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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의 쓸쓸한 노후

남의 슬픔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의 쓸쓸한 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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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날아든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씨의 투병생활과 잇따른 진료비 체납 소식은 화려한 연예계의 어두운 뒤안길을 보여주는 듯해 안타까웠다.
  • 곳곳에서 그와 가족을 두고 억측과 험담을 만들어냈고, 그의 이름 석 자를 내세워 주머니를 채우는 이들도 생겨났다. 여전히 병원을 못 벗어나고 있는 배씨와 2년 가까이 간병 중인 두 딸을 만나보았다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의 쓸쓸한 노후
1970년대는 희극의 시대였다. 1926년생 배삼룡과 구봉서, 1928년생인 서영춘, 1935년생 이기동 등이 대한민국에 웃음을 전파했다. 이들은 모자라 보이는 외양과 어수룩한 말투, 서툰 몸짓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아낌없이 웃겼다.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기를 통과하며 도시와 농촌, 세대와 세대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던 시대다. 그들의 연기는 동시대 사람들이 시대에 적응하면서 느꼈던 미숙함과 아찔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기를 낮추는 그들의 연기는 ‘저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코미디의 본류가 됐다.

1970년대 코미디의 대표주자 배삼룡씨는 지금의 중장년 세대에게 ‘비실이’라는 별명으로 친숙하다. 그는 별명에 걸맞게 비실거려서 웃기고, 멀쩡히 걸으면 의외의 효과로 더 많은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인이었다. 전성기 이후에도 ‘바보 연기의 원조’로 통하며 젊은 세대에게까지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이주일 심형래 이창훈 심현섭으로 이어지는 바보연기의 윗자락에는 배삼룡이라는 이름이 있다.

배씨의 이름이 최근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게 된 것은 서울아산병원과의 체납 진료비 재판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8월 1억3000만원 상당의 진료비를 납부하라고 배씨와 가족들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2월5일에는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났다. 이 판결에 따르면, 입원비와 소송비용을 포함 2억여 원을 배씨와 가족들이 병원에 지급해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언이 얽힌 뜻밖의 소식이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본디 나쁜 소문은 좋은 소문보다 훨씬 빠르게 옮겨 다니는 법이다. 게다가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배씨의 치료를 둘러싸고 갖은 구설이 잇따랐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이며, 가족들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지 궁금했다.

배씨가 입원 중인 서울아산병원 병실을 찾았다. 배삼룡씨 본인이 병상의 자신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가족 역시 언론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 측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재판 결과 외에 더 보탤 말이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어렵게 찾은 배씨의 병실은 두 딸 주영, 경주씨가 지키고 있었다. 흡인성 폐렴 판정을 받은 배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두 딸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2007년 여름, 배씨는 심장이 정지된 상태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그날 이후 병세에 따라 일반 병실과 치료실, 중환자실을 오가며 이제껏 병원에 머물고 있다.

“한밤중에 당장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응급실에 들어온 거라 저희도 이렇게 오래 계실 줄은 몰랐어요. 폐렴에 합병증이 겹쳐 상태가 나빠지면 중환자실로 옮겼다가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오기를 여러 번 했죠. 이렇게 괜찮으시다가도 균이 침입해 감염되기도 합니다. 불안정한 상태여서 이유 없이 붓기도 하고요.”

둘째딸 주영씨는 20개월 전 상황이 워낙 다급했다고 전했다. 배씨는 그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4년째 투병생활 중이었고, 간간이 입원할 때마다 진료비를 일괄 납부했다고 한다. 이번에 20개월이나 입원하게 될지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병세가 장기화하는 통에 진료비 체납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두 딸이 그간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하는 동안 배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누워 있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가 코미디언 배삼룡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아진 모습이다. 튜브를 통해 숨을 쉬고 유동식을 공급받고 있었다. 의사소통은 딸들이 옆에서 의중을 물어볼 때 좋고 싫음을 표현하거나 짧게 대답하는 정도라고 했다. 주영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주며 아이를 보듯 환하게 웃었다.

“얼른 일어나시면 좋겠어요.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짧게 한마디하시겠죠. 아버지는 대범한 사람이고, 편찮으시기 전에도 표현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었으니까요.”

배씨는 1946년 악극단 ‘민협’에 입단하면서 연예인의 길에 들어섰다. 자라난 고향인 춘천에 악극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삼룡이라는 예명을 이때 얻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창순. 어딘가 부족하면서도 친숙한 이름의 배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삼룡이란 이름이 훗날의 그를 만들었고, 나중에 정식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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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자유기고가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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