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진상조사 보고서

  • 입력2009-04-08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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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오보’거듭 사과드립니다



    진상조사위, 신동아의 저널리즘 기본 간과 확인 책임있는 언론으로 거듭나는 대책 마련해 시행

    동아일보사는 ‘신동아 미네르바 관련 오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2009년 2월16일부터 3월16일까지 실시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최맹호 상무이사)는 출판국장, 신동아 편집장 등 사내 조사 대상자들로부터 경위서와 취재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받아 면밀히 검토하고 심도있는 면담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사외 관련자들에 대한 심층 면담도 했습니다.



    조사위는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과 이민웅 한양대 언론정보대 명예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조사위 활동 전 과정과 조사 내용 및 결과를 설명하고 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을 검증 받았습니다.

    조사 결과 신동아는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 검증과 확인을 소홀히 했습니다. ‘게이트 키핑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취재 윤리에 어긋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미네르바’가 아닌 사람의 기고문과 인터뷰가 신동아 2008년 12월호와 2009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동아일보사는 신동아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한 것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오보에 대한 책임을 따져 출판편집인, 출판국장, 신동아 편집장을 엄중 문책하기로 했습니다.

    동아일보사는 독자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명심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노력을 강화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원칙과 구체적인 기준을 재정립하여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실천하겠습니다.

    -게이트키핑이 충분하고 확실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엄밀한 내부 검증 체계도 갖추겠습니다.

    -신문 중심이었던 심의 대상을 잡지, 온라인뉴스 등으로 확대하겠습니다.

    -기존의 독자인권위원회를 ‘독자위원회’(가칭)로 확대 개편해 독자인권 보호뿐만 아니라 독자로부터 기사에 대한 평가와 검증을 받는 체계를 만들겠습니다.

    동아일보사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보다 책임있는 언론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합니다.

    東亞日報社

    Ⅰ.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및 활동

    1. 조사위 구성

    동아일보사는 2009년 2월16일 자매지인 ‘신동아’에 기고문(2008년 12월호)을 싣고 인터뷰(2009년 2월호)를 한 K 씨가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출판국의 보고를 받고, 당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원장에 본사 최맹호 상무를, 조사위원에 임채청 미디어전략담당이사대우, 권순택 논설위원,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이인철 편집국 사회부장, 김승환 경영전략실 경영총괄팀장을 임명했다. 경영전략실 이승헌, 이재명 기자, 편집국 사회부 이명건 전성철 신광영 기자는 실무진행자로 참여했다.

    동아일보사는 2월17일자 동아일보 A1면과 신동아 3월호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다짐했다.

    2. 조사 방법

    조사위는 17일 신동아 K 씨 보도와 관련한 조사 대상자를 선정하고, 조사 과정에 2명 이상의 조사자가 참여토록 했다. 조사 내용의 기록을 위해 실무진행자가 조사에 배석했고, 외부 관련자 조사 과정에는 편집국 기자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신동아의 편집장과 기자들에게 각자 K 씨 보도 관련 경위서를 제출받았으며 조사위원들이 이를 토대로 1명씩 면담을 실시했다. 면담 결과를 조사위원들이 공유한 뒤 진술이 엇갈리거나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를 만나 추가 면담을 실시했다. 송문홍 편집장과 K 씨 보도에 관여한 기자들의 동의 하에 당사자들의 이메일 내용도 확인했다.

    송문홍 편집장에게 K 씨를 연결한 권모 씨는 모두 3차례, K 씨는 2차례 만나 조사를 실시했다. K 씨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누리꾼 3명 중 2명은 1차례 면담 조사를 실시했으며, 나머지 1명은 조사를 거부해 이메일 및 채팅을 통해 조사위원과 문답을 했다.

    면담 및 조사 활동과는 별개로 진상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①권 씨와 K 씨 간에 나눈 인터넷 채팅록 중 권 씨가 참고하라며 송문홍 편집장에게 보낸 것 ②송 편집장과 권 씨, 신동아팀 송홍근 기자와 권 씨가 각각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③신동아 2008년 12월호 K 씨 기고문 원문 ④신동아 2009년 2월호 K 씨 인터뷰 녹취록 등이다.

    3. 조사의 어려움

    강제 조사권이 없는 언론사로선 주로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해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진술이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추가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입증하려 노력했으나 K 씨 경력 등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외부 인물들은 면담에 응하지 않거나 구체적 대답을 회피하는 일이 많았다. 행위의 동기나 목적도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위는 보고서 발표 이후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그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4. 외부 자문위원들의 검증

    정성진 전 법무부장관과 이민웅 한양대 언론정보대 명예교수를 외부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3차례에 걸쳐 조사위 활동 전 과정과 조사 내용 및 결과를 설명하고 보고서에 대해 자문 및 검증을 받았다.

    정 전 장관(69세)은 서울지검 특수3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친 뒤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국민대 총장, 한국법학원 원장, 국가청렴위원장,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현재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장이다.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66세)는 MBC 기자를 거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언론학회 ‘이론과 방법론분과’ 회장을 지냈다. 현재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련) 공동대표 의장을 맡고 있다.

    5. 면담 및 조사

    최용원 출판편집인은 조사위가 2월19일 면담 조사를 요청했으나 사표를 제출(2월18일)했다는 이유 등으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2월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2월21일 모두 2차례 6시간 40분 동안 면담 조사를 받았다.

    송문홍 편집장에 대해서는 2월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2월21일, 22일, 3월 1일 모두 4차례 22시간 반 동안 면담 조사했다.

    윤영호 신동아팀 편집위원은 2월24일 1차례 1시간 반 동안 면담했다. 신동아팀 조성식, 정현상 기자는 2월20일 각각 1시간 반, 1시간 45분 동안 1차례 씩 면담했다.

    허만섭 기자는 2월22일, 24일 2차례 5시간 반 동안 면담했다. 송홍근 기자는 2월20일, 27일 오후부터~28일 새벽까지, 3월3일 모두 3차례 13시간 40분 동안 면담했다.

    황일도 기자는 2월21일 3시간 동안 1차례 면담했으며, 한상진 기자는 2월20일, 3월2일 2차례 3시간 45분동안 면담했다. 신동아팀 기자들에 대해서는 면담 외에도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작업을 했다.

    K 씨는 2월17일,20일 2차례에 걸쳐 7시간 40분동안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옥 부근과 지하철 2호선 당산역 부근에서 만나 조사했다. K 씨는 이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잠적해 추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권 씨에 대해서는 2월17일 밤부터 2월18일 새벽까지, 19일, 26일 밤부터 27일 새벽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주변에서 3차례 만나 조사를 실시했다.

    누리꾼 M은 2월20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1차례 만나 2시간 10분 가량 조사했으며, 누리꾼 I는 2월18일 서울 종로 인근에서 2시간 반 가량 1차례 조사에 응했다.

    누리꾼 S는 조사위의 면담 조사를 거부한 대신 2월19일 1시간 반 가량 조사위원과 이메일 및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질문에 답했다. S는 2월28일 조사위에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입장을 추가로 밝혔다.

    6. 조사대상자의 표기

    조사위원회는 보고서에 최용원 출판편집인, 황의봉 출판국장, 송문홍 신동아 편집장, 신동아팀 기자들을 실명으로 표기했다.

    K 씨를 포함한 외부 인사들은 취재원 및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익명으로 표기했고, K 씨 보도와 관련된 누리꾼들은 인터넷에서 사용한 필명의 영문 머리 글자로 표기했다. 단, 권 씨는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노출된 인물이기 때문에 성(姓)을 표기했다.

    Ⅱ. 신동아 2008년 12월호 K 씨 기고문 게재 경위

    송문홍 신동아 편집장은 2008년 11월 8일 경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로부터 “미네르바 기사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전화로 받았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 12월호 첫 기획회의가 있었던 10월20일 경 신동아 일부 기자들이 미네르바 관련 기획을 낸 것을 떠올려 미네르바가 기사거리가 되겠다고 판단해 권 씨의 제안에 응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11월 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미네르바 수사 가능성을 묻는 질의에 “그 내용이 범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편집장은 11월10일 다시 권 씨의 전화를 받고 신동아 12월호 기획안에 ‘직격 인터뷰, 인터넷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기획을 포함하면서 K 씨와의 인터뷰를 추진하려 했다. 11월11일자 매일경제신문 등은 ‘미네르바가 증권사에서 일했고 해외체류 경험이 있는 50대’라는 정보 당국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권 씨가 송 편집장에게 보낸 인터넷 채팅록을 분석한 결과, 권 씨는 11월11일 한 인터넷의 ‘경제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누리꾼 ‘M’의 주선으로 K 씨와 처음으로 인터넷 채팅을 했다. 이전까지는 권 씨가 K 씨를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 적이 없었다. 권 씨와 K 씨의 채팅은 11일 밤부터 12일 새벽까지 4시간45분간 진행됐다.

    K 씨는 채팅 기록에서 권 씨에게 자신을 계속 ‘늙은이’(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다음 아고라에서 자신을 지칭한 표현 중 하나)라고 표현하며 “늙은이가 경고한대로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늙은이도 네트워크가 다양합니다. 물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저번에 외신에 대한민국 외환위기설 기사제보 외국계 지인에게 늙은이가 터트렸습니다”, “잡히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이대로 (자신의 주장이) 사장되면 제2, 3, 4 미네르바가 나와야 되는데…”, “노랑토끼 참 가지가지 해석이 많습디다”, “심적 고통이 몸까지 상하게 합디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등을 언급했다.

    권 씨는 K 씨에게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 권했다. 이에 K 씨는 권 씨에게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신동아와 인터뷰를 한다고) 저놈들이 진정될 것 같습니까?”, “(나의) 위치가 발각되면…” 등의 발언을 이어가며 인터뷰를 거부하다 11월 11일 밤에 “신동아로 하자”는 권 씨의 제안을 수락했다. 권 씨는 송 편집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할 것을 권했고, K 씨는 신원 노출을 우려해 기고 또는 대리 인터뷰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권 씨의 거듭된 요구에 K 씨는 12일 새벽 “먼저 질문을 보내면 메일로 답변한 뒤 꼭 필요하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만나겠다”고 말했다.

    권 씨가 인터넷에서 K 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8년 10월경 온라인 경제독서모임의 리더 격인 누리꾼 ‘S’를 통해서라고 조사위에 진술했다. S는 자신이 참여했던 온라인 경제카페 ‘700리더스’에서 처음 K 씨를 알게 됐다고 조사위원과의 이메일과 인터넷 채팅 문답에서 밝혔다.

    K 씨 등에 따르면 ‘700리더스’의 운영진인 누리꾼 ‘W’는 K 씨가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미네르바라며 회원들에게 K 씨를 소개했다. S는 이후 700리더스에서 탈퇴해 별도의 경제독서모임을 만들면서 K 씨를 이 곳으로 초대했으며, K 씨는 여기서 온라인 투자 강의 및 상담 등을 해줬고 당시 네이버 등의 카페에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여러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K 씨는 그 이후 S, M 등에게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고 여러 차례 말했고, S는 700리더스에서 알게 된 권 씨가 언론계통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권 씨에게 K 씨 문제를 상담했다고 밝혔다.

    한편, 권 씨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2008년 10월 31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내일 손자가 컴퓨터를 가지러 온다’는 제목의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 K 씨를 미네르바로 확신하게 됐다고 조사위에 진술했다. 박대성 씨는 이 글에서 ‘독서토론 모임이라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여 놓으니 아줌마 몇 명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눈으로 아줌마 3명이 찾아와서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일레븐 클럽이라서 그런 것뿐이다. 그러다가 독서토론 모임이 변질이 되서 이젠 주로 동네 아줌마들 재태크(재테크의 오기)나 세무 상담이나 경제 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썼다.

    권 씨는 이 같은 글의 내용이 S, M과 여성 누리꾼 ‘I’ 등이 활동하는 경제독서모임의 생성 및 운영과 같다고 판단해 K 씨를 더욱 미네르바로 확신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주장했다. 박대성 씨의 글에 등장하는 아줌마 3명이 바로 S M I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 씨의 주장과는 달리 S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을 남성이라고 밝혔다.

    송 편집장은 11월12일 권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네르바가 인터뷰를 꺼린다”는 말을 듣고 기고 및 이메일 인터뷰 형태로 기획안을 수정했다. 송 편집장은 11월11일~11월12일 권 씨와 K 씨와의 채팅록을 권 씨로부터 11월12일 이메일로 받았다.

    K 씨는 다음날인 11월13일 신동아 12월호에 기고문을 싣기로 결정하고, 송 편집장은 이날 신동아 12월호 최종 기획안에 ‘독점공개, 인터넷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절필 선언 후 최초 토로’를 포함시켰다.

    K 씨는 11월13일 밤부터 11월14일 새벽까지 기고문을 작성했으며 다음 아고라에 올라있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의 글과 자신의 이전 글을 섞어 기고문을 작성해 M을 통해 신동아팀에 전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누리꾼 M은 K 씨 기고문을 11월14일 오전 송 편집장의 이메일로 발송했다. 기고문은 4개의 텍스트파일(.txt)로 구성되어 있는데 M은 메일에서 4개 파일 중 첫 번째는 지금까지 주장한 내용의 정당성, 두 번째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방향 제시, 세 번째는 앞으로 우리나라 및 세계 경제 전개 양상, 네 번째는 개인에 대한 당부와 지적을 담았다고 밝혔다. M은 이메일에서 “영감님(K 씨)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노트북을 빌려 쓰다 보니 원고의 퀄러티(질)가 들쭉날쭉하다. 영감님 말씀이,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어서 글을 싣는 게 잘하는 일일까 싶고, 말하고 싶어도 못하는 심정이 너무 답답해서 (기고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하겠더라, 고 하셨다”고 말했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에게 메일로 받은 기고문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황 기자는 기고문을 읽어본 뒤 “최소한 필자의 신원을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으며, 송 편집장은 기고자의 신원 자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몇 가지 질문을 11월14일 오후 메일을 통해 M에게 전달했다. 송 편집장은 메일에서 “독자가 글(기고)을 읽고 ‘이 사람이 미네르바가 맞다’고 판단해주는 수밖에 없는 듯한데, (미네르바의 진위와 관련해) 약간 난감한 구석이 없지 않다”며 다음 4가지를 질문했다. ①‘노란 토끼’란 무엇인지 ②‘미네르바는 50대 초반, 증권사 근무와 해외체류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보도가 맞는지 ③분석의 근거는 외신이나 공개 자료가 전부인지, 아니면 개인적 채널이 있는 것인지 ④‘살해위협을 당했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이었다.

    이에 M은 같은 날 오후 송 편집장에게 메일로 답장을 보내 “(원고가) 중구난방이니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손을 좀 봐 달라. 영감님이 담담당당 선생님(권모 씨의 아고라 필명)께서 보시고 오케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신다”고 밝혔다. M은 답장 메일에서 송 편집장의 4가지 질문에 대해 ①노란 토끼는 환투기세력을 언급한 것이다 ②증권사 근무 경력 있고 해외 체류경험 있다. 나이는 노코멘트 ③분석의 근거는 국내외 수많은 경제지표와 사례집, 외신 보도 자료를 일괄 수집해 통계수치를 규합한 것. 채널부분은 금융시장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채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그대로 믿고 글을 올린 것은 아니다. 저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한 것이다 ④언제부터인가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본인을 죽이겠다는 협박이 많이 들어온 게 사실이다. 첫 번째 절필 선언을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등이라고 답변했다.

    송 편집장으로부터 K 씨 기고문 정리를 지시받은 황일도 기자는 M의 답변을 토대로 신동아 12월호 K 씨 기고문의 ‘편집자 주’를 작성했다. 황 기자는 원고를 정리(A4용지 12장 분량)한 뒤 송 편집장에게 “앞뒤 문체가 확연히 다르고, 내용상 중복되는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송 편집장은 11월14일 밤 황 기자가 정리한 기고문을 M에게 보내면서 △ 환투기세력을 왜 ‘노란토끼’라고 불렀는지 △ 정부가 2008년 10월 무역수지 흑자를 어떻게 억지로 만들어냈는지. 이 것이 외신보도를 통해 실상이 밝혀졌다고 했는데, 그 보도는 어떤 기사인지 등 2가지를 추가 질문했다.

    송 편집장은 또 정리된 원고를 권 씨에게 메일로 보냈고 권 씨는 기고문 가운데 ‘일본이 160조 달러를 IMF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는 문장 중 160조 달러는 10조엔(약1060억 달러)이라며 정정할 것을 송 편집장에게 전달했고 기고문에 반영됐다.

    M은 송 편집장의 추가 질문에 11월15일 오후 답장 메일을 보내 “영감님께서 채팅으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붙여 파일을 보낸다. 제가 보기에 민감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뺐다. ‘(영감님이) 꼭 미네르바라고 (기고문에 적시)해야 하느냐, 사이버경제논객 장사꾼 정도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쭤봤다. 지금도 글을 안 싣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 메일에는 송 편집장의 2가지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이 텍스트파일로 첨부되어 있었다.

    이 파일에서 K 씨는 “로이터, 산케이, 타임스 등 한 두 군데에서 보도한 것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기사(원고) 실지 말라고 하세요. 입증이고 나발이고…”라고 말했다.

    K 씨는 또 “노란 토끼는 미국 헤지펀드 애들이 맞지만 그 배후에는 일본 엔캐리 자본이 버티고 있다. 엔캐리를 움직이는 것은 야쿠자세력, 실질적인 배후세력은 경제식민지를 노리는 일본이다”라며 “무역수지 흑자는 사기다. 단기외채상환금액을 제외하면 경상수지는 연속적자를 기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동아는 이 내용까지 기고문에 포함시켜 11월16일 새벽 원고를 마감했으며 송 편집장은 이날 M에게 메일을 보내 원고료를 받을 사람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M은 11월17일 새벽 송 편집장에게 답장을 보내 온라인 경제독서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는 누리꾼 I의 계좌번호를 알려주었으며 출판국은 88만 원의 원고료를 I 계좌로 보냈다. 조사위 조사 결과 K 씨는 원고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I는 조사 과정에서 이전에 K 씨에게 투자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줬는데 K 씨가 신동아 기고에 따른 원고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돌려받지 못한 투자금을 원고료로 대차했다고 밝혔다.

    신동아 12월호가 11월18일 발매됐다. 신동아 12월호는 “신동아가 미네르바와 접촉한 것이 11월13,14일 무렵이다.(그 구체적인 경로는 본인의 뜻을 존중해 밝히지않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주변까지 압박해 들어오는 당국의 태도나 행동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접촉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심경과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대한 생각을 일부 밝혔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신동아는 이 당시 K 씨를 만나거나 통화하는 등 직접 접촉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Ⅲ. 신동아 2009년 2월호 K 씨 인터뷰 추진 경위

    신동아 12월호 발매 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11월18일 KBS의 한 시사프로그램 게시판에 ‘미네르바님 미안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려 “미네르바 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짜고짜 묻기에 나보다는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기에 중요한 예측을 많이 맞추셔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당신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이다”고 말하는 등 미네르바는 더욱 관심을 모았다. 2009년 1월3일에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네르바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권 씨는 신동아 12월호가 발매된 날인 11월18일 K 씨와 다시 인터넷 채팅을 하며 신동아 기고 후속으로 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주간지인 주간동아에도 기고할 것을 권했다. K 씨는 이와 관련해 조사 과정에서 “이걸로 인해 사태가 확대되면 누군가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 주간동아에의 기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채팅록에 따르면 권 씨는 이날 채팅에서 “조선하고도 연락하는 중입니다. 그 쪽이 쉽게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송편(송 편집장)이 이미 데스크 한 자리를 가지고 이번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동아의 방향이 가장 극악한데... 그걸 이제는 못하는 겁니다. 한 번 방향이 잡히면 (중략) 그걸 내부에서 서로 부인은 절대 못합니다. 그래서 주간동아까지 나가면 끝난다고 보는 겁니다. 한 번 정하면 부인 못하는 곳, 그래서 조선을 일단 눌러두고 동아부터 때린 겁니다. (중략) 그리고 이진법 내에도 혼란은 생깁니다. 이진법의 혼선은 지지했던 사람들이 ‘왜 동아인가’에서 비롯됩니다. (중략) 주간동아나 혹은 다른 매체를 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오늘 내일의 상황만 보시고….”라고 주장했다. 권 씨는 채팅 후 저장한 채팅록을 이메일로 송 편집장에게 보냈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 12월호 기고에 이어 2009년 1월호에 K 씨의 인터뷰를 추진키로 하고 12월11,12,14일 권 씨에게 메일을 보내 K 씨와 접촉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K 씨는 12월13일 권 씨에게 메일을 보내 “희생양을 찾는 것이라면 이 사람(K 씨 자신)은 거절하겠다. 이 사람만 개죽음을 당할 것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 사람은 총알받이는 안 될 것이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신동아 2009년 1월호의 K 씨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검찰이 2009년 1월 8일 박대성 씨가 미네르바라며 박 씨를 구속했다. 송 편집장은 이날 오후 M에게 메일을 보내 “신문(동아일보) 쪽에서 이 사람(박대성)이 미네르바 맞느냐고 문의를 해왔기에 ‘(미네르바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미네르바님(K 씨)의 안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송 편집장은 1월9, 10일에도 M에게 잇따라 메일을 보내 ”엉뚱한 친구 한명 잡아넣고 뒤에 숨는 식의 행동은 이제 그만해라. 진짜 미네르바가 나와 저간의 일에 대한 입장과 한국경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대성 씨는 1월10일 구속되면서 기자들에게 “나는 신동아 12월호에 기고한 적이 없다”고 밝혔고, 신동아팀은 1월12일 K 씨와의 인터뷰를 못하는 것을 전제로 신동아 2월호 미네르바 관련 기획안을 만들었다. 기획안은 ①전체 상황을 담은 스트레이트 기사 ②검찰 수사 내용 ③미네르바는 여러 명(?) ④온라인 글쓰기의 특징과 한계(외부 기고) ⑤‘전문가 찬반 토론’-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⑥신동아 12월호에 기고한 미네르바의 2차 기고문(미정) ⑦편집장의 글로 구성됐다.

    1월12일 오전 본사 임원들과 일부 실 국장들이 참석하는 월요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동아 미네르바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밀한 확인 취재를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주문했다.

    참석자들은 △기고자의 명확한 신원을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기고문을 실어서는 안 되며 △ IP 문제를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하면 다른 것은 모두 의미가 없고 △명확한 근거 없이 미네르바는 여러 명이라거나 검찰 수사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한 만큼 게재를 한달 늦춰서라도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12일 오후 황의봉 출판국장은 본사 임원 등에게 검토 요청과 함께 신동아 기획안을 보내왔다.

    경영전략실은 12일 밤 출판국에 신동아 2월호의 미네르바 관련 기획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13일 오전 황 출판국장은 신동아 기획안을 발행인에게 보고했다. 발행인은 ‘기고자의 신원 확인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송 편집장은 13일 경영전략실의 검토 의견과 12일 간담회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권 씨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주간동아 엄상현 기자는 1월13일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박대성 씨가 진짜 미네르바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간동아 편집장에게 이메일로 보고했다. 주간동아 편집장은 이를 송 편집장에게 이메일로 전달했으며, 송 편집장은 이 내용을 권 씨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M은 1월14일 새벽 송 편집장에게 메일을 통해 ‘경제’, ‘신원에 대해’라는 제목의 텍스트 파일(.txt) 2개를 보냈다. M은 이 메일에서 “보시기에 미흡하겠지만 지금 영감님(K 씨)을 괴롭혀봤자 더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라는 파일에는 ‘박대성이 쓴 글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쓴 중국 경제 전망’이라는 글과 ‘금리인하 정책의 파장’이라는 2가지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원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은 “수퍼맨은 애저녁에 죽었습니다. 이 미천한 천민인 제가 어쩌다가 고수의 반열에 들었는지 의아합니다. 여러분, 속 시원히 소통하고 같이 인식하고 찬란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분들이 모두 미네르바입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송 편집장은 2가지 글 중 ‘경제’라는 제목의 글 내용에 실망해 1월14일 다시 M에게 메일을 보내 “애초 제가 강조한 것은 ‘K 씨 자신이 그동안 아고라에 글을 써온 미네르바이고 박대성은 가짜다’라는 점을 입증해 달라는 것이었다. (1월) 14, 15일 사이에 제가 미네르바님을 한번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편집장이 직접 미네르바를 만났다는 한 문장을 쓸 수 있다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같은 날 오후 송 편집장과 K 씨가 직접 만나기로 합의했다. 송 편집장은 M과의 전화통화에서 인터뷰를 위한 K 씨의 4가지 요구 조건을 들었다. △자신이 연락할 대포폰을 준비할 것 △송 편집장 혼자 인터뷰장에 나올 것 △녹음 및 사진촬영 금지 △만나는 시간은 5~10분으로 제한 등이었다.

    K 씨는 1월14일 18:00 경 송 편집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하철 2호선 아현역 근처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이에 앞서 권 씨는 송 편집장에게 1월14일 오전 메일을 보내 그동안 K 씨와 나눈 채팅이나 온라인 글을 토대로 K 씨에게 4가지를 반드시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이는 △K 씨가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차관 가운데 국정원과 연관을 맺었던 누군가의 친인척인지 △외국 언론사에 친한 사람이 있는지 △H 신문 경제부 김모 기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 △W 건설의 고위 임원과 친한지 등이었다.

    송 편집장은 같은 날 20:00 경 아현역에서 K 씨를 만나 인근 카페로 이동해 1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송 편집장은 “K 씨의 나이가 최소 50대라고 생각했으나 K 씨가 ‘30대 후반’이라고 말해 처음에는 미심쩍었지만 경제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 미네르바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송 편집장은 22:00 경 K 씨를 회사로 데려가 여러 후배 기자들이 같이 검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K 씨에게 “차라리 우리 회사로 가자”고 설득해 그를 출판국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K 씨는 이 과정에서 “회사 건물에 CCTV가 있느냐”고 물었다. 송 편집장과 K 씨가 회의실로 들어간 뒤 인터뷰 내용을 노트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신동아팀 허만섭 기자가 배석했으며, 나머지 신동아 기자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회의실로 메모를 전달하는 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인터뷰는 1월15일 03:30 경까지 진행됐으며 회의실에서 나오기 직전 송 편집장과 허 기자는 K 씨에게 신원을 물었다. 실명을 밝히라는 요구에 K 씨는 망설이다 자신의 이름은 ○○○이며, 한 외국 언론사의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안다고도 말했다.

    허 기자는 1월15일 K 씨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정부 부처 출입기자인 Y 씨가 K 씨를 아는 지 문의했다. 허 기자는 다음날인 1월16일 그 지인으로부터 ‘Y 씨가 △△은행에 다니는 ○○○(K씨 실명)을 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조사 과정에서 말했다.

    신동아 기자들은 인터뷰 후 회의실을 나온 K 씨와 편집실 앞에서 40분간 대화를 나눴다. 신동아 기자 대부분은 당시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생각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1월15일 오후 발행인에게 K 씨와의 인터뷰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에 따라 15일, 16일 주요 간부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대부분 회의 참석자들은 신동아팀이 기고자와 인터뷰를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K 씨가 미네르바인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IP, ID 문제 등에 대한 설명이 없어 이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사실을 추가 확인하고 검증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미네르바 인터뷰 게재를 다음달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최용원 출판편집인은 “기고자와 직접 인터뷰를 했고 K씨의 신원을 확인했다”며 “직을 걸고 K 씨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황 출판국장은 “신동아가 직접 인터뷰를 한 상황에서 추가 사실 확인을 위해 신동아 게재를 다음달로 미룬다면 신동아 기자들의 사기와 조직관리에 문제가 생긴다”며 인터뷰 게재를 주장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출판편집인과 출판국장의 의견에 따라 인터뷰를 싣는다면 K 씨와 인터뷰 내용에 대한 여러 의문점도 게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송 편집장은 1월16일 밤 M에게 메일을 보내 △IP 공유를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원래 사용하던 인터넷 다음의 ID는 무엇인지 등을 추가로 질의했고, M은 1월17일 오전 송 편집장에게 답장 메일을 보내 “유동IP를 고정시켜서 썼다. (2008년) 11월에 YS를 비난하는 글이 미네르바의 마지막이고 그 이후 미네르바는 해체됐다. IP는 끊었고, 그 장소(공동작업을 했다던 장소)도 사용하지 않는다. 글 올린 것은 거의 특정장소에서만 했다. ID는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신동아 기자들이 1월17일 출판국에서 IP 공유 및 조작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러나 조사위의 조사 결과 서로의 ID와 패스워드를 아는 상태에서 IP 공유는 가능했지만 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못했다.

    신동아팀은 1월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K 씨 인터뷰 기사와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본사는 K 씨 인터뷰 후에도 남는 IP ID 문제 등에 대해 의문점이 있었던 만큼 신동아팀이 정리한 초고를 본사 간부들이 검토하도록 했다. 임채청 미디어전략담당이사대우, 심규선 편집국장, 김승환 경영전략실 경영총괄팀장은 K 씨 관련 초고를 받아 검토한 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으므로 최대한 신중히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신동아팀에 전달했다.

    미네르바 관련 검찰의 수사 내용을 반박하는 신동아팀의 초고에 대해서는 IP, ID 등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으므로 검찰 수사보다는 K 씨와 인터뷰 내용에 대한 남는 의문점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신동아 2월호가 1월19일 발매됐다. K 씨는 2월호 인터뷰에서 미네르바는 자신을 포함해 금융계 7인 그룹이라고 주장했으나, 조사위 조사 결과 K 씨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존재 여부 및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Ⅳ. K 씨 자백까지의 경위

    K 씨는 2월13일 신동아팀에 미네르바가 아님을 자백한 뒤 2월17,20일 조사위 조사에서 “난 미네르바가 아니지만 미네르바라고 한 적도 없다. 미네르바를 도용한 게 절대 아니다”라면서도 “(신동아 2008년 12월호 기고 당시부터) 언론 쪽하고 접촉할 생각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알게 된 주변 사람들에게) 이끌려 가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K 씨는 결과적으로 미네르바를 사칭한 이유에 대해서는 별 다른 해명을 하지 않은 채 “그점은 죄송하다”라고 반복했다.

    검찰은 1월22일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기소했다. 송 편집장은 송홍근, 한상진 기자를 미네르바 취재에 더욱 주력하도록 했다.

    1월28일 경 허만섭 기자는 1월16일 K 씨를 ‘△△은행 ○○○’이라고 말했다는 외국 언론사 Y기자를 직접 만나 출판국이 신동아 2월호 인터뷰 과정에서 촬영한 K 씨 사진을 보여주며 아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을 시도했다. 이에 Y 씨는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권 씨는 송 편집장의 요청으로 1월29일 출판국 회의실로 와 신동아팀 기자와 일부 주간동아팀 기자를 대상으로 1시간 반 가량 ‘박대성이 가짜 미네르바이며 K 씨가 진짜 미네르바 그룹의 일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신동아팀 윤영호 편집위원이 권 씨 주장에 대해 의문을 많이 제기했다.

    권 씨는 2월 6일 경 자신이 검색한 ‘K 씨와 이름이 같고 연령대가 비슷한 금융업 종사자 11명의 리스트’를 송 편집장에게 전달했고, 송홍근, 한상진 기자는 이 명단을 전달받아 신동아가 인터뷰한 K 씨와 동일 인물이 있는 지 8일까지 확인 작업을 벌였으나 동명이인으로 밝혀졌다.

    송 편집장은 2월 6일 K 씨에게 전해달라며 “각종 의혹을 풀기 위해 K 씨가 다시 한번 신동아와 인터뷰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M에게 보낸 뒤 전화를 걸어 K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K 씨는 2월 7일 M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고, 송 편집장은 K 씨에게 전하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1월14일 인터뷰 당시 찍은 K 씨의 사진과 녹취한 음성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M에게 말했다.

    송홍근, 한상진 기자는 2월 9일 K 씨의 신동아 2008년 12월호 기고료를 받은 I를 찾아가 “K 씨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K 씨의 사진을 공개하겠다. 2월11일까지 답을 달라”고 말했다.

    이에 K 씨는 2월11일 신동아팀에게 메일을 보내 인터뷰 요청에 항의하면서 “인터뷰를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며 ①자신의 사진과 목소리 파일 원본을 인터뷰 장소에 갖고 나와 폐기하라 ②신동아팀에서는 송 편집장 혼자 나오라 ③조력자(M)를 데리고 나가겠다 ④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으며 신원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신동아팀은 “K 씨는 무조건 인터뷰에 응해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는 뜻을 M을 통해 다시 전달했다.

    K 씨는 2월12일 오후 “오늘 저녁에 만나겠다. 담담당당님(권 씨)을 인터뷰 장소로 데리고 오라.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다시 전하겠다”고 제안했다. 송 편집장은 권 씨에게 연락해 인터뷰 장소에 함께 갈 것을 요청했다.

    일부 기자들은 “신동아의 취재 공간에 제3자인 권 씨를 데리고 가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2월12일 20:00 경 송 편집장, 권 씨, K 씨, M 등 4명이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인근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K 씨와 권 씨가 대화를 나눴는데 K 씨는 권 씨에게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신동아에서 인터뷰에 나오라고 하는데, 나오면 잘못되는 것 아니냐.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보호해주겠다는 것이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권 씨는 K 씨가 인터뷰에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등에 설명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밝혔다.

    이날 21:30 경 송 편집장은 추가 취재를 위해 더 대화를 하자고 K 씨를 설득했다. 22:00 경 송 편집장, 송홍근 기자, 한상진 기자와 권 씨, K 씨 등 모두 5명이 S 호텔 객실로 들어갔다. K 씨가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해서 식사를 시켜줬다.

    23:00 경 K 씨가 식사를 마치자 본격적인 질의 응답이 시작됐다.

    신동아팀은 가장 먼저 K 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K 씨는 망설이다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줬고 신동아팀은 K 씨의 성명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확인했다.

    이어 K 씨에게 “미네르바가 맞다면 그 동안 글을 올린 ID와 패스워드를 밝히라”고 요구했고, K 씨는 “사실 글은 내가 직접 올리지 않아서 ID와 패스워드는 모른다. 나는 글의 자료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고 우리 팀원 중 최 씨와 50대 증권맨 중 누군가가 박대성을 고용해 글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 박대성이 우리 쪽 사람에게 고용된 사람이란 사실을 신동아 인터뷰 이후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K 씨가 신동아 2월호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글은 자신이 직접 올렸다”고 밝힌 것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한상진 기자는 K 씨에게 “만약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최 씨와 50대 증권맨의 현직과 실명을 밝혀라. 아니면 그들에게 전화해서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 ID와 패스워드를 이야기하라고 해라”고 요구했다. K 씨는 이에 답을 못한 채 화장실에 들어가 전화를 하고 나온 뒤 “전화를 걸어 봤는데 최 씨는 지금 유럽에 나가 있어 연락이 안 되고 50대 증권맨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동아팀은 “그렇다면 당신이 최 씨나 50대 증권맨에게 만들어 보낸 이메일 기록을 보자. 만약 당신이 보낸 자료 중 하나라도 미네르바의 글보다 시기가 빠르고 인용되거나 베낀 흔적이 있다면 당신은 미네르바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홍근 기자는 자신의 노트북을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한 뒤 “여기서 당신의 이메일에 접속해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K 씨는 “이메일 계정을 여러 개 썼는데 그때 사용한 계정을 없앴다”고 주장하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며,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전화할 데가 있다”며 객실 밖으로 나가 30여분 간 통화하고 돌아왔다.

    2월13일 01:00 경 ID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던 한상진 기자가 K 씨에게 “당신 미네르바 아니지?”라고 물었고 K 씨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네”라고 답했다.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 미네르바가 아니란 거냐?”라고 재차 묻자 K 씨가 “그렇다. 나는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한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K 씨는 “2006년경 네이버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잠시 사용한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네티즌들 일부가 2008년 7~8월경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네가 미네르바인 걸 안다. 계속 위험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 가만 두지 않겠다.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난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래서 미네르바인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고 말했다고 신동아 기자들이 조사위 측에 진술했다.

    K 씨는 또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02:00 경 신동아팀은 K 씨의 휴대전화를 받아 인터뷰 중 수차례 통화한 전화번호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등을 확인했다. K 씨가 M 등에게 문자를 보내 미네르바의 ID와 패스워드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K 씨가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 ID와 패스워드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고 신동아팀은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대화 도중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며 “왜 그랬냐?”는 신동아팀의 계속되는 질문에 K 씨는 줄곧 “죄송합니다”고 반복했다.

    03:00경 신동아팀은 더 이상의 질의응답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K 씨에게 “그만 가라”고 했으나 K 씨는 가지 않았다. 이에 권 씨가 신동아팀에게 “내가 K 씨랑 좀 더 이야기해보겠다”고 제안했고 K 씨도 “담담당당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다. 그 직전에 조성식, 허만섭 기자가 합류했다.

    신동아팀은 호텔 1층 로비에서 30여 분간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기자 등이 “객실에 신동아 기자가 없는 상태에서 권 씨와 K 씨 둘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03:30 경 신동아팀이 호텔을 나온 뒤 권 씨와 K 씨는 객실에 함께 있다가 07:00 경 귀가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조사위는 이 과정에서 권 씨가 객실에서 K 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2월13일 10:00 경부터 본사에서 열린 금요 회의에서 K 씨 취재 여부 및 상황에 대한 질문에 ‘특별한 상황이 없다’고 말했다. 그 후 출판국으로 온 황 국장은 11:00 경 출근한 송 편집장으로부터 K 씨의 자백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았다.

    신동아팀은 2월13일 진위 여부를 재확인하기위해 K 씨에게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으며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 카페에서 K 씨를 만났다. 송 편집장과 권 씨는 신동아팀과 K 씨가 있는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신동아팀은 이 자리에서 K 씨의 신상과 아고라의 미네르바를 사칭한 배경 등을 다시 물었다. K 씨는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는 질문에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 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 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가 “당신 때문에 80년 된 잡지가 지금 무슨 꼴을 당하게 됐는지 아느냐?” “나 같은 사람도 도끼 들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지금부턴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 편집장은 송홍근 기자에게 “한상진과 K 씨의 집에 가서 컴퓨터 등을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송홍근 기자는 K 씨에게 “쓰던 컴퓨터를 보고 싶다. 우리가 더 알아본다고 당신이 손해 보는 것 없잖느냐”며 함께 집에 가자고 요청했으나, K 씨는 “지방으로 내려갈 것이다. 짐을 다 내려 보냈다. 그래서 집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옷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K 씨는 “세탁소에 맡겨 놓았다”고 답변하자 송 기자는 “제발 이젠 거짓말 좀 그만 해라. 세탁소 가서 옷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말했다.

    2월13일 오후 송홍근 기자와 권 씨, K 씨 등 3명은 인근 음식점으로 옮겨 저녁 식사를 했다. 송홍근 기자는 K 씨에게 “미네르바로 사칭하면서 돈 거래가 있었냐”고 물었으나 K 씨는 부인했다.

    송홍근 기자는 K 씨가 자리를 뜬 뒤 권 씨에게 “이번엔 제대로 속으셨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고 권 씨는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송 편집장이 음식점에 합류해 권 씨에게 “권형이 하는 일도 이럴 때가 있다”고 했으나 권 씨는 “아직은 좀 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2월14일 오후 송홍근 기자는 K 씨와의 통화에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내일 우리 회사 쪽으로 올 수 있느냐”며 다시 만날 것을 제안했다.

    신동아팀은 통상의 원고 마감일을 하루 앞둔 2월14일 오후 출판국에서 전체 회의를 열었다. 황의봉 출판국장도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신동아 기자들은 K 씨가 가짜 미네르바라고 최종 결론냈다. 여기에서 △3월호에 편집장의 글을 통해 사과와 함께 경위를 밝혀야 한다 △3월호에 그동안의 취재 경위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경쟁지 3월호의 보도를 보고 하루이틀 뒤 3월호를 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이 중 사과와 함께 편집장의 글을 내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조사위에 밝혔다.

    황 국장은 회의를 마친 뒤 2월14일 오후 송 편집장과 함께 자신의 방에서 전화로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K 씨 자백 상황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최 이사는 “지난 번도 마감 임박해서 중대한 결정을 하라고 하더니 이번에도 그러느냐. 이번 호(3월호)는 그냥 간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으며, 2월15일에도 신동아 3월호에는 K 씨 관련 기사를 싣지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송홍근 기자는 2월15일 오후 K 씨의 전화를 받고 충정로 사옥 인근에서 K 씨를 다시 만났다. 송 기자는 “신동아 12월호 기고, 2월호 인터뷰를 왜 한 것이냐”고 다시 질문했고 K 씨는 “저는 정말 하기 싫었다. 사람들이 나가야 한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Ⅴ. K 씨와 권 모씨는 누구인가

    1. K 씨

    조사위 확인 결과 K 씨는 1976년 생으로 출생지는 ○○이다. 그러나 K 씨는 조사에서 실제로는 1974년 생이며 호적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K 씨는 조사 초기 자신이 지방 도시의 K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했으나 질의가 계속되자 나중에 같은 도시의 S고를 졸업했다고 말을 바꿨다. 조사위는 K 씨가 S고를 졸업한 것을 확인했다.

    K 씨는 또 조사 초기 수도권의 I대 중문과를 졸업했다고 말했다가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을 바꿨다. 조사위는 K 씨가 I대를 입학하거나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 K 씨가 I대 외의 다른 대학에 입학했거나 졸업했는지 여부는 K 씨의 추가 진술 거부로 확인하지 못했다.

    K 씨는 신동아 2월호 인터뷰 후 신동아팀의 추가 취재 과정에서 자신이 2000년 H 창투를 시작으로, C 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영업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 씨는 조사위 조사에서 자신은 H 창투를 다녔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K 씨가 C 투자증권에 다녔는 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 권모 씨

    ①신원=권 씨의 진술에 따르면 권 씨는 1963년 생으로 출생지는 ○○이다. 조사 과정에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했으나 확인 결과 1982년 지방의 K대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으며, 1989~1995년 KOTRA 특수사업과에서 근무했다.

    KOTRA 근무 당시 주로 공산권 국가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권 씨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모 기관의 공작 파트에서도 근무했다고 말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권 씨는 주로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년 중 많게는 7,8개월 씩 중국에 머문다고 조사 과정에서 주장했다. 현재 그는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북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2007년 ‘나는 통일 정치쇼의 들러리였다’를 출간했으며, 이에 앞서 1995년 ‘북한비즈니스 35계’ 등 북한 관련 서적을 내기도 했다.

    ②송문홍 편집장과의 관계= 송 편집장은 조사 과정에서 권 씨와 오랜 신뢰관계를 유지해온 데다 권 씨가 보내온 K 씨와의 채팅 기록을 볼 때 기고문의 필자가 미네르바라고 확신했다고 진술했다. 송 편집장은 1997년 미국 연수 후 권 씨를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송 편집장은 10년여 간 만남을 지속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보를 제공받아왔다고 조사에서 밝혔다. 송 편집장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선 조직을 활용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씨를 대북특사로 파견토록 했다는 비화를 2007년 주간동아 재직 당시 보도한 것도 당시 안 씨와 함께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던 권 씨의 제보에 따른 것이었다.

    권 씨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담담당당’이란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Ⅵ.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

    진상조사위원회는 신동아가 K 씨 관련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① 검증의 부재

    신동아는 2008년 12월호 K 씨의 기고문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의 기본인 필자에 대한 신원과 경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기고문의 내용에 대한 검증이나 주장의 근거 또는 배경에 대한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

    송 편집장은 K 씨를 소개한 권모 씨의 얘기만을 믿고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속단했다. 기고도 K 씨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누리꾼 M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 당연히 기고 내용을 K 씨가 직접 작성했는지 확인했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은 없었다. 신동아는 K 씨의 기고문을 실은 이후에도 한동안 기고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별도의 취재를 하지 않았다.

    신동아가 2009년 2월호 K 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할 때도 신원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미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지만 신동아는 이를 소홀히 했다. 인터뷰 게재 당시 신동아가 알고 있는 것은 K 씨의 성명뿐이었다. 그럼에도 신동아는 그의 신분증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K 씨의 주장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신동아팀은 K 씨가 친분이 있다고 밝힌 외국 언론사의 기자에게 간접적으로 K 씨를 아는지 물어봤고, “△△은행에 다니는 K 씨를 알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신동아팀은 이를 통해 K 씨의 신원이 확인된 것으로 속단했다. 하지만 은행에 다니는 K 씨와 신동아팀이 만난 K 씨가 동인인물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2월호가 발간된 이후 신동아팀은 외국 언론사의 기자에게 K 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재차 확인한 결과 그 기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박대성 씨를 미네르바로 특정한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IP와 ID 문제에 대해서도 신동아팀은 엄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기사를 게재했다. 본사 주요 간부회의에서는 여러 차례 “IP와 ID 문제를 규명하지 못하면 기사를 게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신동아팀은 M을 통해 K 씨에게 “IP 공유를 어떻게 했는지, ID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K 씨는 M을 통해 “IP는 끊겼고, ID는 공개할 수 없다”며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지만 신동아팀은 K 씨에 대한 추가 검증 없이 기사를 실었다.

    신동아팀은 K 씨와의 인터뷰를 싣기 앞서 최소한 K 씨의 컴퓨터와 그가 언급한 ‘작업장’의 위치를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 진상조사위원회의 판단이다. 또 K 씨는 “미네르바가 금융계 7인 그룹”이라고 주장한 만큼 K 씨 외에 나머지 6명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추적했어야 했다. 신원 확인이나 내용 검증 없이 기고문을 게재한 이후 박대성 씨가 구속된 상황에서 또 다시 엄정한 검증 없이 K 씨의 인터뷰를 실음으로써 거의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

    이처럼 신동아팀이 성급하게 판단한 데는 송 편집장이 K 씨를 소개한 권 씨에게 이 사안과 관련한 거의 모든 판단을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기사를 주로 써온 송 편집장은 중국에서 대북사업을 한다는 권 씨에게서 10여 년간 많은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에서도 송 편집장은 권 씨의 정보나 주장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송 편집장은 권 씨가 보내온 K 씨와 동명인 금융권 인사 명단을 기자들에게 주어 신원 확인을 시켰으며, 권 씨를 출판국 회의실로 불러 이번 사안에 대한 권 씨의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송 편집장의 권 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객관적 검증을 소홀하게 만들었다. 취재원에 대한 믿음과 취재 내용에 대한 검증은 전혀 다른 사안임에도 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② 게이트키핑 시스템 미작동

    각종 사회의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시사 월간지에선 편집장의 게이트키핑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K 씨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제작 책임자인 송 편집장이 주도하면서 사실상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신동아팀 기자들은 기고문의 게재 경위나 인터뷰 성사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송 편집장의 판단과 결정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K 씨의 기고문을 전달받는 과정에 송 편집장 이외에 다른 기자는 관여하지 않았다. 송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K 씨의 기고문을 정리한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는 송 편집장에게 “앞뒤 문체가 확연히 다르고 내용상 중복되는 것이 많아 여러 명이 정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K 씨의 기고문이 미네르바의 글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지만, 송 편집장은 이런 지적을 간과했다.

    2009년 1월 14일에도 송 편집장은 K 씨와 단둘이 만나 1시간 반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후 출판국 회의실로 K 씨를 데려와 15일 오전 3시 반까지 송 편집장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질의응답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회의실에 함께 있었던 신동아팀 허만섭 기자는 “이미 밖에서 어느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어 질문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신동아 2009년 2월호 마감 시점에선 박대성 씨의 구속으로 신동아에 기고를 한 K 씨와 박대성 씨 가운데 누가 진짜 미네르바냐는 논란이 거셌다. 따라서 최용원 출판편집인이나 황의봉 출판국장은 2월호에 K 씨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함에 있어 보다 엄밀하게 게이트키퍼 역할을 했어야 했다. 본사 주요 간부들은 출판편집인과 출판국장에게 △신원 검증 △내용 검증 △IP 및 ID 검증을 거듭 주문했다. 그럼에도 출판편집인과 출판국장이 이를 소홀히 다룬 것은 취재의 부실을 넘어 잡지 제작의 최종 실무 책임자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보고체계도 흔들렸다. 신동아팀이 K 씨로부터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자백을 받은 것은 2월 13일 새벽 1시경이었지만, 이런 사실은 만 사흘이 지난 16일 오전 10시경에야 발행인에게 보고 됐다. 14일 열린 신동아팀의 전체회의에서 많은 기자들이 신동아 3월호(2월 17일 발간)에 사과와 함께 취재 경위를 담은 편집장의 글을 실자는 의견을 냈다. 이에 송 편집장은 “최종 결정은 회사에서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편집장과 출판국장, 출판편집인이 보고를 미룸으로써 이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③ 취재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

    기고 및 인터뷰 게재와 취재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도 진상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송 편집장은 M으로부터 K 씨의 기고문을 받은 뒤 글의 내용에 관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M에게 전달했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의 ‘편집자주’는 M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작성했다. 그럼에도 마치 ‘K 씨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씀으로써 K 씨를 직접 만났거나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듯한 인상을 줘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2월 12일 저녁 신동아팀이 K 씨를 다시 만날 때 중개인 권 씨를 데리고 나간 점도 취재 윤리 상 적절하지 않았다. 신동아팀 일부 기자들조차 “신동아의 취재 공간에 제3자인 권 씨를 데리고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송 편집장은 K 씨의 요청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권 씨를 대동했다. 설사 K 씨가 권 씨를 만나기를 원했더라도 신동아와 관련 없는 권 씨를 처음부터 데리고 나간 것은 부적절했다. 실제 신동아팀의 추가 취재를 위한 이날 자리에서 인터뷰 초반 상당시간을 K 씨와 권 씨가 주로 대화를 나눴다.

    K 씨가 미네르바를 사칭했다고 자백한 이후 신동아팀은 취재원을 사실상 방치했다. 신동아팀은 2월 13일 오전 3시경 권 씨와 K 씨만을 호텔방에 남겨두고 현장을 떠났다. 당시 권 씨가 K 씨와 더 얘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K 씨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난 데다 K 씨에게 신동아 기고를 수차례 요구한 사람이 권 씨였던 만큼 K 씨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신동아팀 관계자가 현장을 지켰어야 한다는 것이 진상조사위원회의 판단이다.

    실제 신동아팀이 떠난 이후 권 씨는 객실에서 K 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 당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당사자들 모두 구체적 진술을 피하고 있으나, K 씨는 상당한 공포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송 편집장은 사내 정보를 제3자인 권 씨에게 지속적으로 유출했다. 여러 기자들이 각계 취재원들로부터 들은 미네르바 관련 얘기들을 송 편집장에게 보고하면, 송 편집장은 이를 권 씨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송 편집장은 “권 씨가 우리 기자들보다 (미네르바 관련) 내용을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진상조사위는 취재원 보호 의무 등 언론윤리에 어긋난 행위였다고 결론 내렸다.

    Ⅶ. 개선 대책

    동아일보사는 이번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를 계기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고,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시행할 방침이다.

    ① 취재 및 보도 원칙 재정립과 교육 강화

    사실의 검증, 익명 취재원 처리, 인용, 정정, 반론, 표절금지, 사진 및 영상물의 사용 등에 관한 기준을 재정립한다.

    이 같은 원칙과 기준을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교육을 통해 실천토록 한다.

    ② 인터넷 정보 활용 원칙 마련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 내용 검증, 인용 기준, 정정보도 등에 관한 원칙을 마련해 시행한다.

    ③ 게이트키핑(단계별 기사 검증) 강화

    기사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기사 가치 판단에 대한 보도·논평·편집 간부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단계별로 충실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취재 내용에 관한 기자들과 데스크 간의 의견 교환을 활성화한다.

    ④ ‘스탠더드 에디터’ 제도 도입

    스탠더드 에디터는 보도 준칙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정확한 보도와 취재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⑤ 내부 심의 강화

    신문 기사 위주로 이뤄졌던 회사 차원의 내부 심의 기능을 잡지, 인터넷 기사까지 확대한다.

    ⑥ 독자위원회(가칭) 설립

    동아일보사는 사회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독자인권위원회를 2001년부터 운영해왔다. 이를 ‘독자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

    독자위원회는 독자의 인권보호는 물론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했는지 심의한다. 독자위원회의 심의대상에는 신문뿐 아니라 잡지, 온라인 기사까지 포함한다. 진상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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