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스승’은 못 돼도 ‘선생’은 되고 싶은데…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7-09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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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기성세대들은 “그래!”하고 무릎을 쳤다. “지금 같았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왜 당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군홧발과 몽둥이질이 난무하던 학교풍경. 아연실색할 일이지만 그때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 요즘? 세상 많이 변했다. 교사가 아이들 눈치를 본다. 매를 들기는커녕 꾸지람도 아이의 결을 봐가며 가려 한다. 교사들은 매일 절망하고 매일 다짐한다. 그래도, 내일은 더 좋아질 거라고.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평생직장, 여유, 신붓감 인기 1위, 방학….

    교사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안정’ ‘웰빙’ ‘신망’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로도 엮인다. 하나도 갖추기 힘든 3가지 미덕을 골고루 갖춘 교사는 ‘괜찮은 직업’으로 통한다. 그러나 요즘 교사들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과거에 비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극도로 심해졌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애환은 제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지 5년째인 여교사 김모씨. 2학년 수업을 하던 중 그는 문자 메시지 보내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를 발견했다. 눈짓으로 몇 차례 경고를 보내도 계속되는 ‘문자질’. 참다못해 아이를 불러내 “수업에 집중하라”고 나무랐다.

    “X발, 지가 뭔데….”

    뜻밖의 반격에 “방금 뭐라고 했냐”며 도끼눈을 떴지만 아이는 당당하기만 했다. 교실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당황하고 창피한 마음에 아이를 자리로 돌려보낸 뒤 수업을 이어갔다. 그는 “평소 태도가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으나 교사에게 대놓고 욕설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아이들 앞에서 자존심이 짓밟힌 것 같아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교원평가제를 시범 실시 중인 경기도 A중학교. 이 학교에서 여교사 이모씨는 평가표를 받아들고는 숨어서 펑펑 울었다. “XX년. 븅신. 가슴은 없는 주제에 뽕브라만 껴요.ㅋㅋ.” 철없는 중학생이라지만 장난으로 흘려듣기엔 심한 말들이었다. 여학생이 적은 글이라곤 믿기 힘든 성적 험담도 가득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도 있었지만 욕설과 폭언은 가슴의 멍으로 남았다.

    서울 강서구 B초등학교 교사 유모씨는 얼마 전 5학년 학생의 컴퓨터 모니터를 보다가 경악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자신을 모욕한 글들이 가득했다. 동료 교사들에 대한 험담도 있었다. 아예 교사별로 게시판 폴더가 따로 구분돼 있었다. 설상가상 올려진 글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교사들을 희화화해 이야기를 꾸며대거나 각종 만화나 영화 포스터의 패러디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아이는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라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유 없는 교실폭력

    지난 5월 서울 강서구 C초등학교의 여교사는 꾸중에 반항하는 남자 초등학생 2명의 팔에 맞아 입 주위가 찢어졌다. 서울 D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과정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해 전치4주의 상해를 입혔다. 이달에 알려진 교사 폭행사건만 여러 건. 그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한 사건도 간간이 있었다.

    과거 ‘교실폭력’은 교사의 과잉체벌을 일컫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폭력을 가리킨다. 교실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것이다. 실제 구타로 이어지는 교실폭력 사건은 건수로만 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끄러워지는 것을 꺼리는 학교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교원 들의 의견이다.

    욕설과 폭언은 다반사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전국 교원 705명을 대상으로 교권침해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8.4%가 학생에게 심한 욕설 또는 반항을 겪었다고 답했다. 동료 교원이 학생에게 폭행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것을 봤다는 답변은 62.3%나 됐다. 일선 교사들은 “초·중·고를 망라해 욕설 한번 들어보지 않은 교사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실폭력은 교사가 교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교실붕괴’와 맥을 같이한다. 학생과 수업을 통제하지 못하는 학교는 인성지도는 물론 교과수업의 기능도 잃게 된다. 교실붕괴는 이제 지역과 학교를 초월한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상당수 교사가 학생들의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몸과 마음을 다치고 있다.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교사의 과잉체벌을 일컫던 ‘교실폭력’은 이제 교사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폭력을 뜻한다. 학생 생활지도법을 토론하는 초등학교 교사들.

    “아무리 얘기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이들, 이유도 모르게 무시당하는 분위기, 유치하지만 상처로 남는 욕설과 낙서, 집단으로 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보복’…. 졸업하고 바로 임용고사에 통과했으니 아주 어린 나이였죠. 첫 수업 때 학생들은 상상외로 제멋대로였고, 교실은 그때 이미 붕괴상황이었어요. 처음에는 신참교사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10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힘듭니다.”

    1999년부터 공립중학교에서 근무해온 여교사 유모씨. 그는 넉넉한 가정에서 중고등학교 내내 1등을 하며 순탄하게 자랐다. 일찍부터 여성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전문직을 생각하던 차, 보수는 많지 않지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교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유씨는 “착하고 온유한 심성이 교직에서는 무능하고 무시 받는 단점이 됐다”며 “친절하고 따뜻한, 무엇보다 행복한 교사가 되고 싶은데 매일이 우울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언어, 물리적 폭력은 젊은 여교사들이 주요 타깃이다. 그래서 막 교단에 선 여교사들은 이구동성 “초장에 무조건 학생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질’ 없이는 교실 분위기를 주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경기도 E중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2년차 여교사의 말이다.

    “교사가 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엄한 교사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한다’는 얘기를 누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랄한 성격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죠. ‘어떻게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제압할까’ 하는 밀고 당기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처음에는 서글펐지만, 지금은 잘 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보다 더한 학부모’

    강남구 F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여교사 한모씨. 지난해 한 사립대 교수라는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지난번 시험문제의 제시문이 불분명하다”며 “앞으로 문제를 똑바로 내라”고 한씨를 질책했다.

    지방 교대 출신으로 서울 강남구 G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 그는 얼마 전 학부모와 면담하다 언성이 높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이들끼리의 다툼 때문에 만난 면담 자리에서 한 학부모가 “그런 교대가 있는 줄 몰랐다”며 김씨의 출신 대학을 비웃은 것. 김씨는 “교사의 사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일부 학부모는, 어디서 알았는지 교사의 학벌, 옷차림,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교사의 마음을 뒤흔든다”며 “가정에서 부모가 세워주지 않는 위상을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세우려니 더 힘이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식 맡긴 죄인’은 옛말이 됐다. 과거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호출하면 가슴부터 철렁했었다. 학교 교육에 대한 전권을 교사에게 위임하고 교사의 지도에 지지를 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가 꾸중을 듣거나 수업내용에 불만이 있으면 수시로 이의를 제기한다.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서울 강남구 중학교에 재직하다가 동작구로 자리를 옮긴 한 남교사는 “상당수 학부모가 고학력인데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변화의 배경을 분석했다.

    “학부모의 불만은 대개 생활지도와 학습에 대한 것으로 나뉩니다. 비강남 지역 학부모들은 생활지도 부분에 주로 불만을 표시하는 반면 강남지역 학부모들은 숙제, 시험문제 등 학습에 대한 건의를 많이 합니다. 다른 학교나 학원과 비교해 학습량, 시험, 영어교육 등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거나 따지는 식이지요.”

    서울 강서구 백석초등학교 이득세 교감에 따르면 요즘 학부모들은 교과과정, 내용, 급식, 등하교 지도, 학교 운영 전반에 의견을 제시한다. 부모의 처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도 있기에 이런 관심은 학교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교감은 “가끔은 학부모의 간여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 학기 담임교사가 결정된 뒤 ‘다른 교사로 바꾸라’는 전화가 빗발치거나, 사소한 일에 대한 억지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교장, 교감은 물론 교육청에 탄원을 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애들 교실에는 에어컨이 없으니 교무실에 있는 에어컨도 없애라’는 식으로요.”

    ‘열린 교육’의 경착륙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교사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중재할 만한 법적 기구나 장치가 없다.

    교실붕괴는 언제, 왜 시작된 걸까. 교총의 설문조사에서 영화·드라마·오락프로 등 대중매체의 영향(33%)이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학부모의 과잉보호(25.1%)와 공교육에 대한 불신(22.5%)이 그 뒤를 이었다. 학생들의 반항과 교사폭행이 2000년대 들어 심화됐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지역 중학교에서 23년째 근무해온 서울 강서구 수명중 교사 김창학씨의 말이다.

    “제가 느끼기에는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교사들이 급격히 무기력해졌습니다. 이는 이해찬 장관 시절 주창한 ‘열린 시대 열린 교육’이념 탓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공부만 중요한 게 아니며,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가도록 한다는 취지였지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체벌을 금지하라는 지침도 내려졌습니다.”

    아이들의 숨통을 죄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열린 교육’이 연착륙에 실패,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실제 아이를 꾸중하거나 체벌할 때 “인권위에 제소하겠다” “이러면 동영상 찍어 올리겠다”는 등의 반응은 흔한 일이다.

    지난 정권의 인권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이에 한몫했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체벌 금지 등의 학교인권 문제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매스컴에서는 과잉체벌의 문제점과 비리교사 실태를 연이어 보도했고, 학생과 학부모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개선의 움직임은 좋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 과도기를 겪으며 학교 구성원들은 서로 생채기를 냈다. 학교 전반에 걸친 문제였지만 책임의 화살은 교사에게 돌아왔다. 실제로 문제의 상당 부분은 교사의 변화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교사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상황을 정화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아직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이지요. 두발자유, 체벌 등 매스컴에서 이슈화하는 학교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유리한 부분만 취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학생에 대한 규제와 체벌 등이 조금이라도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 정도면 신고해도 되겠네’라고 여깁니다.”

    학교인권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각이 교실붕괴로 이어진 상황에 대한 김창학씨의 분석이다.

    핵가족과 저출산 시대를 맞아 변화한 가정환경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형제자매 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열린 교육’의 특성인 자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크게 제재를 받지 않고 자랐습니다. 혼자, 또는 둘인데다가 부모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싫은 소리를 들은 경험도 적었고요. 반면 학교환경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변화한 가정환경을 학교환경이 따라잡지 못해 학생과 교사 간의 마찰로 이어진 것이지요.”

    학원, 인터넷 등 학교 외에 지식을 구할 곳이 많아진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천의 한 중학교 여교사는 “과거에는 손으로 오리고 붙이던 것들이 지금은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 내용을 구성해 인쇄하면 끝이다. 아이들 역시 각종 정보기기와 인터넷에 친숙해서 모르는 게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학습과 관련된 것은 물론 교육계 이슈에도 훤하다. 중학교는 최고 처벌이 권고전학인데, 여러 경로로 얻은 처벌 관련 정보를 통해 그 수준에 미치지 않을 정도로만 나쁜 짓을 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기죽은 교사들

    서울 H중의 여교사 임모씨는 수업 도중 책상에 코를 박고 딴 짓을 하는 학생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아이는 구멍 난 책상 아래에 휴대전화를 놓고 DMB를 보는 데 열중해 있었다. 책상까지 뚫고 수업시간에 오락프로를 보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 싫은 소리를 했더니 아이는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욕설을 했다.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임씨는 꾹 참았다. 과거에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청에 체벌에 대한 항의전화를 한 일이 떠올라서다.

    “체벌이 문제가 되면 학교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좀 참지’ 하는 눈치를 줍니다. 이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언론 보도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는 식으로 나오고요. 결과적으로 질타의 대상은 교사라는 걸 알기에 갈등상황은 가능한 한 피하고자 합니다.”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교실붕괴는 “교사가 시대를 따라 가지 못해 학생으로부터 소외당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학생 또는 학부모와 분란이 있을 때 곤란한 쪽은 교사이지 학생·학부모가 아니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에 따르면 교권침해를 다룬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의 대응 매뉴얼은 없다. 현재 ‘교원예우에관한규정’ 제6조에 학교분쟁이 발생하면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열도록 돼 있으나, 이는 의무사항도 아니고 위원회는 중재권도 없다. 사실상 중재할 만한 법적 장치가 없다. 퇴학 등 벌점제가 활성화돼 있는 고등학교는 그래도 사정이 낫다. 최고 처벌이 권고전학인 초·중학교는 아무런 처벌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인천지역 한 중학교 여교사는 “학생에게서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해도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 교원단체 상담소에 얘기해도 ‘그냥 참아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고 말했다.

    “학부모나 학생에게서 욕설이나 폭력을 겪어도 대부분의 교사는 문제 삼길 원하지 않습니다. 규정에 따라 처분하려 해도 교사로서 교육적 책무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지요. 학생부로 넘겨도 마땅한 방법이 없고요. 이런 일을 한번 겪으면 교육자로서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인천 삼량고등학교 황영남 교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약 5년 전부터 교직을 그만두겠다며 힘들어하는 교사들을 달래는 일이 잦아졌다. 학생부를 서로 맡으려 하지 않아 교사들을 독려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교사가 최소한의 본분에만 충실하자는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선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꾸중을 받아들일 만한 아이에게만 생활지도를 한다는 것. 경기도 일산의 한 중학교 여교사는 “처음에는 수업준비는 물론 아이 하나하나의 인성지도에도 열성을 기울였지만, 노력해도 먹혀들지 않자 차츰 지쳐갔다”며 “지금은 건드려서 시끄러워질 반항아들은 아예 못 본 척 지낸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현행법상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법원도 체벌 교사를 사법처리한다. 하지만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규정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때에 따라 체벌지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체벌을 금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현장 교사들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폭력적인 체벌은 대부분 사라졌다. 폭력적 체벌이란 대개 매를 드는 체벌을 뜻한다고 한다. 문주현 바른교육실천행동 사무국장은 “시각에 따라 같은 체벌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뜀뛰기, 서있기와 같은 고행적 체벌 외에 매로 때리는 행위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체벌을 금한다면 이를 대체할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체벌 없이 교사 개인이 교실붕괴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교사의 말에 불복종하는 경우에는 학교 차원, 혹은 교육청 차원에서 학생들을 강경하게 처벌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사는 온화하게 학생들을 대할 수 있고,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생활지도는 전문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사는 교과지도에만 충실하고 상담과 같은 생활지도 직원을 따로 둬야 한다는 것.

    “외국에선 생활, 상담, 보건 지도를 교사와 전문 직원이 6:4 정도로 나눠 맡습니다. 교사가 생활지도를 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전문직원에게 넘기는 식입니다. 저희 학교는 최근 분야별로 생활지도 교사를 따로 두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출담당, 결손담당, 흡연담당 식으로 각 교사가 영역을 나눠 지도한다는 구상입니다. 학생부의 기능이 축소된 만큼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삼량고 황영남 교감은 “사립학교는 따로 규정을 만들어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공립학교는 그마저도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이 지긋한 평교사는 더 만만”

    지난해 경기도 일산의 한 중학교에 부임한 교사 강모씨. 교육대학원 출신의 그는 다양한 장래 계획을 갖고 있다. 박사과정을 밟아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학교에 남는다면 관리직을 경험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처음부터 관리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보니 아이들이 주요 과목 교사가 아니거나 나이가 많은 교사를 더 깔보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선배 교사들의 비애감이 컸습니다. 승진을 못한 연세 지긋한 수학선생님은 자격지심에서 더 권위적으로 아이들을 대하시죠. 아이들이 워낙 영악해서 교사의 학력, 경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집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고요.”

    강씨는 “방과 후 보충수업 신청을 받으면 실력이 없거나 평판이 좋지 않은 교사들은 수강생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며 “스스로 당당해지려면 자기계발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인 교사직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면서 과거 교사에 비해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와 승진에 대한 관심이 월등히 높아졌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의무 연수 과정도 많아졌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자기계발 붐은 비효율적인 승진제도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수명중 교사 김창학씨의 말이다.

    “현재 승진구조는 점수를 위한 점수 따기 경쟁입니다. 경력 70점, 근평 100점, 연구점수 3점, 보직 2.5점, 시범 연구학교에는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80%이상 연구점수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립학교 교사는 드물지요. 점수를 많이 따기 위해 대학원 두 곳을 졸업한 교사도 있습니다. 주말이나 방학 때 수업을 듣고 논문 없이 졸업장만 받는 ‘눈 가리고 아웅’식 교육대학원들도 활개를 치고요.

    연수도 비효율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활용도가 전혀 없는 교육에 학교당 교사 1명씩 오라가라하는 연수과정이 수두룩합니다. 교육청 과정 외에는 모두 유료인데, 연수점수가 평가에 반영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승진점수에 연수점수가 포함된 1998년부터 교사들은 ‘연수피로증’을 앓고 있습니다.”

    “교사 스스로 소외당한 것”

    승진점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연수와 대학원에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기계발에 힘쓰는 교사도 적지 않다. 서울 H중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4년차 여교사 김모씨는 주말마다 물리교사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별, 우주선, 식물, 동물과 관련된 연구와 기사들을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시청각에 적응이 된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코믹 UCC를 제작하기도 한다. 김씨는 “세대에 상관 없이 우리 학교 교사들은 교수법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다. 오히려 오랜 경력의 선배 교사들이 젊은 교사들에게 ‘새로운 실험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먼저 요청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2007년 한국교총은 교원, 고등학생, 학부모, 교·사대 학생 1249명을 대상으로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종합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교사의 80%가 과거에 비해 교원 존중 풍토가 저하됐다고 답했다. 특히 중·고등학교 교사는 83%가 저하됐다고 응답했다. 반면 고교생 대부분은 교원 존중 풍토가 변함이 없거나 향상됐다고 답해 교사와 학생 간 인식차가 컸다. 학부모는 저하됐다는 의견과 변화가 없다는 의견이 각각 47%, 35%를 차지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라 대중적인 인기는 있지만 존경받는 직업은 아닙니다. 사회 경제적 영향력도 크지 않고요. 물질만능 교육으로 사회의 교직에 대한 존중감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교실붕괴로 인한 무기력증까지 더해 회의를 느끼는 교사가 많습니다.”(교총 김동석 대변인)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학부모 입김이 센 곳에서는 학벌과 나이를 들먹여 교사를 무시하기 십상입니다.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아닌 안정성에 매력을 느껴 우수 인재가 많이 몰리고 있는데, 학교에 들어와서 박탈감을 갖게 되죠. 요즘은 쉬는 방학 일수도 얼마 되지 않아 방학이라는 장점도 예전만 못하고요. 우수한 인재들이 딱 3년 지나면 똑같아집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하다 스스로 지치는 것이지요.”(황영남 교감)

    그러나 학교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권위주의에 젖은 일부 학교는 체벌이 금지되면 학교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자포자기해서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사들이 ‘남 탓’만 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시대가 변했는데 교사가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소외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있던 얘기입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다면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옳은 방향입니다. 이를테면 학생들의 문화나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부터 근무학교, 지역에 대한 분위기까지 학생들의 환경에 관심을 갖는 식으로요.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참고, 또 참고…

    교사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도 없다. 철이 없어 제멋대로 구는 아이와 부대끼며 ‘울컥’ 하는 순간을 몇 번이고 참아내야 한다.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만큼이나 정신적인 고통이 따른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부나비처럼 오가는 고객들과 달리 교사로 인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는 아이들의 인성과 미래를 책임져야 하니까.

    최근 교육계는 학교붕괴, 학교자율화, 학교정보공개, 교원평가제 등 수많은 현안을 떠안고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게 교육계라지만, 학습지도는 사교육이, 인성지도는 대중매체가 대신하는 오늘날 학교의 모습은 더 쓸쓸해 보인다. 한 초등학교 노교사는 “그럼에도 학교 울타리에 있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늘 우스갯소리로 교사 친구들에게 너와 나는 ‘겨레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거창한 단어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나의 첫째 소임도 마지막 소임도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참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가르친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성과가 딱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조화로운 인성을 기르는 초등학교에서 성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많은 면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교사다. 학부모들은 교사가 다 해주기를 바란다. 교사 본연의 일보다 사소한 요구가 크게 부각되고, 그로 인한 시비가 생기면 모두 교사 탓이 된다. 교육당국자 및 사회구성원들은 보이지 않는 교육이라는 행위를 두고 포장하고 실적을 쌓으란다.(…)

    그러나 나는 겨레의 스승이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일주일 3번씩 수업을 해도, 거칠고 비뚤어진 심성으로 친구와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아이로 하루가 무거워도, 내 하루하루가 3D업종과 별반 차이가 없어도, 상상 이하의 박봉을 받아도 나는 괜찮다. 나는 좋다. 왜냐하면 새순과 같은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삶을 허락받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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