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서울 구로을 국민의힘 후보.
1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태영호(62) 서울 구로을(이하 구로을) 국민의힘 후보가 밝힌 일성(一聲)이다. 그가 “격전지”라고 말했지만 구로을은 보수의 험지다. 2000년 16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민주당이 내리 다섯 번 대승을 거뒀다. 태 후보는 서울 강남갑 현역의원이다. 4년 만에 양지에서 음지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념보다 민생”
태 후보가 험지로 이동한 까닭엔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이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29일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당에서 험지로 가라고 하면 다 내려놓고 백의종군할 결심이 서 있다”며 “북(북한)에서 내려와서, 정치도 못 해보고 당에 아무런 기여도 없는 내게 21대 총선에서 당이 전략공천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태 후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다.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북경외대(北京外大) 부속고와 북경외대 영문과를 나왔다. 그 덕분에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이후 북한의 핵심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주덴마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주스웨덴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주영 북한대사관 참사 등을 거쳐 외무성 유럽국 부국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다가 북한 독재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탈북을 결심했다. 이해 8월 한국으로 입국에 성공했다. 북한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할 만큼 긴박한 탈출이었다고 전해진다. 12월 한국 국민임을 인정받았다.
북한 엘리트 출신이라는 특성을 살려 한국에서 북한 정치, 인권 등 북한 관련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2020년 2월 정치에 입문해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갑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전략 공천돼 최초 북한이탈주민 지역구 의원이 됐다. 그는 정치를 시작한 이유로 “문재인 정권이 탈북 선원을 강제로 송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구로을에서 승부를 겨룰 맞수는 구로을 현역의원인 윤건영 후보다. 대표적 ‘친문(親문재인)’ 인사로 꼽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 그의 보좌관이었다. 문재인 정부 첫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꼽힌다. 대북특사로서 평양을 찾아 ‘판문점 회담’을 성사시켰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해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로 인해 태 후보와 윤 의원의 선거를 ‘대북관 대결’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태 후보는 “이념보다 민생이 우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3월 6일 태영호 서울 구로을 국민의힘 후보가 지역을 돌며 민심을 살피고 있다. [인스타그램]
험지답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태 후보는 “강남과는 민심이 참 다르더라”며 “처음 구로을에 왔을 땐 ‘아, 이래서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희망의 근거는 ‘명함 돌리기’다.
“보수·진보 양 날개로 나는 새, 자유민주주의”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22대 총선 서울 구로을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태 후보는 민심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변화’에 대한 바람이라고 믿는다. 구로는 서울에서 발전이 더딘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재정 자립도가 낮다. 지난해 구로구의 재정 자립도는 22.1%로 나타났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번째다.
“그간 구로을 주민들은 지역을 발전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민주당을 밀어줬지만 민주당은 그 믿음을 배신했다. 재건축·재개발이 시급한 지역이다. 지역 의원이 앞장서서 추진해야 하는데, 항상 흐지부지되곤 했다. 이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고인 물이 빠지고 새 물이 들어와야 맑아진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태 후보는 윤 의원에 대해 “착한 이미지만으론 안 된다”며 “구로을의 숙원을 이루기엔 역부족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주민들이 ‘윤건영은 착하다’ ‘윤건영은 친화력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가 지역을 위해서 뭘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의 의정 활동 4년을 보면 지역 현안과 관련한 입법을 찾아볼 수 없다. 착함, 친화력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이제 구로을에 필요한 정치인은 법을 만들며 주민들을 위하는, ‘일하는 정치인’이다.”
태 후보의 또 다른 ‘어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친(親)다문화’다. 구로엔 중국 동포 등 외국인 근로자·거주자가 많다. 1월 말 기준 구로 거주 외국인은 4만8343명으로 총 구로 인구 44만654명 가운데 10.97% 수준에 이른다. 태 후보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활용해 이들에게 친근함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
“구로을 지역에 투표권을 가진 중국 동포만 해도 5000~6000명이다. 상당한 수준의 표다. 구로3동, 가리봉동 등에 많이 사는데, 이들을 만날 땐 중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지금까지 많은 국회의원 후보들이 왔지만 중국말로 인사를 해준 후보는 처음’이라며 반가워한다. 한국은 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다문화사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 동포와 함께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태 후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왔다. 그가 꿈꾸는 자유민주주의란 구로을이 변화해야 하는 당위성과도 맞닿아 있다.
“주민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는 것. 자유민주주의라는 새가 발전하려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두 날개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구로을은 지난 20년간 마치 ‘1당제 국가’와도 같았고, 그래서 발전하지 못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일 못하는 정치인, 일 못하는 정당은 바꿔야 한다. ‘묻지마 민주당’이면 영원히 바뀌지 못한다. 대통령도, 서울시장도, 구로구청장도 모두 국민의힘인 지금이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주민들이 날 선택해 국회에 다시 보내준다면 구로의 변화에 필요한 입법·예산을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동아 4월호 표지.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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