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인터뷰]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 “‘反문재인’만으로 표 얻기 힘들어”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5-20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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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수석 부산 출마, 감사할 일”

    • “文정부 ‘좌파독재’ 맞지만 한국당 구호로 소구력은 별개”

    • “강한 표현, 보수 결집엔 좋으나 중도 확장 걸림돌”

    • “한국당 감성, 영남권 60~70대에 맞춰져 있어”

    • “2030 보수, 한국당 혐오스러워 못 오겠다고 해”

    • “朴 탄핵 논쟁, 보수통합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

    • “특정 세대·이념 박스권에 지지 갇히면 집권 어려워”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유니세프의 국회친구들’ 희망나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유니세프의 국회친구들’ 희망나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자유한국당이 ‘보수의 고토(古土)’를 회복하고 있다. 지지율은 완연한 오름세다. 메시지는 도드라지게 뾰족해졌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5월 11일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 그들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좌파독재의 길을 열고 자유민주주의를 태워버렸다”면서 문재인 정부를 공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좌파독재’ 프레임이 외연 확장에 장애물이 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 김세연(46) 의원(3선·부산 금정)은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외쳐온 당내 소장파다.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고, 지난해 1월 한국당에 복당했다. 황교안 대표는 5월 7일 김 의원을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했다. 강경보수 이미지가 짙은 황 대표가 김 의원을 품은 모양새라 정치권 안팎에서 적잖은 화제가 됐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꼽히는 김 의원을 5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좌파독재’라는 쟁점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문재인 정부를 ‘좌파독재’라고 규정하는 게 개혁보수 세력 구축이나 중도 확장에 도움이 될까? 

    “(좌파독재가) 실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표현이라고는 본다. 그런데 반복되는 캠페인 구호로 얼마나 소구력을 갖느냐, 그리고 확장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좌파독재’라는 말에 실체가 있다고 했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현상이 엿보이고 있다. 최저임금의 점진적 인상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20시간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속도다. 단기에 급격히 추진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훨씬 크고 경제에 많은 부담을 준다.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도 계속 늘리겠다고 한다. 큰 정부를 추구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부족하다는 데서 (문재인 정부는) 좌편향된 점이 많다. 또 복지 예산이 느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김 의원은 “북한의 본질적 변화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 일변도의 ‘나이브’한 대북정책을 쓰다가 뒤통수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좌파독재’의 방증이라는 것. 김 의원이 말을 이었다. 

    “정부 출범 2년이 넘어서도 과도하게 적폐몰이 수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상대 정파 제거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제, 안보, 사법에서 엿보이는 이런 모습이 ‘좌파독재’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선명한 메시지”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언어가 선명해졌다. 당 지지율이 30%를 넘으니 자신감을 얻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여론조사에서 보수층이라고 인식하는 분포도가 넓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의 선명한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나가면서 보수층 결집 효과를 거둬 지지율이 올랐다. 다만 강한 표현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계속 갖고 있다.” 

    -황 대표 체제로 개혁보수, 중도로의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황 대표가 중도 확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는 걸로 알고 있다.” 

    -황 대표의 강경보수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김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했다는 분석도 많다. 

    “그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제가 그동안 활동한 이력을 보고 제안하셨을 것이다. 당의 중장기적 정책이나 비전을 담당하는 여의도연구원에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제안하신 것이 아닌지 혼자 추측하고 있다.” 

    -원래 황 대표와는 친분이 없었나? 

    “(박근혜 정부 때) 국회 본회의장에서 악수 한 번 한 게 전부다.” 

    여의도연구원(여연)은 1995년 여의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역대 원장(소장) 중에도 눈에 띄는 이름이 많다. ‘보수의 대부’로 꼽힌 고(故) 박세일 전 의원, ‘보수의 장자방(張子房)’으로 불린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한때 여연을 이끌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3년 7개월간 재직해 역대 최장수 여연 원장(소장)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 KDI(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던 유 의원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42세에 여연 소장에 발탁됐다.

    “위워크의 DNA”

    -황 대표가 김 의원을 임명한 게 이 전 총재가 유 의원을 영입한 것과 닮았다. 

    “유 의원님이 그때 42세였나? 그것까지 생각은 못 했다.” 

    -과거에는 여연이 생산한 정책, 정세 분석 보고서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공동체 자유주의’ 같은 담론 의제도 먼저 제시했다. 

    “박세일 소장님이 계셨을 때만 해도 국내 일류 수준의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낼 케파(생산능력)가 있었는데, 그 후로는 많이 쇠락했다.” 

    -왜 쇠락했다고 보나? 

    “일단 당이 많이 위축됐다. 탄핵 여파로 인한 충격이 컸다. 또 2013년에 이름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당과의 결합도가 더 강화된 ‘정관 개정’이 있었다. 그 후 (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취약해지면서 활력이 떨어졌다. 개선해야 할 문제다.” 

    -정책 기능을 회복하려면 사람부터 늘려야 하지 않나? 

    “재정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당의 의석도 줄고 여러 정당이 생기면서 연구원 예산이 많이 감소한 상태다.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한 다음에 인원을 늘려야 한다.” 

    최근 여연은 업무 공간을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WeWork)’로 옮겼다. 공유 오피스의 주요 고객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다. 김 의원은 “인간의 사고는 공간에 의해 상당 부분 규정된다”면서 말을 이었다. 

    “기존 업무 공간 분위기가 1990년대의 경직된 환경 속에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강한 임팩트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받기 위해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일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에 두 달 동안 한정해 입주했다.” 

    -두 달 후에는 다시 돌아오는 건가? 

    “그(위워크 임차)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돌아와서 위워크에서 이식받은 DNA를 통해 새로운 싹을 틔워야 할 것이다.” 

    -여연이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나? 

    “기존에는 원장이 실장들에게 지시하고, 실장들이 다시 연구원들에게 지시하는 구조로 조직이 움직였다. 지금은 스타트업이 쓰는 슬랙(slack), 노션(notion) 같은 앱 기반 업무 툴을 쓴다. 이전에는 대면 보고해 결재 받는 구조니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지금은 저와 개별 연구원 사이의 소통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이뤄진다. 업무 속도가 서너 배 빨라졌다.” 

    -여연 원장으로서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한국당이 최근 들어 수구정당의 모습을 굉장히 강하게 보였다. 다시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내에서 자유우파와 보수우파라는 말을 섞어 쓰고 있다. 현 정부에 ‘좌파독재’ 성격이 있듯이 자유우파 정당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다만 보수라는 말이 가진 깊이와 가치에 대해 스스로 폄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보수 개념 속에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이 내장돼 있다. 이걸 우리가 버릴 필요는 없다.”

    “문제 해결 프레임”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2017년 8월. 바른정당(현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에는 50명 정원에 33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 20대가 209명에 달했다. 김 의원은 당시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으로 ‘청년정치학교’ 기획을 주도했다. 

    -바른정당에는 20대가 모였는데 왜 자유한국당에는 안 모이나? 

    “이념 성향을 물어보면 보수라고 답하는 20~30대가 굉장히 많다. 이들이 한국당은 혐오스러워 오지 못하겠다고 한다. 지금 한국당 감성이 영남에 계시는 60~70대의 감성에 맞춰져 있다. 소통 방식이나 현수막 디자인, 문구, 온라인 커뮤니케이션까지 수도권 20~30대와 감성적 거리감이 너무 크다. 여연부터 수도권 20~30대와 주파수를 맞춰 ‘시대에 뒤떨어진 정당’이라는 시선을 털어내야 한다.” 

    -수도권 20~30대는 이념보다 실용적 사고를 선호할 것 같은데. 

    “그래서 저희와 잘 맞다. 그들은 몽상가적 접근보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선호한다. 다만 한국당이나 그 전신이었던 당이 수구정당의 행태를 보이다 보니 실용적 사고를 하는 분들이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한국당은 신진 세대가 진입하지 못하는 정당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제가 2008년 당시 당내 최연소 국회의원이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연령이 밑에서 4번째다. 대단한 위기 상황이다.” 

    총선을 앞둔 보수진영에서 큰 화두는 아무래도 ‘보수통합’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4월 8일 경남 창원을 찾아 “혁신과 통합의 길로 함께 나아간다면 내년 총선은 반드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군불을 피운 것.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통합하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논쟁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이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그렇다고 마냥 탄핵 논쟁을 덮어놓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 다만 (탄핵 논쟁이) 내부에서 상호 비난하기 위한 장이 되면 곤란하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손가락질하는 건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어쨌든) 탄핵 문제를 한번 매듭짓고 가야 어떤 식으로든 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장보수, 안보보수라는 말도 있듯 보수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가치토론 없이 ‘반문재인’으로 보수 세력이 뭉뚱그려지는 모양새다. 

    “(시장보수, 안보보수는) 쟁점별로 보수 안에서 의견이 나뉠 때 유의미한 구분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와 안보를 모두 무너뜨리고 있어 내부 쟁점이 따로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총선, 대선을 ‘반문재인’ 구도로 치른다는 것인가? 


    “현재로 보면 전략적으로는 그 프레임이 대동단결하기에 좋다. 다만 누구에 대한 반대만 가지고 표를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 프레임이 아니라 문제 해결 프레임이 필요하다.”

    “양정철과 대결할 일 없어”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文정권 경제실정백서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세연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文정권 경제실정백서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세연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김병준 전 위원장이 ‘아이(I)노믹스’라는 개념을 내놨지만 유야무야 사라졌다. 

    “(‘I노믹스’의 경우) 광범위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놓으니 생명력이 약했다. 그 자체로는 (김 전 위원장이) 상당히 완결성 높은 모델을 만들었더라.” 

    -여연이 그런 개념을 내놓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의 경제정책을 어떤 식으로 조합해도 ‘I노믹스’ 범주에서 크게 안 벗어날 거다. 굳이 다른 이름 붙이는 게 효과적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사회 병폐 중 하나가 전임자 흔적을 지우다가 전통이 다 무너진다는 거다. 보수정당에서 그러면 안 된다.” 

    4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에 선임됐다. ‘김세연-양정철’ 두 사람의 맞대결 구도가 관심을 모은다. 이를 묻자 김 의원은 “대결할 일이 별로 없다”면서 운을 뗐다. 

    “거기는(양정철 원장) 선거전략 짜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제가 역점 두고 있는 건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이다. 중도로의 외연 확장 능력을 갖추고 시대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 안정적 집권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당에 대한 지지가 특정 세대와 특정 이념 지향 지지자들의 박스권에 갇혀 있으면 집권이 어렵다.” 

    -시스템이 변화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간단한 해결책은 젊은 사람 데려와 선거 때 앞세우는 것 아닌가? 

    “그건 공천의 문제인데, 여연은 공천권과 전혀 관련이 없다. 여론조사실에서 각종 여론조사 지원을 하겠지만 지원업무 성격이다.” 

    -젊은 의원으로서는 어떻게 보나? 한국당이 젊은 세대를 전략공천해야 하나? 

    “참 어려운 문제다. 전략공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좋은 인재를 밖에서 데려올 게 아니라 안에서 길러 역할을 계속 부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 의원은 ‘올바르다’는 이미지가 있다. 반면 ‘야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치의 본질을 투쟁이라고 여기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치의 가장 밑바닥을 흐르는 본질에 자유와 평등, 인류애가 있다고 본다. 대화로 공동체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야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가진 정치에 대한 시각이 교정돼야 한다.”

    “야성과 타협”

    -그러면 몇 달 전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이 꺼내 든 5·18 발언은 어떻게 보나? ‘혐오 발언’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등을 돌린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아주 치우친 관점의 강성 발언이 여과 없이 쏟아진 데 있다. 저희가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내부적으로는 그런 발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이 있나? 

    “있는데, 어느 집단이건 목소리 큰 소수의 주장만 잘 들리는 경향이 있으니….” 

    -내년 총선에 다시 지역구에 출마하나? 

    “그렇다.” 

    -부산시당위원장이기도 한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산 출마설이 회자되고 있다. 


    “한국당 부산시당 입장에서는 나와주시면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보수 정치인이 있나? 


    “내 캐릭터와는 많이 다른데, 그래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다. 한 인간의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세상을 살렸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영국이 그때 버티지 못했으면 아마 지금 우리는 파시즘 치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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