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돈이 흐르는 길이다. 중국 광시(廣西)성 좡(壯)족 자치구 난닝(南寧)역을 출발한 열차가 승객을 가득 태우고 남쪽으로 달린다. 목적지는 베트남 하노이 잘람역. 1월1일 개통한 이 철길은 중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잇는 신(新)실크로드다. 중국은 이 철도를 따라 위안(元)화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자 한다.
중국은 동북(東北)3성에도 철도를 놓는다. 북-중 국경 위를 횡단하는 둥볜다오(東邊道) 철도는 올해 부분 개통한다. 개통의 첫머리는 군사용. 대외적으로 화물용이면서 여객도 나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 철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동간도, 서간도 지역의 중국동포 집성촌을 해체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진출은 이 철도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중국은 태국, 미얀마로 향하는 국제철도 부설 및 개통에도 의욕적이다. 신화통신은 “난닝-하노이 철도 개통으로 아세안과의 대동맥을 잇는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위안화를 아시아지역 기축통화로 격상하려고 한다. 중국-아세안을 잇는 철길은 아세안을 위안화 경제권으로 끌어당기는 동맥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둥볜다오(東邊道) 철도 개통
중국 공산당 사정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둥볜다오 철도에 10억달러를 투입했다. 7억달러를 신의주·위화도 특구에 차관 형식으로 투입하는 것으로 안다. 북한은 내부의 위계 계통을 거치면서 중국의 제안을 저울질한다. 중국은 신의주뿐 아니라 남포, 개성으로도 진출하고자 한다. 북한을 위안화 경제권으로 편입하겠다는 태도다”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국경무역의 대부분을 위안화로 결제한다. 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에선 위안화가 자국 통화처럼 유통된다. 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이 서로 거래할 때도 위안화를 쓰는 예가 많다. 홍콩·마카오를 포함하면 ‘위안화 블록’은 낮은 수준이지만 벌써부터 구축돼 있다. 홍콩에서만 2000억위안이 유통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위안’이, 1980~90년대 일본의 ‘엔’이 그랬듯 ‘패권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위안화 경제권’ 구상의 한 축엔 북한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북한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액션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힌다. 중국은 북한의 ‘위안화 경제권’ 편입이 자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본다는 것.
지금도 대(對)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위안화는 핵심 통화의 구실을 한다. 중국이 위안화 블록으로 끌어들이려는 나라의 위안화 외환보유액도 증가세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북한·베트남·몽골·라오스·캄보디아 등 12개국의 위안화 보유액이 216억위안(2004년 말)에서 814억위안(2007년 말)으로 3년 동안 4배 늘었다고 밝힌다.
외화와 국제결제는 나라 경제의 젖줄이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 처지에서 금강산,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되는 달러는 ‘가뭄에 단비’ 구실을 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과 적성국교역법이라는 고깔을 벗으려고 안간힘을 쓴 까닭 중 하나는 ‘외화 결제 통로’의 확보다. 2007년 10월2~4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남북 실무회담 때의 일화 한 토막.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경제공동체’를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주도의 개혁, 개방으로 ‘남풍(南風)’이 유입되는 것을 저어했다. 달러를 원하면서도 한국을 통해 주민에게 자본주의 사조(황색 바람)가 유포되는 걸 부담스러워한 것. 평양은 노무현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남측대표로 당시 실무회담에 나선 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한반도경제공동체를 꾸려봅시다.”(남측)
“경제공동체를 합의하려면 은행부터 먼저 뚫어야 하는 것 아닙네까. 개성공업지구에 들어온 우리은행의 결제계좌를 터 주시오.”(북측)
“안 되는 것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제재 때문에 불가능합니다.”(남측)
“계좌도 못 트면서 북남경제공동체를 어떻게 하겠다는 겁네까?”(북측)
남북이 계좌를 트면 북한은 한국의 은행을 통해 세계와 외환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그렇다.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를 푸는 과정에서 드러났듯 ‘북한 자금’이 오간 은행은 미국의 제재를 받는다. 북한과 계좌를 튼 한국의 은행이 국제결제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적성국교역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국에서 제외했다. 10월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북한을 삭제했다. 이로써 북한이 경제의 젖줄인 국제결제 계좌를 틀 길이 열렸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에 위안화 결제를 전면 허용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북한은 ‘유로(EURO)’를 ‘공식 외화’로 삼고 있다. 북한의 ‘원’은 유로에 환율이 고정돼 움직인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원유를 수출할 때 결제통화로 달러 대신 유로를 사용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외화는 유로가 아닌 중국의 ‘위안’이다. 한국의 시민단체도 북한에 전단을 뿌리면서 위안화를 삐라에 붙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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