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광역 행정통합, 6·3 지방선거 맞아 정치적 이벤트화 ‘위험’
‘지방 주도 성장’은 지역 배려 정책 아닌 국가 혁신 전략
국가 운영 체제 근간 재구성하는 ‘재조산하(再造山河)’ 과제
‘5극(極) 3특(特)’, 결정권·재정권 이전 없으면 ‘이름만 커진 지방청’
충분한 시민 숙의(熟議) 공론화 과정은 민주주의 교과서 원칙
‘대통령의 이름’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결정해야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은 “초광역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국가 운영 체제의 근간을 재구성하는 ‘재조산하(再造山河)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첫 번째 목표인 지방 주도 성장이다. ‘수도권 1극(極) 체제’에서 ‘5극(極) 3특(特) 체제’로의 획기적 변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어서다. 수도권·동남권·중부권·대경권·호남권 5극으로 국토를 초광역화하고, 강원·전북·제주 3개 특별자치도로 지방의 권한과 자치성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서울은 경제수도, 중부권은 행정수도, 남부권은 해양수도로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원에 급물살 탄 초광역 행정통합
정치권은 발 빠르게 반응했다.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1월 6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전남 통합특별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제기해 온 ‘속도 조절론’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당 소속 충북 지역 국회의원과 만나 오는 6월 3일 치러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 충북을 특별자치도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이 대통령과 충남·대전 지역 국회의원과의 만남을 계기로 충남·대전 행정통합 논의에 불이 붙으면서 충북이 소외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당 차원의 대책으로 밝힌 구상이다. 자칫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끼칠까 저어하는 모양새다.
신속하긴 광역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1월 13일 전남도청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2월 말까지 광주·전남 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켜 대한민국 1호 행정통합특별시를 반드시 만들겠다”며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선출할 뜻을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이는 1월 9일 이 대통령이 광주·전남 지역 시·도지사, 국회의원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행정통합 시 재정지원 확대 등 전폭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직후 나온 발언이다.
한편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는 1월 13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년간의 활동 내용과 여론조사 결과, 부산시와 경남도 간에 행정통합이 필요하며 최종 결정은 주민투표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사례에서 보듯 시·도민 의견부터 묻지 않고 ‘속도전’을 편다면 논란과 갈등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 명의 통합단체장을 뽑겠다는 대전·충남,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행정통합 공동선언까지 발표하며 통합 대열에 뛰어든 광주·전남의 경우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제각각 급물살을 타고 있는 초광역 행정통합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김태일(71) 전 장안대 총장(제20대)은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의 오랜 지방분권 전문가다. 그를 1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신동아’ 인터뷰룸에서 만나 이재명 정부 초광역화 전략의 허와 실에 대해 들었다. 대한정치학회 회장과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김 전 총장은 현재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1월 13일 오후 전남도의회 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행정통합’ 전남도의회-집행부 간담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행정통합이 곧 지역문제 해결? 그건 판타지!
이 대통령이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을 천명한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나.“그 배경엔 수도권 1극 체제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다. 수도권 집중은 성장의 효율을 높였지만, 결과는 지방 소멸과 수도권 과밀이라는 이중 위기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권력이 있는 곳을 동심원으로 돈·사람·일자리·문화·교육 기회 등이 몰려들었다. 권력의 집중과 자원의 집적은 동전의 양면인데, 이것이 계속 커져 ‘서울공화국’이란 괴물이 탄생했다. 이 틀을 깨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요구가 초광역화 전략의 추진 배경이다. 이제 문제는 단순한 균형이 아니라 국가의 존속이다. 다만 방향성의 선언만으론 부족하다. 지방 주도 성장이 실현되려면 권한과 자원, 정치구조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지방 주도 성장의 당위성은?
“지방 주도 성장은 지역 배려 정책이 아닌 국가 혁신 전략이다. 혁신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다양성은 공간적으로 분산될 때 살아난다. 모든 자원과 인재를 수도권에 몰아넣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없다. 지방이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도 커진다. 초광역화 전략을 통해 더 많은 자율성과 더 큰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지역혁신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권한과 재원을 확보하는 자율성, 더 넓은 공간과 더 복합적인 산업·인재 구성을 가능케 하는 다양성은 분명 중요한 가치다.”
5극 3특 체제로의 전환은 국가 대도약 전략으로 타당한가.
“방향성 자체는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실질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공간 구조를 바꾼다고 체제가 자동으로 바뀌진 않는다. 5극 3특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결정권·재정권·인사권이 실제로 이전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름만 커진 지방청’이 될 위험이 크다.”
5극 3특 전략에 실질적 권한 이양과 재정 분권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나.
“아직은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대부분 중앙이 설계하고 지방이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이 구조로는 초집중 체제를 깨기 어렵다. 지방엔 실패할 자유까지 포함한 실질적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5극 3특은 또 하나의 정치적 수사(修辭)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초광역 행정통합은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잘하면 좋고, 그러지 못하면 별 볼일 없는 그런 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여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행정통합이 곧 지역문제를 다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나치다 못해 ‘행정통합 판타지’가 생겨나서는 안 된다.”
좋은 통합, 나쁜 통합, 이상한 통합
전국 각 지역마다 진행 중인 초광역화 논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초광역화를 생존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 단일 광역 단위로는 산업·인구·재정 규모에서 경쟁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지역별로 추진 방식과 숙성도 면에선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이 주도하는 ‘위에서 아래로’의 추진 방식은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이 크다.”
현재 이뤄지는 초광역화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속도와 절차적 정당성 문제다. 우선 추진 과정이 너무 성급해 보인다. 국민의 삶과 행정, 정치·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숙의(熟議)’가 필수다. 처음 겪는 문제,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 이해당사자가 직접 얽힌 문제는 시민 숙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 교과서의 원칙이다. 초광역화는 빨리 할수록 좋은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깊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이 1월 7일 대전시의회에서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발전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 전 총장은 “초광역 행정통합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국가 구조의 변화”라며 “대한민국 국가 운영 체제의 근간을 재구성하는 백년지대계의 ‘재조산하(再造山河)’ 과제”라고 강조했다. ‘재조산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준 글귀.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초광역 행정통합은 여러 지역의 뜻을 존중하면서 취합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규범을 국회가 만든 후 거기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는 게 김 전 총장의 지론이다. 행정통합은 어느 두 지역의 행정 범위와 영역만 바꾸는 게 아니라 행정 체계의 계층, 그들 사이의 관계 등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상향식 ‘관문형 의사결정’ 단계 거쳐야
그렇다면 초광역화 논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할까.“반드시 숙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론조사로 밀고 가는 방식도 마뜩잖다. 여론조사는 어느 한 시점에서 시·도민이 가진 인식, 느낌, 판단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시·도민이 시간을 가지고 행정통합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접하고 인식한 다음 학습·토론·평가 과정을 거친 후 최종 의사를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공론조사’라고 한다. 공론조사는 여론조사에 비해 훨씬 더 깊은 숙의를 거친 것이며, 행정통합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을 거쳐야 통합으로 발생할 불평등, 부담과 혜택의 불균형 같은 민감한 문제를 사전에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상향식으로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 즉 ‘사회적 합의→행정적 합의→정치적 합의→법률적 합의’라는 관문형 의사결정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오류의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신중히 나아가야 한다. 하나의 합의를 이루고 다음 합의로, 또 그다음 합의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의 정치 다양성을 실현할 지방선거 제도의 개혁이 매우 중요하다.”
지방선거 제도 개혁이 왜 그렇게 절실한가.
“지방정치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행정통합만 추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현재 우리나라 모든 지역의 권력 구조는 ‘강한 자치단체장–약한 지방의회–허약한 시민사회’라는 비대칭 상황이다. 자치단체장의 권력은 견제하기 어렵고,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거수기’ ‘고무도장’ 역할이나 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언론은 자치단체 보조금에 포획돼 있고, 시민 참여도는 낮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연방제 수준’의 권한과 자원을 부여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권력 집중과 민주적 통제 약화는 더욱 심화된다. 따라서 지방의회 권한 강화, 시민참여 제도화, 권력 견제 장치 확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행정통합은 되레 지역혁신에 위협 요인이 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오랫동안 ‘정치적 동종교배(同種交配)’를 해온 대구·경북, 광주·전남을 떠올려 보라. 다양성 없는 자율이 가져올 문제가 무엇일지. 특정 정당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독점 지배하며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채’를 구축한다면 지역과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나. 이런 상태에서 절대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지방선거 제도다. 민심을 가감 없이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해 지방선거에서 다양성과 역동성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지방선거 제도의 개혁 없는 초광역화 전략은 재앙일 뿐이다.”

2024년 11월 8일 오후 경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 공론화 위원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경남도
대구·경북 행정통합, 정치적 공명심 탓에 좌초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과거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돼 왔다. 그럼에도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핵심은 정치다. 지역균형발전을 행정 사업으로만 다뤘고, 권력구조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구조가 유지되는 한 어떤 균형발전정책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초광역 행정통합은 수년 전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비전’으로 물꼬를 튼 후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권이 잇따라 합류했다. 전북·강원은 제주처럼 특별자치도라는 또 다른 형태의 초광역화 전략을 택했다. 특별자치도 역시 광역자치단체들이 기존 상태를 넘어서는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초광역화 전략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런 길을 모색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초광역화 전략은 단순히 덩치를 키우자는 게 아니라 지역혁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허영과 공명심이 대의를 앞서면 반드시 실패한다. 몇 년 전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가 ‘밀어붙이던’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정치적 혼란기를 거치며 결국 좌초한 게 대표 사례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광역 행정통합이 선거용 구호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지 않을까.
“충분히 있다. 지방선거에서 통합이 정치적 이벤트로 소비된다면 매우 위험하다. 초광역 행정통합은 선거전략이 아니라 국가체제 개편 논의다. 선거 일정에 맞추는 순간 내용은 텅 비게 된다.”
그간 지방분권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해왔나.
“학자로서,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2002년부터 지방분권과 지역민주주의를 연구하고 공론화해 왔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 과정에도 직접 참여했다. 나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행정 규모 확대가 아니다.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 전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현재 초광역화라는 과업이 사실상 대통령 의제가 돼버린 것 같은데, 그래서도 더더욱 시한을 정해놓고 줄달음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숙의하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대도약을 ‘지방’에서 시작하는 건 의미 깊다. 모두가 ‘중앙’만 갈망할 때 ‘지방’에 따뜻한 눈길을 돌리려는 당위성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초광역화 전략 자체는 지역혁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의 주체는 이미 이재명 정부 국가 비전에 깃들어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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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종합일간지(대구 매일신문), 시사주간지(주간동아), 시사월간지(신동아)를 거치는 33년 기자 생활 동안 제가 늘 염두에 둬 온 글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론 진실을 알 수 없으니까요. 항상 선입견을 경계하고, 속단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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