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인사 농단으로 무능화, 정치화” “엄정 중립으로 정보력 확대”

국가정보원 개혁 논란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입력2013-01-23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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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력 있는 직원은 한직 가고…”
    • “도청 못하자 정보 수준 급락”
    • 국정원 “정치중립 엄중히 지켰다”
    • 국정원 “공정한 인사, 최선의 개혁 했다”
    “인사 농단으로 무능화, 정치화” “엄정 중립으로 정보력 확대”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국정원) 홈페이지는 지난해 6월 개편으로 산뜻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인 판문점 견학코스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국정원 소재 드라마와 영화도 잇따라 방영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인 주인공들은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이 아닌 신세대 이미지다. 그래선지 청소년과 젊은 층에게 국정원이 친숙하게 다가서기도 한다. 지금의 국정원을 보며 독재정권 시절의 공포나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검찰 개혁보다 국정원 개혁”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연간 1조 원 가까운 예산을 쓰지만 대북정보 부재, 비전문성, 아마추어리즘 등 국정원의 무능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의 정치화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대선 땐 국정원 여직원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비방 댓글 의혹이 선거 쟁점이 됐다. 민주통합당은 근거를 내놓지 못했고 경찰은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의혹이 개운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선 “검찰 개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4대 권력기관 중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곳은 국정원이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요즘은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는 정권 교체기여서 국정원 문제가 다시 수면 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외부와 내부의 이야기가 서로 엇갈린다. 보안과 비밀주의를 생명으로 하는 곳이므로 실체에 접근하는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정원의 실상과 개혁 필요성에 대해 상반된 주장들을 함께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공론 형성 과정이라고 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국정원 내부에 문제점이 있다고 해도 현직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이러한 문제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 문제에 직·간접 관여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 전직 국정원 간부 등의 의견을 들어봤다.

    박근혜 당선인 대선 캠프 출신인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 A씨는 “‘정보분야 비전문가가 수뇌부로 오는 점, 실력 있는 직원이 한직으로 가는 점, 도청을 못하게 된 이후 정보 수준이 경찰 정보 수준으로 떨어진 점이 국정원의 문제’라는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서 수십 년간 근무해 고위직에 오른 뒤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 유관 기관에서 퇴임한 B씨는 “국정원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B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국정원은 조직도(組織圖)조차 대외비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지만 내부 사정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금 국정원은 중병을 앓고 있다.”

    ▼ 무엇이 논란거리인가.

    “정보기관 수뇌부에는 정보를 아는 사람이 가야 한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인텔리전시(intelligency)가 어떻게 다른지, 이런 기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업무를 배우기도 힘들다. 원 원장은 정보를 잘 모르고 군(軍)이라든지 비슷한 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방행정을 하던 분 아닌가. 국정원은 원장과 기조실장 두 자리가 좌우하는데 기조실장도 세종문화회관 관장 하던 분, 서울시 공무원 하던 분이 왔다. 모두 정권 실세와 가까운 분들이다.

    (원 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 부시장으로 일했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근무했던 코오롱 출신으로 세종문화회관 관장을 지낸 김주성 씨는 이명박 정권에서 기조실장으로 활동했다. 목영만 현 국정원 기조실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원 원장과 서울시-행정자치부에서 함께 근무한 이른바 ‘S(서울시) 라인’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과의 중동전쟁에서 연승을 거둔 건 모사드라는 정보기관이 정보전에서 확실히 이기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수장이 정보 전문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치인, 정권 실세, 실세 측근이 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에 귀속된 업무보다는 이 테두리를 뛰어넘어 정보의 정치화로 흐르기 쉽다. 현재 국정원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 유능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직원이 수뇌부로 올라가는 게 바람직하다.”

    “국정원은 중병 앓고 있다”

    ▼ 국정원 직원 인사 논란은 어떻게 보나.

    “국정원은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과 혜택이 제일 심한 조직 중 하나였다. 김대중 정권 때 특정지역 출신 직원들을 어설프게 내보내 혼쭐이 났다. 나중에 법원에서 뒤집혀서…. 이런 경향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인사권자와 가깝다는 게 인사에 고려됐고 적재적소에 배치가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정치권과 사정기관 일각에선 인사상의 문제가 아마추어리즘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직 내에 원 원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간의 갈등이 빚어졌으며 이런 과정에서 도곡동 숙소 건, 리언 파네타 CIA 국장과의 비밀면담 건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주장도 있다.

    도곡동 숙소 건은 원 원장이 내곡동 관저 대신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입주한 도곡동 I빌딩을 개조해 숙소로 사용했다가 2011년 8월 외부에 알려진 사건이다. 주거시설 무단 변경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이 내곡동 관저를 수리할 때 도곡동 시설을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도곡동 시설은 관저가 아니고 안가(안전가옥)”라고 해명했다. 2011년 2월엔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 보좌관 숙소에 무단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몰래 들여다보다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대선 때 민주통합당은 국정원 담당관의 기관(부처, 공공기관, 국회, 기업, 노동단체, 학교 등 사회 주요 기관) 출입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선 후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도 이 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원은 활동 공간으론 해외파트와 국내파트로 구분되고 업무 내용으론 정보수집파트와 정보분석파트로 나눠지는 경향이다. 기관 출입이란 주로 국내 정보수집파트 담당관(정보관·IO·Intelligence Officer)의 기관출입을 의미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대통령직인수위 A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기관 출입을 폐지해야 하나.

    “이젠 그럴 때가 됐다. 노무현 정권 때도 없애려고 했는데 우선 필요하니까 묵인했다. 정보기관 직원이 자기 신분을 노출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각 기관에 나갈 이유가 없다.”

    ▼ 국정원 직원이 기관장 등 주요 인사를 만난 뒤 존안자료 같은 것을 작성하고 이것이 공직 인사 때 참고자료로 쓰일 텐데.

    “국정원법이 정한 본연의 업무분야인 대북, 산업, 방첩, 보안, 외사, 공항, 항만 등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아가 이런 분야만 남기고 국내파트 자체를 없애야 한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는 길이다. 정치 정보 수집은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하면 되고 비리 수사는 검찰이 하면 된다. 최고권력자들이 국내파트를 통치에 활용한 측면이 있다. 국가 보위는 무한대지만 정권 보위는 무한대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선진국 중에 정보기관 요원들이 사회 각 기관을 출입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전직 국정원 간부 출신인 D씨는 “담당관의 기관 출입과 관련해 국정원 내 인사와 운영상의 문제로 이런 활동 중 일부가 외부에 부정적으로 비치게 자초했고, 이에 따라 지난 대선 때 민주통합당이 담당관 출입제도 폐지를 공약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휴민트 복구 더디다”

    국정원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북한의 발표를 접한 뒤에야 알았고 최근엔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를 제때 감지하지 못했으며 노동당 대표대회 연기, 핵실험 전망 등 북한 관련 정보의 부정확성 때문에 국회로부터 여러 차례 질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국정원 1급(실장) 간부를 지내고 퇴임한 C씨는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은 진보정권 10년을 거치며 무력화된 대북 정보라인의 복원이 급선무였는데, 그런 문제를 다소 소홀히 한 것 같다”고 했다. B씨는 “우리 국정원의 대북정보가 취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의 방첩능력이 뛰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선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국정원은 국내파트와 해외파트가 각각 미국의 FBI와 CIA에 해당할 정도다.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방첩, 대공정보를 전담하는 명실상부한 정보조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국정원 간부 D씨는 “박근혜 정권에선 ‘낙하산 실세’가 인사를 농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공정한 인사를 구현하고 정치색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대북 정보력 논란과 관련해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인간정보) 망이 붕괴돼 더디게 복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한 측근은 “국정원이 북한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TV로 북한 소식을 아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D씨는 “3급 이하 직원들이 수뇌부를 신뢰하면서 신명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신동아’는 국정원 논란에 대한 국정원의 반론을 들어보기로 했다. 국정원은 e메일 답변서에서 “원세훈 원장 재임 기간 중 정치적 중립을 엄중히 지키고 있다. 인사를 공정히 했고 정보역량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밝혔다. 다음은 국정원과의 일문일답 요지다.

    “최고급 정보 두 배 이상 증가”

    ▼ 원장을 비롯해 전문성 있는 인사들로 조직의 수뇌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에도 외부 인사가 국정원장에 주로 임명됐다. 외형적 경력보다는 조직관리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김만복 전 원장의 경우 국정원 내부 출신이지만 북한, 안보, 방첩 등에는 비전문가다. 원세훈 원장이 강도 높은 개혁을 진행한 결과 대북첩보 수집건수와 최고급 정보가 전 정부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 조직 내에 원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갈등으로 도곡동 숙소 건과 CIA 국장 비밀면담 건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장은 내곡동 관저 수리 기간 중 도곡동 안가에 기거한 것이 아니라 주로 자택에서 기거했다. CIA 국장 면담 사실 유출은 원장 부임 초의 일로 국정원 내부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다.”

    ▼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발각 등 아마추어적인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이 아니다. 당사국이 부인하는데 왜 그렇다고 주장하는지 문제가 있다.”

    ▼ 실력 있는 직원이 한직으로 밀려나 국내 정보의 수준이 떨어지는 점이 조직의 문제라는 외부 시각이 있다.

    “직원들의 승진, 보직 등 모든 인사는 인사담당부서에서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엄격히 시행됐다.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를 배제하고 업무능력,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를 했다. 특히 원 원장은 외부의 인사 청탁을 철저히 배격했고 외부 출신 원장으로서 원내에 특별히 챙겨야 할 인물이 없기 때문에 공정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실력 있는 직원이 한직으로 밀려나 정보 역량이 약해졌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최근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지하지 못하고 한상률 방북, 김정일 건강악화, 노동당 대표자대회 연기, 핵실험 전망 등 북한 관련 정보가 부정확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보정권 시절의 약화된 정보력을 복원하는 데 소홀히 해서 그렇다는 주장인데….

    “국정원은 최우선 임무가 국가의 항구적 존립과 안녕을 보장하는 데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분산된 대북 관련 부서를 통폐합하고 대북 정보 분석 업무를 기능 중심으로 재편했다.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베테랑 요원을 전진 배치했다. 이를 기반으로 고급 정보의 핵심 출처와 공작 거점 확보에 주력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24시간 깨어 있는 상황체계와 동맹국 정보기관과의 공고한 협조체계 구축으로 실시간 대북감시체계를 가동했다.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에서 회복된 이후에도 그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판단해 돌발상황 발생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CIA에서도 정보교류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최선의 개혁 추진했다”

    ▼ 담당관의 기관 출입 관련 인사 및 운영상의 문제로 외부에 부정적으로 비쳤고, 이에 따라 야당이 담당관의 기관 출입 폐지를 공약하기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있다.

    “1998년 ‘비노출 간접활동’ 원칙하에 국회, 정부 부처, 언론사 등에 상시 출입하면서 기관원 행세를 하는 조정관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국정원법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만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 정책조정-개입 등 월권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 과거 정권에 비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치화 경향성, 인사의 불공정성, 조직 시스템상의 문제점이 사라졌다고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엄격한 정치중립을 견지한 결과 지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시비가 일절 없었다. 여야 공약에서도 국정원 관련 사항은 없었다. 특히 야당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을 제기했지만 근거 없는 흑색선전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야당의 여직원 사생활 침해 및 인권유린 행태가 부각돼 야당 스스로 역풍을 맞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간 전 직원의 참여 속에서 고강도 윤리교육을 벌여 엄정 중립 마인드를 체득했다.”

    ▼ 현 조직의 권력과 업무가 비대하고 타 사정기관과 중복되므로 본연의 업무로 분리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포괄적 안보 개념이 나오고 있고 국제화 시대에 국내, 해외, 북한 등 모든 분야 정보를 총괄해 분석할 종합적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스페인, 중국, 대만, 네덜란드 등 70여 개 국가가 국내외 정보를 통합운영 중이다. 국내외에서 수집된 정보를 국가 안전 보장과 국익 극대화로 연결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궁극적 존재 이유이며 정보의 통합이 정보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

    ▼ 현 조직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보나.

    “최선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그에 맞춰 직원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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