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사태, 국내에서 밝혀진 것 고맙게 생각해야”
- 제보자 K “첫 복제소 영롱이는 가짜, 진짜는 5년 후에 만들었다”
-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실체 밝힌 주인공은 제보자 K
- “전직 장관, 청와대 비서관, 방송 막기 위해 전방위 압력”
- “대통령부터 황 교수 감싸 ‘진실 밝히기’ 방해”
- “‘바꿔치기’는 김선종이 했지만 황 교수도 알았을 것”
- “‘황우석 신화’, MBC 책임도 커…신화 깬 주역은 MBC 아닌 PD수첩”
- “모든 게 미안하다…” 취재윤리 위반 외에 잘못 더 있다는 뜻?
공교롭게도 ‘W’에서 그는 당시 ‘황우석 방송’ 담당PD이던 한학수(韓鶴洙·37)씨와 다시 뭉쳤다. 한 PD는 2006년 6월, 3개월의 독일 연수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뒤 ‘W’팀으로 배치됐다. 황우석 방송으로 자체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던 한학수 PD는 최근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라는 책을 펴냈다. 최 팀장은 자리를 옮긴 이유에 대해 “너무 힘들어서 PD수첩을 떠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12월6일 저녁, 최 팀장을 만나기 위해 MBC로 향했다. 사람들은 “황우석에 대해 더 취재할 것이 남았냐”고 묻겠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며 인터뷰를 제의했다. 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인터뷰에 앞서 묵은 자료들을 뒤적였다. 자칫 술기운에 인터뷰 분위기가 흐트러질 우려가 있었다. 술자리에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꽂히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 MBC PD수첩 취재팀은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 연구원들을 취재하면서 “황 교수와 강성근 교수를 죽이러 여기 왔다. 다른 사람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며 회유했다고 해당 연구원들이 뉴스전문 케이블채널 YTN에 증언했다. 이들 2명의 연구원은 또 “(황 교수의) 논문이 가짜라고 증언한 적이 없다”면서 “PD수첩팀으로부터 황 교수의 논문이 취소되고 검찰에 구속될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
2005년 12월4일 YTN이 오후 3시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한 김선종·박종혁 연구원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제목과 기사에 들어 있는 ‘죽인다’는 단어가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불에 한번 덴 사람은 유난히 불을 무서워하게 마련. 이번 인터뷰에서 그 단어가 긴장을 유지해주는 히든카드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분위기가 느슨해질 때마다 그 단어는 인터뷰의 긴장을 되찾아주는 활력소가 됐다.
“파멸의 주체는 황 교수 본인”
최 팀장과 인사를 나눈 후 MBC 근처 한정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팀장이 맥주로 시작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우선 맞선 보러 나온 사람들처럼 가족, 고향, 학교 등 신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아내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음식과 술이 나왔고 서로 맥주를 한잔씩 권했다. 거두절미하고 공격적인 질문부터 날렸다.
▼ 황우석 교수를 꼭 ‘죽여야’ 했나요. 살릴 수는 없었나요.
최 팀장은 일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 하면 살죠?”라고 맞받았다. ‘죽인다’는 단어는 이후에도 몇 차례 사용됐다. 사용빈도가 늘어날수록 최 팀장은 초반의 평정심을 잃어갔다.
▼ 어떤 기준으로 방송 결정을 내렸습니까.
“우리가 고민했던 건 ‘만일 줄기세포가 2개 있고, 그걸 11개로 부풀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였어요. 줄기세포가 1개도 없는 상황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죠. 그건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가 두 번이나 테스트했는데, 두 번 다 2번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2번이 가짜라는 건 나머지 3번부터 12번까지 가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걸 의미하죠. 황 교수도 줄기세포가 단 1개라도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어요. 줄기세포가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방송을 안 한다면 직무유기죠.”
▼ 황 교수를 죽이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이었나요.
“죽이는 게 아닙니다. ‘황우석 신화’가 지닌 병증,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병증이 심각하다는 인식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요.”
‘죽인다’는 말이 그를 자극한 것일까. 최 팀장은 “황 교수를 파멸시킨 건 PD수첩이 아니다. 황 교수 본인이 스스로를 파멸시킨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처음’이란 언제를 가리킵니까.
“황 교수는 2005년 5월 ‘줄기세포를 11개 수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신문, 방송에 대서특필됐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그의 말 한마디를 받아내기 위해 애걸할 정도였죠. 그걸 보고 있자니 과학자 한 사람의 연구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지나치게 한쪽 면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당시 줄기세포와 관련해서는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잖습니까. 미국 정부는 연구를 허용하지 않았죠.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동당이나 생명윤리 전공자, 천주교 쪽에서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무시됐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학수가 PD수첩팀으로 발령받았어요.”
한학수 PD가 등장하면서 대화의 주제는 ‘줄기세포 진위’를 추적하게 된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학수는 논쟁적인 사안을 정리하는 걸 좋아해요. 한국의 진보운동이 역사적으로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를 운동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한국의 진보’(3부작)도 그렇고…. 그런 친구가 ‘부시와 황우석, 세기의 논쟁’을 추진해보겠대요. 그때 이 친구가 줄기세포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죠. 결국 방송은 안 됐지만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았습니다. 그러다 6월1일 K(PD수첩팀은 제보자를 이렇게 부른다)가 우리에게 ‘2005년 줄기세포는 가짜’라고 제보했습니다. 나는 학수가 줄기세포에 대해 공부도 했고 사전 지식도 있으니까 비교적 쉽게 검증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랄까, 그런 걸 할 능력이 있을 거라고 본 거죠.”
“우리가 한 일은 약이 될 것”
▼ 방송 여부를 놓고 MBC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렸던 것으로 압니다.
“취재한 내용을 방송하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도할 필요가 없는 건 안 해도 되겠죠. 하지만 분명히 팩트(fact)가 있고 보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도 언론사가 스스로 판단해서 킬(kill)해서는 안 되죠. 언론사가 그냥 킬 하겠어요? 킬하는 과정에는 ‘거래’가 있어요. 결국 국민이 피해를 봅니다. 사람들이 ‘2개를 11개로 뻥튀기했다면 방송을 안 했겠네요’라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습니다. 고민은 많이 했을 테지만 결국 방송을 강행하려 했을 겁니다. 물론 회사에선 말리려들었겠죠. 그 과정에서 MBC의 내부 균열도 심각하게 일어났을 겁니다.”
▼ 당시 국민의 충격도 엄청났고, PD수첩 보도 내용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황우석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밝혀진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이 PD수첩팀이 국익을 훼손했다며 섭섭하게 여기는 건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황 교수가 유일하게 고유 기술을 갖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진데다, 또 그가 연구를 못하게 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가 중단된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많은 연구자가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PD수첩 보도 후 과학계는 시스템도 갖추고 연구진실성위원회도 만들며 자정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국민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은 건 과거에 꿨던 꿈이 너무 컸기 때입니다. 우리가 겪은 일이 반드시 약으로 작용할 거예요.”
▼ 황 교수를 죽인 데 대해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인가요.
“죽이긴 뭘 죽여요.”
잠잠하던 최 팀장의 음성이 높아졌다.
“내가 얘기한 게 그대로 ‘팩트’입니다. 만일 황 교수가 옆에 있다면 ‘당신 왜 그렇게 거짓말 했냐, 우리가 얘기했을 때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고 미안하다고 고백했으면 됐을 거 아니냐’고 묻고 싶어요.”
끝내 최 팀장에게서 “그것도 있고…”의 뒷말을 듣지 못했다. 질문은 다 끝났다. 분위기도 바꿀 겸 그에게 보너스 질문을 던졌다.
▼ 취재하면서 알게 된 황 교수는 어떤 인물인가요.
“황우석이라는 사람의 본질은 ‘거짓말쟁이’라는 겁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죠. 이게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다뤄봤어요. 나름대로는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데, 황 교수만큼 능수능란하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그 거짓말에 놀아난 국민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그 사람의 거짓말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 안타까워요.”
▼ 황 교수는 학자인가요, 아니면 정치꾼인가요.
“죽었다 깨어나도 학자라고는 할 수 없죠. 정치꾼이라고 봐야죠. 난 누구보다도 그 사람과 얘기해보고 싶어요. 왜 거짓말을 했는지 묻고 싶고, PD수첩의 취재방식이나 우리가 밝혀낸 진실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듣고 싶어요. 토론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황 교수는 토론이라는 걸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주위가 조용했다. 둘러보니 우리만 남았다. 1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최 팀장에게 결례가 된 게 있으면 너그러이 양해해달라고 했다.
▼ PD수첩만 대변해줄 수 없기 때문에 좀 예민한 질문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예의에 벗어난 질문을 한 게 있다면 죄송합니다.
최 팀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아닙니다.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답했다.
식당을 나왔다. 거리에는 황량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최 팀장을 배웅하고 택시를 탔다. 몸은 무거웠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최 팀장은 왜 잘못한 게 너무 많다고 했을까. ‘그것도 있고…’의 뒷말은 뭘까. 기사를 쓰고 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황 교수가 세계 최초로 복제했다고 밝힌 젖소 ‘영롱이’.
“황 교수가 가장 큰 역할을 했죠. 그리고 엄청난 책임을 회피한 언론, 황 교수를 정치적인 자산으로 활용하려 했던 권력자들, 쉬쉬하면서 황 교수를 내세워 과학 신드롬을 일으키고자 최소한의 견제도 하지 않았던 과학자사회의 우두머리들…. 다 문제죠.”
▼ 정치권, 언론계, 과학자 그룹이 황 교수를 이용하려 했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황 교수도 피해자 아닌가요.
“황 교수를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언어 유희죠. 그는 모든 사태의 주인공입니다. 황 교수가 처음부터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된 겁니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나쁘고 황 교수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 해도 황 교수가 정직했다면 이 정도까진 안 됐겠죠. 그는 능수능란한 정치적 기술로 언론, 권력은 물론 국민까지 자신의 우군으로 만들어 동원했습니다.”
▼ 지금도 방영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하죠. 사실 방송이 늦었습니다. ‘좀더 빨리 했더라면 분열 현상이 조금이라도 완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40분이 지났다. 최 팀장의 잔은 비어 있었다. 맥주도 떨어졌다. 그가 “술을 더 시킬까요?”라고 물었다. “소주로 하죠”라고 답했다. 술이 나오는 동안 회(膾)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 팀장은 “우리 같은 경상도 내륙 사람은 회를 잘 못 먹죠”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고향은 대구다. 기자 또한 경북 내륙이 고향이라 최 팀장의 말에 공감했다.
“대학 때까지 회를 거의 못 먹어봤어요. MBC 들어와서 좀 먹었죠. 아직도 회맛을 잘 몰라요, 하하.”
소주가 들어왔다. 한 잔씩 주고받았다. 팽팽한 접전을 누그러뜨릴 겸 PD수첩에서 밝혀낸 진실을 중심으로 대화를 끌어갔다.
영롱이, 진이, 광우병 내성소…
▼ 영롱이, 진이, 백두산 호랑이, 광우병 내성소 등 황 교수 연구와 관련해 PD수첩에서 밝혀낸 진실에 대해 얘기해주시죠.
“과학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최초의 복제 젖소 영롱이부터 가짜일 가능성이 커요. 일단 논문이 없잖습니까. 제보자 K는 황 교수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영롱이 논문이 가장 보고 싶었다더군요. 그런데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쉬쉬하거나 말을 돌려버렸고, 1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는 ‘논문은 없다. 영롱이는 가짜’라고 하더래요. 그 후 5년 뒤에 실제로 복제 소가 만들어졌대요. 그게 첫 복제 소였죠. 언론에 발표하지는 못하고 자기들끼리 조촐하게 자축했다더군요.
우린 그 얘길 듣고 황 교수에게 ‘영롱이를 검증하자’고 했고, 영롱이 체세포를 하나 받아와서 핑거프린팅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유전자 지문 자체가 안 나와요. 황 교수가 뭔가 장난을 친 거죠. 그 다음에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영롱이 유전자 검사를 위해 체세포를 달라고 했지만 황 교수는 ‘없다’며 안 줬어요. 우리한테는 줘놓고 안 준다? 말이 되나요. 이건 황 교수가 스스로 가짜라는 걸 고백한 겁니다. 자신이 100% 옳다면 ‘이런 것까지 가짜라고 의심하면 되냐’고 나왔어야죠. 그런데 그렇게 안 했잖습니까. 첫 단추부터 그렇게 끼워진 겁니다.
복제 한우 진이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걸로 압니다. 역시 논문이 없잖아요. 백두산 호랑이 복제는 ‘하겠다’고 공언한 뒤 계속 ‘언제 나온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그만뒀죠. 광우병 내성소는 마치 엄청난 국익을 가져다줄 것처럼 홍보했죠. 기본적으로 광우병 내성소는 유전자를 조작한 겁니다. 유럽은 미국산 GMO(유전자변형식품) 농산물도 수입하지 않는 판인데 유전자에 변형을 가한 광우병 내성소가 엄청난 국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호언했으니…국민에게 환상만 심어준 거죠. 하나씩 들추고 들어가면 모두 다 거짓말입니다. 워낙 거짓말을 연쇄적으로 해서 뭐가 진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예요.”
2005년 12월2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PD수첩 최승호 팀장과 한학수 PD.
“난자 부분은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어요. K가 난자 장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실험 과정에 쓰인 난자는 몇 개고, 출처가 어디고, 심지어 연구원이 제공한 난자라는 것도 적혀 있었어요. 황 교수가 난자와 관련해서 했던 발언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죠. 그걸 보고 ‘난자와 관련해서 황 교수가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줄기세포가 가짜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실인데 어떡합니까”
▼ K는 줄기세포와 관련해서는 어떤 제보를 했나요.
“학수가 제보자 K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2005년 줄기세포는 가짜’라고 했대요. 그래서 ‘근거는 뭐냐’고 물었더니 K는 ‘없다’고 했다더군요. 2004년 줄기세포는 K가 2인자로서 주도해서 만들었어요. 그러나 그 뒤에 (황 교수와) 틀어져서 나와버렸거든요. 2005년에 만들어진 줄기세포는 옆에서 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뭐가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거죠.”
▼ 황 교수 연구팀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K는 뭘 믿고 줄기세포가 가짜라고 했습니까.
“K는 ‘내 경험상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했어요. 2004년 K가 나오기 전까지 죽어라 연구해서 줄기세포를 겨우 1개 만들었대요. 그것도 확립된 과정이 아니라 어쩌다가 생긴 거였죠. 또 당시 줄기세포를 만들 때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 나왔거든요. K도 나왔고 박모 연구원과 박종혁 연구원도 미국으로 갔죠. 김선종·권대기 연구원이 있었는데, 권 연구원은 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고…. K는 그런 상황에서 11개를 만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K에게 ‘입증할 방법이 있냐’고 물었더니 ‘줄기세포를 DNA 검사해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아니, 줄기세포 DNA 검사를 어떻게 하냐고요. 줄기세포는 국가정보원뿐 아니라 관계기관의 엄청난 감시와 통제를 받는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의 구중심처에 있는데…. 취재가 불가능한 영역이었죠.”
▼ 애초에 난자 문제보다는 줄기세포의 진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군요.
“그렇죠.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취재가 행해져야 난자 문제도 방송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난자 문제만 지적해도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은 드롭(drop) 시킬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니까요. 그런데 난자 방송이 나가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전 국민의 99%가 방송 잘못했다고 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짱구’는 아닙니다.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난자 문제만 가지고 방송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 난자 제보만 받았다면 방송을 안 했겠네요.
“그랬을 겁니다. 무리할 수는 없는 거죠.”
▼ 황 교수의 권력이 대단했나 봅니다.
“PD수첩에 있으면서 온갖 험악한 취재를 다 해봤습니다. 그래서 웬만해선 겁을 안 내요. 다들 저더러 ‘간이 배 밖에 나왔다’고 합니다. 대형교회나 언론, 재벌들과도 싸워보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다뤄 ‘빨갱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황 교수 건과는 비교가 안 돼요. 옛날 PD수첩에서 만민중앙교회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 방송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도들이 MBC 주조정실을 점거해 기계를 다 부쉈어요. 방송도 중간에 끊겨버렸죠. 10만명이 몰려와 MBC를 몇 겹으로 둘러쌌어요. 그런데 그게 겁납니까? 5000만 국민 중에 나머지 4990만명쯤은 ‘MBC 잘한다, 저런 건 고쳐야지’ 하며 응원하잖아요. 그런데 황 교수 건은 4999만명이 ‘방송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용기 있다, 방송해라’는 목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난자 문제만 가지고는 방송하지 않았을 겁니다.”
▼ 한학수 PD에게서 K가 제보한 내용을 들었을 때 어땠습니까.
“전율 같은 걸 느꼈어요. 운명적인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이 길로 가면 안 되는데, 그 속에 파멸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더군요.”
▼ K는 믿을 만했나요.
“방송생활 20여 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어요. 거짓말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다 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그걸 제보한다고 자신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를 당하면 당했지….”
▼ 특종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네요.
“그런 것도 있었죠. 뭔가 새로운 걸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거…. 솔직히 우리가 이야기하려 한 게 사실이 아니라는 핑계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바로 내려버리고 싶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접고 싶었어요.”
▼ 접지 못하게 한 힘은 뭔가요.
“사실이니까요. 사실인데 어떡합니까.”
최 팀장이 술을 권했다.
“잘 드시네. 난 늙었나봐. 술 마시는 게 예전 같지 않아요. 담배는 한 달 전에 끊었어요. 실은 끊었다가 황 교수 취재하면서 다시 피우게 된 거지만…. 또 피우게 될지도 모르죠.”
화제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으로 옮겨갔다.
‘그냥 그거로 올려’
“검찰은 조작의 주체를 완벽하게 밝혀내지 못했어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1번 줄기세포를 조작한 사람이 누굴까요? 황 교수는 당연히 관련돼 있죠. 문제는 조작과 관련해 김선종·박종혁 연구원과 황 교수의 진술이 엇갈린다는 거예요. 2004년 논문에 실린 유전자 지문은 실제 만들어진 처녀생식 줄기세포의 유전자 지문과 달라요. 논문에 실을 때 체세포 제공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사람을 상정해놓고 그 사람 체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한 거죠. 그런데 당시 논문에 싣기 위해 DNA 핑거프린팅을 해보니까 다르게 나왔어요. 그러면 황 교수는 ‘누가 진짜 제공자인지 찾아보자’고 했어야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김선종·박종혁 연구원에 따르면 ‘그냥 그거로 올려’라고 했다는 거예요. 물론 황 교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 논문에 실린 진짜 체세포 제공자는 찾았습니까.
“K가 찾아냈죠.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어요. A, B 두 명이 나왔어요. 논문에는 A의 유전자 지문이 실려 있는데, 체세포 제공자는 B로 올린 거죠. 그러니 매치가 안 될 수밖에…. K가 A의 체세포를 찾아서 DNA 검사를 했더니 매치가 되더군요.”
▼ 1번 줄기세포 조작과 관련된 진실도 PD수첩에서 밝힐 수 있지 않았나요.
“그걸 우리에게 밝히라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얘기죠. 이젠 언론의 영역을 떠난 것 같아요. 언론이 ‘지시했다 안 했다’를 밝히려고 달려들다가는 이용만 당할 겁니다.”
▼ 연구자금 횡령과 관련해서도 밝혀낸 게 있습니까.
“그건 취재 안 했어요. 황 교수의 도덕성과 관련된 사항은 취재를 전혀 안 했어요. 그런데 황 교수는 우리가 취재하고 다닌다며 굉장히 화를 냈죠.”
▼ 그건 무슨 말인가요.
“황 교수가 ‘난자를 제공한 G 연구원과 황 교수는 성적인 뭔가가 있다. 그래서 G라는 사람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PD수첩이 퍼뜨리고 다닌다며 우리를 엄청 추궁했어요.
연구자금 횡령 건을 취재하는 건 ‘더티 게임(dirty game)’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 얘길 하면 그야말로 ‘죽이기’로 비칠 거라고 봤어요.”
2005년 ‘PD수첩’이 취재윤리를 어겼다고 방송한 YTN 보도와 이에 대해 사과방송을 하는 MBC 뉴스데스크(아래).
“힘들죠. 우리한테 힘이 있었다면 할 수도 있었겠죠. 정략적으로 1·2·3편을 시리즈로 기획해서 3편에서 정치자금과 관련한 돈 문제를 다뤘다면 황 교수를 죽이기 위한 환상적인 끝내기 수순이 됐겠죠.”
PD수첩은 황 교수 연구와 관련한 내용을 여러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다뤘다. 2005년 11월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에 이어 12월에는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를 방송했다. 그 후속보도로 2006년 1월에는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 ‘황우석 신화, 어떻게 만들어졌나’ ‘생명과학 위기를 넘어’를 연달아 내보냈다. 최 팀장은 2005년 12월 방영된 ‘줄기세포 재검증’을 1편, 2006년 1월 방영된 내용을 2편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3편’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취재윤리 문제 삼으며 ‘방송 말라’ 협박”
최 팀장과 술잔을 연이어 비웠다. 술기운이 슬슬 퍼지기 시작해서일까. 최 팀장의 발언 수위가 높아져갔다. 여세를 몰아 ‘외압’의 실체를 파고들었다.
▼ 최 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에 압력을 가했거나 부당하게 관계했던 사람들은 앞으로 PD수첩팀의 방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전직 장관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방송하지 말라’고 합디다. 그런데 그 다음에 좀 묘한 일이 일어났어요. 밖에서 저를 도와주던 사람이 전화를 해서는 ‘그 전직 장관은 PD수첩을 주저앉히기 위해 너를 만난 게 아니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청와대가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군요. 헷갈렸습니다. 내가 전직 장관을 만난 게 2005년 12월3일이에요. 그날 그는 분명히 ‘방송하지 말라, 취재윤리 어겼지 않냐, 위험하다. YTN에서 미국으로 취재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정말로 YTN에서 김선종·박종혁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내보냈어요. 결국 PD수첩은 고꾸라지고 방송도 중단됐죠.”
2005년 12월4일 YTN 보도 후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MBC는 그날 밤 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對)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6일로 예정됐던 PD수첩 방영도 중단됐다. 최 팀장은 “그런 일련의 과정에 ‘공작 냄새’가 상당히 짙다”며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공작 여부를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줄기세포가 없다는 진실이 공표됐을 때 관련자들은 정치적인 이익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수단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이건 용서할 수 없는 거죠. 압력의 중심에는 황 교수가 있었습니다. ‘취재윤리’를 위반한 게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황 교수는 그걸로 우리를 협박했습니다. 학수가 미국에서 김선종을 만나고 돌아온 게 10월20일경이에요. 그런데 그 주 주말에 황 교수는 대학 후배인 MBC 보도본부장을 만나 ‘PD수첩에서 말도 안 되는 취재를 하고 있다. 심지어 협박까지 한다. 내일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는데, 이 얘길 해야 되냐’고 했답니다. 그달 31일 학수가 황 교수를 인터뷰하러 갔을 때도 그 양반은 취재윤리 문제를 꺼내서 협박했습니다. 학수가 잘못한 게 있긴 있죠. 그런데 그 양반은 그걸 가지고 우리와 딜(거래)을 하려고 했다니까요. 이외에도 압력은 많았죠. 국정원과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오고….”
▼ 청와대에서는 누가 압력을 행사했습니까.
“청와대 비서관이나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전화해서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다는데 그렇게 취재해도 되냐’고 하더군요. 그걸 외압이라고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사태 자체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우리가 취재하고 있는 팩트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쉬운 점은 우리가 취재한 내용을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뭐가 잘못됐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서 진의를 밝힌 후 국민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어야죠.”
▼ 황 교수 사태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외압 관련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선까지를 말하는 건가요.
“나는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전직 장관이 누구, 청와대는 누구라고 이름을 말했다고 칩시다. 취재해서 진실을 밝힐 건 아니잖습니까.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YTN의 보도과정은 상당히 의문스러워요. 그 부분은 앞으로 PD수첩에서 반드시 밝힐 겁니다.”
▼ 그러다 방송사간 싸움으로 비화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언론이 상황을 그 지경에 이를 정도의 행위를 했다면 책임을 져야죠. 꼭 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럽니다.”
▼ 정치권은 어땠나요.
“저한테 바로 오지는 않았고 윗선으로 좀 온 거 같아요. 언급할 가치가 없어요. 다만 뭔가가 있었다면 밝혀야 된다는 겁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PD수첩팀이 나서서 밝혀야죠. 다른 데서는 아무리 덤벼봤자 되지도 않고, 변죽만 울릴 뿐입니다.”
진실과 원칙 무시한 대통령
▼ 3편을 만들었다면 황 교수의 정치자금을 다뤘을 거라고 했는데.
“황 교수의 정치 커넥션은 꼭 밝혀야 합니다. 당시 ‘니들이 그렇게 하면 노벨상이 없어진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 양반이 노벨상을 타도록 해서 정치에 이용하려고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현 정권이 가장 많이 노력했을 테고, 한나라당도 꼭 자유롭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들이 괜히 그렇게 했을까요. 여러 가지 정치적 손익계산이 있었겠죠.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황 교수가 그대로 쭉 가서 대선이 열렸다고 생각해봐요. ‘황 교수가 누구를 지지한다’는 분위기를 풍긴다면 어느 일방에 상당히 도움이 됐겠죠. 그런데 PD수첩에서 황 교수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떻게 하겠어요. 당연히 무력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 정치권이 황 교수를 키우고 ‘황우석 신화’를 조장한 셈이네요.
“그렇죠.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구조는 과거부터 있어온 거죠. 그 구조에 ‘황우석’이라는 인간이 너무나 좋은 캐릭터로 등장했으니 이용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황 교수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정치권을 많이 이용했죠.”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최 팀장은 화살을 대통령에게로 돌렸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하면 안 됐죠. 노 대통령은 원칙과 진실을 중시하고, 정치적인 불이익이 있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말하는 사람으로 인상지어졌잖습니까. 그런데 ‘황우석 사태’에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어요. 2005년 11월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PD수첩이 황당한 취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협박과 위협도 한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어요. 우리는 당시 줄기세포 진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았어요. 오로지 팩트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죠. 그런데 대통령이 그렇게 써버린 거예요. 굉장히 당황했죠. 청와대에 전화해서 항의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잘 몰라서 그랬다고 쳐요. 이후부터 12월 초까지는 굉장히 중요한 기간이었어요. 줄기세포가 가짜로 판명 나고, 신문에도 관련 사항이 보도되고, YTN은 미국 갔다 와서 말도 안 되는 보도를 하고….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 이걸로 정리를 하자’는 멘트를 날렸어요. 원칙과 진실을 그토록 중히 여겨온 사람이…. 노 대통령 스타일이라면 말이죠, ‘국민 여러분 저도 잘못 알았습니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을 오도한 데 대해 정부 책임자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조작했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사법기관에서 정확하게 밝힐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민 여러분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렇게 했어야죠.”
▼ 대선주자들도 황 교수를 옹호했습니다. 그들도 사과하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미지 정치의 한계죠.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뭔지를 생각해야죠.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황 교수 같은 영향력을 지닌 사람에게 찾아가서 사진이나 찍고, 혹시 황 교수가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주지 않을까 이런 거나 고민하고….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따져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죠.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당시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악담을 했어요. 정동영, 손학규, 박근혜…. 거의 다 그랬어요.
그들은 사과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미지에 흠집이 나리라고 생각했겠죠. 또 사과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압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사과해야죠. 그들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행위이자 국민을 깔보는 행위라고 봅니다.”
“백 번 더 죽이라면 백 번 더 죽인다”
▼ 현 정권이 실제로 황 교수를 감쌌나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본인이 한 발 담그고 있기 때문에 관계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노 대통령은 우리가 진실을 밝히는 데 상당한 방해 요소로 작용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의심을 많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연관돼 있으니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죠.”
▼ 결국 황 교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죽인 거군요.
“죽인 게 아니에요. ‘황우석을 죽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백 번 더 죽이라고 하면 백 번 더 죽이죠.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로 섭니다. 그게 정도(正道) 아닌가요.”
‘백 번 더 죽이라고 하면 백 번 더 죽인다.’ 황 교수에 대한 최 팀장의 이렇듯 뿌리 깊은 불신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황 교수가 이야기하는 걸 진정성을 갖고 믿어주더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PD수첩에서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 황 교수가 그걸 인정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어야죠. 그런데 황 교수는 안 했습니다. 우리가 ‘DNA 검사결과 가짜라고 나왔다’고 하니까 황 교수는 ‘말도 안 돼, 누가 검사한 거야, 누구한테 의뢰한 거냐’면서 우리를 덜떨어진 사람 취급했어요. 황 교수가 국민에게 받은 엄청난 신망과 기대, 존경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한 생각이 있었다면 자기가 모든 걸 조사하고 ‘내가 국민 여러분을 속였다. 진짠 줄 알았는데, 내가 정말 바보였다’고 이야기 했어야죠. 황 교수 본인이 모든 걸 밝히는 주체가 됐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진 안 됐을 겁니다. 국민이 모든 걸 훨씬 더 빨리 받아들였을 테고, 박탈감도 지금처럼 크진 않았겠죠. 물론 황 교수도 용서받았겠죠.”
▼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다”고 선언한 이후 황 교수는 즉시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황 교수는 어떻게 줄기세포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을까요? 김선종 연구원한테 들었을까요?
“황 교수 혼자 판단한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진지하게 논의해서 내린 결론일 겁니다.”
▼ 김선종 연구원은 황 교수 사태에 어느 정도 개입한 겁니까.
“나도 그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실하지 못했어요. 거짓말을 굉장히 많이 했죠.”
▼ 김 연구원은 검찰 조사에서 “연구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2번, 3번 줄기세포를 조작했다”고 시인했습니다. 박기영 전 청와대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은 ‘신동아’ 2006년 11월호 인터뷰에서 “과학의 발전단계상 김선종 연구원이 섞어심기를 하지 않았다면 줄기세포는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섞어심기’의 진실
“박 전 보좌관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죠. 시민운동과 과학운동도 했던 분이 그렇게 이야기하다니, 원…. 아주 기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섞어심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있었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김선종 연구원이 안 했으면 황 교수가 하지 않았을까요? 영롱이부터 2005년 줄기세포까지 온통 허위로 덮여 있는데…. 또 황 교수가 처음부터 알았으면서도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나요? ‘황 교수가 100 정도 거짓말 했다고 해도 10 정도는 진실로 하지 않았을까.’ 이게 박 전 보좌관의 바람이겠죠. 김선종이 ‘섞어심기’를 안 해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 김 연구원이 줄기세포를 조작했다는 걸 황 교수가 처음부터 알았을 거라는 얘깁니까.
“알았을 겁니다. 알 수밖에 없죠. 제보자 K는 ‘줄기세포 11개를 만들었다는 데 그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황 교수는 가능했다고 생각했을까요? 전체적인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텐데…. K가 의심했다면 황 교수도 의심했어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 결과적으로 보자면, ‘황우석 사태’는 김선종 연구원이 ‘독박’ 쓰는 것 아닌가요.
“김 연구원이 안 되긴 안 됐죠. 그 양반도 할 이야기는 있을 테지만 잘못한 게 있으니 처벌은 받아야죠.”
▼ 만일 몇 년 후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만들 경우 “김선종 연구원과 PD수첩의 방해만 없었다면 줄기세포는 더 일찍 만들어졌다”고 반격하고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건 그거고 진실은 진실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결국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 같은 경우에는 100%입니다.”
▼ 황 교수가 진짜 줄기세포를 만들어낼까요.
“황 교수가 지금이라도 개과천선해서 열심히 연구한다면 좋은 일이지요. 줄기세포를 만들면 좋은 거 아닌가요.”
▼ 노성일 이사장은 황 교수 사태에 어느 정도 개입했습니까.
“그분은 거의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가 난자 관련 취재를 할 때 그분은 소탈하게 진실을 이야기했어요. 자기가 황 교수에게 난자를 제공했고, 난자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그 대가로 돈도 줬다고. 그런데 그 얘길 하면서 그분은 감히 PD수첩에서 방송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 윤현수·안규리·이병천·강성근 교수 등을 비롯해 많은 연구팀원이 있는데, 그들 중 왜 한 명이라도 황 교수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요.
“상식의 저항 때문이겠죠.”
“모든 게 미안하고 잘못 생각한 게 많다”
▼ 1년6개월 만에 PD수첩을 떠나셨는데….
“2006년 1월 방송을 마감할 때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학수도 힘들어서 PD수첩 떠난 것 아닙니까. 국민이 학수가 TV에 나오는 거 싫어하잖아요. 나도 나오는 걸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나도 떠나고 싶었죠.”
이젠 평이한 질문만 남았다. 언론 및 과학계의 반성과 역할에 대해 짚어보면서 황 교수 사태를 정리하면 됐다. 술도 웬만큼 마셨다. 여유를 좀 갖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 복제 소 영롱이와 관련한 보도를 보면 모든 언론이 황 교수 말만 그대로 전했습니다.
“황 교수가 뭘 내놔야 취재를 할 수 있죠. 안 내놨잖아요.”
▼ 언론이 황 교수의 신화화에 앞장섰다고 보는 건가요.
“앞장을 많이 섰죠. MBC부터 시작해서….”
▼ 그 신화를 깬 것도 MBC 아닌가요.
“무슨 MBC입니까. PD수첩이죠.”
▼ MBC도 책임이 크죠.
“책임이 무지하게 크죠. MBC도 황 교수를 키우려고 했으니까.”
▼ 최 팀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대(對)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언론을 꾸짖었더군요. 그런데 MBC도 사과 안 했잖습니까.
“그건 좀 다르죠. 사과의 방향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그간 황 교수 보도와 관련해서 잘못한 점을 사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PD수첩이 황 교수 연구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난 뒤에도 PD수첩을 비난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라는 거죠. MBC는 후자 부분에서 약간 면책이 되는 것이죠. 물론 MBC도 반성을 철저하게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에 비할 바는 아니죠. 그 매체들은 반성을 많이 해야 합니다.”
▼ 황 교수 사태 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론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어렵다고 봐요. 이번 사태로 나름대로 많은 부분이 나아져 과거처럼 ‘신화화’에 앞장서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안 생길 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 황 교수 사태가 과학계에 남긴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죠. 우리 과학계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황 교수 사태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해결한 사람들이 과학자들이었으니까요.”
▼ 황 교수 사태의 본질은 뭡니까.
“모르겠어요. 우린 우리 나름대로 잘하면 되지, 언론은 언론대로 잘하고, 언론도 너무 못했고…. 미안합니다.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해요.”
최 팀장이 느닷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질문과 상관없는 말이 나와 순간 당황했다.
▼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보면 국민을 헷갈리게 한 거 아닙니까. 내가 국민을 똑바르게 이해시켰으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어요.”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잘못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안하고 잘못했고….”
▼ 뭐가 미안하고 잘못했다는 겁니까.
“뭐든지 다 미안하죠.”
▼ 황 교수 보도를 두고 하는 말인가요.
“음…, 나는 다 미안해요. 잘못했다고 생각한 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
▼ 얼버무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좀 해주시죠.
“얼버무릴 것도 없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 취재윤리 위반한 걸 일찍 고백 안 했다는 겁니다. 그 외에 미안한 건 없어요. 그게 제일 크죠.”
▼ 그건 이미 방송에서 사과했잖습니까.
“그것도 있고….”
무엇이 더 미안한가…
최 팀장은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듯했다. 취재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 외에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는 말인가.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취중진담일까, 아니면 한 개인을 몰락시킨 데 대한 인간적 고뇌를 드러낸 걸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히든카드를 던져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