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부부가 함께 라운드하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지.”
“저 앞 팀 부부 모습을 보라고. 넓은 잔디 위에서 얼마나 보기 좋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잖아?”
그러자 캐디가 한마디 거든다.
“사실 앞에 있는 분은 부부가 아니에요. 가끔 사모님하고도 오시기 때문에 알죠.”
이쯤 되면 정말 간 큰 남자가 아닐 수 없다. 캐디는 “남녀가 필드에 나왔을 때 부부 사이인지 애인 사이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캐디의 말을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 부부 사이에는 말이 별로 없고 애인 사이에는 계속 소곤거린다.
- 부부 사이는 각자 채를 들고 다니고 애인에게는 온갖 채를 가져다준다.
- 아내가 뒤땅을 치면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고 애인에게는 잔디가 나쁘다고 말한다.
- 아내의 공이 벙커에 빠지면 ‘왜 하필 거기로 치냐’고 말하고 애인에게는 ‘이 골프장은 벙커가 너무 많다’고 말한다(애인에겐 고무래로 벙커 정리까지 해준다).
- 아내의 샷은 못 친 것만 지적하고 애인의 샷은 잘 친 것만 얘기한다.
- 그늘 집에서 아내에게는 깡통 주스만 먹이고 애인에게는 천연과일 주스를 먹인다.
- 아내가 OB 내면 OB티에 나가서 치라고 하고 애인에게는 ‘멀리건’이라고 외친다.
- 아내가 부르면 긴장하고 애인이 부르면 금방 웃는다.
- 애인에게는 2m짜리 퍼팅도 OK(컨시드)를 주고 아내에게는 1m짜리도 끝까지 쳐보라고 한다.
- 아내가 경치가 좋다고 하면 ‘공도 못 치면서 경치가 보이냐’고 대꾸하고 애인에게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 라운드 끝났을 때 애인에게 ‘골프는 늘 아쉽다’고 말하고 아내에게는 ‘골프는 늘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열 가지 이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캐디는 부부 사이인지 애인 사이인지를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이날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자, 애인 같은 아내라는 광고 카피도 있었잖아. 우리 다음부터 와이프하고 라운드할 때는 캐디가 오판할 만큼 잘 모시고 치자고! ”
골프에만 미치면 이혼 당한다
2006년 호주의 전설적 프로골퍼인 그레그 노먼이 24년간 함께 살아온 부인 로라와 이혼하면서 호주 언론이 시끄러워졌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콜린 몽고메리 선수가 아내 에이미어와 14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했다. 에이미어는 이혼서류에서 ‘나를 불안과 우울 속에 남겨둔 것은 남편의 골프 사랑’이라고 밝혔다.
골프뿐만 아니라 등산, 낚시, 테니스, 산악자전거, 마라톤 등은 모두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주말과부’라는 말이 유행한 것이 사실이다. 주말이나 공휴일만 되면 낚시 동호회나 산악회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한잔 걸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아내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낚시가 좋아, 내가 좋아?”
“골프냐 가정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요.”
이런 압박을 받아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다시 튀어 나간다. 그중에서도 골프는 다른 레포츠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골프는 등산, 테니스, 낚시의 재미있는 요소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재미있다는 말도 있다.
골프를 ‘Better than sex’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실제로 ‘마누라보다 좋은 골프이야기’라는 책을 쓴 방송작가 겸 골프 칼럼니스트도 있다.
“그럼 골프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우세한 답이 ‘댄스’다. 춤에 빠지면 골프채를 집어 던진다는 것이다. 하기야 멀쩡한 주부가 춤에 빠져서 남편과 자식까지 다 버리고 가출해버린 사건도 적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