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MB 입사동기’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는 없었다, 사장 시절 이라크와 계약 잘못해 부도”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7-10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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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 ‘이라크 손실은 이명박 탓’이라 생각”
    • “밀어붙이기 계약이 현대건설 부실, 광우병 파동 불러”
    • “MB는 관리·재정 전문이라 토목 몰라…대운하는 재앙”
    • “배 안 띄우고 수질개선사업으로 바꾸면 지지 얻을 것”
    • “현대건설 성장은 정주영 덕분…‘정주영 신화’만 있다”
    • “대선 때 현대건설 출신들의 ‘MB 반대운동’ 막았다”
    • “지시와 복종의 ‘건설회사 스타일’, 국정에선 안 통해”
    ‘MB 입사동기’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최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이상백(李商伯·66) 전 미국 벡텔사(社) 부사장을 만났다. 이 전 부사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경남 진주 출신인 그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조금 늦게 입사했지만 동기처럼 지냈다고 한다. 영어 실력 덕분에 현대건설에선 미국 알래스카, 베트남 등 주로 해외 현장에서 토목 분야 업무를 맡았다.

    10여 년 뒤 그는 현대건설에서 나와 미국으로 갔다. 미국 중소 건설회사의 현장소장으로 일하던 중 설계·건설·토목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벡텔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벡텔은 당시 그가 맡고 있던 공사를 발주한 원청회사였다. 그가 공기(工期)에 맞춰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채용을 결정했다는 것. 벡텔은 종업원 4만6000명, 연매출 180억달러(하도급 제외) 규모다.

    그는 부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부인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 앞으로 여기서 살자”고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벡텔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입사하자 ‘32억달러 규모의 리야드 국제공항 시공계획을 짜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후 세계 각지 공사현장을 지휘했다.

    슐츠 전 국무장관 측근

    1995~2005년에는 벡텔그룹 한국지사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벡텔은 원자력발전소 영광 1, 2호기와 고리 3, 4호기를 설계했고 원전 제작기술을 한국 측에 제공했다. 또한 이 회사는 고속철도 서울~동대구 구간 감리를 맡으면서 고속철도 시공기술을 한국 철도시설공단에 전수했다. 그는 1984년 벡텔 부사장이 됐고 2000년에는 수석부사장에 올랐다가 2007년 퇴임했다. 한국외국어대 총동문회는 그에게 ‘2005 자랑스런 외대인상’을 수여했다.



    그는 벡텔에서 인생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그가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조지 슐츠 벡텔 회장이 레이건 정부의 국무장관에 발탁되면서 그 역시 슐츠 장관의 참모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토목 전문가이면서 정치, 외교, 국제협상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식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전 부사장은 4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입사 동기’ 이명박 대통령의 현대건설 재직 시절(현대건설의 성공신화) 및 현재의 국정수행(대운하, 미국 쇠고기 협상)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했다. 그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명박 평가’는 무척 흥미로웠다. ‘미화(美化)’나 ‘근거 없는 비판’이 배제된 정제된 표현으로 보였고, 그간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인 중 한 명이므로 이 대통령의 과거·현재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용인돼야 한다. 다만 이 전 부사장의 견해 역시 개인의 주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요즘엔 어떤 일을 하십니까.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국제문화대학(Intercultural Institute of California) 재단이사장에 취임했어요. 이 대학은 미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유일한 한국학 대학원으로 석·박사 과정을 전문으로 합니다. 재학생 대부분은 비한국계 미국인이나 외국인이죠.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고 미국의 교역 파트너로는 5위권 국가입니다. 그러나 미국에 한국 전문가가 많지 않아요. 이 대학을 미국 내 한국학의 메카로 성장시키는 한편 한국을 잘 이해하는 졸업생들을 미국 정부와 기업에 진출시키고자 합니다.”

    ▼ 현대건설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다고 들었는데, 이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부지런함은 전세계에서 금메달감이에요. 신입사원 때부터 회사에 가장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죠. 새벽 5시면 출근해 일했으니까. 이명박 사원에게는 현대가 ‘생명’이고 ‘모든 것’이었어요. 저로서는 그런 헌신을 이해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기업의 처지에서는 정말 훌륭한 직원이었죠. 그런데 정치라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부지런함만 갖고는 잘 안 되죠.”

    ‘MB 입사동기’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현대 재직 시절 정주영 회장과 동석한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이 대통령이 30대에 사장이 되는 등 고속 승진을 한 배경은 뭐라고 보십니까.

    “그분은 다른 직원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근면 성실, 이 한 가지로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은 거예요.”

    “이라크 미수금이 부도 원인”

    ▼ 이명박 대통령은 중소기업인 현대건설을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워낸 주역으로 평가돼왔고, 이러한 ‘샐러리맨 신화’는 대통령이 되는 발판이 됐는데요.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는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나 내가 입사할 때 이미 현대건설은 국내 5대 건설사였습니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주인 정주영 회장의 덕으로 봐야 해요. 모든 아이디어, 전략, 결단은 정 회장에게서 나왔죠. 오너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전세계 기업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스태프에 불과해요. 정 회장이 현대건설의 리더십 그 자체였고 이 대통령은 스태프 중의 수장이었다고 할 수 있죠.”

    ▼ 이 대통령의 현대건설 재직 시절 활약상을 주제로 한 TV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현대건설 출신자들 사이에서 그 드라마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이 나왔죠. 아까 말했듯이 현대의 임원들은 일종의 ‘정주영 복제인’입니다. 주역은 정 회장이죠.”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2년에 낸 회고록에서 “드라마에선 조선소 건설이나 자동차 등이 다 그분(이명박 대통령)이 한 것처럼 나오니까 사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도 많이 생겼다”고 기술한 바 있다.

    ▼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재직 시절의 서초동 땅 매입과 관련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당시 회사에서 보너스로 땅을 줬다’고 해명했고요. 이 대통령이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도덕성 문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 대통령은 회사 일을 하면서 사적으로 이익을 취한 적이 없어요. 정 회장은 아랫사람이 회삿돈을 편취하거나 적당히 하는 걸 용서하지 않아요. 이 대통령도 직무와 관련해 윤리적 기준이 엄격했습니다.”

    ▼ 이 대통령에게 ‘불도저’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데요.

    “그분은 강한 인상을 갖고 있지만 실은 순수하고 유순한 분이에요. 회사에서도 직원에게 욕을 하거나 함부로 대한 적이 없어요. 그런 인품이 아니에요. 다만 일에 서만큼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목표를 정하면 좌우 안 보고 밀어붙이죠.”

    ‘2000년 현대건설 회계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부도가 난 2000년 2조98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으며 이와 같은 대규모 손실의 원인은 이라크 장기 미회수 공사대금 1조703억원이라고 돼 있다. 공사비를 못 받은 이라크 공사는 주로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1977~88년)으로 재임 중이던 1980~85년에 수주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 “1970년대 후반기 현대건설 내부에서 ‘이라크는 리스크가 가장 높은 나라’라는 분석이 있었고 국내 대다수 건설사는 이라크 진출에 신중한 자세를 취했지만 이명박 사장은 이라크 진출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는 이라크 공사비 미회수 부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미수교국인 이라크의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자신이 직접 이라크 고위 정치인들과 접촉해 이라크 정부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한 뒤 공사를 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로 공사비를 받지 못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다. 이라크 공사대금 미회수의 ‘책임소재’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이 책에서 “정주영 회장은 그 책임이 그 시장을 개척한 내게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정 회장의 생각을 미뤄 짐작하는 표현방식이지만, 이라크 미수금 발생 책임에서 자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다음은 자서전의 관련 내용이다.

    자서전, 본인의 미수금 책임 언급

    “이라크는 현대건설에 참으로 매력적인 시장이었다.…이라크의 투자계획은 야심 찬 것이었다. 3차 5개년 계획을 위해 450억달러를 투입했고, 1985년까지 시행될 4차 5개년 계획에는 750억달러를 쏟아 부을 예정이었다.”(202쪽) “우리는 이라크 혁명정부와 줄을 대기 위해 탐색전을 펼쳤다.…마침내 나는 바그다드 시장 와하브를 면담했다.…와하브의 소개로 이라크 주택건설성 장관과 상공장관을 만났다.”(203~209쪽) “현대건설은 얼마 뒤 이라크에서 7억2000만달러짜리 알무사이드 화력발전소 공사를 턴키 계약으로 따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솔직히 말하면 이 같은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할 능력이 못 되었다. 이라크도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기자재를 공급받고 엔지니어링에서도 도움을 받으며 시공해보라’고 조언까지 해가며 국가적 사업을 우리에게 맡겼다.…주택건설성에서도 8억2000만달러짜리 사마라 팔루자 주택 단지 공사를 계약해주었다.”(211쪽) “이란·이라크 전쟁은 현대건설은 물론 내 신상에도 미묘한 파장을 몰고 왔다. 나는 이라크 상륙전에서는 보기 좋게 승전보를 올렸지만 이란·이라크 간의 진짜 전쟁 때문에 나의 ‘전쟁’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전쟁으로 인한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아직도 회사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216쪽)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회사가 손해를 보게 되었다면 관련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조직의 냉엄한 생리다. 전쟁 발발로 공사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원유로 받기로 했으나, 정 회장은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못한 책임이 그 시장을 개척한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 회장과 내가 무슨 사안을 놓고 다투거나 적대감을 표출한 적은 없었다. 그저 냉랭한 기류가 흘렀고 대화가 사라졌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분위기 변화도 정 회장과 나와의 오랜 관계에서 본다면 무시하지 못할 사건이었다.”(217쪽)

    ‘MB 입사동기’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이상백 전 부사장은 벡텔사 재직 시절 여러 나라 정부와 공사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현대건설의 이라크 공사비 미회수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이라크와 계약을 잘 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현대건설이 1980~85년 이라크에서 공사비를 받지 못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때 나도 중동에서 벡텔의 공사를 맡고 있었어요. 미수금이 발생한 실질적 원인은 계약주체인 갑과 을 외에는 아무도 상세히 알 수가 없어요. 모든 계약에는 부칙과 조약이 있어요. 계약서가 공개되지 않으니 정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죠.”

    “피가 안 돌아 스톱하는 것”

    ▼ 그렇다면 현대건설 사장으로서 이라크 사업을 주도한 이 대통령의 책임은 어느 정도로 보면 되나요. 정주영 회장이 모든 것을 최종결정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라크 미수금도 정 회장의 책임으로 봐야 하지 않나요.

    “오너는 사업의 A부터 Z까지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미수금 발생에 책임이 가장 큰 쪽은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죠. 일 시키고 나서는 나중에 트집 잡아 공사비 안 준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라크 공사를 직접 추진한 현대건설 사장도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이라크 정세 불안에 대한 위험분석을 너무 낙관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거죠.”

    ▼ 이라크 미수금이 현대건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을까요.

    “정확한 피해규모나 계약 내용을 모르니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이라크 공사는 당시 현대건설이 시행한 최대 프로젝트였어요. 그런 사업에서 대금을 못 받게 됐으니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봐야겠죠. 건설회사 사장의 제1의 임무는 기성금(사업 진척 상황에 따라 일정 기간마다 지급받는 공사비)을 제때 받아내는 일이죠. 기성금이 안 들어오면 직원 급료 못 주고, 이자 못 내고, 한마디로 피가 안 돌아 스톱(부도)하는 거죠.”

    ▼ 현대건설과 이라크의 공사 계약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계약 과정에서 실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앞서 얘기했듯 이라크 정세와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에 대한 위험 요인 판단에 문제가 있었고, 위험 방지책 마련도 소홀히 했을 수 있죠. 또한 계약서 문구에 공사비를 안 줄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이상백 전 부사장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도 “사회, 문화적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위험성을 경고하는 주변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이라크 정부와의 계약을 밀어붙인 것이 현대건설 부도의 원인이 됐고, 미국 정부와의 쇠고기 수입 협정을 밀어붙인 것이 정권의 위기를 불렀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라크 대규모 미수금 발생 건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은 거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불가항력적 사건인 이라크·이란 전쟁의 발발과 이라크 정부의 고의적인 지급의무 회피가 주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사후 현대건설 측이 이명박 당시 사장에게 미수금에 대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점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사장은 쇠고기 협정의 경우 정부가 계약을 허술하게 한 것도 문제지만 재협상도 문제라고 했다.

    “인감도장 찍으라면 긴장하면서도 계약서에 사인하는 건 쉽게 생각해요. 계약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나 법률가도 부족하다고 봐요. ‘쇠고기 협정 무효화와 재협상’ 대신 ‘보충적 재해석’ 등의 법률 방식도 있기는 한데…. 정부는 광우병 파동에 대한 후속대책에서도 ‘모든 옵션을 치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여러 번 실기(失期)했어요.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서 사업하는 외국 기업들은 ‘한국은 재협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평가해요. 오전에 계약하고 오후에 연락해는 ‘문구 좀 수정하자’고 요구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요. 특히 한국에서 ‘갑’은 ‘을’에게 언제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계약은 상호신뢰의 문제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선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돼요.”

    이상백 전 부사장은 여러 나라에서 벡텔이 시공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봤다.

    ▼ 국내 유력 건설회사들은 한반도대운하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은 꼭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재직 시절, 사장이 되기 전까지는 관리·재정 파트에서 일했어요. 당시 현대건설의 인사 스타일은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도록 하기보다는 특정 파트에서 쭉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었죠. 이 대통령은 토목은 몰라요. 한반도대운하는 전 국토가 영향을 받는 토목사업인데 말이죠. 내 전문분야여서 대운하 사업 내용을 관심 있게 살펴본 바 있는데, ‘해서는 안 되는 사업’입니다. 재앙이 될 거예요.”

    “대운하는 해선 안 되는 사업”

    ‘MB 입사동기’ 이상백 전 美 벡텔 부사장

    2007년 8월 이명박 후보 캠프의 대운하 관련 회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도 “이 대통령은 관리·재정 파트에서 일했다”는 이 전 부사장의 얘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내가 배치된 부서는 본사 공사 관리부였다.”(93쪽) “10월초 나는 처음으로 현장 경리를 맡아 나갔다.”(96쪽) “타이 현장에서 나는 경리 사원이었다.”(99쪽) “귀국했더니 정 사장은 나를 서빙고에 있는 현대건설 중기사업소의 관리과장으로 발령을 냈다.”(112쪽) “중기공장의 관리부장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124쪽) “1972년 나는 관리담당 상무가 됐다.”(131쪽)

    ▼ 왜 대운하를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고 보십니까.

    “토목사업은 계량화, 수치화한 사업이에요. 10조원이 넘는 국가적 규모의 토목사업을 시행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경제적 타당성입니다. 비용 대비 기대효과가 더 크다는 점이 수치로 입증돼야 해요. 운하는 한마디로 뱃길을 여는 거죠.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처럼 이동거리 단축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한반도대운하에선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죠. 또 한국에서 운하에 배를 띄워 실어 나를 물류가 어떤 게 있죠? 물량은 얼마나 될까요? IT 제품은 비행기로 수출하고, 해안에 컨테이너 터미널 잘 갖춰져 있고, 농수산물은 신선도 문제로 차량으로 수송해요. 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 물류효과에 대한 답변이 군색해지자 관광 효과를 제시하기에 웃어버렸어요.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아요.”

    ▼ ‘세계적 추세’는 어떠합니까.

    “내가 중국 싼샤댐 설계에 참여해 느낀 점은 자연은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환경에 영향을 주는 대단위 치수(治水)사업은 이제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죠.”

    ▼ 운하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 하겠다는 건지, 연기하겠다는 건지, 보류하겠다는 건지 불분명해요. 토목을 잘 모르는 대통령에게 밑에 있는 스태프들이 잘못된 보고를 올리고 있는 거예요. 운하 논란으로 인한 대통령 리더십의 손상은 국력낭비 요소죠. ‘식수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요. 배를 띄우는 데 집착하지 말고 수질개선 쪽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수질 문제 관련 기관인 수자원공사 사장에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이 내정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는데요.

    “그분이 원래 수자원공사 출신인데 현대건설에서 일한 것으로 압니다. 수자원 관리는 공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업무이므로 이윤추구를 우선하는 민간 건설업자 출신이 맡는 건 문제라고 봐요.”

    “프랑스, 독일에서 배우라”

    ▼ 한때 회사를 함께 다닌 건설회사 CEO가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건설업은 아이디어,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사업이에요. 인류의 문명도 건설에 기반한 것 아닙니까. 또 건설업은 금융산업이고 정보산업이죠. 따라서 건설업을 잘하면 어떤 비즈니스도 잘할 수 있다고 봐요. 건설회사 CEO 경력은 이런 점에서는 국정(國政) 운영에 큰 보탬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건설업에서는 계약하고 기성금 탁탁 나오는 것만 생각합니다. 생산성, 흑자 딱 두 가지뿐이죠. 국정은 그렇지 않아요.”

    ▼ 국정에서도 효율과 생산성은 중요한 가치라고 봅니다. 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 많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는데요.

    “그런데 언제 경제가 죽었었나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참 고생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이 족쇄가 될 테니까. 국민은 오랫동안 기다려주지 않아요. 빨리 피부로 느끼고 싶어하는데 유류가 인상 등 대외여건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죠.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성장 우선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2만달러 시대 경제 프레임은 달라야 해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2만달러에서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갔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양극화나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는 선진국으로의 성장은 어렵다는 거죠. 양극화 해소 노력이 오히려 성장동력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중요한 건 사회복지나 의사소통의 문제예요. 국민이 원하는 것이 ‘웰빙’이라면 정부 정책도 성장 제일주의가 아닌 웰빙으로 바꿔야 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조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건설회사 사장은 자기의 언어를 부하들이 빨리빨리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손발 맞춰온 측근들만 중용하죠. 말 한마디에 기계처럼 착착 움직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측근 그룹에서만 사람 뽑아 쓰는 이런 방식으로 정부 인사를 하면 국민이 등을 돌려버려요. 옛날 한국 건설회사에선 오너가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했는데 대통령은 장관, 수석, 공무원을 그렇게 다뤄선 안 돼요. 전부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어찌 하오리까’라고 하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죠. 현 정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개선이 필요해요.”

    레이건의 인사 스타일

    ▼ 대통령과 참모의 ‘소통’ 문제를 말하는 건가요.

    “내 일화를 얘기하면, 벡텔사의 조지 슐츠 회장은 ‘내가 레이건 정부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나를 포함한 측근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말했죠. 그런데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가 있던 런던으로 대통령 전용기를 보냈어요. ‘국무장관을 맡아달라’고 했죠. 그러자 슐츠 회장은 조건을 내걸었어요. ‘내게 맡겼으면 모든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들어줬죠. 대통령은 널리 인재를 찾고 이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소신껏 일하도록 해주어야 해요. 참모에게 권한을 줘야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팀워크가 생기는 겁니다. 2만달러 시대에는 ‘지시와 복종’이 아닌 ‘팀워크’로 국정을 운영해야 해요.”

    ▼ 현 정부는 정부조직 축소 등 작은 정부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작은 정부 만들기에도 순서가 있어요. 프로세스를 정확히 짜서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공감대를 얻어가야 해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빠졌어요. 기업체에서 감원하듯 갑자기 대기발령, 재교육하면 공무원들은 반발하게 됩니다.”

    ▼ 국민과의 소통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CEO 대통령’이라는 말이 안 나왔으면 합니다. 누가 대통령의 부하죠? 국민이 대통령의 부하인가요? 이 대통령은 근면, 성실로 30대에 사장이 됐는데 그건 정주영 회장의 평가기준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죠. 대통령은 지금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국민의 대통령 평가기준은 근면, 성실이 아니죠. 오히려 많은 사람은 ‘대통령이 새벽부터 일어나 뛰는 바람에 우리는 피곤하다. 웰빙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해요.”

    “두 손 들고 ‘다 가져가시라’ 하라”

    ▼ 정부의 국정 기조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5년 단임제 한국 대통령은 4년 중임제 미국 대통령과는 사정이 달라요. 충분히 준비했다가 당선되자마자 일사천리로 실행에 옮겨야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어요. 초기부터 밀고나가야 일이 되는데 그게 되질 않아요.”

    ▼ 지난 대선 때 현대건설 측은 선거에 관여하지 않았죠.

    “일부 현대건설 출신들이 ‘이명박 반대운동’을 펼칠 움직임을 보여 내가 못하게 말렸어요. 이 대통령의 현대건설 재직 시절에 대해 꼬투리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는 것이고. 선거를 앞두고 친정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오면 해당 후보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일이 되겠다 싶었죠.”

    이 전 부사장은 “건설업에선 협력업자들이 화 났을 때 맞서면 손해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고 하면 망한다. 그때는 두 손 들고 ‘다 가져가시라’라고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기업인 출신이 국가 경영도 잘한다’는 평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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