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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청와대 신임 흔들, 내부알력 꿈틀, 조직장악력 휘청…“원장은 청문회 갈 일 절대 안해”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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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권 인사들이나 대통령 측근들 에게 김성호 원장은 ‘우리 사람’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존재다. 몇 차례 보수적인 발언으로 당시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다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PK 출신의 노무현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선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 공천설이 오가다가 정부 출범과 함께 발탁된 것이 전부라는 식이다. 하물며 그 자리가 누구나 욕심낼 만한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고 보면, 질시 어린 시선의 배경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국정원 내부에서도 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0월1일 열린 국정원 원훈석(院訓石) 제막식. 직원 공모를 통해 새 원훈을 만든 김성호 원장은 이를 새긴 대형 기념석을 내곡동 청사 중앙현관 앞에 설치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1998년 원훈을 교체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연설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국회 정보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참석한 ‘조촐한 규모’였다. 5월 초 국정원을 방문해 전 직원이 선서한 ‘정치중립 선언문’을 제출받기도 했던 이 대통령의 ‘심기’가 여름을 거치며 변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흘러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 초순 국회 주변에서는 전·현직 한나라당 의원 등 두세 사람이 하마평에 올랐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국정원에 욕심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자가 발전’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몇몇 인사의 경우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러한 여권의 분위기를 김성호 원장이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음을 감안하면 9월10일 정보위 보고가 ‘대외 과시용’이라는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익명 게시판에서의 논쟁

분명한 것은 이 무렵 여권과 청와대에서 김 원장의 조직 장악력에 대해 의문을 가질 만한 사건이 실제로 몇 차례 있었다는 사실이다. 6월 초순 촛불집회 현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주간지 ‘시사IN’이 ‘국정원 직원이 말했다 “이건 시민혁명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일 같은 경우다. “국민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데 정부는 10년 전 시스템만 추억하고 있다”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한 인용 내용은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정원 관계부서에서는 익명으로 처리된 이 직원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고, 전 직원에게 ‘업무상 관련이 없는 직원은 촛불집회장에 가지 말라’는 엄중한 지시 회람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결국 인터뷰 당사자로 확인된 직원이 “현장 근처에서 잡담 도중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한 말이 인용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별도의 징계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 직원은 “당시 돌아가는 상황이 섣불리 징계를 거론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무렵 국정원 내부망 자유게시판에는 촛불집회의 성격과 정부의 대응 방향에 대한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그 가운데는 집회 참가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거나 정부의 실책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 자유로운 발언이 허용되는 익명 내부게시판의 특성상 누가 글을 올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문체로 미루어 젊은 직원들인 것 같다는 중평이다. 한쪽에서는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TF가 구성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의 공안 대응에 비판적인 의견 글이 올라오는 이중적인 분위기였던 셈이다.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3월11일 국정원 전옥현 제1차장, 김회선 제2차장, 한기범 제3차장, 김주성 기조실장(왼쪽부터)이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기 위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게시판에서의 논쟁이 촛불집회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내정보 수집능력 강화나 적극적인 대공수사 등 최근의 국정원 방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이러한 분위기가 ‘정보기관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거나 ‘어렵게 얻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논지가 핵심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에 대해 ‘국가의 안정을 책임지는 정보기관의 마땅한 역할’이라는 반박도 있었다고 한다.

‘사활(死活)의 문제’

국정원 직원들 중에는 이러한 논쟁이 단순히 ‘생각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최근 국정원의 행보로 운신의 폭이 엇갈리는 부서 직원들 사이의 ‘이해관계 차이’가 반영된 것 같다는 해석이다. 특히 국내문제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 대공수사국 등 이전 정부에서 ‘찬밥’ 신세였다. 새 정부 들어 힘을 받기 시작한 부서 직원들과, 반대로 수년간 ‘잘 나갔다가’ 열세에 몰린 부서 직원들 사이에는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강도 높은 조직 개편이 진행되는 와중이다 보니 문자 그대로 ‘사활(死活)의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9월 국정원은 ‘국-처(단)-과-계’로 이뤄진 기존의 조직구성 틀을 대폭 바꾼 개편을 단행했다. 국장 밑의 계통을 모두 팀으로 단일화한 이른바 ‘팀제 개편’이다. 기존에는 주로 3급이 맡던 처장을 없애는 대신, 5급 이상이라면 직급에 상관없이 팀장을 맡을 수 있고 팀장보다 상위직급도 팀원으로 발령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중간간부였던 과장과 계장이 모두 일반 팀원으로 일하게 되는 셈. 민간기업에서 주로 사용되다 최근 수년 사이 공조직에도 일부 보급되기 시작한 팀 중심 체제가 국정원 조직에도 반영된 셈이다.

통상 연말에 실시되던 것을 앞당겨 9월초에 실시된 인사는 이 같은 조직개편을 반영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하급 팀장 - 상급 팀원’ 배치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각 팀 업무를 구체적으로 식별해 국으로 승격시키거나 통폐합할 팀들을 추려내는 미세조정 작업이 진행 중으로, 이 역시 10월 말이 되면 마무리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조직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구조조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이다. 3월 임명 당시부터 ‘국정원 개혁’을 임무로 부여 받았음을 자타가 공인했던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코오롱그룹 시절부터 수십년 인연을 맺은 ‘SD맨’. 외환위기 직후에는 코오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산하법인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일하며 ‘칼바람’을 휘날린 그가 이번에는 국정원 조직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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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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