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백수 시절!”

4人4色 아빠들의 육아휴직 수다

  • 사회·정리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5-03-23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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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3년 2293명에서 2014년 3421명으로 급증 추세.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4.5%에 불과하다. 여기, 육아휴직을 했거나 육아휴직 중인 ‘용감한’ 아빠들이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아빠 육아휴직 체험수기집 ‘아빠는 육아초보’에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공개한 이들이다. ‘행복한 백수’를 자처한 아빠들이 육아휴직으로 얻은 것, 잃은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아빠들이 전국에 흩어져 사는 데다 다들 ‘애 재워야 짬 나는’ 처지라 대화는 전화통화로 이뤄졌다.
    김인수(40) 외벌이 다섯 식구의 가장. 대기업 사무직. 뜻밖의 늦둥이 임신을 계기로 결혼 후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온 아내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육아휴직 결심.

    정찬용(40) 맞벌이 주말가족의 가장. 공기업 근무. 10세 딸과 8세 아들 있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자 육아휴직. 현재 복직한 지 1년 넘었음.

    이동림(36) 부산 건축설계사무소에 근무하는, 딸(5)·아들(3) 아빠. 첫째 육아휴직 후 복직했다가 현재 둘째 육아휴직 중. 4월 복직 예정.

    김경원(33) 아들 둘(4세, 2세) 둔 맞벌이 가정의 가장. 대기업 사무직으로 첫째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태어난 둘째를 돌보기 위해 2년 연속 육아휴직 중. 4월 말 복직 예정.

    사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를 낯설어합니다. 그럼에도 육아휴직을 결심한 배경은.



    김인수 2012년 여름 아내가 당시 10세, 8세 아들 둘을 키우며 살림하는 것을 힘들어했어요. 저는 저대로 직장생활이 만만치 않으니 ‘나도 힘든데 당신까지 이러면 어떻게 하냐’고 다그치고요. 또 큰애가 학교 부적응 징후를 보였어요. “학교 가기 싫으면 집을 나가라”고 혼을 냈더니 진짜 집을 나가더라고요. 여러모로 뭔가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아내가 셋째를 임신한 거죠! 그래서 육아휴직을 하고 가족 돌보기에 전념하기로 결심했어요.

    김경원 글로벌 경기침체로 회사가 비상경영을 선포해 매일 야근을 했죠. 첫아이 자는 모습만 보면서 50대 초반에 퇴직하면 내게 남는 게 뭘까, 다 자란 아이에겐 아버지에 대해 어떤 감정이 남아 있을까 걱정됐어요. 잠시 쉬고 싶은 맘도 있었고요. 저는 대학 때도 휴학 한 번 안 해봤거든요.

    이동림 아내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썼어요. 복직을 앞둔 아내에게 ‘내가 볼 게 걱정 말라’고 한마디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아내 전공이 유아교육이에요. 36개월까지는 부모 사랑을 많이 받고 커야 한다는 얘길 들으니까 돈 걱정은 둘째더라고요.

    후배에게 자리 넘기고 집으로!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백수 시절!”

    딸과 함께 산책하는 이동림 씨.

    사회 주변에서 남성 육아휴직 선례를 본 적 있나요.

    정찬용 아내 친구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다고 해서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근데 그분은 공무원이에요.

    이동림 제 아내도 공무원인데, 최근 아내 직장에서 두세 명의 남자가 육아휴직을 했대요.

    김경원 저는 대기업에 다니는데, 6년 근무하면서 한 번도 못 봤어요. 인터넷에서 ‘휴직’을 검색하다가 남자도 육아휴직이 된다는 걸 알았죠(웃음). 육아휴직 의사를 밝히니 인사과에서 “복직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남자가 육아휴직을 가면 거의 안 돌아온대요.

    김인수 저는 지방 소도시에 사는데 육아휴직을 신청하려고 고용보험공단에 가니까 거기 직원이 오히려 “남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네요?” 하더라고요. 제가 저희 지역 1호 남성 육아휴직자였던 거죠.

    사회 육아휴직 의사를 밝혔을 때 회사 반응은 어땠고, 어떻게 설득했나요.

    정찬용 ‘하지 마라’는 얘기까진 안 나왔지만 다들 표정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농담 비슷하게 “다시 같이 근무할 일은 없겠네?” 하는 분도 있고. 그럼에도 감행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맡은 업무가 제 전공과 거리가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결심하기가 좀 더 쉬웠어요.

    이동림 우리 건축설계사무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요. 또 10년 좀 넘게 같이 일해온 사이라서 양해를 구하기가 수월했어요. 첫째 육아휴직 때는 설계를 맡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휴직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현장에서 요청이 오면 일을 해줬어요. 지금은 둘째 육아휴직 중인데, 가끔 일이 있으면 큰애 데리고 사무실에 나가요.

    김경원 아내가 임상심리사인데, 병원에서 수련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이 점을 회사에 잘 말씀드렸고, 제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후배를 미리 물색해놨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백수 시절!”

    둘째를 목욕시키는 김경원 씨.

    사회 복직 후 불이익을 당했거나, 불이익이 예상되나요.

    김인수 육아휴직 전에는 경영지원 분야 파트장이었는데, 복직 후에 전혀 다른 물류 쪽 부서로 발령이 났고, 장(長)이 아닌 팀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후배가 제가 하던 파트장으로 있으니, 후배 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요. 이런 불이익은 각오했고, 별로 개의치 않아요. 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거잖아요.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찬용 인사상 불이익은 아니지만, 회사 인력 사정 때문에 복직하면서 소속 본부가 바뀌었어요. 예전보다는 제 전공과의 업무 유사성이 좀 더 높고 사람 사귀기도 좋은 자리라서 크게 불만 없어요. 물론 1년 쉬다 오니 고과 면에서 약간 손해는 있고요.

    이동림 저야 전문직이고 작은 회사라서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어요. 오히려 1년 쉬었더니 일도 더 재밌고 재충전이 돼 좋더라고요.

    “차라리 일하는 게 편하지…”

    사회 육아휴직 중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김경원 ‘엄마의 삶’이죠, 하하. 아내 출근시킨 다음 첫째는 밥, 둘째는 이유식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또 먹이고…. 첫째만 있을 땐 문화센터 다니고 동물원도 가곤 했는데, 둘째 태어난 이후로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장도 밤에 보러 나가요. 아내가 퇴근해 집에 있을 때.

    이동림 저는 아이를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 편이라 쉽게 생각했다가, 차라리 일하는 게 편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좌충우돌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기저귀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가 기저귀가 가루가 되는 바람에 세탁기를 분해해 청소한 일도 있었어요. 아내가 오면 애 맡기고 밀린 살림을 했어요. 애 보는 것보다 집안일이 차라리 낫거든요. 아내가 야근하거나 회식하면 되게 밉더라고요(웃음).

    김인수 집에선 초짜 신입사원이죠. 첫 3개월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빴어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났고, 막내딸 낳은 아내 산후 조리도 직접 해줬어요. 백일 지난 후부터 아내가 생협 활동에 참여했어요. 아내가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지냈기에 사회생활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거든요. 오후 2시까진 막내딸과 둘이 지냈죠. 매일 똥 묻고 옷 젖고…. 똥 기저귀 갈아줄 때 누가 아기 발이라도 잡아주면 훨씬 수월해지는 게 육아더라고요.

    초등학생 아들들이 집에 오면 학원 안 보내고 제가 공부를 가르쳤어요. 처음엔 스토리텔링식 교과서가 참 어려웠어요(웃음). 추억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막내딸 안고 참관수업에 갔더니 아빠는 저 혼자라 선생님은 의아해하는데 애들이 엄청 신나했어요. 6주간의 아버지학교도 다니면서 ‘무뚝뚝한 아빠’에서 탈피하는 대화법도 배웠고, 애들 데리고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가서 농사일도 도왔고요.

    정찬용 저는 아내가 집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애들도 7세, 5세로 큰 편이라 살림이나 육아 부담이 크진 않았어요. 대신 부업을 좀 했고, 여행 계획을 많이 짰어요. 1년 동안 도쿄, 홍콩, 몰디브, 그리고 20박 21일의 유럽 장기여행을 다녀왔어요. 되도록 저렴하게 여행 다니려고 항공, 호텔, 민박, 열차 등 각종 사이트를 매일 들락거리다시피 했어요. 덕분에 4인 가족이 1년 여행경비로 쓴 게 2000만 원이에요.

    특히 유럽 여행이 기억에 남아요. 첫째는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걸 익혔고, 둘째는 너무 많이 걸어 다닌 경험 덕분인지, 유치원 소풍 때 다른 애들은 힘들어하는데 혼자서 여기저기 쑤시며 잘 돌아다닌대요. 특히 아내가 그릇이 매우 큰 사람이란 걸 ‘재발견’했어요. 애 둘 데리고 다니는 배낭여행이 쉽지 않은데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고 잘 따라줬거든요. 둘째가 얼마 전에 또 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봐선, 애들에게도 좋은 추억이었나 봐요.

    사회 ‘육아 베테랑’으로서 강력 추천하는 육아용품은.

    김경원 아기띠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김인수 저도 아기띠요. 아빠와 아기가 심장을 마주 대고 있는 게, 딸과 저를 엮어주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이동림 젖병소독기요. 처음엔 ‘이런 것까지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써보니 좋더라고요. 젖병뿐만 아니라 아이가 늘 입으로 가져가는 장난감까지 소독하기 편리하니까.

    요리대회 1등

    사회 요리 실력은 어때요.

    김인수 국, 무침, 죽, 샌드위치 다 잘 만들죠. 아버지학교에서 열린 요리경연대회에서 일등 했어요. ‘알을 품은 유부’라고, 닭가슴살을 양념에 버무려서 유부에 넣고, 접시 가운데에 삶은 메추리알을 놓은 뒤 케첩으로 데커레이션을 한 창작 요리였죠.

    김경원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이죠. 마트에 가면 국물 우려내는 멸치 티백을 팔거든요. 그걸로 육수 내고 두부, 호박 넣어 된장찌개 끓인 다음, 찌개랑 밥을 비벼서 계란프라이와 함께 아이 밥을 먹여요.

    이동림 감자볶음, 카레, 닭볶음탕을 자주 해요. 블로그 레시피 보고 따라하면 잘돼요. 이렇게 요리해서 애 재우고 밤늦게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밥 먹는 게 재미예요.

    사회 아빠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김인수 회사 복귀 한 달 앞두고부터는 아내가 육아나 살림을 많이 맡아줬어요. 찬찬히 신문 등을 읽으면서 회사 감각(?)을 살려내는 데 시간을 썼어요.

    김경원 애들 재우고 나면 밤 10시가 좀 넘거든요. 그때부터 새벽 2시까지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이동림 저도 공부할 생각은 했는데, 육아와 살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 잘 안 되더라고요. 육아서 두 권 읽은 게 전부예요(웃음).

    사회 육아휴직 급여는 월 100만 원에 불과합니다. 가계 운영은 어떻게 했나요.

    김경원 허리띠 졸라매고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활용했어요. 가정 양육수당을 받았고, 보건소에 영양플러스사업이란 게 있어요. 아이가 어린 편이면 식료품 등을 지원해주는데, 저희 아이 둘 다 어린 편이라 지원받고 있습니다. 외식을 확 줄였고, 둘 다 아들이라서 둘째는 거의 새로 사주는 게 없어요. 제 옷은 2년 동안 하나 사봤나? 저축을 못한 게 약간 걱정이지만, 거의 수입과 지출을 맞추고 있어요.

    이동림 저는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제가 육아휴직을 쓸 생각을 미리 하고서는 현금을 1000만~2000만 원 모아놨어요. 이런 준비 덕분에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김인수 결혼 10주년 때 해외여행 가려고 모아놓은 적금을 종잣돈 삼아 육아휴직 기간에 생활했어요.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시청, 군청 홈페이지를 뒤져 무료 공연이나 무료 체험행사 등을 찾아내서 놀러 다녔고요. 전국의 무료 캠핑장도 찾아녔어요. 여름에는 편백나무 숲 속에서 3박4일을 지냈죠. 돌도 안 된 막내까지 데리고요.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았지만, 제 평생 가장 여행을 많이 다닌 한 해였어요.

    엄마들과 수다 떨기

    사회 ‘노는’ 아빠를 낯설게 보는 주변 시선도 있었을 텐데요.

    김인수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어서 밖에 나가는 게 꺼려졌어요. 제가 회사 사택에 사는데, 한 상사 분이 “어, 자네 아직 여기 있나? 다른 데 간 줄 알았네” 하시더라고요. 육아휴직 한 줄 모르는 분이 많았고 희한하다는 시선이 반, 안쓰럽다는 시선이 반이었어요. 그래서 마음공부를 했습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뭐든 열심히 했어요. 아기 목욕시키고 잠재우는 걸 제가 도맡았습니다. 육아에 집중하니까 주변 시선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이동림 문화센터 나가면 창피하다고 느낄 겨를도 없어요. 선생님이 체조, 율동 등 이거저거 막 시키거든요(웃음). 엄마들이 ‘저 아빠는 왜 계속 오지?’ 의아해하셔서 육아휴직 중이라고 먼저 얘기하곤 했어요.

    김경원 아기가 있으니까 엄마들과는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거 같아요. 문화센터 수업 끝나면 같이 커피 마시며 수다도 떨곤 했죠. 요즘 매스컴에서 아이 발달에 친구 같은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나오잖아요. 좋겠다고 부러워들 했어요.

    사회 아직까진 우리 사회에서 쉽지 않은 ‘아빠 육아휴직’을 감행했습니다. 잃은 게 있을까요.

    이동림 맘대로 잠도 못 자고, 술도 못 마신 거?

    김경원 저는 2년이나 육아휴직을 했잖아요. 앞으로 후배가 저보다 승진이 빠른 경우가 생길 거예요. 후배 밑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감수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반대로, 얻은 것이라면.

    이동림 첫째는 완전 ‘아빠 바라기’가 됐어요. 저도 첫째를 떼어놓으면 안심이 안 될 지경이에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잠깐의 망설이도 없이, ‘아이와 보낸 1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김경원 봄에 유모차 밀며 공원을 산책하면서, 봄이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몸도 마음도 회복하는 시간이었어요. 엄마들과 우르르 키즈카페 갈 정도가 됐으니, 복직 후 그 어떤 낯선 환경에 처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돈독해진 건 두말할 나위 없고요. 아이들에게 아빠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김인수 첫째가 더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안 해요. 학습 능력도 많이 좋아졌고요. 예전엔 아이들이 아빠에게 말 걸 시간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어요. 회사 복직하기 전날, 아이들이 “아빠, 이제는 돈 벌러 나가셔도 돼요” 하더라고요.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이나 사랑은 돈 주고 살 수 없잖아요. 이담에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너희 아빠, 엄마 키울 때는 이랬단다’ 하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 게 참 좋습니다.

    승인받아야 하는 ‘권리’

    정찬용 경제적인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회사에서 제가 빠진 자리는 메워지기 마련이고요. 일상생활에서 추억을 많이 만든 게 좋았어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공식적인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디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여전히 주말가족으로 지내고 있는데, 집에 가면 아이들이 엄마 말고 아빠랑 자려고 해요. 어디서 들었는데, 아이는 자기 응가를 뒤처리해주는 사람에게 친밀함을 느낀대요. 아이가 아빠가 자기를 위해 어떻게 지냈는지 알 만한 나이에 육아휴직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사회 육아휴직 제도 중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요.

    김경원 근로자의 권리임에도 상사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시스템이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승인 안 해주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는 듯해요. 자동 승인되는 시스템과 분위기가 형성돼야 남성 육아휴직이 늘 것으로 봅니다.

    정찬용 육아휴직 수당이 너무 적은 것도 남성 육아휴직 확대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해요. 북유럽은 본인 소득의 70%까지 보전해줘 세 집 중 두 집은 육아휴직제를 사용한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육아휴직 수당은 회사가 아니라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처지에서도 사업과 인력수급 상황에 따라서 육아휴직이 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김인수 저는 회사가 휴직 사원에 대해 관심이 없어 약간 당황했어요. 복직 시점이 됐는데도 회사에서 연락이 없어 제가 먼저 연락하고 회사에 찾아갔어요. 업무 복귀 면담이나 복직 사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사회 마지막으로 육아휴직을 꿈꾸는 아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라면.

    정찬용 부부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합의하지 않으면 육아휴직 중에 갈등을 겪을 수 있어요. 회사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육아휴직을 냈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중간에 복귀한 경우를 봤습니다.

    김인수 보통은 아내가 경제적인 문제로 남편의 육아휴직에 반대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좀 어렵더라도 육아휴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점을 강조해서 아내를 설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 복직 후에도 설거지, 빨래, 아기 목욕을 전담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살림 도울 생각을 아예 안했는데, 이제는 퇴근 후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김경원 엄마 노릇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기 때문에, 아내와의 사이도 훨씬 좋아지는 거 같아요. 육아휴직을 통해 직장보다 가정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명확해졌어요. 이 둘이 상충할 때는 망설임 없이 가정을 선택할 거예요. 예전보다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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