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월19일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북한에 대해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요약하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문제를 놓고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인근 국가들과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 내부에서도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 국가에 대해, 특히 지도부를 자극하는 발언을 한 것은 진위를 떠나 잘못됐다는 비난여론이 일었다. 클린턴 장관은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다음날 한미 외무장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그의 발언은 상당히 중요한 이론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바로 북한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주는 내부요인에 관한 문제다. 제임스 로즈노의 ‘연계이론’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 나라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 가운데 ‘내부 요인’은 언제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이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변국과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클린턴 장관의 논리는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남 및 대외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북한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對인민 군기 잡기
북한이 대남 공세를 펼칠 때마다 외부의 연구자들은 그것이 세 가지 용도라고 설명해왔다. 대남(對南), 대미(對美), 대내(對內)용이 그것이다. 우선 남한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비난 공세와 무력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를 통해 미국과의 핵 협상 및 관계 개선 노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고스톱에서 말하는 ‘1타 3피’ 격으로 외부적 긴장 조성을 통해 주민 동원과 엘리트 집결 등 내부 ‘군기 잡기’의 효과를 노린다는 설명이다. 언론과 분석자들은 이런 설명의 틀을 지난해 3월 말 이후 북한이 대남 공세를 강화할 때마다 애용해왔다.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세 번째 대내용이라는 관점이다. 굳이 ‘분단체제론’을 논하지 않더라도 분단 정권 수립 60년 동안 남북한 지배세력은 상대방의 존재를 자신의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해왔다.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독재정권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북한의 도발 위협을 내세우며 국내 반대세력을 제압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선군’이라는 국가전략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은 동서 냉전이 끝나고 남한이 민주화된 2009년 현재까지 미국과 일본, 남한 등의 침략 위협을 내세우며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독재에 신음하는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남한과의 관계를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차단해왔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북한은 종종 남한과 거리 두기를 시도했지만 이내 다시 복원됐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북한은 일관되게 남한에 대한 공세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후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통한 육로 통행을 엄격하게 제한, 차단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단행했다. 북한은 올초 무력 도발 가능성을 내비쳤다. 1월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을 조선중앙TV에 출연시켜 “(남한에 대한) 전면 대결태세”를 강조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1월30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의 대남 무력 도발을 시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동해에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예고했고(2월24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징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대남용과 대미용이라는 해설이 가능하다. 새로 집권한 한국의 이명박,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길들이고 기선을 제압하고자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 글의 관점인 ‘대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 내부에는 지속적으로 남한과 관계를 단절하고 끝내 한국과 미국을 향한 무력 도발이라는 적극적 공세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를 사회과학적 용어인 ‘분석의 차원’으로 다시 나눠보면 김정일을 둘러싼 최고지도자의 차원, 지배엘리트의 차원, 마지막으로 인민대중의 차원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 차원에서는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공식 제기되고 후계자 문제가 공론화됐다. 지배엘리트 차원에서는 먼저 지도부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 남한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10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진행하면서 그의 상대방 역할을 했던 노동당 통일전선부 중심의 대남 엘리트들이 물러나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대남 강경 성향의 엘리트들이 득세하면서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이 진행됐다. 인민대중 사이에서는 한국을 통한 자본주의 사조의 유포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을 계기로 개혁과 개방에 대한 인민들의 욕구도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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