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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라톤 한계기록은 1시간57분?

인간의 마라톤 한계기록은 1시간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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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마라톤은 1908년 미국의 존 하예스가 2시간55분18초의 공식 기록을 세운 이래 올해로 딱 101년째. 101년 동안 51분19초가 빨라졌다. 1988년 4월 2시간7분 벽이 깨진 뒤 11년6개월 만에 2시간6분 벽이 깨졌고, 2시간5분 벽이 무너진 것은 그보다 훨씬 짧은 4년 만이다. 2시간4분 벽도 5년 만에 게브르셀라시에에 의해 깨졌다. 그러면 2시간대 벽은 언제 깨질까?
인간의 마라톤 한계기록은 1시간57분?
현대 마라톤의 승부는 초반 5km에서 결정된다. ‘마라톤은 후반 30km 이후에서 결정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현대 마라톤은 인정사정없다. 비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스피드 전쟁뿐이다. 코스는 변수가 못 된다. 세계 메이저대회일수록 평탄한 코스 개발에 온갖 노력을 다한다. 대부분 코스의 최고 최저 고도차가 10m를 넘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오르막이 사라진 것이다.

날씨도 기록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저마다 마라톤 적정기온(섭씨 9。안팎)에 맞춰 출발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6시에 출발하는 대회도 있다.

한마디로 마라톤 기록 3대 변수인 ‘코스-날씨-선수 컨디션’이 ‘항수’가 돼버렸다. 이제 변수는 오로지 스피드뿐이다. 게브르셀라시에처럼 출발부터 결승선까지 모든 구간을 경기장 트랙에서 10000m 달리듯이 달려야 한다.

한국 마라톤의 자존심 ‘봉달이’ 이봉주(38·삼성전자)는 지난 8월24일 베이징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7분56초로 28위에 그쳤다.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초반부터 작심하고 속도전을 펼치는데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초반 5km도 못 가 페이스가 엉망이 돼버렸다. 선두권은 저만치 앞서가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하다 보니 리듬과 호흡이 흐트러졌다. 5km 지점에서 선두권 선수들이 물을 잡을 때, 봉달이는 이미 뒤쪽으로 처져 TV화면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봉달이는 5㎞-15분3초(44위), 10㎞-30분42초(43위), 15㎞-46분58초(46위), 20㎞-1시간03분05초(44위) 등 줄곧 40위권에 머물렀지만, 35㎞ 지점에서 1시간53분51초로 33위로 순위를 끌어올렸고 막판에 20위권대로 레이스를 마쳤다.



우승자는 역시 초반부터 속도전을 주도했던 케냐의 사무엘 카마우 완지루(22). 그는 초반 20km까지 5km 평균 14분33초에 달렸다. 봉달이의 평균 15분46초에 견주면 무려 1분13초나 빠른 속도다.

완지루는 2시간6분32초의 기록으로 1984년 LA올림픽에서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스가 세운 올림픽기록(2시간9분21초)을 무려 2분49초나 앞당겼다. ‘올림픽 마라톤은 스피드보다는 순위싸움’이라는 공식을 깨버린 것이다. 선두그룹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며 후반까지 간 뒤, 보통 35km 이후에 치고 나가는 레이스 양상이 더는 먹혀들지 않게 됐다.

완지루는 100m를 평균 17.99초의 빠르기로 달렸다. 완지루는 이번 베이징올림픽 마라톤이 생애 세 번째 공식대회 완주다. 키 163㎝에 몸무게 51㎏의 왜소한 체구(이봉주 168cm 54kg). 그는 “경쟁자들을 좀 더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 속도를 내지 않으면 내 몸이 피곤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완지루는 2001년 15세 때 육상을 시작했으며, 20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2005년 도요타 규슈 육상팀에 입단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에 이어 은메달을 따낸 모리시타 고이치 코치에게서 배웠다. 2005년 8월 남자 1만m 주니어 세계신기록(26분41초75)을 세웠고, 2주 뒤인 9월11일 로테르담 하프마라톤에서 59분16초로 세계기록을 1초 앞당겼다.

1시간대, 가능한가?

완자루의 마라톤 데뷔전은 2007년 12월 일본 후쿠오카대회. 그는 첫 대회에서 2시간06분39초의 좋은 기록으로 우승했다. 2008년 4월 런던마라톤에서는 2시간05분24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하프마라톤에서 58분33초로 세계최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현대 마라톤에선 스피드가 있으면 살고, 스피드가 없으면 죽는다. ‘후반 30km 이후에 승부를 건다’는 작전은 더는 작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것뿐인가. 40km까지 스피드전쟁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조차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나머지 2.195km에서 살아남은 선수들끼리 최후의 스피드 경쟁을 펼쳐야 한다. 결국 승부는 결승선이 있는 경기장 안 트랙에서 결정된다. 피 말리는 트랙게임으로 우승자가 확정된다.

트랙게임을 벌이는 선수들은 피가 마른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몸은 천근만근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오직 정신력으로, 본능적으로 다리를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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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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