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사회의 개인
성태윤 교육투자의 기대수익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위험을 고려한 수익률까지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녀가 교육 과정에서 도태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리스크를 알면서도 교육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구조가 형성돼 있습니다.
변창흠 고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교육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부문도 없었습니다. 저성장 시대엔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률은 떨어지겠지만 투자는 계속될 겁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육의 질, 양, 유형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성태윤 언론에서 자주 제기하는 이슈가 기업을 위한 ‘맞춤식 교육’입니다. 그런데 맞춤식 교육이 갖고 있는 위험이 상당합니다. 산업 트렌드는 숨 가쁘게 바뀝니다. 특정 산업에 얽매인 형태로 교육받은 사람은 트렌드가 바뀌면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운이 좋아서 뜨는 산업에서 일하면 다행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끔찍하겠죠. 대학교육은 일반적인 지식, 스킬을 받아들이는 흡수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에서도 교양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옥우석 산업 수요에 맞춰 인력을 공급하는 건 대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 기술의 ‘흡수 능력’을 키워주는 곳입니다. 대학(university)을 갈 사람과 전문대(professional college)를 갈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데, 모두가 대학을 선택하게끔 하는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황준욱 저성장 시대의 국토의 계획, 운용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주택시장의 변화 양상도 독자의 관심사일 것 같습니다.
변창흠 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부동산시장도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택, 국토 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이 센 나라였습니다. 법률도 선(先)계획, 후(後)개발을 규정해놓았고요. 국토 및 토지 정책에서 수요/공급의 시장 패러다임을 추종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고성장 시대의 국토, 주택의 수요 팽창 과정에서 이득을 가장 많이 본 계층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요? 1980년대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는 전체의 3.1%였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6.4%로 높아졌습니다. 30년 동안 도시적 용도로 쓰이는 국토가 2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2020년 목표는 국토의 9.3%를 도시적 용도로 쓰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국토계획에 맞춰서 주택정책도 입안되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 정부가 팽창 지향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될까요?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지금은 조금 줄어서 14만호쯤 됩니다. 미분양 문제가 수도권으로 불어닥칠 겁니다. 토목·건설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뛰어납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토목·건설이 해법으로 떠오르면서 이 부분이 더욱 팽창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팽창이 저성장 시대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준욱 부동산 양극화는 저성장 시대에도 계속될까요?
변창흠 부동산 양극화는 토지와 주택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지는 주택보다 소유의 집중도가 훨씬 심합니다. 민간 보유 토지의 65%를 상위 5%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택은 소유의 집중도는 심각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 대신 가격의 격차가 크지요. 지방과 서울, 서울 강남·강북 간 주택가격 차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예컨대 강남지역은 교육·문화환경이 우수한데다 자산의 기대수익마저 높습니다. 낙후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하게 마련이죠. 저성장 시대에도 부동산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택의 상품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더욱 집중하면서 그런 지역의 주택 값이 계속 오르는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저성장 사회의 일자리는 어떤 형태일까요? 선진국들은 저성장 사회로 이동하면서 실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옥우석 1970년대 오일쇼크가 유럽이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계기입니다. 굉장히 파괴적인 형태로 오일쇼크가 유럽을 타격했습니다. 당시 발생한 고실업이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이 유럽처럼 고실업 사회로 나아갈까요? 저는 중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파리에서도 한국 가게는 배달을 해줍니다. 대리운전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창출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창출되는 직종이 고부가가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고용탄력성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고용성장률로 나눠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치가 나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도는데, 실제로는 고용 창출 능력 자체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엔 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의 고용은 감소세입니다. 대신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0인 이하의 작은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요.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도 늘고 있고요. 고용이 줄었다기보다는 창출 패턴이 변화한 것입니다.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트렌드로 대기업의 고용 창출은 이젠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대비 서비스 산업 고용자 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대부분이 나쁜 일자리입니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거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준욱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거군요. 교육투자는 증가하는데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다면….
변창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이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음식, 숙박, 도소매업 쪽으로 몰렸습니다. 서울의 인구 대비 음식점 수, 택시운전자 수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시장은 작은데 경쟁은 치열하니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지금 한국의 자영업은 노동을 스스로 만들어서 파는 구조입니다. 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3~4% 성장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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