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돈이 오갈 뿐 부부나 연인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성매매특별법 위헌소송 제기한 성매매여성 김정미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5-03-20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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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통죄 위헌판결 다음은 우리 차례”
    • “인격 침해하는 단속에 수치심 느껴 소송 제기”
    • 전국 집창촌 여성 돌아가며 헌재 앞 1인시위
    • “우리도 성적 자기결정권 누릴 권리 있다”
    “돈이 오갈 뿐 부부나 연인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2월 26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1953년 제정된 형법 간통죄 조항이 62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주요 근거가 눈길을 끈다.

    헌재는 “헌법 제10조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전제로 한다”며 “간통죄 조항은 개인의 성생활이라는 내밀한 사적 생활영역에서의 행위를 제한하므로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자기운명결정권’이고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이므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착취·강요 없는 성인間 성행위

    성적 자기결정권은 2008년 혼인빙자간음죄 폐지에도 주요 근거가 됐다. 당시 헌재는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스스로 결정한 뒤 상대 남성을 처벌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다. 여성이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는 열등한 존재라는 규범적 표현”이라며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에 따라 성매매특별법(이하 성특법) 위헌 여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성특법은 2004년 9월 23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칭한다. 성특법은 성을 구매한 남성과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성매매여성은 비자발적인 경우 피해자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지만, 자발적인 경우는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미 헌재엔 성특법에 대한 위헌소송이 제기돼 있다. 2013년 3월 서울북부지방법원 오원찬 판사는 성매매혐의로 기소된 김정미(44) 씨 재판과 관련해 “착취나 강요가 없는 한 성인 사이의 성행위는 개인 자유 결정에 맡겨야 하고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또한 첩이나 외국 현지처를 두는 것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성매매여성만 처벌하는 것은 평등권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간통죄 위헌판결 직후 “이른 시일 내에 성특법에 대한 위헌법률 여부를 심리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특법 위헌 심판의 계기가 된 성매매여성 김정미 씨를 만난 이유다. 김씨를 강현준 한터전국연합회 대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한터는 ‘미아리텍사스’ ‘청량리 588’ 등 전국 10개 집창촌에서 일하는 업주와 성매매여성들의 권익단체다. 김씨는 한터 소속으로 현재 청량리588에서 성매매 일을 하고 있다. 한터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사진 촬영에도 당당하게 응했다. 성매매가 부끄러울 게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자발적 성노동자 전체의 문제

    ▼ 성특법 위헌 소송을 청구하게 된 계기는.

    “보통 단속을 나오면, 성매매여성이 손님을 데리고 방에 들어간 뒤 단속반이 밖에서 ‘손님과 함께 나오세요, 파출소로 오세요’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작정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알몸 상태였다. 옷을 입어야 하는데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3~4명이 지켜보면서 나오라는 것이다. 수치심을 느껴 경찰에게 ‘인권침해 아니냐’고 따졌더니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한터 강 대표에게 이야기를 했고, 강 대표가 정식 재판을 해보자고 권했다.”

    ▼ 단속된 건 그때가 처음인가.

    “종종 단속을 한다. 그런데 처벌 기준이 우습다. 자발적 성매매여성은 처벌하고 비자발적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데, 경찰이 무조건 비자발적 성매매여성으로 몰아간다. 예를 들어 단속으로 잡혀오면 선급금(업주가 미리 제공한 돈)이 있는지부터 묻는다. 있다고 하면 ‘몸이 아파 일하기 싫어도 선불금 갚으려면 억지로라도 영업을 해야 하는 거잖아’ 하면서 업주를 잡아들인다. 자동적으로 그 여성은 비자발적 성매매여성이 된다. 요즘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성매매여성은 처벌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법적 처리 안 한다. 하지만 나처럼 경찰에게 대들면 괘씸죄로 벌금을 물린다.”

    ▼ 재판을 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솔직히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데 어떻게 재판정을 왔다갔다 하고, 변호사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할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잘못한 건지 법에 묻고 싶었다. 강 대표도 ‘이건 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적 성노동자 전체의 문제’라며 변호사 비용을 후원해 주겠다고 했다. 동료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실행에 옮긴 것이다.”

    2013년 1월 재판이 시작되자 김씨와 변호사는 담당 판사에게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는지 판단해달라고 요구했다. 해외 사례는 물론 여성인권, 행복추구권과 관련한 유엔 자료까지 번역해가며 판사를 설득했다. 논리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판사는 헌재에 위헌법률 여부 심판을 청구했다.

    “하려면 확실히 해라”

    “돈이 오갈 뿐 부부나 연인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헌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김정미 씨.

    ▼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

    “사실 성특법이 합헌이 되든 위헌이 되든 성매매여성은 상관없다.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동안에도 영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려면 확실히 해라, 중간에 그만두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 후회는 없나.

    “그랬으면 이 자리에 나왔겠나. 지금도 그때의 수치심을 잊을 수 없다. 더 이상 나나 동료들이 그런 인권침해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헌법재판소 앞에서 매일 1인시위를 한다던데.

    “소송 내고 일주일 동안 1인시위를 했다. 그런데 뺑소니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인대가 늘어나고 일주일 동안 입원해야 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지금도 한 시간 이상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 서 있을 수가 없다. 고맙게도 전국 집창촌 성매매여성 대표들이 동참의 의미로 하루씩 돌아가며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나도 한 달에 한두 번씩 하고 있다.”

    “그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면 성매매 일은 못하겠다”고 하자 “하고 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라며 웃었다.

    ▼ 1인시위 할 때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쳐다보기는 하는데 별 반응은 없다. 와서 격려해주는 경우는 없고, 이상한 사람들이 가끔 온다. 괜히 시비를 걸고 횡설수설한다.”

    ▼ 위헌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얼마 전에 변호사로부터 첫 심리가 4월 9일에 열린다는 말을 들었다. 2년 만에 열리는 셈이다. 일단 시작되면 길게 끌지는 않을 것이다. 헌재가 간통죄 위헌판결 후에 곧바로 우리 것을 다루겠다고 언론에도 표명했으니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지 않을까. 변호사 말로는 서너 번 정도 심리를 진행한 후 판결이 날 것이라고 한다. 6~7월로 예상한다.”

    ▼ 재판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내가 재판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헌재에 위헌법률 심판 청구를 한 건 내 사건 담당 판사인 오원찬 판사다. 우리 쪽 참고인으로는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교수가 참여한다.”

    “기본적인 성생활 아닌가”

    ▼ 성매매를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는 베트남전 상이군인이었다. 일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1남3녀 중 막내인데, 다른 형제들은 다 일찍 출가하고 나 혼자 부모님과 살았다. 고2 때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충격에 우울증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이듬해엔 아버지마저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그 후 혼자 생활해야 했다.”

    ▼ 형제가 있다면서….

    “도움을 줄 형편이 안 됐다. 나도 자립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큰언니가 있는 미용실에서 일했다. 그런데 가족이랑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 의견충돌로 다투게 되고, 그래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 인력사무소에 나가봤지만 그런 데서 소개받는 일은 대개 파출부나 식당일이었다. 몸이 약해 무거운 걸 들 수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다.”

    김씨에게 “기술 배울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어이없다는 듯한 눈길로 쳐다봤다.

    “당장 하루 먹고살기도 급한데 어떻게 기술을 배우나. 기술 배우는 동안은 뭘로 먹고사나.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다리와 팔을 크게 다쳤다. 그때 다친 곳을 이번에 또 다쳐 더 힘들다. 교통사고 후 일을 하기가 더 힘들었다. 하루 일을 나가면 2~3일은 쉬어야 했다. 당시 하루 일당으로 4만 원쯤 받았는데, 여관비 내고 나면 밥값, 병원비도 부족했다. 그나마도 몸이 아파 오래 서 있기 힘들다보니 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24세 때 성매매 알선업자를 찾아갔다. 일을 하겠다고.”

    ▼ 아무리 힘들어도 성매매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더 잃을 것도, 더 내려갈 곳도 없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그냥 지금 이렇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겠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했다.”

    ▼ 수치스럽게 생각하진 않았나.

    “일단 손님과 방으로 들어가면 그런 건 안 느껴진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망설이기도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이 일을 그만두고 나간다고 해서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참고 일하다보니까 이 나이까지 왔다(웃음).”

    ▼ 성매매 반대론자들은 성을 사고파는 게 ‘인권유린’이라고 한다.

    “돈이 오고가는 게 다를 뿐이지 기본적인 성생활 아닌가. 부부나 연인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 ‘성을 파는 건 자기 인격을 파는 것과 같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도 일하면서 기분이 좋고 즐겁지는 않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 그걸 감수하고 하는 거다. 솔직히 손님이 남자로 안 보이고 돈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하는 것이다.”

    ▼ 성매매가 건전한 성풍속을 해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간통도 가정의 보호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위헌판결을 받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내겐 여기가 직장인데…”

    “돈이 오갈 뿐 부부나 연인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2011년 성매매특별법 폐지 요구 시위를 벌이는 집창촌 성매매여성들.

    ▼ 성매매 일을 하면서 성특법 시행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느꼈다면.

    “처음 시작했을 땐 빚도 없고 조건도 좋아서 수입이 많았다. 차도 있었다. 그런데 수입이 늘어난 만큼 지출도 늘더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이 빨리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늘 ‘어서 돈 모아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자립이란 게 방 한 칸 마련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장사할 가게를 마련할 돈은 있어야 하고 운영비용도 웬만큼 필요하다. 그런 목표를 갖고 돈을 모아가는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거다. 수입이 3분의 1로 확 줄었다. 내 꿈도 멀어져갔다.”

    ▼ 정부에서는 성매매 안 하고도 살 수 있도록 직업교육도 시켜주고 자립도 도와준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 듣기는 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해준다는 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아프면 치료받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 기술도 주로 미용 같은 건데, 실질적인 자립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봐도 나 같은 사람은 살길이 보이지 않았다. 빚을 많이 진 아가씨들은 그 기회에 빚을 청산하고 빠져나갔지만 난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치 않은 몸으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 있어도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되니까.”

    ▼ 요즘은 수입이 어떻게 되나.

    “한창때는 월 500만~600만 원씩 손에 쥐었다. 지금은 하루 한두 번 손님 받기도 힘들다. 요금이 5만 원인데 그걸 업주와 반반씩 나눈다. 대신 일을 하든 못하든 먹고 자는 것은 공짜다. 한 달에 많아야 200만 원 벌이다. 그래도 이 몸으로 다른 데서 이만큼 벌기 힘들다. 지금 남아 있는 성매매여성은 대부분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다. 생계가 절박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할 수 있을 때까지 벌어보고 뭐라도 해야지. 난 여기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들 다 그렇지 않나.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거고, 나이 들어 직장에서 쫓겨나면 뭘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나도 먹고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거고, 나이 들어 할 일을 고민하는 거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 위헌 심판 청구를 통해 바라는 게 정확히 뭔가.

    “성매매가 합법화해 이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성매매여성의 성매매가 합법화하면 생계가 절실한 여성뿐만 아니라 유흥비 마련, 사치품 구입 등을 목적으로 성매매를 하려는 여성도 늘어나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것도 그 여성들이 선택한 결정이다. 그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나 국가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성매매여성은 물론 성을 구매한 남성, 심지어 업주(포주)와 알선업자까지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매매란 게 우리나라만 해도 수백 년 동안 있었던 건데 하루아침에 없애면 남자들 성욕구를 어디에 풀겠나. 차라리 양성화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음성적인 게 더 위험하지 않나. 아동 성폭행, 강간이 늘어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성특법 때문에 늘어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의 생각과 달리 이번에 헌재에서 다루는 것은 성매매여성의 비(非)범죄화뿐이다. 오원찬 판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인권, 직업 선택의 자유, 생존권’ 문제만을 제기했다. 그는 “남성을 처벌하는 것까지 위헌이 의심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인터뷰를 연결해준 강현준 한터 대표가 “성매매여성에 대한 위헌판결이 나면 그다음엔 남성들이 평등권을 내세워 남성의 성구매도 합법화를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내 목표다”고 말을 보탰다. 강 대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 성매매여성만 비범죄화해도 성을 구매한 남성은 여전히 범죄자이기 때문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콘돔 착용을 거부하는 등 성매매여성들의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내가 더 걱정하는 건 음성적 성매매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데 여성들의 성매매가 풀리면 남자들은 단속 위험이 큰 집창촌보다는 음성적인 곳만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성 혼자 음성적으로 일하다보면 여러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힘 있는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누구겠는가. 조직폭력배들이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셈이다. 지금도 집창촌에 조폭들이 들어와 고리대금업을 하는 등 문제가 늘고 있다. 그런 부작용은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합의의 레드존’

    ▼ 대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구매자와 알선업자에 대한 처벌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하는 것일 텐데, 그건 어리석은 대처다. 우리나라 성특법은 스웨덴을 모델로 만들었다. 성매매여성은 비범죄화한 대신 성구매남성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다. 사실상 성매매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성매매여성에 대해서는 탈(脫)성매매할 때까지 꾸준히 관리하고 끝까지 책임을 진다. 우리나라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경제소득이 높으니까 가능하다. 그렇게 하는 데도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풍선효과처럼 스웨덴도 지방도시에서 성매매산업이 번성한다고 들었다.”

    ▼ 그렇다고 성매매산업이 번창하도록 놔둘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레드존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만도 2년 전 성매매를 완전 합법화했다. 아무리 단속해도 음성적인 성매매가 기승을 부려 결국 정부가 손을 든 것이다. 대신 태국처럼 레드존을 만들어 성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가서 사고, 성을 매개로 해서 돈을 벌겠다는 여성은 그곳에서 돈을 벌라는 것이다.”

    ▼ 성매매가 합법화하면 그렇게 장소를 제한하는 것에도 위헌 소지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적 합의와 타협이 필요하다. 성매매가 청소년이나 국민이 보기에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울타리를 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 혐오사업에 대해 그 정도 규제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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