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류준열, ‘정년이’ 문소리와 특별한 인연
고향 같은 연극, 지금도 자주 봐
20대 때부터 일기와 메모로
미셸 윌리엄스와 작품 같이 하고 싶어
김태리는 “몸이 3개만 더 있으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CJ ENM]
배우 김태리(33)가 브이라이브를 통해 소개한 멘털 관리 방법 중 하나다. 유튜브에서 조회수 100만 회를 훌쩍 넘긴 이 영상은 지금도 큰 사랑을 받는다. 김태리 명언, 김태리 멘털 케어 같은 이름으로 검색되는 영상도 여러 개다. 멘털이 무너지기 쉬운 청소년들은 김태리의 영상을 보며 큰 도움을 받았다는 댓글을 올린다. 그의 조언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어서다.
10대 사이에서 ‘멘털 갑’으로 통하는 그는 작품 속에서 맡은 캐릭터도 특유의 매력으로 이목을 사로잡는 인물로 빚어낸다. 영화 ‘아가씨’(2016)에서 김민희와 동성애를 나누는 하녀 남숙희, ‘리틀포레스트’(2018)에서 뚝딱뚝딱 맛깔스러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혜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이병헌과 애틋한 사랑을 주고받는 고애신,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의 당찬 펜싱선수 나희도, ‘악귀’(2023)에서 선과 악을 넘나드는 구산영이 대표적이다.
‘악귀’로 지난해 말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기도 한 그는 새해 처음 개봉한 한국 영화 ‘외계+인 2부’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 작품은 최동훈 감독이 2022년 선보인 ‘외계+인 1부’의 속편이다. 고려 말 개경을 배경으로 2022년 서울 도심에서 일어날 폭발을 막기 위해 캐릭터들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그 중심에서 김태리는 남장을 하고 온갖 신묘한 액션을 펼치는 여주인공 이안 역을 맡아 열연했다. 1부는 ‘도둑들’ ‘밀정’ 같은 흥행작을 만든 최동훈 감독의 이름값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전편의 비밀이 죄다 풀리는 속편은 긍정적 반응이 압도적이다.
‘외계+인 2부’ 촬영을 일찌감치 마치고 2년 가까이 개봉을 기다린 김태리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사이 헤어스타일이 짧은 커트머리로 바뀌었다. 방송을 앞둔 드라마 ‘정년이’에서 맡은 판소리 천재 소녀 역을 소화하기 위해 이미지 변신을 꾀한 것이다. 이전과는 또 다른 경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에게 “이번 영화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그가 맞장구를 치며 기다렸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맞아요. 지인들 앞에서 모르는 척 연기하느라 입이 근지러워 혼났어요. 하하.”
‘최동훈’이라는 꿈 실현
영화 ‘외계+인’의 한 장면. [CJ ENM]
“1부 반응이 사실 아쉬웠다. 감독님의 노력과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니까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나 2부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1부의 많은 비밀이 전부 풀려서인지 재미있다는 평이 많다. 최동훈 감독님 특유의 색깔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관객으로서 나도 굉장히 만족하며 봤다.”
작품 고르는 안목이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비결이 뭔가.
“일단 운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좋은 작품이 나를 찾아와 준다.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나서 내가 맡을 캐릭터를 살피는데 전작과 구별되는 새로운 지점에 매력을 느낀다.”
이번 작품은 어떤 지점이 새롭게 느껴졌나.
“커버에 감독 최동훈이라고 적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게 어떻게 내 손에 들려 있지?’ 하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 팬이다. 배우가 된 이후부터 언젠가 꼭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이었기에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류준열 배우와 친구 같은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다. 또래여서 시너지 효과가 있었나.
“준열 오빠와 ‘리틀 포레스트’라는 작품으로 먼저 만났고, 이후에도 계속 만남을 가져 서로 속사정이나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잘 안다. 그런 사람이 현장에 있으면 연기할 때 편안하고 긴장감이 줄어든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의지가 된다는 지점에서 선배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해 많이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다.”
김태리는 다양한 액션 신을 대부분 직접 소화했다. 힘든 점을 묻자 “전혀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도리어 “와이어 타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한술 더 뜬다. 아울이, 범이, 곰이라는 반려묘를 키우는 그는 극 중 고양이 역을 한 선배 배우들에게 애묘인으로서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흐뭇한 기억으로 떠올렸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점을 먼저 찾는 모습이 그의 장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긍정적이고도 낙천적 성격을 엿보게 했다.
이안 캐릭터와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나.
“나와 그다지 닮은 점이 없다. 무엇보다 이안은 너무 똑똑하다. 하하.”
고려시대 남자 무복이 참 잘 어울리더라.
“옷 자체가 주는 힘이 크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도 마찬가지다. 배역에 몰입하게 도와준다. 색감도 너무 좋았다. 직각 어깨가 아닌 것에 늘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 덕에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장점을 발견했다.”
최동훈 감독과 어떤 얘기를 주로 나눴나.
“이안의 성격이나 선택이 어떤 세계관에서 나온 것인지, 영화를 관통하는 인연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인연을 중시하나.
“완전 소중하게 생각한다.”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배우를 떠올린다면.
“문소리 언니랑 인연이 깊다. ‘아가씨’ ‘리틀포레스트’ ‘1987’과 앞으로 방송될 ‘정년이’까지 네 작품을 같이 했다. 이건 진짜 쉽지 않다. 특별한 인연이다. ‘정년이’에서 또다시 엄마와 딸로 호흡을 맞춘다. 소리 언니나 준열 오빠처럼 인연이 거듭되는 배우가 꽤 있다. 이런 배우와 작업하면 마음이 편하다.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비결
김태리는 1990년 4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던 동네에 배꽃이 활짝 핀 때였다.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길에 만개한 배꽃을 본 아버지는 원래 지으려 했던 ‘태정(泰政)’ 대신 클 태(泰)에 배나무 리(梨)를 붙인 이름을 그에게 선사했다. 발성과 대사 전달력이 좋은 그는 아나운서를 꿈꾸며 경희대 언론정보학부에 진학했다가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매료된다. ‘이 일이라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은 그가 2014년 화장품 CF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오롯이 한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다.극 중 이안처럼 고난을 겪거나 배우로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나.
“슬럼프가 있었다. 그때는 할 얘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슬럼프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지점에 있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해야 할 것들에 더 집중하고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나.
“시간의 힘이 가장 컸다. 촬영 현장에 복귀한 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나름대로 설정하고 정진한 것도 도움이 됐다.”
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도 도움이 됐을 법한데.
“청소년기가 지나고 20대 때부터 일기를 썼다. 매일의 기록 수준이었는데 연기하면서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요즘은 일기를 안 쓴다. 메모는 항상 한다. 작품 할 때마다 캐릭터를 연구하는 메모장을 만든다. 고민을 던져놓고 나중에 해결되는 지점을 찾아보는 과정이 연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
10대들 사이에서 ‘멘털 갑’으로 통한다. 청소년들의 흔들리는 멘털을 다잡아주는 조언을 잘해서다. 비결이 뭔가.
“청소년기를 생각 없이 보냈다. 그 후폭풍을 성인이 돼서 엄청 크게 맞고 나서 ‘고민하고, 사유하며 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며 문제점을 찾아 고치려 노력했다. 문제점이 있으면 복기해 나름의 이유를 분석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와 나의 다른 점과 상대의 장점을 찾아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런 경험이 녹아 있는 조언이라서 청소년이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23년 SBS 연기대상을 받을 때는 멘털을 잡지 못한 것처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이어서 그런 듯하다. 고마운 상이지만 내가 잘해서 받은 게 아니다. 배우가 받는 상은 무조건 작품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만 산다’는 생각으로 최선 다해
일희일비하지 않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는 좌우명이 있나.“대학 다닐 때 교문 앞 중국집 간판에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미움을…’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싸움이 나면 동기들, 친구들끼리 이 말을 장난처럼 하면서 풀곤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갑자기 그 문구가 생각났다. ‘이거 너무 멋있는 말이잖아! 인생 좌우명으로 삼아도 될 말이잖아!’ 하고 새삼 놀랐다. 그때부터 이 말을 내 좌우명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야 밝히게 됐다. 하하하.”
취미 생활이 멘털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다. 요즘은 어떤 취미를 즐기나.
“디아블로라는 게임과 만화책 보기를 즐긴다. 만화는 웹 말고 책으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라는 장르를 더 좋아하게 됐다. 이번 작품처럼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라는 점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이번 영화에 등장한 신물 가운데 탐나는 것이 있나.
“몸을 여러 개로 만들 수 있는 부적을 갖고 싶다. 그 아이들이 내 몫을 100% 완벽하게 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몸이 딱 3개만 더 있으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글로벌한 배우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는 언제인가.
“해외 팬을 많이 만났을 때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방영된 이후 해외 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를 보러 서울까지 와주는 팬들에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해외에서 러브콜이 올 것 같다.
“아직은 없지만 언젠가는 (해외 진출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외국 감독들과 광고 작업을 몇 번 했는데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현장마다 다른 결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외국 배우들은 어떤 식으로 작업할까, 같이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같이 작업하고 싶은 외국 배우가 있나.
“미셸 윌리엄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가 출연한 많은 작품을 봤고 그의 연기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같이 연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1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연극 무대에서 처음 연기를 경험했다. 연극은 고향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요즘도 연극을 보나.
“틈날 때마다 본다. 제일 친한 친구가 연극을 하고 있어서 정보도 많이 얻고 많이 보러 다닌다. 언젠가 꼭 다시 그 무대에 서고 싶은데 타이밍이 맞아야 가능하다.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출연할 것이다. 무대 연기를 너무 사랑한다.”
몇 년 전까지 그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에 하고 싶은 것을 적어 성취하는 재미를 맛봤다. 지금도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요즘은 오늘만 산다”는 답이 돌아온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산다. 올해 1월 1일도 최선의 선택을 했다. 1월에 이틀 쉬더라. 그중 하루가 그날이었다. 머릿속을 비운 채 낮잠도 자고 푹 쉬었다.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과 김태리라는 사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배우이자 좋은 사람이 됐으면 한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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