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소화기와 해머가 등장한 국회 폭력사태는 세계 여러 나라에 보도됐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우리 정부가 추진한 중화학산업육성정책으로 제철, 조선, 자동차, 반도체, 건설, 화학 등의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고도경제성장이 지속되자 우리의 국가이미지는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세계를 놀라게 해 한국은 확실한 성공모델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에는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곧이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돼 최단기간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는 국제사회의 찬사와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정치제도도 1960년대부터 효율적 거버넌스 확립과 착실한 민주주의 정착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이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선진 우방국들은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민주화 진전과 인권 상황을 개선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동시에 선진 우방국들은 우리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빈곤퇴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충고하기도 했는데, 우리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시민사회의 활동이 활발해져 정치사회 민주화, 인권 개선, 환경보존, 사회적 약자보호를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된 것은 커다란 진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추세와 더불어 노동조합을 비롯한 각종 이익단체에 좌파 단체나 인사들이 깊이 침투해 불협화음을 내게 되었다. 어느덧 다른 시민의 자유와 이익은 무시하고 자기 것만 앞세워 폭력행사도 불사하는 좌파의 ‘폭력적 떼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CNN 같은 세계적 미디어는 한동안 사회갈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경찰과 몸싸움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시위 모습을 뉴스 예고 이미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교조의 과오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마자 ‘전투적 노조’ ‘경찰이 무력한 사회’ ‘폭력적 떼문화’라는 이미지가 국제사회에 새겨지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의 비호 아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노동자, 농민의 자식을 위한 ‘참교육’이라는 명분하에 국가 경쟁력 제고와 선진화는 등한시하고 혼란 조성과 정권탈취 목적으로 계급투쟁을 부추긴 것은 국가이미지를 더욱 더 나쁘게 했다. 전교조는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고 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마저 부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국민 공교육을 담당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를 세계의 어떤 나라가 정상이라고 보겠는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후에 구(舊)소련 소속 국가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버리고 민주제도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했다. 중국과 베트남도 사회주의 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베트남은 국가와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전략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받아들이고 있고, 중국은 미국을 발전 모델로 정했다.
그래서 세계적 석학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세계의 역사는 끝이 났다”고 주장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할 새로운 이념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중국과 베트남은 거미줄 같은 공산주의식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강력하고 능률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착실하게 발전시키면, 장차 일본, 싱가포르와 비슷한 선진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요즈음 중국에서는 매년 4만개의 비정부기구(NGO)가 생겨나면서 시민사회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선진국이나 식민지를 막론하고 ‘진보적 사고’ ‘진보정당’이란 단어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환상에 빠진 좌파인사들 간에 유행되고 언론에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영국의 전투적 노조 붕괴와 소련의 몰락 이후에는 국제사회에서 이념사상 논쟁이 아예 없어져 ‘진보’라는 말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좌파사상이나 이념에 마치 무슨 희망이라도 남아 있는 듯 ‘진보’라는 단어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진보’는 사실상 용도폐기된 단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