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고있는 히로뽕 투약자들.
최씨는 역시 부산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김OO씨라는 판매책의 물건도 받아오곤 했는데 한번은 그와 함께 부산 모처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히로뽕 1kg을 4000만원에 공동구매하기도 했다. 김씨와 최씨가 1kg을 모두 파는 데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1000개 이상의 작대기를 만들 수 있고 3000명 이상이 한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당시 시가로 따지면 8억~10억원 정도였다.
북한산 크리스탈
순도가 100%에 가까운 히로뽕을 업계에서는 흔히 ‘크리스탈’이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 약을 해온 약쟁이들은 먹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탈은 만나기가 매우 힘들다. 취재 중 만난 한 40대 마약 투약자 유OO씨는 “예전엔 술(히로뽕)이 아주 독했다. 그런데 요즘 도는 술은 너무 약해서 양을 예전보다 2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 요즘 도는 술 중에는 북한산이 가장 질이 좋은데 순도가 보통 75% 이상이다. 75% 정도면 크리스탈로 인정해 준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산은 주로 일본으로 들어가고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고 한다. 나도 몇 번밖에 못 봤다”고 말했다.
유씨와 최씨 등에 따르면 마약은 교도소에도 밀반입되고 있다. 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교도소에서 히로뽕을 받아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마약사범들이 출소 한 달 전에 사회로부터 받는 만기복(출소 때 입고 나갈 옷)을 통해 들여오는 식이다. 주로 판매책이나 선배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넣어줬다. 작은 종이에 싸서 옷 속에 넣어둔 히로뽕은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
“만기복이 들어오면 한번 입어보자고 교도관에게 그래요. 그 사이 몸이 불었나 한번 봐야 한다고. 옷 속에 약이 있다는 걸 알고 입는 거죠. 슬쩍 빼놓고 밤이 되면 먹는 겁니다.”
K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K씨는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새로 들어온 마약사범이 몰래 숨겨 들여온 마약을 같은 방 재소자들과 나눠 먹은 일도 있다고 했다.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해봤는데 그 안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더라고요. 잠도 안 오죠. 그렇다고 남자가 있나. 몸만 힘들어요. 어떤 애는 약을 먹고 취해서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나오더라고요. 정말 할 짓이 못 돼요.”
최씨는 “교도관들도 만기복에 약이 숨겨져 들어오는 걸 안다. 하지만 괜히 문제가 커질 수 있어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해본 뒤로는 선배들에게 더는 술(히로뽕)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 할 일도 없고 힘만 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마약 계보
기자는 취재 중 만난 마약판매책들을 통해 대한민국을 움직여온 마약세계의 큰손들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다만 이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정OO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히로뽕 제조책이었다. 1970년대부터 부산, 대구 등지에서 주로 히로뽕을 제조했는데 한때 수제자만 10여 명을 거느릴 정도였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해 온 속칭 ‘5대 제조책’ 중 그 규모가 가장 컸다는 게 마약 판매상과 마약수사를 해온 검찰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 그러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전후해 그는 홀연히 중국으로 떠났다. 그가 중국에서 만들어 우리나라 곳곳에 뿌린 히로뽕은 순도가 높아 인기가 좋았고 양도 많았다. 정씨는 1996년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사형을 당했다.
2004년 부산에서 붙잡힌 신OO(50대)씨는 ‘메이드 인 코리아’ 히로뽕을 만든 마지막 제조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5대 제조책’들이 하나 둘 일선을 떠나거나 외국으로 나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한국을 지켰다. 5대 제조책 시대가 종말을 고한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