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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채널A 특강 지상중계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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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았습니다. 정의와 공정, 연대, 공공성 등 커다란 이슈에 대해 남녀노소 함께 모여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토론을 벌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월 18일 채널A 오픈 스튜디오에서 공개 특강을 진행했다. 채널A와 동아일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박진근)가 공동 기획한 ‘마이클 샌델 초청 특별토론 공생발전과 정의’ 특강에서 사회를 맡은 샌델 교수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홍권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4명의 전문가 패널과 함께 2시간 반 동안 토론을 이끌었다.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마이클 샌델(59) 교수의 공개 특강이 열린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사옥 1층 채널A 오픈 스튜디오 주변은 구경꾼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투명 통유리 밖에서 녹화 과정을 지켜보려고 몰려든 시민들이었다. 오픈 스튜디오는 외벽이 투명 통유리로 만들어져 녹화 과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덕분에 스튜디오 안쪽의 방청객들 외에도 녹화가 진행된 2시간 반 동안 300명이 넘는 시민이 밖에서 토론을 지켜봤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외부에 설치된 대형 TV 2대와 스피커를 통해 스튜디오 안의 특강을 볼 수 있었고, 스튜디오 내 방청객처럼 마이크를 잡고 직접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처럼 이들은 세계적 석학이 이끄는 토론을 흥미 있게 들여다봤다.

샌델 교수는 1980년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이후 30년 이상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책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학자로 떠올랐다.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5월 국내 번역 출간 이후 110만 부 이상 팔리며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그해 8월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샌델 교수의 강연회에는 4500여 명이 몰린 바 있다.

공개 특강 첫머리에서 샌델 교수는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시장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으나 그에 수반되는 소득격차 확대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에서 불거진 윤리, 정의, 공정사회, 공공선을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논의는 ‘쌍방향’ 대화로 진행하겠다”며 “민주사회에서는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상대방을 존중해가며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는 공론화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오픈 스튜디오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샌델 교수가 소크라테스처럼 청중과 패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이들의 토론에 불을 붙였고, 청중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열띤 공론의 장이었다.

패널석에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홍권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4명의 전문가가 자리했다. 스튜디오에는 채널A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방청을 신청한 뒤 추첨으로 뽑힌 방청객 40여 명이 함께했다. 추운 날씨에도 녹화 시작 2시간 전부터 모이기 시작한 이들의 손에는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서를 끼고 온 방청객도 보였다. 주로 20대인 방청객들은 중요한 전공 수업을 수강하듯 각자 수첩을 꺼내 꼼꼼히 메모하며 진지하게 토론에 귀를 기울였다.

공생발전 성찰하는 쌍방향 공론장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정하지 않다? 아니다. 불평등은 저마다 노력의 결과이므로 꼭 공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공에는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아니다. 성공에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어 1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한다면 노령연금을 확충하겠는가,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는가.”

동시통역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샌델 교수는 상반된 명제를 제시하며 청중이 손을 들어 의견을 표명하길 주문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고령화 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현안을 다루면서 단순히 이슈의 표면만 바라보기보다는 그 바탕을 이루는 본질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먼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샌델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비교할 때 평등주의 성향이 강한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이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강석훈 교수는 “하위계층 20%의 소득 대비 상위계층 20%의 소득의 비율인 5분위 소득배율이 1990년 4에서 최근 6으로 증가했고, 빈곤층의 비율은 1990년 약 8%에서 최근 약 15%로 늘었다. 20여 년 사이에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빈곤층의 비율은 증가한 것”이라고 뒷받침했다.

샌델 교수는 방청객은 물론 스튜디오 밖 시민들에게까지 의사 표현 기회를 줬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손들어주세요. 자, 창밖에서 보시는 분들도 같이 투표해주시고요. 이번엔 ‘경제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의 정도를 반영하므로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손들어주세요.”

서로 다른 쪽에 손을 든 방청객을 둘러보며 샌델 교수가 그 이유를 물었다. 이때부터 토론은 자연스럽게 불붙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

채널A 오픈스튜디오 밖에서도 청강 열기는 뜨거웠다.

방청객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격차는 어쩔 수 없으니 이를 불공정하다고 탓하기보다는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하므로 돈을 많이 벌 자격이 있다” “부의 성취 여부는 개인적 노력이나 능력의 결과만이 아니라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출생의 배경에도 달려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구조도 감안해야 한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소외감을 일으켜 사회 결속력을 해친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토론의 열기가 뜨거워질 때마다 샌델 교수는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으로는 요점을 강조하는 특유의 제스처로 좌중을 이끌었다.

‘사회적 경제적 성공은 능력보다 운에 좌우될까’를 놓고 벌인 토론에서 샌델 교수는 방청객들에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김연아” “박지성”에 이어 누군가가 “마이클 샌델”이라고 외치자 샌델 교수의 얼굴이 빨개졌고 녹화장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샌델 교수는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잊어버렸다”며 웃다가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려보죠.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농구공을 골대에 잘 넣는 능력 덕분에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마침 우리 사회가 농구를 즐기기 때문에 그의 기량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포츠보다 전쟁이 중요했던 수백 년 전에도 공 잘 던지는 사람에게 그만큼 대우를 해줬을까요? 저처럼 철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 과연 그 당시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런 시대를 타고난 것은 운이 아닐까요?”

그는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 방법이지만 부모의 부가 자녀의 교육 기회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한국 통계청의 자료를 제시했다. 한국에서 소득기준 상위 20% 계층이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하위 20% 계층의 사교육비와 비교해 9배나 높다는 것. 논의는 자연스럽게 ‘반값 등록금’ 이슈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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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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