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인터뷰

이회성 유엔 IPCC 의장의 기후변화 경제학

“폭염 혹한 점점 더 심해질 것” “기후 대책 잘 세우면 경제성장”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8-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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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개국 시행 중인 탄소세 도입 논의해야

    • 기후 대책과 경제 발전은 동전의 양면

    • 기후 대책 세우면 2021년 1%, 2050년 3% 추가 경제성장(OECD 보고서)

    • 10월 1~5일 인천에서 총회, 195개국 대표 500명 참석

    • 1.5도 상승에 따른 영향 분석 보고서 총회서 채택

    • 지구는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올여름 사상 최고의 폭염이 한반도를 비롯해 북반구를 달궜다. 이례적인 폭염 원인이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임을 전문가들은 분명히 하고 있다. 

    조아나 헤이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폭염은 1950년대엔 1000분의 1 빈도로 나타났는데, 지금은 10분의 1 빈도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마이클 바이언 박사는 “인류가 만든 지구온난화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을 1도 높였다”며 “이런 기온 상승은 기온 분포를 바꿔서 폭염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말했다. 국립기상과학원도 최근 발표한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자료에서 인간 활동으로 온실가스 농도가 상승해 기후변화가 초래됐고, 그로 인해 폭염 등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 7위’의 오명을 쓰고 있다. 그만큼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본인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국민 대부분은 무관심 그 자체다. 폭염과 홍수 같은 재난이 있을 때만 잠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다시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런데 곧 가을이고, 겨울이다. 사상 최고의 혹한이 덮치는 건 아닐지….

    세계의 관심 총회에 집중

    지난여름의 일들이 조금씩 잊히는 시기에 주목할 만한 국제 기후변화 행사가 한국에서 열린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려온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가 10월 1~5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48차 총회를 연다. 

    유엔 195개 회원국 정부대표단 500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기후변화 회의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폭염을 겪은 직후 열리는 대규모 국제회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회의에선 지구 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섭씨 1.5도 상승하는 데 따른 영향과 전 세계온실가스 배출 경로를 담은 특별 보고서(Special Report on Global Warming of 1.5 °C, SR15)가 채택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국제사회는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가능하면 1.5도를 넘지 않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파리협약 당시 나온 세계 각국의 자발적 공약(NDCs·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만으로는 기온 상승을 2도로 제한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IPCC 의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출신인 이회성(73) 고려대 그린스쿨 대학원 석좌교수다. 이 의장은 라젠드라 파차우리 뒤를 이어 2015년 제6대 의장에 당선됐다. IPCC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을 평가하는 유엔 전문기관이다.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에 의해 설립됐으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실행에 관한 보고서를 발행하는 것이 주 임무다. 9월 10일 이 의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기후 대책과 경제발전 대책은 동전의 양면이다”며 “정부든 기업이든 잘살고 싶으면 꼭 기후변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염 앞으로 더 심해진다’

    이번 여름엔 한반도뿐 아니라 북반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폭염과 이상 기후를 겪었습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인지요. 

    “IPCC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경제·사회 활동에 따른 것임을 확실히 규명했습니다.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폭염 발생 빈도나 확률도 더 상승한다는 게 과학적 결론입니다. 물론 올해 한반도의 폭염이나 세계 각지의 기상이변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힐 방법론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확률적으로 볼 때 지구 온도가 계속 상승하면 그런 기상이변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죠. 결국 지구온난화가 점점 빠르게 진행되고, 앞으로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이런 기상이변을 겪게 되면서 고통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폭염이 앞으로 더 심해진다는 건가요. 

    “그렇지요.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 증가하도록 놔두면 지구 평균온도는 계속 올라갈 것입니다. 지구 평균온도는 현재 산업혁명 이후 1도가 올랐습니다. 지구 온도가 상승한 만큼 폭염 발생 확률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올해 기상관측 111년 만에 처음으로 40.6도(강원 홍천)라는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과거 경험에 비춰 그런 고온 여름이 올 확률이 50년 만에 한 번이라면, 다음 최고 온도는 기후변화가 계속됨에 따라 10년 만에 한 번, 혹은 내년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죠.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고온의 여름은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수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부에서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발표하면 산업계에서 부담이 된다고 반대하는 게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흐름이나 경제 흐름이 ‘저탄소’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대세의 흐름을 알고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이회성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당시 부의장)이 2014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IPCC 40차 총회에 동료들과 함께 참석했다. [IPCC제공]

    이회성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당시 부의장)이 2014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IPCC 40차 총회에 동료들과 함께 참석했다. [IPCC제공]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초래됐다는 것을 부인하는 주장이 아직도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매우 줄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의 증거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해수면 상승, 바다의 산성화, 북극 얼음의 부피 감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요즘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속도와 강도는 과학자의 예측을 넘어설 정도로 더 급격한지요. 

    “모든 과학적 발견은 불확실성을 내포합니다. IPCC는 어느 한 라인, 한 추세선(trend line)만 제시하지 않습니다. 추세선에 따른 불확실성의 범위도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온난화 추세는 IPCC가 그동안 제시한 불확실성 범위 내에 다 있습니다. 즉 과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불확실성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여론조사의 신뢰도 구간을 따지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평균치는 여러 개의 데이터를 모아서 나온 하나를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현실 세계에선 평균치와 늘 같지는 않고, 약간의 오차가 있습니다. 그 범위가 95% 신뢰도 안에 들어 있는 겁니다.” 

    현재 파리협약의 목표인 2도 이하 안전화 목표를 달성하는 건 가능한 일인지요. 

    “현재 있는 테크놀로지로도 달성 가능하다는 게 5차 IPCC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먼저 인프라에 투자해야 합니다. 에너지, 교통 등 여러 시설이 2도 목표를 달성하도록 저탄소형으로 형성돼야 합니다. 2도 이내라 해도 기후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감내할 정도의 대응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그것을 충당할 수 있는 재정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새 기술도 나올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정책적 구상이 필요합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가격 책정제도(carbon pricing)인데, 탄소세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합니다. 둘째 저탄소를 지향하는 R&D에 대한 투자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재정과 기술 발전 대책이 더해져서 저탄소형 인프라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혹한 가능성도 경계해야

    근래에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진동, 제트기류의 변화 등으로 한반도에 혹한이 다가왔는데요. 

    “기후 시스템이 그만큼 복잡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제트기류가 북극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극지가 더워지니 제트기류가 아래로 처져서 찬 공기가 엉뚱한 지역까지 내려온다는 것인데요. 지구 평균온도가 달라지면서 생긴 현상이 바로 제트기류의 하강 추세 같은 것입니다.” 

    올겨울에도 그런 혹한이 올 가능성이 있는지요. 

    “제가 예보 전문가가 아니어서 몇 개월 뒤 온도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경계해야 합니다.”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탄소포집저장장치 등을 통한 탄소 역배출(negative emission)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느 정도의 역배출이 필요한지요. 

    “온실가스는 크게 두 영역에서 배출됩니다. 하나는 에너지, 다른 하나는 농업 활동 등 땅 사용에 따른 것입니다. 온실가스의 80~85%가 에너지 부문에서, 나머지는 농업 부문에서 배출됩니다. 2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궁극적으로 추가 배출이 없어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하지만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농수산 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배출가스를 상쇄하기 위해 탄소포집저장장치 같은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이번 1.5도 보고서에서도 어느 정도의 역배출이 필요한지 논의할 예정입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만 완벽히 처리해도 큰 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800쪽 1.5도 특별 보고서

    에너지 분야에서 ‘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화력발전소 같은 곳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탄소포집저장장치 등으로 잡아서 지하의 폐유전이나 가스전 등에 묻는다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기존 발전 기술과 수송 기술에도 활용해야 합니다.” 

    48차 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최종 승인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1.5도 보고서의 전체 분량은 800페이지 정도 됩니다. 그 가운데 195개국 대표가 승인하는 것은 26페이지 분량의 요약본입니다.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Summary for policy maker)’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초안은 과학자들이 쓴 것인데, 정부 대표자들은 초안에 들어가는 모든 구문에 대해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견 차이도 있을 수 있어 굉장히 심각하게 논의될 겁니다. 결코 간단한 절차가 아닙니다. 

    1.5도 보고서에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1.5도 목표와 2도 목표가 기후 영향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1.5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2도 목표를 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추가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을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분석도 이 보고서에 들어 있습니다. 이 합의는 올해 말 폴란드에서 열리는 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2015년 이뤄진 파리협약 시행령인 규정집(rule book)을 만드는데, 그때 이번 합의가 과학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1.5도 보고서는 올해 당사국총회에서 진행될 ‘탈라노아 대화(Talanoa Dialogue)’의 과학적 자료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탈라노아 대화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 피지 당사국총회(COP23)에서 제안됐다.

    탈라노아 대화

    “탈라노아 대화란 피지어로 ‘서로 대화해서 합의점을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파리협약에는 2018년 ‘촉진적 대화(facilitative dialogue)’를 갖는다고 명시했어요. 그 용어를 ‘탈라노어’로 바꾼 거지요. 여기서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논의할 계획입니다.” 

    인천 총회에 참가하는 각국의 이해관계는 얼마나 다른지요. 


    “특히 개도국에선 1.5도 목표를 두고도 의견이 다른 곳이 많습니다. 섬나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가 닥치고 있으니 반드시 1.5도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 있는 또 다른 국가에서는 그 목표에 의구심을 갖습니다.” 

    1.5도 보고서는 수많은 연구자, 전문가, 정책 집행자 등이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토 도중에 이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모든 IPCC 회의 자체가 개회식 외에는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각국 대표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과학자와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주요 내용이 미리 공개되면 자칫 정치 토론의 장으로 변할 수 있어요. IPCC는 정치적 협상보다는 기후변화의 자연과학적·사회과학적 진실을 제시해서 각국이 그에 기반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엄격함 때문에 IPCC는 지난 30년동안 지속적인 신뢰를 얻어왔다. IPCC의 제1차 평가보고서는 1990년 완료됐고, 1992년 출범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근거로 활용됐다. 1995년 완성된 제2차 평가보고서는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의 계기가 됐다. IPCC는 2007년 제4차 평가보고서를 펴냈는데 당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파한 공로로 엘 고어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2014년 작성된 제5차 평가보고서는 이듬해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주요 근거 자료였다.

    719명 필진 가운데 국내 전문가 11명

    IPCC는 현재 1.5도특별보고서 외에 제6차 평가보고서(AR6)를 만드는 과정(6차 평가 사이클, Sixth Assessment Cycle)에 있다. 기후변화와 토지, 기후변화와 해양 등 두 개의 특별보고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관한 방법론 보고서 작성 등도 동시 진행 중이다. 2021년에 기후과학 보고서와 기후변화영향 보고서 등이 나오고, 이들을 종합한 최종판이 2022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AR6의 집필진 719명 가운데에는 국내 전문가 11명도 포함돼 있다. 이준이 부산대 교수, 정태성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관은 총괄주저자(Coordinating Lead Author), 권원태 제주연구원 연구원과 민승기 포항공대 교수, 안진호 서울대 교수, 윤진호 광주과기원 교수, 정소민 캔자스대 교수, 강희찬 인천대 교수, 김용건 전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정태용 연세대 교수 등은 주저자다.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제2실무그룹 검토편집위원에 선정됐다. 

    2023년엔 파리협약에 따른 ‘세계 점검회의(global stocktake)’가 AR6에 근거해서 열린다. 전 세계 대표가 다시 만나 현재 시점까지 인류가 얼마나 감축했고, 2도 혹은 1.5도 감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검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과학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지속가능 발전은 원래 경제·사회 활동이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 내에서 벌어져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자연이 제공하는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에요. 또 지구 환경에선 바닷물의 산성화, 해수면 상승, 물 부족, 토양 산성화, 삼림 황폐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정리한 게 유엔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 17개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7개 목표 모두 달성할 수 없어요. IPCC 5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위험 증폭기(Threat multiplier)라고 표현돼 있습니다. 예컨대 물이 부족한 지역에 기후변화가 발생하면 그 위험이 더 악화한다는 거지요. SDGs의 첫 번째 목표가 빈곤 퇴치입니다. 불행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빈곤에 시달리는 곳이 기후변화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습니다. 유럽 난민도 원래 살던 곳에 농업 생산 기반이 허물어져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고요.”

    기후변화 불평등

    기후변화의 원인 제공자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부자 나라나 부유층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보는 불평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 세계가 같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변화로 빈곤이 더 악화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동시에 기후로 인한 인명과 소득 손실이 저개발국에서 더 심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른 국가들이 재정과 기술 면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은 전 세계가 공감하는 대책이죠. 그 인식에 따른 합의 결과가 송도에 있는 녹색기후기금(GCF)입니다. 물론 재정이 충분치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리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위해서 탈퇴하겠다고 했는데요. IPCC는 195개 국가가 합의해 만든 기구입니다. 각국은 경제, 문화, 국가적 유산, 관습 등이 다 다릅니다. 화석에너지로 국가 경제를 유지하는 곳도 있고, 신기술을 많이 갖고 있는 국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IPCC가 특정 국가의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을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해도 3년간의 숙려 기간이 지나야 유효합니다. 아직까지 미국은 정식 회원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되는 탈라노어 대화와 글로벌 점검회의에도 참여하게 될 겁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7월 수정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2015년 목표 유지하되 국내 감축량을 25.7%에서 32.5%로 상향조정 등)을 발표했는데, 한국의 감축 목표가 2도 이하나 1.5도 이하 목표 달성을 위해 충분한 수준인지요.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인지요. 

    “바로 그런 것을 점검하는 회의가 탈라노어 대화이고 글로벌 점검회의입니다. COP24 회의가 끝나면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관련 내용을 공표할 겁니다.”

    미군 신재생에너지 사용 선언

    요즘 종교계에서도 “기후변화는 도덕적 도전”이라며 지구온난화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 내에서 경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정확히 인지한 것입니다. 3년 전 로마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경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미군의 신재생에너지 사용 선언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전 세계 미군 막사에 쓰이는 전기를 태양광발전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인데요. 기존에는 디젤을 썼는데, 태양광으로 대체하는 것이 작전 수행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답니다.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칠이 영국함대 주원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꾼 게 전 세계적으로 석유 사용 확산의 전환점이 됐는데, 마치 그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사인 아닌가 합니다.”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이 경제 발전 전략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나와야 할까요. 

    “온실가스 감축 대책은 비화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비화석 에너지 기술이 기존 에너지 기술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곧 역전될 것이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소세를 부과하면 화석연료 수요가 줄어들 겁니다. 탄소세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양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니까요. 그래서 온실가스가 감축되고, 정부는 별도의 세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경제 발전에 플러스가 되는 쪽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법인세나 소득세를 인하해 투자를 촉진할 수도 있고요. 신재생에너지 R&D에 투자하는 것이 화석에너지 R&D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난 거 아닌가요. 경제 발전과 기후 대책이 같이 갈 수 있으니까요.” 

    과연 우리나라에서 탄소세가 도입될 수 있을까요. 

    “소비자나 납세자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탄소세는 당연히 세금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다시 돌려받는 세금입니다. 환급 제도를 잘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고 봅니다. 경제학계에선 탄소세를 통한 기후변화 문제 해소 효과를 이중 배당금(double dividends)이라고 말합니다. 탄소세 때문에 화석연료 사용이 줄어들면 환경적으로 이익이고, 세금을 환급해서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으니까요. 2017년 OECD 보고서 ‘기후 투자, 성장 투자(Investing in Climate, Investing in Growth)’에 따르면 탄소세 도입 등 2도 목표 달성을 위한 조치를 취했을 때 G20 국가는 2021년 1%, 2050년 3%의 추가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현재 서구를 중심으로 25개국에서 탄소세를 도입했습니다. 한국도 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봅니다. 탄소세의 분배 정책으로 탄소세를 옹호하는 세력이 나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탄소세 재원으로 저소득계층의 소비를 늘리거나, R&D 투자를 할 경우 연관 섹터에서 옹호 세력이 생길 겁니다.”

    탄소세 도입 가능할까

    최근 정부뿐 아니라 도시나 기업 차원에서의 기후변화 대응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470개 기업이 2도 목표에 부합한 수준의 자발적 목표를 수립하겠다는 ‘과학에 근거한 목표 이니셔티브(Science Based Target Initiative)’에 가입했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은 규제 대응에만 급급한 수준입니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정부 외에 다른 섹터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요.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 기후변화나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탄소세에 찬성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특히 에너지 기업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온실가스 감축 대책은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재처럼 가면 195개 국가가 195개 룰(rule, 규정)을 만들 텐데, 다국적기업인 자사가 그 다양한 룰에 맞춰 사업하게 되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가고, 또 그 룰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불확실성이 높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합의해 하나의 룰을 만드는 것이 투자 관점에서 비용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다고 했어요. 에너지 기업도 대세가 바뀌고 있음을 인정하는 거지요.”

    IPCC 설립 30주년

    올여름 폭염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한 G20는 FSB(금융안정위원회)에 의뢰해 기후변화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경우에 대한 대응 방안 개발을 의뢰했고, FSB는 TCFD(Task force on Climate related Financial Disclosure)를 수립해 지난해 보고서를 G20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가 실물경제나 금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다고 보시는지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약합니다. 기후변화가 끼치는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한데, 그것을 시장화해서 경제적 가치로 표시하는 데는 현재 한계가 많다고 봅니다. 바다 산성화 피해나 생물종 다양성 위기를 경제 단위로 바꾸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구 평균온도가 1도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이 1.6% 감소한다는 등의 연구가 나오고 있고, 경제성장과 기후변화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6년 니콜러스 스턴 런던정경대 교수 등 경제학자들이 영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스턴 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이 대표적입니다. 거기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국내총생산(GDP)의 25%가 손실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죠.” 

    스턴 교수가 공동의장으로 있는 ‘경제·기후에 관한 글로벌위원회’는 최근 ‘21세기의 포괄적 성장 스토리’라는 새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에 과감하게 대응하면 2030년까지 최소 26조 달러의 효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또 주요 선진국에 탄소배출권 가격을 상향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1t당 탄소배출권 가격은 오랫동안 커피 한 잔 가격에도 못 미쳤으나 최근 20유로(약 2만6000원)를 넘어섰다. 

    IPCC가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는데, 국제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무엇인지요. 

    “무엇보다 기후변화 문제를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도록 한 것이죠. 그로 인해 기후변화협약, 교토 프로토콜, 파리협약이 만들어졌습니다. IPCC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업적이죠. 과학적 근거와 IPCC라는 신뢰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각국이 협상에 임한 것입니다. 유엔 당사국 공식 문서나 파리협약에 보면 IPCC 앞에는 항상 ‘신뢰할 수 있는(credible)’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올해 설립 30주년이 되자 이를 여러 나라가 축하해주고 있습니다. 2월 말 이탈리아 정부가 제일 먼저 생일파티를 해줬고요. 3월엔 47차 총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프랑스가 파티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스위스 정부가 제네바에서, 최근에는 아일랜드 정부가 해줬습니다. 중국 정부는 11월에 파티를 열어줄 예정입니다.”

    솔루션 위해 사회과학도 필요

    이회성 IPCC 의장(오른쪽)이 2015년 10월 당선 직후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과 만났다. [IPCC제공]

    이회성 IPCC 의장(오른쪽)이 2015년 10월 당선 직후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과 만났다. [IPCC제공]

    의장 취임 당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소통의 다리 역할’을 언급했는데, 그렇게 해왔는지요. 

    “기후 안정화의 관건은 1.5도든, 2도든 개도국이 앞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개도국의 경제 발전 형식이 기존 화석연료에 바탕을 둬선 안 되고, 비화석 에너지 체계에 바탕을 둬야 하는데요.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의견 차이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도국과 선진국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선진국이나 개도국은 가난에서 탈피해 급속한 성장 국가가 된 한국에 기대감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대립을 해소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저는 지난번 의장 선거에 나가면서 IPCC가 앞으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연과학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합적인 ‘솔루션(solution, 해결책)’을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과학의 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IPCC ‘6차 평가 사이클’의 특징입니다. 기후변화 해결책은 선진국과 개도국,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의장은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러트거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엑슨사 경제조사역,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세계에너지경제학회 회장 등을 거친 에너지 전문가다. 저서로 ‘한국경제와 에너지정책(공저)’ ‘기후변화협약과 한국경제’ ‘에너지 장기전망과 정책’ 등이 있다. 이 의장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의 동생이다. 

    에너지 전문가이신데, 기후변화 분야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기후변화 원인인 온실가스는 85%가 에너지에서 나옵니다.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 대책이 우리의 희망

    이 의장이 IPCC와 직접 연을 맺은 건 1992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기후변화를 다루는 ‘워킹그룹3’에 공동의장으로 선출되면서다. 이후 주요 저술자, 부의장 등을 맡으며 지속적으로 관계해오다 2015년 의장으로 선출됐다. IPCC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지만, 이 의장은 주로 대한민국 기상청 1층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수많은 국제회의에 참석하느라 출장 중일 때가 많고, 사무실에 있을 때면 본부와의 시차 탓에 늦은 밤 직원들과 화상회의도 잦다. 인터뷰 말미에 이 의장은 다시 한번 ‘기후변화 경제학’을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책과 경제 발전 대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잘살고 싶으면 꼭 기후변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세계 각국이 경제 발전, 고용 증진, 빈곤 퇴치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후 대책과 별개가 아닙니다. 액션을 취했을 때 우리에게 돌아올 반대급부가 어마어마합니다. 기후 대책을 잘 세우면 그것이 곧 우리 경제에 새로운 기회이고 희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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