷을 입고 불한사전 속에 독을 묻혀 그 종이를 한 장씩 먹으면서 죽죠. 근대와 봉건을 한몸에 담은 채로.”
오빠들 어깨너머로 책 읽어
기자가 또 묻는다. ‘리진’이나 ‘바이올렛’ ‘깊은 슬픔’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공통 코드는 이루지 못한 사랑, 혹은 비극적인 사랑이다. 그대는 사랑의 본질이 비극이라고 보는가. 혹은 사랑은 비극적이어야 아름답다고 보는가.
“문학 자체가 비극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고, 세계와 개인의 불화 때문에 글쓰기라는 게 유지된다고 저는 봐요. 모든 것이 잘 이뤄지고 문제가 없다면 사회를 향해서든 개인을 향해서든 질문이 성립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글쓰기 자체가 비극에 의지하는 셈이지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위한 작업이 나는 문학이라고 봐요. 그러나 사랑은 해야 한다고 봐요. 아무리 불가능해도. 그것만이 우리가 이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 거라 생각하죠.”
그대의 작품세계는 흔히 ‘슬픔의 미학’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그대는 “내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인데 거기에 이르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대에게 문학은 어떻게 다가왔던가.
“문학은 정말 나한테 꿈을 꾸게 해줬어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오빠들(그대는 4남2녀 중 넷째로 위로 오빠가 셋 있다)이 저한테 큰 영향을 끼쳤어요. 그들의 어깨너머로 책을 읽었는데, 어느덧 나만 읽고 있더라고요. 보잘것없고 누추하고 결핍되고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더 강한 조명을 비추는 것이 문학이어서 더욱 의지했던 것 같아요. 의지하다보니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자연스럽게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내게 글쓰기는 부수거나 싸우지 않고 배려하고 껴안고 사랑하고 견디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나도 절망스러워요. 동시대에 함께 겪는 문제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려고 나 자신을 코너로 몰아가는 것이 내겐 글쓰기이기도 해요. 어머니까지도 껴안아주는 가장 큰 어머니 마음 가까이 가는 것이 내겐 문학입니다.”
그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이 반성문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아마 (고등학생 시절) 내가 쓴 반성문을 읽은 선생님한테 소설을 써보란 얘기를 처음 들어서인지도 모르지요. 어떤 반성문을 써내려가든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낮엔 공장에서, 밤엔 학교에서
이제 그대 문학의 자양분이 된 유년시절로 되돌아가보자. 그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매일 10리길을 걸어 다녔다.
“학교 가는 길이 하나뿐이었어요. 6년 동안 매일 같은 길을 오고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세하게 다 기억날 수밖에요.(웃음)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고 어디에는 묘지가 있고… 그리고 샛길로 걸어 다녔기 때문에 보리가 나거나 밀이 익는 걸 다 경험하고 느꼈지요.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일찍 체험했고. 제가 학교를 여섯 살 때 들어갔어요. 혼자 집에 있기 심심하니 오빠들 따라 간 거죠. 키도 컸고. 일곱 살에 다시 1학년에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1학년을 두 번 다닌 셈이에요. 그게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됐어요. 다른 애들이 1년 동안 배운 글쓰기를 2년간 했으니.”
그대가 살던 마을은 그대가 중학생일 때 전깃불이 들어올 정도로 한갓진 시골이었다. 그대의 부모는 농사를 지었는데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넉넉한 편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처럼 그대의 부모는 오빠들에게 정성을 쏟으면서도 딸들에게도 교육을 받게 하려고 애썼다. “부모님은 자식 모두를 교육시키는 데 일생을 바치신 것 같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대의 눈가에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기자가 짐작한 대로 그대의 집안사정은 ‘엄마를 부탁해’와 비슷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검사는 가문의 영광이요 출세의 상징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새 여자 때문에 집을 나갔던 엄마가 밖에서 만난 큰아들로부터 “검사가 되겠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서 그길로 집으로 돌아올 정도였으니. 실제로 그대의 첫째, 셋째 오빠와 남동생이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소설 속과 마찬가지로 검사가 되지는 못했다. 둘째오빠는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대의 집안내력이 어수선한 것도 소설과 한가지다. 6·25전쟁 당시 할아버지 형제 중 한 분이 경찰관이었다. 그 탓에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다들 죽고 그대의 아버지만 살아났다. 죽창에 목이 뚫리면서도 운 좋게 살아났다. 그대는 “아유, 별 얘기 다하네” 하면서도 말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세상에 대한 겁이 많으세요. 열다섯 살 이전에 가까운 사람들을 전염병으로도 잃고 전쟁으로도 잃고…. 아버지 형제가 위로 세 분이 있었는데 모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바람에 넷째인 아버지가 장남이 돼버렸지요. 할아버지가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봐 아버지를 학교에 안 보냈어요. 할아버지가 한의사였거든요. 집에서 아버지에게 한문을 가르치셨죠.”
중학교를 졸업한 그대는 서울로 올라가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에 진학했다. 야간인 이 학급엔 산업체 근로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대는 먼저 직업연수원에 들어가 두 달간 연수를 받고 모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나이가 어려 이력서에 나이를 올려 적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이 회사에서 진학을 희망한 근로자는 800명 가까이 됐다. 시험을 치러 그중 10명만 진학의 혜택을 받았다. 갓 중학교를 졸업한 그대를 빼고는 다들 대학 졸업할 나이였다. 전기회사에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 6개월, 졸업하기까지 3년간 몸담았다.
“그때 많은 걸 경험했죠. 노동자의 삶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황이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삶을 경직시키는지요. 그래도 놀라웠던 것은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꿈을 꾸고 사랑을 한다는 것이었죠. 그 시절의 경험이 작가가 된 지 10년 만에 ‘외딴방’을 쓰게 했어요.”
“내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신경숙씨.
기자가 묻는다. 그대의 첫사랑엔 아픔이 없었냐고.
“첫사랑요? (웃음) 없었는데요.”
“왠지 뜨겁게 연애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왜 안 그랬겠어요. 늘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요.”
그대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한다.
“첫사랑은 이뤄지기 어렵다고들 하죠.”
“안 이뤄졌어요.”
“상처가 오래갔습니까.”
“아니에요. 상처를 곱씹을 시간도 없이 다른 상황에 내몰려서 거기에 몰두했던 것 같은데요.”
자신을 객체로 만드는 화법을 구사하다니.
“다른 사랑이 나타났나요?”
“아니, 그렇지 않나요?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 시작하고. 저라고 뭐 달랐겠어요? 이뤄진 관계보다 이뤄지지 않은 관계가 훨씬 많지요. 사랑에 몰입해 있을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 그 두 가지만 이뤄지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이 된다고 봐요.”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대는 “외롭지 않을 때가 없는 것 같다”고 답한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어느 때 찾아올지는 모르지요. 글이 잘 안 될 때뿐 아니라 글이 잘 될 때에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거든요.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섬뜩하게 다가와서 외롭게 할 때고 있고요. 요즘은 신문에서 감당하기 힘든 뉴스를 만났을 때 외로움을 느껴요. 상처를 받아요, 진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우리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소설이 지향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소통이잖아요. 그런데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 정말 고독을 느껴요.”
다시 기자가 묻는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세요?”
“인생이라기보다, 사람마다 묘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봐요.”
“저는 인생이 근본적으로 비극이라고 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비극은 아름답다니까요.(웃음)”
“아름답다는 말에는 희망이 내포된 거지요?”
“희망이 있어도 비극은 존재하죠. 나는 세상에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더 많다고 봐요. 나쁜 뉴스를 보고 고독에 빠졌다가도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회복이 돼요.”
“삶 자체는 외롭고 슬픈 것 아닌가요?”
“사랑한다는 것이 슬픈 생각이 든다, 이런 표현이 있죠. 슬픔 때문에 끊임없이 예술이라는 것이 창조되고 글쓰기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대는 글을 쓰면서 절망에 빠진 적이 없던가. 있다. 아니, 늘 절망스러웠다. 새벽 3시에 깨어날 때마다 낯익은 절망과 대면한다.
“책상에 앉아 있을 나를 생각하면 너무 절망스럽죠. 내가 또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을 또 뚫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정말 소설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해 충만한 느낌을 갖는 게 끊긴다면 계속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작품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공포를 느끼는 지경까지 가요. 끊임없이 그래요. 그래도 이 일을 하는 건 뭔가 자신이 행복해지기 때문이겠죠.”
혹시 그대는 글을 쓰지 않을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나.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여기서 다 쓰고 갈 거예요. 대신 다음에 내게 다시 생이 주어진다면 작가로는 안 태어날 거예요.(웃음)”
“오래전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인터뷰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다시 태어나면 중질은 절대 안 한다고. 너무 힘들다면서.”
“그래요? 저는 그 경지는 아니지만…(웃음) 이 생에서 남김없이 다 쏟아낼 거예요. 그런데 나는 행복한 축이에요. 이를테면 ‘엄마를 부탁해’만 해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걸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와 만났잖아요. 외국 출판사의 편집자들한테 받은 편지를 읽을 때는 웃음이 나와요. 번역 발췌본만 보고 편지를 쓸 텐데 어쩌면 그리 국내 독자들이 표현하는 느낌과 똑같은지. 그런데 힘든 건 사실이에요, 쑥스럽지만.(웃음) 그만해요. 감기 다시 들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