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선거 후 민심 수습 못 해 몰락
선거 패배 대응에 尹 정권 명운 달렸다
4월 1일 ‘의정 갈등’과 관련해 51분간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총선 민심에 쐐기를 박았다. [뉴스1]
[영상] 윤석열 심판 그 후
22대 총선 결과는 192, 175, 108, 12, 3이라는 다섯 개의 숫자로 요약된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위성정당 더불어시민연합 포함)이 175석을 얻었고 여당인 국민의힘(위성정당 국민의미래 포함)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양당의 격차도 엄청나지만 12석의 조국혁신당이나 3석의 개혁신당도 민주당보다 더 선명한 야당을 자임하고 있다. 사실상 제3지대 없이 192석이 오롯이 반여 범야권인 셈이다. 복기해 보면 22대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우한 선거였다. 대통령 관련 뉴스의 빈도와 강도에 따라 여야 지지율이 출렁거렸다. 그런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과 대통령은 비례관계,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반비례관계였다. 대통령 이야기가 안 들리면 여당이 부상했고, 대통령이 자주 등장하면 야당이 떴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각급 선거는 모두 어느 정도 중간평가 성격을 띠지만 이번 총선은 특히 그랬다. 평가를 넘어 심판, 심판을 넘어 응징 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재명 메시지도 마이너스 요인이었으나…
대승을 거뒀지만 야당의 공천이나 캠페인을 높이 평가하긴 힘들다. 직전 대선 경선과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 나서 연달아 2등을 한 박용진에게 하위 10% 딱지를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상대 선수를 세 번이나 교체한 서울 강북을 공천, 역시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전해철 자리에 양문석을 넣은 경기 안산갑 공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원내대표를 지낸 박광온 자리에 김준혁을 넣은 경기 수원정 공천 등은 선거 승리의 원동력이 아니라 걸림돌이었다. 이 세 자리 공천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대장동 변호인단의 무더기 공천 등 다른 무리수들은 큰 주목도 받지 못했다.“양안 관계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 중국에든 대만에든 ‘셰셰’만 하면 된다” “물가가 급등해 민생이 어려우니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로 25만 원씩 나눠줘야 한다” 같은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 역시 플러스 요인이 아니라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대표가 만든 조국혁신당 역시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 배우자 논란, 6번 김준형 후보 자녀의 국적 논란, 유일한 의원인 황운하 후보의 1심 실형 논란 등 주요 인사들에게선 연달아 마이너스 요소만 터져 나왔다. 조국 대표 외에 스피커 역할을 한 사람도 제대로 없었다. 그럼에도 두 야당 대표는 마이너스 요인들에 대한 벌충이나 해명 대신 정권 심판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이재명 대표는 공천 난맥상이 벌어지는 과정에 진보 언론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고 “이러다 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연일 쏟아져 나왔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친명 컬러도 옅은 수도권 한 재선의원은 “이재명 대표는 줄곧 ‘결국 대통령 심판 정서가 떠오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 사람이 바로 이재명 대표였고, 윤 대통령이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은 셈이다.
야당은 초지일관 윤석열 심판 선거를 치른 반면 여당은 부침이 심했다. 여당의 출렁거림을 보면 이번 총선의 흐름이 보인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김기현 지도부가 계속 갈피를 못 잡고 인요한 혁신위조차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이준석 전 대표마저 탈당을 결행한 지난해 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판했을 때 국민의힘 예상 의석은 80∼90석 정도였다. ‘서울 49석 중 우세 6석’ 자체 판세 분석 보고서가 조선일보 12월 8일자에 단독 보도된 직후였다. 하지만 한동훈 등판 이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 안팎에서도 ‘이번이 진짜 마지막 카드’라는 위기감이 구심력을 높였고, 한 위원장은 정제된 언행의 ‘스타일’ 면에선 전임자들이나 용산과는 확고한 차별성을 보여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수도권 출신 유의동 정책위의장과 충청권 출신 장동혁 사무총장, 그리고 중도적이고 포용적 이미지가 강한 시각장애인 비례대표 김예지 의원과 ‘조국흑서’ 저자인 김경율 회계사 등을 비대위원으로 포진시켰다.
대통령 행보에 총선 흐름 달라져
분위기가 뜨는가 싶더니 첫 위기가 닥쳤다. 1월 17일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하자, 대통령실에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 김경율 비대위원이 총대를 메고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에 대한 정리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도 “국민이 걱정하실 부분이 있었다”고 힘을 보태자 ‘용산의 용암’이 폭발했다. 사퇴 요구-사퇴 거부 공방이 지속됐고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한동훈은) 임시 관리자에 불과” 같은 대통령의 날 선 발언이 그대로 보도됐다. 이 과정에서 일반 여론은 물론 여당 지지자 다수와 보수 언론까지 용산을 비판하며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다. 여론이 들끓는 명품 백 이슈를 꺼냈다는 이유로, 혹은 험지 중의 험지인 서울 마포을에 김경율을 출마시키겠다는 이유로 ‘마지막 카드’인 한동훈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용산의 거친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극한 대치는 충남 서천시장 화재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 돈독한 모습을 보이고 양쪽 모두 톤 다운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 한 위원장은 가는 곳마다 구름인파를 끌어모았고, 용산 역시 ‘선거용 선심’이라는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거부감을 낮췄다. 야당이 ‘정권 심판’을 들고 나온 상황에서 ‘윤석열 대(對) 이재명’ 총선 구도가 ‘정치 신인 한동훈 대 이재명’으로 바뀌면서 여당의 예상 의석이 점점 늘어났다. 여기에 야당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 논란까지 겹쳤고, 여당 공천은 상대적으로 잡음이 덜해 득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당 처지에선 2월 한 달이 호시절이었다.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고 외압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대사에 임명돼 출국하면서 총선 민심이 출렁였다. [뉴시스]
총선 후반부터 한동훈 위원장의 ‘야당, 운동권, 범죄자 심판’ 프레임은 효용성이 떨어지고 거꾸로 ‘정권심판론’만 상기시키는 효용성 떨어지는 캠페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값(물가 민생), 의료 대란 문제에 대한 상징성과 장악력이 워낙 강한 상황에서 여당의 정책 관련 메시지의 대중 침투력은 매우 약했다. 금융투자세 폐지, 저출산 대책을 위한 영유아 지원 대폭 확대, 내구재와 사치재를 제외한 일부 품목에 대한 부가세 인하 등은 비판의 소지가 적잖을 논쟁적 공약이었는데도 별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나온 전 국민 지원금 추진 공약에 대해서도 논쟁이 크게 벌어지지 못했다.
큰 의제를 던져 논쟁과 전선을 만드는 것이 여당과 비대위원장의 책무이긴 하지만 선거 기간 내내 여당 지도부는 뒤통수, 후방을 신경 쓰는 데 더 큰 에너지를 쏟는 모습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도화선이었던 이른바 ‘1차 윤한 갈등’이 전화위복이 되는가 했지만 도태우·장예찬 후보 공천 취소 과정에서나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용산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비례대표 공천 직후 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주기환 전 광주시당 위원장을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민생특보로 임명한 것은 매우 상징적 장면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용산과 교감을 내세운 보수 유튜버들은 야당보다 여당 지도부를 맹공했다. 공천 취소 이후 무소속으로 부산 수영에서 끝까지 완주했다가 낙선한 장예찬 후보, 대통령의 40년 지기라는 석동훈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비례 2번으로 나선 자유통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겠다. 좌파와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의 사진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용산과 차별화를 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판이니 한동훈 위원장이 여론을 등에 업고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1차 윤한 갈등’ 과정에서 ‘파국’ 직전까지 경험한 한 위원장은 그런 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야당 협조 없이 국정 운영 불가능
이제 대통령과 용산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사라졌다. 야당의 압박이야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여당과의 관계가 더 큰 문제다. 양곡법이나 노란봉투법 같은 정책적 사안은 모르겠지만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내로남불’ 프레임이 걸린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는 여당에서 먼저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제 윤 대통령은 인사에서 이중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 등 국회 표결이 필요한 인사는 여당이 똘똘 뭉친다고 해도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누구나 인정하는 ‘괜찮은 인물’을 대통령실이나 내각에 불러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대통령이 변했다’는 인식을 주고 그들에게 과감한 자율성을 부여할 때만 가능하겠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현실적으로는 “내가 이럴 때가 아니면 어떻게 저런 자리에 가겠느냐”며 감지덕지할 인사들만 충원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대통령이 위축되면서, 그 위축으로 인해 충성심 위주 인사를 단행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여론으로부터 더 배격당하면서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 직후 용산발 뉴스로 이상민, 이동관, 장제원 같은 이름이 신임 비서실장으로 거론되자 여당의 수도권 낙선자와 당선자들은 하나같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22대 총선에 여당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지만 21대 총선에 비해선 수도권 당선자들이 소폭 늘었다. 그나마 안철수, 나경원, 김재섭 등 비윤 이미지를 지닌 사람들이 그 메리트로 생환했다. 이들은 벌써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만약 대구·경북(TK)과 서부 경남의 보수적 당선자들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용산과 다시 손잡고 보수적으로 당을 운영하려 할 경우 그 후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 20대 총선 패배가 아니라 그 이후 여권 재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혁신의 길을 걸어야 할 전당대회에서 “이럴 때 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뭉쳐야 한다”고 나선 박 대통령의 측근 이정현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대통령실은 충북도지사 자리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은 70대 중반 이원종 비서실장 체제가 들어섰다. 뼈를 깎는 혁신과 변화 대신 안주와 위축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결국 여론은 더 싸늘해지고 여당은 청와대를 이끌지 못했고 국정 컨트롤타워로서의 청와대 기능도 형해화됐다. 그 결말이 바로 탄핵이었다. 총선 패배, 특히 수도권 참패로 오히려 비중이 높아진 영남권 의원은 ‘말 없는 다수’에 불과했다. 지금 용산과 여당도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보수 본류를 자임하는 유튜버, 홍준표 대구시장 등은 “선거 패배 책임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에 있는 것”이라며 연일 한동훈 전 위원장 등을 저격하면서 “우리가 진짜 보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여권이 현재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로 접어들지 결정하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앞으로 나올 대통령실과 당의 인선을 보면 윤석열 정권의 미래 3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당대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번 호로 ‘윤태곤의 총선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성원해 준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동아 5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