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투자는 경제민주화 요구에 대한 화답
- 자칭 ‘국민기업’승계 땐 사기업 논리에 반감
- 재벌이 재단 설립해 투명경영하는 스웨덴 모델
- 공유가치 창출로 기업과 사회 ‘윈-윈’
- 박근혜 당선인, 아버지처럼 재벌 문제 접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년사에서 “협력사의 경쟁력을 키워 성장을 지원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중소기업들과 나누어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투자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될 수 있으면 투자를 늘리겠다. 앞만 보고 열심히 하겠다. 기업을 하는 이상 사회적 책임이라는 건 항상 따른다”고도 했다. 삼성그룹의 올해 투자액은 50조 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도 적극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투명경영, 윤리경영,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LG그룹은 새해 초 20조 원대 투자를 선언하고 나섰다. SK 최태원 회장은 “새해 글로벌 경기는 극한으로 치달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지고 있어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의지 꺾였나
이미 대선 기간에 경제민주화가 새 정부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됐다. 다만 구체 과제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그 전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중소기업 경쟁력과 지원 강화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막상 당선된 뒤엔 경제민주화 의지가 줄어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혜훈 최고위원 등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인수위에서 배제돼 있다. 대신 경제 1·2분과와 고용복지분과에 보수 성향의 학계 인사와 관료 출신이 포진했다. 급기야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월 8일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선거용으로만 써먹고 용도 폐기했다. 경제 정책의 기조를 경제민주화를 통한 내실 있는 성장보다 과거식의 외형적 성장에 두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책임을 강조하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흐름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64)는 이것이 올해 재계의 가장 큰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선거를 거치면서 기업인들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과거의 지도자들은 박근혜 당선인보다 더 강한 얘기를 했지만 실천하지 않았어요. 지금 박 당선인의 경우 강도가 약하면서도 실천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얘기한 것은 지킬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도 능동적으로 나서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합니다. LG의 20조 원대 투자 발표가 바로 그 첫 번째 화답이 아닐까 합니다.”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은 경제민주화를 이뤄서 그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도록 하겠다는 표현이다. 다만 정부가 칼을 뽑아서 휘두르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사회적 흐름이 조성될 것이라는 게 조 교수의 전망이다.
조 교수는 최근 대기업의 움직임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초기 상황과 비교해 흥미롭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그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지만 원하는 정도의 경제원조를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후 박 의장은 국가 발전에 기업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때 박 의장은 부정축재환수법으로 구속했던 기업인들을 풀어줬어요. 그리고 부정축재 안 따질 테니 앞으로 산업발전에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그 무렵 기업인들이 뜻을 모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만들었어요.‘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으니 우리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투자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겁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도 50여 년 전 아버지처럼 대기업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러자 기업들이 투자로 화답하고 있어요. 상당히 비슷한 접근 아닙니까.”
소액주주 피해 보는 자본주의
조동성 교수의 전공 분야는 경영전략이다. 1990년에는 ‘한국재벌연구’라는 책을 통해 일찌감치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 이슈가 공론화한 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대담을 하는데 흥미롭게도 서로 이야기가 겉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화를 하기는 하는데 서로 두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이뤄지는 대화(brain engagement)가 아니었어요. 하나의 공통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찬반 의견이 있기 마련인데, 반대 의견도 없이 대화가 진행되더군요.”
▼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예컨대 사과를 두고 어떤 이는 배라 하고 어떤 이는 수박이라고 해요.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경제민주화를 보고 있어요.”
조 교수에 따르면 첫째, 경영학에서는 지배구조를 먼저 본다. 경영학은 기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기업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때 기업 주인이 누구인지를 따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배구조 문제다. 지배구조의 민주화가 경영학의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회마다 지배구조 체계가 다르게 형성돼 있다. 미국은 주주가 주인인 주주 자본주의(stockholder capitalism), 유럽은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방정부, 하도급 업체 등으로 폭을 넓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일본은 종업원이 주인인 인본 자본주의(employee capitalism)가 중심이다. 한국은 미국의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변형돼 대주주가 주인인 오너 자본주의(owner capitalism)가 형성돼 있다.
“한국식 자본주의는 지배주주 경영자 자본주의라고도 합니다. 이는 소액주주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자본주의입니다. 그렇다보니 소액주주가 지배주주에 대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지배구조와 관련한 경제민주화 문제가 터지는 이유가 바로 이런 변형된 형태 때문입니다.”
시장 왜곡과 소득 불균형
둘째,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문제다. 경제학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에 초점을 맞춘다. 시장의 주인인 정부, 기업, 가계 사이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느냐를 본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만 봐도 왜곡된 구조가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시장은 대기업에 힘이 지나치게 쏠려 있다. 지난해 5월 기준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전체 주식시장의 60%에 달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왜곡에서 나오는 일감 몰아주기 같은 파행이 결국 거래의 왜곡으로 이어집니다. 기업의 소모성자재(MRO) 사업을 재벌 2세 기업들이 차지하고, 대기업이 하도급 업체의 재무구조를 빤히 들여다보며 이익을 최소화해 중소기업이 영세업체가 되고, 그런 영세업체가 파산하면서 실업자가 양산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결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대기업 문제를 경제민주화 이슈라고 이야기합니다.”
셋째, 사회학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민주화는 소득 불균형의 문제다.
“사회학은 사회의 주인이 누구냐를 따집니다. 그 주인에 의해 사회의 가치와 정의가 어떻게 보장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지요.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결국 소득 분배가 얼마나 공평하게 이뤄지는지를 다룹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착돼서 소득 격차가 커지고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또 다른 문제는 이 지배주주가 자손에게 기업을 승계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상속세와 증여세 등 여러 가지 규제를 통해 기업 승계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특히 이것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어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세금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는 생물학적 본능이 규제를 당하게 되자 편법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탈법적인 행위를 했어요. 대표적인 경우가 2세 소유의 자회사에 일감 을 몰아주는 것입니다.”
▼ 시각에 따라 경제민주화 문제를 달리 볼 수 있다면 해결책도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까.
“3가지 시각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맞물려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냐를 따져본다면 사실 경영학적 문제 이전에 생물학적, 인류학적 문제가 있어요. 대대손손 자손을 퍼뜨리고 유지하기 위해서 기업을 승계하려는 욕구가 바로 생물학적, 인류학적 욕구 아니겠어요? 거기서 경영학적인 지배구조 문제가 나오고, 다시 경제학적인 중소기업 문제가 나오고, 사회학적인 소득분배 문제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통합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선거 땐 민생 우선이었지만…
지난해 2월 조동성 교수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할 때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독특한 기업 역사를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재벌은 1960년대에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성장해갈 때 정부의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았습니다. 또 외국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져도 정부의 수입억제와 국민의 국산품 애용 정서를 통해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습니다. 작고한 어느 재벌 회장은 늘 자기 기업을 ‘국민기업’이라고 했어요. 당시엔 국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요. 그 기업이 우리 사회를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런데 승계과정에서는 국민기업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니 국민이 허탈감이나 배신감을 갖게 된 겁니다.”
▼ 이렇게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과정을 보면 항상 중요성과 시급성을 따지잖아요. 인과관계를 따져서 제일 상위에 있는 걸 해결하면 그 밑에 있는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이것이 중요성을 따지는 방법입니다. 사실 기업을 승계하려는 생물학적 DNA를 바꾸면 가장 쉬운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다음 핵심 고리는 지배구조입니다.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합법적인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하면 됩니다. 재벌 그룹의 승계 문제가 법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하면 다른 문제들은 일거에 해결돼요.
그런데 실제로는 좀 안다 하는 식자들 외에는 지배구조 문제를 실감하기 힘들어요. 지난 선거 때도 그랬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삶으로 다가가보면 지배구조 문제는 ‘별들의 전쟁’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가 많아요. 지금 내 소득이 올라가야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시급성을 따져야 합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 문제를 건드려야 선거에서는 표를 얻습니다.”
▼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중에 특히 민생을 많이 강조했지요.
“저는 그게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가 끝난 상황이고, 시급성보다 중요성의 차원에서 근본적 해법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배구조 문제, 시장 왜곡 문제를 해결하면 소득 불균형에서 오는 아픔이 훨씬 덜해집니다. 시장의 정의나 형평성이 좀 갖춰지면 국민도 심리적으로 상당히 만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은 더 많은 걸 요구하게 돼요.”
독점 통해 유지된 재벌
▼ 재벌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가요? 영어에도 복합기업(conglomerate)이나 그룹과는 다른 뜻으로 ‘Chaebol(재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한국 재벌의 독특한 탄생 배경이 있긴 하지만 재벌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성장할 때 국가 경제의 핵심은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어요. 특히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데, 돈이 흩어지면 그게 이뤄지지 않지요. 그래서 필요한 자원의 집적을 가능하게 한 ‘패밀리 집단’이 등장하는데, 그게 재벌입니다. 영국의 로스차일드나 켄트, 미국의 카네기와 록펠러, 일본의 미쓰이와 미쓰비시가 다 재벌입니다. 한국의 삼성, 현대와 다를 게 없어요.”
▼ 선진국에서는 재벌이 어떤 형태로 존재합니까.
“선진국 사례를 보면 개도국과 중진국까지 재벌체제가 유지되다가 선진국에 진입하면 재벌체제가 해체됩니다. 저는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이 되려면 재벌을 포기해야 하고, 재벌체제를 유지하려면 선진국이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배경 설명을 좀 더 할게요. 개도국에서 재벌은 경쟁에서 이겨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독점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독점은 권력기관이 비호하면서 유지돼요. 예컨대 정부가 발주하는 어떤 프로젝트에 개별 기업들이 참여의사를 표시하면 낮은 가격에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공사를 따내는 게 경쟁입니다. 그런데 독점은 권력기관이 개입해 그걸 하지 못하게 막아서 이뤄집니다. 그런 체제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개도국이 되면 재벌 기업들은 돈보다 선진국 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더 필요합니다. 경쟁력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시장경제에서 경쟁을 통해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
▼ 선진국에선 재벌이 어떻게 해체됐습니까.
“재벌 해체 과정엔 4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첫째, 재벌이 승계되다 3, 4대에 가면 능력 있는 자손이 생겨나지 않아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둘째, 독점금지법 등을 통해 재벌을 규제하는 겁니다. 1897~1912년 법정 투쟁을 통해 미국의 핵심 재벌이 해체됐습니다. 셋째, 일본의 경우 재벌이 군부와 결탁해 군벌이 됐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12개 재벌이 해체됐습니다.”
▼ 우리나라에선 법을 통해 바꿔나가는 방식이 가능할까요.
“문제는 미국식으로 법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은 상당히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미국도 15년이나 걸렸으니까요. 좀 더 이상적인 네 번째 방법은 재벌 총수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재벌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재단 설립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다. 이 기업은 스웨덴 전체 기업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거대 그룹이지만 투명한 공익재단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어 그룹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다.
▼ 우리나라도 재단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게 가능한가요.
“우리나라는 하나의 재단이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이 5%로 제한돼 있습니다. 그리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재단이 많아서 이미지가 좋지 않아요. 그러나 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개인이 착복하지 못하게 하면서 재단 운영을 건전화할 수만 있다면 스웨덴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재벌들도 록펠러 재단이나 카네기 재단처럼 재단을 통해 가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생물학적 승계 욕구도 합법적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다.”
▼ 재벌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제가 2011년 하버드대 경영학 대가인 마이클 포터 교수와 서울에서 만나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포터 교수는 기업이 ‘공유가치창출(CSV)’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입니다. 포터 교수는 선진국 기업이 후진국 커피 농장에 교육과 자금 지원을 통해 윈-윈(win-win)하는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더 큰 틀에서 CSV를 보고 싶습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돈을 버는 것이 곧 CSV입니다. 국내 재벌도 지배구조를 바꾸고 기업과 사회의 공유가치 창조에 나선다면 그것이 곧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하이브리드 스탠더드
지난해 초 총선을 앞두고 잠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조동성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개월 베이징어언대학에서 하루 4시간씩 중국어를 배웠고, 사회책무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중국 기업의 경영을 연구하는 등 중국 배우기에 열심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미국 스탠더드와 중국 스탠더드가 합쳐지는 ‘하이브리드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할 것이라며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걸프오일과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1978년 최연소(29세) 서울대 교수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경영전략부터 국가경쟁력, 경영디자인, 윤리경영, 창조경영까지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해왔다. 2008년엔 자기계발소설 ‘장미와 찔레’로 서울문학인 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등단했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마음속 열정까지 시들게 하진 못한다’라는 새뮤얼 울만의 시구를 좋아하는 ‘젊은’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