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타인의 삶인데 왜?” ‘잠깐 公人’ 조동연을 위한 변명

[봉달호 편의점 칼럼]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1-12-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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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서에서 폭행 사건 배후조종자 됐는데…

    • ‘전과자’ 돼버린 구질구질한 내 과거사

    • 他人 사생활 숨은 사연 예단할 수 있나

    • 육사 출신 30대 워킹맘의 화려한 등장

    • 사생활·젠더·가부장·공인 논쟁 뒤엉키다

    • 들판 달린 자동차에는 흙먼지도 끼어

    • ‘직책 수행할’ 도덕적 소양으로 최소화

    • 청문회, ‘완벽한 삶’ 찾는 지루한 여정

    2021년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캠프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인선 발표 자리에서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오른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2021년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캠프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인선 발표 자리에서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오른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편의점을 운영하다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다. 결국 불기소처분으로 끝났고, 처음부터 죄가 없으니 당당하다 생각했지만, 막상 검찰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약간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은가. 무슨 이유로든 일개 서민이 검찰청사 같은 곳에 드나들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겠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조사실에 수사관과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가장 먼저 수사관이 인적 사항을 물었다. 이름, 나이, 주소, 직업, 종교, 정당, 포상 경력……. 그리고 전과를 묻기에 없다고 했다. 수사관이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전과가 없다고요?”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더니 대뜸 “폭행 전과는 뭔가요?”라고 되묻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수사관은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20XX년 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낸 것 맞아요, 틀려요?” 하고 다그쳤다. 그제야 떠올랐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 벌금이 ‘전과’에 해당한다는 사실 또한 그때 새삼 인지했다.

    법원에서 도착한 ‘약식명령’ 문서

    변명(?)하자면 이렇다. 2000년대 초반 나는 북한인권 NGO(비정부기구)에서 7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당시 맡았던 일은 단체 소식지를 편집하는 일, 가끔 중국에 건너가 현지 체류 탈북인을 인터뷰하는 일, 그리고 국내에 있는 탈북인들과 교류하는 일 등이었다.

    한번은 국내 탈북인 송년 모임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됐다. 서른 명 남짓한 참석자 가운데 남한 출신은 나를 포함해 서너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날, 불콰하게 취기가 올랐을 때, 탈북인 한 명이 옆자리 다른 모임의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 상대가 우리 모임이 탈북인들의 모임인 것을 알고 북한 사람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다른 탈북인까지 가세했다. 양쪽 모임 사람들이 뒤엉켜 패싸움으로 번졌다.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 기동대가 출동했을 정도로 큰 소동이었다. 연말연시를 경찰서에서 보냈다.

    보름쯤 지났을까, 법원에서 ‘약식명령’이라는 문서가 도착했다. 폭력행위 등으로 벌금을 내라는 것이다. 황당한 노릇이었다. 차라리 누구를 때리기라도 했으면 조금이라도 덜 억울했을 텐데, 소란 가운데 내가 한 일이라곤 계속 싸움을 말리고 부상자들을 도운 행위밖에 없었다. 웃지 못할 일이지만 당시 싸움을 시작한 탈북인이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상대편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상대를 심각히 잘못 고른 것이다. 그건 싸움도 아니었다. 거의 일방적 폭행에 가까웠고, 이런 일이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지 알고 있는 나는 혹시라도 사태가 커질까 봐 싸움을 말리고 부상자들의 피를 닦아주기 바빴다. 상장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벌금이라니, 억울했다.



    문제는 싸움이 있던 그날 밤, 경찰서에서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싸움판에 끼어 있었으니 나도 함께 경찰서에 끌려가게 됐는데, 경찰서에서도 흥분한 사람들의 소란은 계속됐다. 경찰관이 그중 몇 명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게 ‘뒷수갑’이었다. 수갑을 채우는 방식에 앞수갑과 뒷수갑이 있는데, 아무래도 뒤로 채우는 수갑이 더 괴롭고 신체의 움직임에도 제약을 받는다. 경찰청 지침으로는 도주나 극단적 선택, 2차 폭행 등의 우려가 있을 때만 뒷수갑을 채우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일부 경찰관들이 보복성으로, 혹은 편의상 불필요하게 뒷수갑을 채우는 경우가 있어 늘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다(현재는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경찰의 수갑 사용 일체를 신중히 한다). 큰 목소리로 떠들긴 했지만 경찰서에 이미 호송된 피의자에게 굳이 뒷수갑까지 채울 필요가 있었을까. 탈북인이라고 함부로 다루는 것은 아닌가? 명색이 인권단체 활동가다 보니 이에 거칠게 항의했는데 그것이 미운털이 박혔나 보다. 어쩌다 보니 경찰서에서 나는 탈북인들의 주동자, 혹은 배후조종자처럼 돼 있었다.

    역시 추측일 따름이지만, 우리 쪽 당사자 가운데 남한 출신이 나를 포함해 몇 명밖에 없던 것도 느닷없는 벌금 통지서를 받게 된 이유인 것 같다. 탈북인들은 남한 법규와 관습을 잘 모르니 송사에 얽혔을 때 법원이 대체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우리 쪽에서 기소된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아무래도 내가 가장 적합(?)했을 법싶다.

    정식 재판을 청구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인권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벌금을 일단 납부하지 않고는 출국할 수 없었다. 우리 단체 대표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정식 재판을 받아봤자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도 낮은 것 같고, 변호사 선임 비용도 들고, 곧장 출국도 해야 하니, 그냥 벌금을 내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그러한 결정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그렇게 나는 ‘전과자’가 됐다. 다른 전과도 아니고 폭행이라니,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다. 차라리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특수공무집행방해죄 같은 거라면 운동가로서 속칭 ‘가오’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벌금은 당시 내가 속한 단체에서 내줬다.

    ‘검증’과 ‘신상털이’ 사이의 거리

    ‘폭행’이라는 두 글자에 숨어 있는 사연을 지루하고 장황하게 소개했다. 이제는 편의점 아저씨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구질구질한 과거사를 불쑥 꺼낸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사생활이나 이력, 발언 뒤에 숨은 사연을 쉬이 예단할 수 있을까 하는 오랜 의문 때문이다.

    2021년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위원회 인선이 한창이다. 각 정당마다 캠프의 얼굴이 될 만한 인물을 공개하고, 세상에 화려하게 ‘정치 신인’이 등장하는 시즌이다. 그럴 때마다 언론과 대중은 좋게 말하면 ‘검증’, 나쁘게 말하면 ‘신상털이’를 시작한다. 누구는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고, 누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썼던 글, 누구는 위장 전입했던 경력, 아파트 계약서를 수상하게 작성한 흔적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 누구는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다른 누구는 학창 시절의 행적, 음주운전, 과장된 경력, 혹은 사생활 문제로 지탄받는다.

    그렇게 누구는 인선 발표 몇 시간 만에 철회가 발표되고, 다른 누구는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해명 자료를 돌리며, 누구는 읍소하고 누군가는 두둔하고, 또 다른 누구는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다시 공격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목격하는 풍경이다. 2021년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논란 끝에 사퇴한 조동연 씨의 경우는 우리 사회에 새삼스러운 고민의 지점을 던져준다. 공인(公人)의 사생활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공인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일단 조동연 씨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21년 11월 30일 민주당은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를 위촉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인재 영입’ 1호로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민주당이 조 교수에 대해 자랑하던 면모는 우주항공 전문가, 육군사관학교 출신 여성 군인, 30대 워킹맘이었다.

    조 교수는 과연 우주항공 전문가인가? 조 교수의 약력에서 굳이 우주항공 분야 전문성을 찾자면 육군본부에서 1년 3개월 정도 연구장교를 했던 경험이 전부다. 대학에서는 국방기술과 관련한 센터장을 맡았는데, 기간은 1년 남짓이고, 간판만 내건 센터에 가깝다는 게 해당 분야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런 인물을 과연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정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를 ‘전문가’라고 칭할 수 있을지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과학기술 영역에서 이 정도라면 사실 본인 스스로 호칭을 겸양(謙讓)할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조 교수에게 우주항공 분야 직책을 맡긴 것도 아니고, 선거운동을 하는 기구의 위원장으로 (그것도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뿐이니, 그런 자리에 굳이 전문성을 깐깐이 따질 필요까지는 없겠다. 오히려 30대 워킹맘, 육사 출신 여성 군인이라는 점이 유권자에게는 더 호감 가는 부분이었으리라.

    2021년 12월 3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조 교수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2021년 12월 3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조 교수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영화 같은 스토리와 하드코어한 논란

    논란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조 교수가 이혼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흠잡을 구석이 되랴만, 문제는 그 이혼에 조 교수가 유책배우자라는 사실이었다. 여기까지도 이른바 바람을 피우든 말든, 부부간의 문제인데 왜 제3자들이 상관하느냐는 목소리가 일단 지배적이었다. 공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많이 관대해졌음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고, 어쩌면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논란은 하드코어하게 전개됐다. “그 이혼이 보통(?) 이혼이 아니라 조 교수가 혼외자를 두어 이혼한 것인데, 전남편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결별했고, 나중에 친자 확인을 통해 사실이 드러나서야 거액의 위자료를 물어주었으며…….” 이런 드라마 같은 사연이 이어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대체로 많은 사람이 조 교수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부부간에는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기에 망정이지 전남편을 기망(欺罔)한 행위가 분명하지 않은가. 귀를 씻고 싶은 추문과 의혹이 이어졌다. 조 교수는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편으로 일부 사람들이 조 교수 편을 거들고 나섰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 교수를 편들었다기보다는, 그가 누가 됐건 사생활 문제에 대해 제3자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이른바 젠더 이슈까지 얽혔다. 이런 문제에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사건의 본질을 그릇된 가부장주의, 핏줄을 중시하는 혈통주의에서 찾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조국 흑서’(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동 저자인 권경애 변호사는 “이혼을 당했고 위자료도 물었으니 그의 거짓말은 이미 사적 영역에서는 대가를 치렀다”고 주장하며 “그러니 그를 그만 놓아주자”고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역시 “공직 후보자도 아닌 사람의 사생활을 마구 들쑤시며 공격해 대는 모든 일이 너무나 인권 침해적”이라며 “조동연 교수가 도대체 뭘 잘못한 것인지, 무엇에 사과를 해야 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각 반박이 잇따랐다. 부부간의 문제가 아무리 민사(民事)적 사안이라 한들, 그리하여 대가를 치렀다 한들, 그걸로 끝이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사 범죄에 대해서도 대가만 치르면 공직 후보자로서 자격이 갖춰지는 것이냐는 우격다짐식 반박까지 등장했다. 사생활도 웬만한 사생활이어야지, 일체 사적(私的) 영역을 불문에 부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 여론의 다수였다.

    한편으로 ‘공인’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조동연 씨는 엄밀히 공직 후보자가 아니니 사생활 공격은 지나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공당의 선대위원장을 맡음으로써 공인의 영역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붙었다. 게다가 ‘영입되는’ 성격의 선대위원장은 국민에게 호감을 얻기 위한 이미지 전략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니, 그런 이미지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일은 마땅하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 교수에 대한 일반적 여론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그러다 논란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빠져들었다. 일단 조 교수는 2021년 12월 3일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이틀 후 조 교수가 변호인을 통해 당시 임신이 “성폭력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불륜으로 인한 임신과 출산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이에 조 교수의 도덕적 문제를 지적했던 상당수 사람들이 과오를 인정하고 그동안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을 삭제하거나 비공개 처리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거론하는 일 자체를 기피하는 사건으로 급속히 냉각했다.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교수는 이미 사퇴했기 때문에, 그제야 사람들은 이 사건을 사생활의 영역으로 취급하게 됐다.

    우리 편에겐 관대하고 다른 편에겐 가혹한

    2021년 5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관계자들이 이튿날부터 열리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5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관계자들이 이튿날부터 열리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논란은 진행형이다. 일부 사람들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주장에까지 계속 의혹을 제기한다. 타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행위로 잦은 말썽을 빚은 어느 유튜버는 그 성폭행범을 찾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걸겠다는 높은 정의감(?)을 드러내 보인다. 한편으로 다수의 사람들은 “이젠 제발 그만하자”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물론 그동안 진행 과정이 워낙 영화 같았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반전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것을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검토 대상이 돼야 할까?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껴안은 해묵은 논쟁 가운데 하나다. 혹자는 서구의 예를 들며 우리 사회가 공인의 사생활에 (나아가 다른 모든 이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적이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서구의 다른 사례를 들어 공인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며, 우리의 검증 기준이 그리 가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두 쪽 다 ‘서구’를 언급하는데, 각기 유리한 쪽을 서로 취한다. 서구는 서구일 뿐, 우리는 우리의 잣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든 근래 우리 사회도 사생활의 비밀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크게 변화하는 흐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사생활 영역에서 ‘도덕적 소양’을 강조하는 경향은 주위에 여전하다. 어떤 과도기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굳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특정한 사회가 역사적으로 형성한 가치와 사고관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고루하지만, 그것을 급격하게 부정하는 태도 또한 온전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절한 균형점이 필요하다 보는데, 결국 공직자에 대해서는 ‘해당 직책을 수행할 만한’ 도덕적 소양 정도로 최소화하는 방향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생활의 깊은 내막은 당사자가 아니면 충분히 알 수 없는 법이니, 지나친 일탈이 아니면 가급적 포용하는 태도로 대하자는 말이다.

    한편으로 사생활뿐 아니라 다른 검증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직 후보자는 물론이고 흔히 말하는 ‘사회적 공인’이 과거 발언이나 행동 때문에 지탄을 받는 경우가 우리 사회엔 흔하다. 과연 앞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한심한 사례가 많은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앞으로 공인이 되리라 예상하고 오래전부터 그것을 준비할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거친 들판을 달린 자동차는 흙먼지도 끼고 소음도 많은 법이다. 곰곰 돌아보면, 그렇다면 과거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았던 사람일수록 공인이 될 자격의 문턱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묘한 모순마저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각종 검증의 잣대도 차츰 관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인이 되고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지탄받아 마땅하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엄격히 처벌해야 마뜩하다. 하지만 공인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을 시기의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참고사항 정도로 남겨두고, 공적 업무를 담당할 ‘전문성’을 우선하는 기준으로 우리 사회가 평가하고 판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숱한 청문회가 열릴 것이다. 우리는 다시 ‘완벽한 삶’을 찾기 위한 지루한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편에게는 관대한 잣대가 다른 편에게는 가혹하게 다가가는 이른바 ‘내로남불’의 청문회를 넌더리가 나도록 시청해야 할 것이며, 결국 청문회는 하나 마나, 가결이든 부결이든 다수 정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풍경 또한 지겹도록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사회적 낭비를 계속할까?

    ‘타인의 삶’

    2006년 개봉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의 한 장면. [영화 스틸]

    2006년 개봉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영화 ‘타인의 삶’은 옛 동독의 비밀경찰이 요시찰(要視察·특별히 감시를 요하는 대상) 인물을 감시하다가 그에게 동화되는 과정을 담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아니요, 저를 위한 거예요(Nein. Es ist fr mich)”다.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 그 비밀경찰이 자신에게 헌정된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서점에서 구입하는데, 종업원이 책을 선물할 거냐고 묻자 “나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대목이다. 이 대사는 제법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타인을 향한 관대함은 언젠가 자신에 대한 관대함으로 돌아온다. 결국 세상의 관대함은 ‘나를 위한 발판’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세워놓은 도덕과 율법의 기준을 무너뜨리며 어우렁더우렁 대충 살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동안 뾰족하고 높게만 쌓아올렸던 모래성을 평평하고 넓게 다짐으로써 우리는 더욱 높은 성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전환점에 이제 우리 사회도 서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타인의 삶을 자꾸 들여다보려는 우리의 수고가 관음적 집착으로 흐르지 않고 ‘이해’에 다가가는 영역으로 확장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자꾸 날카롭게 긁어대는 것에만 익숙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에는 여전히 인색한 경향을 보인다. 정치적 상대방에게는 유난히 모질다. 모쪼록 조동연 교수의 가정에 평안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조동연 #영입인재 #청문회 #사생활 #도덕성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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