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말단 큰형님’ 6급 공무원이 사는 법

권한도 책임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관(官)’자 달기 올인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4-07 1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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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철밥통’에 비유되는 공무원에게 또 하나의 꼬리표가 붙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들에게 ‘머슴’이 돼라 했다. 기획재정부 관료에게 한 말이지만 시·군·구 6급 공무원, 이른바 ‘주사’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말이라 여긴다. ‘관(官)’자 붙은 고위직과 하급직 사이에 ‘낀 세대’. 사무관 승진엔 거듭 고배를 마셔도 말단의 ‘큰형님’으로 정부의 말초신경망을 책임지는 그들이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고위관료들이 ‘쌩쇼’를 해도 그들은 좀처럼 말이 없다. 이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말단 큰형님’ 6급 공무원이 사는 법
    철밥통. 무사안일. 칼퇴근. 일 떠넘기기. 거저먹기. 부패의 온상.

    국민의 머릿속 검색창에 ‘공무원’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이런 ‘연관어’가 뜨지 않을까. 국민들 사이에서 공무원의 위치는 미묘하다. 국민을 위해 일하지만 국민들은 ‘수고한다’는 한마디에도 인색하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뭇매를 맞는다. 그렇다고 못마땅한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 속에선 부아가 치밀어도 겉으론 늘 저자세여야 한다. 세금을 녹으로 먹고 사는 죄인 아닌 죄인인 탓이다.

    백과사전은 공무원을 ‘국가 또는 지방 공공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종류에는 크게 중앙부처의 국가공무원과 기초·광역자치단체의 지방공무원이 있고, 직렬은 행정·기술·기능직으로 나뉘며, 직급은 1급부터 9급까지다. 업무는 ‘단순반복’, 인사는 연공서열 위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가 공무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정보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부정적인 연관어의 출처가 대충 짐작된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속으로 이렇게 항변한다.

    “그건 일부의 단점을 극대화한 편견일 뿐이죠. 정부가 실책하고 경제가 어려운 게 우리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3월10일 이른 새벽, 이명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관료들을 모아놓고 ‘공무원 머슴론’을 설파하며 공직 사회의 대대적 변화를 촉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창의시정은 ‘머슴론’과 같은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다음은 이 대통령의 발언 일부.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서번트(servant, 머슴)이죠. 말은 머슴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국민에게 머슴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간부들은 국제 여건이 어렵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면 잠을 못 잡니다. 국민들이 일자리가 없고 서민들이 힘들어할 때 공직자들이 과연 그런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까. 국민들이 힘들어도 여러분에게는 봉급이 나가죠. 재정에 위기가 오고 경제성장은 떨어지고 일자리가 준다고 한들 여러분이 감원되겠습니까,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있냐고요. 출퇴근만 하면 됩니다. 신분이 보장돼 있으니 위기나 위기가 아닐 때나 같은 자세이죠….”

    공무원 사회에 불어닥친 ‘경쟁과 효율’ 바람 탓일까.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공무원들이 최근 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무원 사회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민선 4기 지자체 이후 ‘무능 공무원 퇴출’ ‘성과 기준 신인사제도’는 그 문구의 자극성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변화 요구에 대한 공무원들의 태도는 크게 상반된다. ‘장기적으로 공무원의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과 ‘공조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테러이며,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곧 수그러들 것’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지금 공무원을 괴롭게 하는 이 시간이 훗날 발전을 위한 ‘성장통’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잃어버린 시간’으로 공중분해될지 누구도 단정하진 못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 같지만 정작 아는 건 별로 없는 공무원의 세계, 그중에서도 하급직 공무원의 ‘큰형님’으로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라 할 6급 공무원들은 급변과 효율의 시대에 공무원 노릇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전으로 살아가기

    ‘1980년대 9급으로 입사. 공무원 경력 25년. 시·군·구청에서 계장 혹은 주사로 통함.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10여 년 후 정년. 연봉 5000만~5500만원. 자녀는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음. ‘별’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 중.’

    9급으로 입사한 6급 공무원의 평균 프로필이다. 먼저 구청 6급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말단 큰형님’ 6급 공무원이 사는 법

    이명박 대통령은 3월10일 ‘공무원 머슴론’을 들어 공직 사회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6급까지는 아전(衙前), 5급 사무관을 달아야 벼슬아치.’ ‘관’자가 들어가야 비로소 고위 공무원이라는 뜻이지요. 7급까지는 순조롭게, 6급까지는 그럭저럭 승진이 가능하지만 5급 승진은 억세게 운 좋은 몇몇의 몫입니다. 비(非)고시 9급 출신은 보통 6급으로 퇴직합니다. 30년 일하고 주사로 퇴직하는 것이지요.”(서울 자치구 6급 공무원)

    “기초자치단체에서 6급은 계장급입니다. 최소한의 관리 자격을 갖지요. 7급 주임일 때보다 민원인에 대한 파워가 훨씬 커집니다. 예컨대 허가권 하나도 직접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게 됩니다. 6급 관련 뇌물수수가 많은 것도 이런 권한을 악용하기 때문이고요.”(지방 군청 출신 행정안전부 6급 공무원)

    “6급은 한마디로 ‘낀 세대’입니다. 직원 5, 6명을 거느리지만 마땅한 지위가 주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확실한 관리자 노릇을 하는 5급 사무관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습니다. 반면 6급은 형식상 결재자이지만 실제론 협조자에 가깝습니다. 권한은 사무관인 과장에게 있고 사인만 대신할 뿐이거든요. 7급 직원들과도 권한에 있어 병렬구조에 가깝습니다. 고참 선임 격이지요. 조직이 피라미드형이면 좋을 텐데 6, 7급이 많아 비대한 항아리형이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습니다.”(부산 자치구 6급 공무원)

    “예전엔 자치구 6급은 신문 읽다 사인하는 ‘땡 보직’이었습니다. 요즘은 밖에서 효율, 효율 노래를 부르니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되죠. 팀 전체의 업무 흐름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우리 일이지만, 넘쳐나는 일에 주임들이 허덕이는 게 눈에 보이는데 빈손으로 있을 수야 없지요. 팀원들이 3개씩 맡으면 팀장이 2개 정도 하는 게 트렌드입니다. 현업 부서 팀장은 일일이 직원을 쫓아다닐 수 없어 이야기가 다르지만요.”(부산 자치구 6급 공무원)

    6급 공무원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공무원의 정체성이 농익는 시기, 최소한의 관리 권한을 갖는 시기, 말단 공무원과 고위 공무원 사이에 낀 애매한 시기, 승진에 목매는 시기, 아래로 위로 치이는 샌드위치 시기’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온몸으로 공무에 임한다. 신참 공무원, 고시 출신 5급 공무원, 올챙이 시절을 잊은 고위 공무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애환이 있다. 이것이 6급 공무원을 공무원 사회의 대표주자로 선발한 까닭이다.

    6급 울리는 ‘신인사 Fast Track’

    모든 직장인은 승진에 울고 웃고 비분강개한다. 공무원은 특히 승진에 민감하다. 사기업은 성과급과 발탁인사 등 급여 외의 보상이 보편화했다. 공조직에는 그런 게 일절 없다. 9급부터 1급까지 직급은 사다리 격인데, 온몸을 던져 일해도 한번에 2, 3계단을 뛰어넘지 못한다. 단순반복 성격의 일 자체에서 흥미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러니 승진이 유일한 성취 동기이자 보상책인 셈이다. 한 공무원은 승진을 “나를 한 단계 넘어서고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탈출구”라고 표현한다.

    6급까지는 별 탈 없이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나가면 된다. 본게임은 5급부터다.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사무관 승진’을 둘러싸고 오늘도 공조직은 요지경 속이다.

    경기도 A시청 6급 공무원 성재복(가명)씨. 고등학교 졸업 후 9급으로 입사해 올해로 공무원생활 30년째다. 지방 시청을 비롯해 그간 자리를 3번 옮겼다. 그의 최대 고민 역시 승진. 1994년부터 14년째 6급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승진 1순위에 올랐지만 번번이 다른 이에게 밀렸다. 공무원 인사는 교육 20%, 경력 30%, 근무평정 50%를 반영해 이뤄진다(올해부터는 내용이 바뀐다). 교육과 경력 점수로 치자면 진작 승진했어야 한다. 언제나 걸림돌은 평정이었다.

    “인사대상에 오른 이들은 순위가 공개됩니다. 승진이 가까워오면 순위 관리에 들어가지요. 경력은 일정 햇수가 지나면 만점으로 채워져 변별력이 없습니다. 교육, 즉 시험성적은 들쭉날쭉하지만 차이가 크진 않고요. 게다가 금년부터는 아예 시험이 이수제로 바뀌었습니다. 중요한 건 평정인데 상급자가 점수를 매깁니다. 아무래도 주관적이기 쉽지요. 그래서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1순위 평가항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한 구청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7년 7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승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처세술(50.8%)과 학연 및 지연(18.1%)이 1, 2위를 차지했다.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승진에서 실력은 중요 척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차라리 주무팀장을 맡아 술자리 하나라도 더 쫓아다니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기업에도 연줄이 중요하게 작용하나 공조직의 잣대가 훨씬 더 주관적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5년차 서울시 7급 공무원의 말이다.

    “공무원 일은 기본적으로 법규에 따라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행정 서비스예요. 전체 업무의 80%는 규격화됐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사기업처럼 ‘성과’를 위주로 평가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충성에 올인’ vs ‘월급만 타자’

    ‘말단 큰형님’ 6급 공무원이 사는 법

    2007년부터 서울시·울산시 등 여러 지방부처들은 불량 공무원을 퇴출하는 ‘현장시정 추진단’ 등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단행한 지난 2월의 발탁인사가 공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5급 인사의 기준은 능력과 성과였다. 굵직한 사업에 25% 이상 기여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팀장, 과장이 평가해 43명이 승진했다. 이 가운데 24명이 6급이 된 지 10년이 안 된 직원이었다. 6년 5개월 만에 사무관을 단 직원도 나왔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려면 평균 12년(2007년 서울시 기준)이 걸린다. 오세훈 시장이 주장한 능력 위주의 ‘신인사 Fast Track’이 처음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 인사를 두고 서울시 인력개발과 마채숙 팀장은 “인사에 불만이 없을 순 없다. 이번 인사에선 평소 열심히 하는 분들이 승진했다고 생각한다. 서열을 모두 파괴한 게 아니라 20%는 고령자를 고려하는 식으로 적절히 안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공무원들의 의견은 다르다. 7급으로 입사해 지난해 6급으로 승진한 9년차 공무원의 말이다.

    “시청은 작은 정부입니다. 건축, 노인, 복지, 세무 등 과에 따라 업무 성격이 천차만별이지요. 성과를 인사 기준으로 삼는다면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민원 처리에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가 있을 리 없잖아요. 이번 승진 대상자 중 상당수가 실·국장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활동을 하는 7급 공무원은 “공조직에 맞지 않은 인사제도는 전시행정일 뿐이다. 높은 연령의 6급 공무원 가운데 피로감에 지쳐 자치구로 가거나 연수를 희망하는 문의가 빗발친다”고 귀띔했다.

    부산 B구청 6급 공무원 정현우(가명)씨. 29년차인 정씨는 5급 승진 때마다 가슴앓이를 했다. 과장 또는 실국장이 바뀔 때마다 ‘학맥’ 라인의 팀장 혹은 주무팀장들이 덩달아 옮겨왔던 것. 정씨의 얘기다.

    “근무평정의 각 단계(수우미양가)는 다시 10단계로 나뉩니다. 10점 만점에 최소 평가 단위가 0.02점인 셈이지요. 아등바등 점수를 관리해도 한번 ‘우’를 받으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런데 평가자가 원하는 사람을 승진시키기 위해 다른 직원의 평정을 깎는 경우가 있습니다. 승진 자리는 제한돼 있으니 순위권의 직원들을 뒤로 밀어내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그런 일을 겪었고요.”

    5급으로 승진하려면 6급이 된 지 적어도 5년이 지나야 한다. 여기에 근무연수가 많을수록 경력점수가 올라간다. 그리고 1년에 두 차례씩 하는 최근 2년간 근무평정이 반영된다. 이 점수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 내리 ‘수’를 받아야 승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0.1점으로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다.

    이런 시스템은 승진을 목전에 둔 공무원만 평가관리에 ‘올인’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승진 대상자는 독서실에서 시험과목과 인사 가점을 주는 영어, 컴퓨터 자격증 ‘벼락치기’에 몰두했다. 반면 최소근무 연한을 채우지 못하거나 근무평정이 처지는 공무원은 아예 승진을 포기했다. 깐깐한데다 비합리적인 인사고과를 관리하느니 적당히 일하고 월급만 받아가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전체 공무원의 5%만 열심히 일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시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올해 인사·평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경력 30%, 교육 20%, 평정 50%에서 경력 70%, 평정 30%로 배점을 달리한 것. 교육은 아예 이수제가 됐다. 행정학과 행정법 등에 대한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 수시로 근무평정을 하고 이것을 모아 승진·퇴출에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내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 서울시 6급 공무원의 얘기다.

    “이번 평가 시스템 개혁은 개악(改惡)입니다. 교육(시험)은 숫자로 나타나는, 그나마 객관적인 잣대입니다. 그게 없어지면 평정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과장, 국장 등 상급자에게 더욱 더 충성해야 하는 시스템이지요.”

    업무를 등한시하는 분위기는 바로잡을지 몰라도, 자칫 실적을 과대포장하거나 상사에게 잘 보이는 데 집중하는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영어꽝’이 토익 770점?

    6급들이 기를 쓰고 5급 사무관을 달려고 하는 데는 물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서울시 5급 공무원 이모씨는 2007년 말 토익 성적표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위·변조한 사실이 들통 나 파면됐다. ‘듣기’ 점수를 105점에서 405점으로, ‘읽기’ 점수는 65점에서 365점으로 바꾸고 총첨 170점을 770점으로 고쳤다. 5급 사무관 승진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승진심사위원회 대상자 명단과 승진 후보자 명부를 받는 대가로 인사담당자에게 100만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사무관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정년 퇴직해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무원 정년은 6급 이하는 57세, 5급 이상은 60세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5급 퇴직과 6급 퇴직 후 받는 연금 등을 계산하면 2억4000만원가량 차이가 난다.

    공무원의 정년연장은 해묵은 핫이슈다. 경기도 구리시 7급 공무원은 “공무원들도 정년을 통일하자는 데 모두 찬성하지 않는다. 6급 이상은 찬성하는 이가 많고 7급 이하는 반대하는 이가 많다. 정년을 코앞에 둔 이들은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겠지만 7급 이하는 인사가 적체돼 승진이 더뎌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시 6급 공무원은 스트레스에 ‘혹’이 하나 더 붙었다. 10년차 서울시 6급 공무원 강동수(가명)씨. 강씨는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시작된 ‘창의시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창의시정이란 ‘아이디어 공무원’을 우대하는 제도. 업무와 시정 전반 관련 아이디어를 내도록 한 뒤 점수를 매겨 평가에 반영한다. ‘말 잘 듣는 공무원’에서 ‘개성 있는 공무원’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서울시는 자치구보다 직급이 한 단계 낮다. 자치구 등 기초자치단체에서 6급은 팀장이지만 시는 5급 사무관이 팀장 직위를 갖는다. 6급은 일반 팀원이다. 그러나 실무는 6, 7급이 도맡는다. 시에서 6급은 행정의 중심이다. 대개 기획안의 첫 구상은 6급 공무원의 머릿속에서 출발한다. 업무도 6급이 제일 많다고 한다.

    취지는 좋았다. 현장에서 출발한 고민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강씨를 비롯한 시 공무원들은 ‘창의 피로증’을 호소했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발적 참여 형태라고 했지만, 사실상 실국별로 할당하는 강요가 됐습니다. 다른 실국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우리만 성과가 없으면 실국장의 심기가 불편해지니까요. 억지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현실성이 없는 것들도 나오게 됩니다. 면밀한 검토 없이 채택된 아이디어들을 실제 진행하는 일도 많고요. 기본 민원 업무에 창의시정 아이디어 업무까지 하다 보면 업무에 부하가 걸립니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아이디어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예컨대 한강 관련 아이디어들은 법제에 걸려 시행되지 못했고, 1등상을 받은 남산 인공달 띄우기는 생태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혔지요.”

    강씨에 따르면 직원들은 성과로 연결되는 창의 아이디어가 극히 드물다는 걸 알면서도 ‘성과 포인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0.1점이 아쉬운 승진 대상자들은 인사철을 위해 아이디어를 비축한다. 성과 포인트를 받으면 승진 순위 100번에서 곧장 10번으로 진입도 가능하다.

    선거 따라 춤추는 공직사회

    자치구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세훈 시장이 “(인사혁신이) 서울시 본청에서 시작됐지만 자치구, 투자·출연기관도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듯 시가 지향하는 방향은 자치구로 전파된다. 여러 자치구에서 ‘창의시정’을 도입했으며, 서초구와 양천구는 성과 위주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서울 C구청 7급 공무원 차동원(가명)씨. 그는 “민선 이후 자치구의 ‘지맥’이 더욱 강화됐다”고 말했다. 각 자치구는 구청장에 따라 지역색이 나뉜다. 임의로 예를 들면 ‘송파 안동’ ‘관악 호남’ 식이다.

    “줄대기에는 ‘학연’ ‘지연’을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민선 이후엔 선거 때 열심히 뛰어서 인맥 만드는 이가 부쩍 늘었습니다. 6급까지는 구청장이 승진을 관리하니까 팀장 부인들이 선거를 많이 돕습니다. 예전에는 친형이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한 모 팀장이 바로 요직인 총무과장으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퇴직하는 D구청 7급 공무원은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인사 기준, 관심 분야가 덩달아 춤을 춰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다.

    “과거엔 직속상사를 잘 보좌하며 인맥 쌓기에 힘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선 이후 구청장 한마디에 전체 사업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구청장이 격려 차원에서 한마디 던지면 팀장, 과장들이 알아서 설치는 것이지요. 실무 현장과 괴리가 있더라도 구청장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릅니다. 인사가 구청장 손에 달려 있으니 아랫사람들은 ‘아니오’라는 이야기를 못 하지요.”

    D구청 다른 7급 공무원은 “민선의 단점은 단체장이 단기간 내 성과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기관장의 욕심일 뿐이다. 사기업은 오너의 의지에 따라 경영이 가능하지만 공조직은 그렇지 않다. 직원들은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고 했다.

    새 정부가 ‘아침형’이라는 소식을 듣곤 공무원들은 아침잠 걱정부터 했다고 한다. 발 빠른 조직들은 일찌감치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 이들은 ‘머슴론’ 발언 이후 중앙정부는 물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가릴 것 없이 같은 바람이 불 것이라 내다봤다. 기자가 “지방부처까지 그럴 필요 있느냐”고 묻자 그는 “직속상사가 일찍 나오는데 늑장 부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앙부처 지방부처 모두 마찬가지일 터. 단체장이 4년간 한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10년이 넘은 민선자치제에 대한 현장 공무원들의 불만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금창호 박사는 “관선과 민선은 각각 공직의 안정성과 민주성을 대표한다”라며 “민선의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효익을 살리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단절감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버킹검’

    취직이 어려워지고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공무원은 최고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요즘 공무원 시험은 ‘고시’에 가깝다. 몇 달이고 고시학원이 밀집한 노량진과 집을 오가며 학업에 몰두해도 붙을까 말까다. 경쟁률은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운다. 옛날 9급, 7급 공무원 시험과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자연히 인재가 늘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대학 출신 7급, 9급 공무원이 적지 않다. 쉰에 가까운 9급 출신 6급 공무원들, 과연 그들은 이런 ‘끼’ 많은 신세대 팀원들과 불화가 없을까. 24년 경력 서울시 자치구 팀장의 말이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개성 있는 사람도 몰개성화됩니다. 가끔 신입 7급 직원들 가운데 이를 답답히 여기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금세 적응합니다.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잘하는 편이고요. 또 공무원 일이라는 게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어 나이 많은 팀장들을 잘 따릅니다.”

    부산시 자치구의 한 팀장은 새내기 공무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우수 인력이 공조직에 몰리면 국민은 이를 ‘인력 낭비’라며 공격하고, 우수 인재들은 공무원이 된 뒤 오히려 더 위축된다는 것.

    실제 ‘안정성’에 끌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는 신입 직원도 많다고 한다. 서울시 4년차 7급 공무원 2명은 “평생 다닐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들어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업무량도 많고, 신인사며 공조직 개혁에 사기도 저하되는 등 가끔 회의를 느낀다. 이런 이유로 시청을 떠나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책임전가’ ‘처리방치’ ‘적당주의’ ‘선례답습’. 우리네 행정풍토는 이렇게 읽힌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우리도 융통성 없는 조직구조가 답답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한 시청 6급 공무원이 말하는 그들만의 스트레스는 이런 것이다.

    “공무원의 업무는 법규대로 일을 처리하는 거예요. 법에 구속돼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지요. 그런데 민원인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져요. 방법을 바꾸면 일처리가 훨씬 유연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일은 법대로 해야 하죠. 콱콱 막힌 벽. 바로 거기서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 스트레스가 분출되지 못하면 패배의식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아요. 1급부터 9급까지 나뉜 복잡한 조직 구조에서 아래위로 눈치 봐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공무원 사회에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이 있다. ‘결과는 늘 똑같다’는 의미로, 사건이 터지면 공무원 몇몇을 잘라버리고 덮으면 된다는 자조의 목소리다. ‘낀 세대’인 6급은 부하직원 혹은 직속 상사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재자가 아닌 협조자의 위치이기에 직접 책임은 지지 않는다. 결과는 인사로 나타난다.

    정치인 시다바리?

    이명박 대통령의 ‘공무원 머슴론’에 대해 공무원 노조는 “상명하복의 절대적 계급체계, 승진과 보직의 권력을 두루 갖춘 고위직의 권위 앞에서 하위직의 창의적인 생각은 한낱 권력의 틀을 깨는 부담으로 작용될 뿐”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공직사회에 층층이 쌓인 계급의 병폐를 개선하려 하지 않은 채 공무원 개개인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라 꼬집기도 했다.

    다음날,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홈페이지에는 여러 의견이 올라왔다.

    ‘허가, 신고 업무를 하는데 목에 깁스 안 한 공무원 어딨어.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의 현실이야. 돈 주고 술 사주고 접대하면 되고, 안 하면 법대로 하라고 하고. 공무원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아직도 모르나.’(피바람)

    ‘세금으로 녹봉 받을 때, 그 돈 내려고 피 같은 돈 빨리는 시민도 있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시민 많은 거 아시죠…그런 사람들 마음을 헤아리는 노조가 되면 좋겠네요. 세금 걷은 거 남으면 내년 예산 줄어들까봐 억지로 다 쓰려고 하지 말고요.’(아이디 시민)

    홈페이지에 빗발치는 시민들의 비난에 한 공무원은 이런 글을 남겼다.

    ‘잘되면 정치인들이 잘해서 그런 것이고 잘못되면 모두 공무원 잘못인가?…결론적으로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단지 정치인들의 시다바리다.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정책적 실패를 떠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교육정책, 부동산 정책으로 공무원들도 머리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감정 섞인 글도 많았지만 대다수 글의 핵심은 ‘내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이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데 왜 제대로 봉사하지 않느냐’는 메시지였다. 취재차 만난 한 공무원이 한 말이 떠오른다. 공무원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그였다.

    “업무 시간에는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입니다. 신인사제도와 성과 위주 평가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변화의 바람을 긍정하는 공무원도 있습니다. 다만 공조직의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짝하던 공무원 조직 개혁이 흐지부지된 선례를 교과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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