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현대차 ‘세계 그린 카 경쟁’ 뒤처져 구멍가게 된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3-03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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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 기술력 과대 포장 전기차 품질 낮고 경험 부족
    • MB 정부도 현대차 태도 불만 최고 호황 속에 드리운 암운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카.

    도요타자동차가 전세계에서 1000만대 이상의 자사 판매차량을 리콜(소환수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요타가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도 브레이크 결함이 발견돼 리콜했다. 현대자동차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라

    지난 1월 미국시장에서 도요타자동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1월 대비 16% 하락했다. 시장점유율도 2006년 이래 가장 낮은 14.2%로 급감했다. 반면 1월 미국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4.4%나 증가했다. 도요타의 판매량은 당분간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조9615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양적으로 ‘글로벌 5’에 진입했고 중국시장에선 기아자동차와 함께 81만1695대를 팔아 도요타와 혼다를 제치고 판매부문 2위에 올랐다. 올해에는 연간 500만대 이상 규모의 글로벌 생산체제를 완성할 계획이다. 제네시스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2009 북미 올해 최고의 차’에 선정됐다.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이 10년 만에 결실을 본 것으로 평가됐다.(한국일보 2010년 1월4일)

    또한 현대자동차는 야심 찬 미래구상을 밝혔다. 2013년까지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자동차(그린 카·Green Car) 개발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2005년 9월 세계 자동차업계로는 처음으로 친환경 자동차 연구기관(환경기술연구소)을 설치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눈부신 실적과 장밋빛 청사진의 현대자동차에 대해 일부 전문가 그룹은 ‘내실’을 주문한다. “도요타의 리콜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신중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리콜 사태는 도요타의 품질 이미지에 회복하기 힘든 충격을 주었다. 국내의 메이커와 부품회사는 수직구조, 하청구조가 심화돼 있어 수익이나 연구개발 능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이므로 언제든지 도요타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세계일보 2010년 2월2일)

    이런 가운데 서승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 센터장(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은 최근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지금 위기에 봉착했다”며 “세계 자동차시장은 고연비 친환경의 ‘그린 카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이 부문의 기술력이 뒤처지는 등 맹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세미나에서 현대차 비판

    ‘신동아’가 입수한 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문건은 “국내 전기자동차는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했다. 국내 자동차 메이커의 친환경차 기술 수준에 대한 정부의 내부평가가 공개되기는 처음으로 이목을 끌 만한 사안이다. 취재 결과,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한 세미나에서 “전기자동차의 조기 상용화 가능성은 별로 없다. 현대자동차가 정부정책에 반(反)하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취지로 비판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사 회사는 향후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바꿀 그린 카 경쟁력에서 뒤처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따라잡으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고 막대한 연구개발비 투자로 미래를 잘 준비해온 줄로 알려져왔는데 이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암운은 호황 속에서 드리워지는 법이긴 하다. 세계 1위 기업이라도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추락하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 산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자동차 메이저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는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 서승우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에서 4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서승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 IT센터 센터장(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지난해 문을 연 이 센터는 14명의 서울대 교수가 소속돼 국내외 차세대 자동차 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곳으로 정부에서도 상당액의 예산을 지원하며 긴밀히 협의해오고 있다. 서 센터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해외 자료를 제시하거나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흥미 있게 풀어나갔다. 세계 친환경 자동차의 동향과 국내 현실에 이르러서는 지금까지의 언론보도로는 잘 접하지 못한 현장감 있는 내용을 곁들여가면서 사안의 본질적인 부분을 끌어내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 이 센터의 연구 분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크게 지능형 자동차의 센서기술, 통신기술, 제어기술 등 세 가지 분야지요. 센서기술은 물체의 감지와 안전 확보에 사용됩니다. 영상 카메라와 레이더가 결합하면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유지해주게 됩니다. 최근의 자동차는 내부에 여러 전자제어장치를 두고 있는데 통신기술은 가장 적은 수의 부품으로 가장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이들 간의 유무선 통신을 조직화합니다. 또한 기존의 차량에선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차가 멈추고 발을 떼면 움직이는 기계적 구조인데 하이브리드카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에선 브레이크를 밟으면 전기가 생성되어 배터리에 저장됩니다.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자동차 제어기술이죠.”

    ▼ 도요타의 리콜 사태 원인은 바로 제어를 담당하는 브레이크의 문제라는 보도가 있던데….

    “도요타 차량은 전자제어장치를 관장하는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자동차에 전자부품 사용이 늘고 있어요. 제네시스는 전자부품의 비중이 원가의 50%에 달하고 전기자동차는 80~90%에 달합니다. 그러다보니 부품들 사이의 통신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다른 부품의 기능을 간섭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이 때문에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 안전에 확신이 설 때 적용되어야 하는데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의 경우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해 리콜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요타 당분간 끄떡도 없다”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

    ▼ 도요타가 입게 되는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지금까지 드러난 하자는 고치면 되는 겁니다. 완성차에 100%의 완전무결성은 없어요. 대개 자동차회사는 99.999%를 이상적 목표로 지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0.001% 이상의 하자가 발생해요. 도요타의 더 큰 문제는 미국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리콜을 하고 부품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보이는 점이죠. 일정 정도 브랜드 가치의 하락이 불가피하지 않나 싶어요. 어느 정도 복원되는 데는 짧게 6개월, 길게 1년여가 걸릴 듯해요.”

    ▼ 도요타가 입게 되는 예상 손실은….

    “2조~2조5000억원 정도 아닐까요. 그러나 잘나갈 때 1년에 10조원씩 순이익을 냈고 회사 내부자금이 180조원일 정도로 곳간이 넉넉하니 손실을 입더라도 당분간은 끄떡없을 거예요. 게다가 도요타의 품질에 대한 명성과 시장 지배력이 하루아침에 바닥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경영 노하우를 배워갈 정도로 아직 대단히 저력 있는 회사예요.”

    서 센터장은 지난해 현대·기아자동차가 사상 최대 판매와 순이익을 낸 것에 대해 “현대차의 품질이 향상되어 판매가 늘어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기술력과는 무관한 외부 환경 요인도 작용했다”고 했다.

    클린디젤은 유럽 우위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현대·기아자동차는 보통 내수시장에서 1년에 100만대 안팎을 파는데 지난해엔 경제난 속에서도 150만대 정도로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이는 차 한 대당 많게는 200만원까지 감면이 되는 정부의 노후차 세제지원과 YF쏘나타 출시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해외시장에서도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이 열매를 맺었는데 여기에 원화 평가절하와 엔화 평가절상에 따라 일본차 대비 가격경쟁력이 급등한 것이 판매율을 밀어 올렸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발표하는 품질지수에서 1위에 올라 달라진 기술력을 과시했다. 다만 그것은 주로 초기 품질지수에서였다. 5~10년 뒤의 품질지수에서는 평균적으로 1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에 주어진 근본적인 숙제는 5~10년 뒤에도 지금의 ‘글로벌 5’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점은 전세계 자동차시장이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되어가고 있는 추세와 맞물린다. 서 센터장은 “친환경 자동차란 연비는 높이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줄인 자동차”라며 “클린디젤차, 하이브리드카,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다섯 종류가 있다”고 했다.

    ▼ 각각의 친환경 자동차의 실용화 정도, 국내 자동차 회사와의 기술격차 수준이 중요한 사안 같은데요. 먼저 클린디젤차는 어떠한가요.

    “(해외자료를 펼쳐 보이면서) 클린디젤차는 디젤차의 엔진을 개선하여 현재의 리터당 15㎞ 정도인 연비를 20㎞ 이상으로 향상시킨 자동차죠.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는 다른 친환경 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입니다. BMW, 폴크스바겐, 벤츠 등 유럽 자동차회사와 보쉬 등 유럽 부품회사가 기술력에서 단연 압도적이고 국내 자동차 회사와의 격차도 큰 편이죠. 우리나라는 분사노즐 등 디젤차의 핵심부품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 최근 도요타 하이브리드카가 리콜되자 클린디젤차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죠.

    “클린디젤차인 2000cc급 폴크스바겐 폴로의 가격이 3000만~4000만원 선인데요. 유럽 차들은 클린디젤차의 시장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 하이브리드카와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는 명칭이 비슷한데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하이브리드카는 가솔린 엔진을 주동력으로 운행하다 저속주행이나 출발 시엔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예요. 배터리는 운행과정에서 저절로 충전이 됩니다.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는 거꾸로 생각하면 돼요. 보통 때는 전기모터로 운행하다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면 소형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이죠. 전기모터로 운행되는 거리는 50㎞ 정도이고 배터리는 가정에서 충전해주어야 합니다.”

    ▼ 하이브리드카가 실용화 정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 연비, 차량 가격 때문이겠죠?

    “하이브리드카는 도요타가 세계 특허의 90% 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1600cc급 프리우스의 연비는 리터당 35㎞까지 나오고 가격은 일본에서 2000만원대 후반입니다. 혼다 시빅은 2000만원대 초반이고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는 미국 GM이 1600cc급 볼트를 시판할 예정인데 연비는 리터당 100㎞에 달한다고 해요. 그러나 가격은 4000만원 이상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적으로 내연기관을 완전히 걷어낸 전기자동차가 궁극적 목표이기는 하지만 중간 단계인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가 당분간 발전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되고 있어요.”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카를 선보였다. 그러나 연료가 LP가스라는 점에서 상용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LP가스를 자동차 연료로 쓰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서 센터장은 “도요타가 특허와 시장을 선점한 가솔린 하이브리드카에 진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차도 이런 이유로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나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전기자동차는 배터리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전기모터에 의해 구동하는 자동차다. 이산화탄소는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 가볍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고 차량 가격을 낮추는 게 상용화의 관건이다.

    정부 보고서 “국내 전기차 불확실”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GM의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 ‘볼트’(왼쪽), 일본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신동아’는 2009년 12월10일자 ‘전기자동차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 제하의 지식경제부 문건을 입수했다. 국내외 전기자동차 기술에 대한 정부의 비교평가였다. 문건의 해외 자동차업체별 전기자동차 개발동향에 따르면 미쓰비시의 i-MiEV, 스바루의 STella, 닛산의 LEAF, 벤츠의 For Two, BMW의 MiNi E, 중국 BYD의 E6 등의 전기자동차가 2009~10년 출시했거나 출시예정이다.

    이들 차의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90㎞(STella)~400㎞(E6)이고 최고속도는 시속 100㎞(STella)~160㎞(E6)로 되어 있었다. 예상가격은 3500만원(For Two)~6100만원(STella)이었다.

    문건은 국내 전기자동차의 완성차와 부품에 대해 ▲품질-가격경쟁력 낮음 ▲전기차 기술경험 부족 ▲불확실한 시장 ▲관련 부품업체 부족 등으로 경쟁력을 낮게 평가했다. 국내 전기차의 배터리 수준에 대해서도 제조기술은 선진대비 90~100%수준이지만 원천기술은 30% 수준, 부품소재는 50% 수준이라고 했다. 또한 배터리 핵심부품소재 기업이 부족하다고 했다.

    ‘현대차 낙관론’ 이제 그만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대해선 그간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통해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향후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모 중앙일간지 2009년 8월12일 보도)

    이러한 “현대차를 믿고 지켜보자”는 낙관론에 의문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발표로는 2011년말에나 전기자동차가 나온다. 그러나 지식경제부 문건에 따르면 이미 외국에서는 올해 들어 전기자동차 양산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여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형성될 조짐인데 국내 전기자동차 경쟁력은 이들 외국 회사에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서 센터장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친환경차 기술 수준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제는 필요하다면 경고를 내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인터뷰 내용이다.

    ▼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는 2009년 11월3일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차를 모두 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차에 주력한다는 보도도 나왔는데요. 수소연료전지차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는 개념이죠.” (그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 수소연료전지차에 어떤 문제점이 있나요.

    “기술은 이미 개발이 되어 있어요. 문제는 가격이죠. 백금촉매제 등 여러 귀금속 부품이 들어갑니다. 현대에서 산타페 수소연료전지차를 개발하는 데 아마 대당 1억5000만원 이상이 들었을 거예요. 또 수소를 충전해주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비되어야 합니다. 전기자동차 충전도 어려운 판에 전세계적으로 이게 되겠느냐는 거죠.”

    ▼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완성차 회사는 클린디젤차, 하이브리드카,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는 기술력이 뒤처져 있고 수소연료전지차는 상용화까지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분야라는 이야기군요. 그러면 다섯 가지의 친환경 자동차 분야 중 남은 건 전기자동차인데요. 먼저 전기자동차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가져온 의문점이 하나 있어요. 예를 들어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사용하면 그 안에 있는 배터리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잖아요. 전기자동차도 오래 타면 배터리가 빨리 닳게 되는 거 아닌가요.

    “좋은 지적입니다. 현재의 기술로 그 문제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 전기자동차를 새로 구매했을 때 배터리 수명이 얼마나 갈까요.

    “5년 미만. 계속 타려면 해당 자동차회사의 A/S센터에 가서 새 배터리로 교환해야겠죠.”

    ▼ 배터리 가격은….

    “아마 1000만원 정도 할 거예요.”

    ▼ 그렇다면 동일한 1600cc급 자동차라고 했을 때 전기자동차는 기존 가솔린자동차에 비해 차량 가격이 2000만원 이상 비싼데다 5년 이상 타려면 배터리 교환비용 1000만원 정도가 추가되는군요. 또 장거리 운행이 어렵고 전기 충전소가 많지 않은데 따른 불편함이 있고요. 이 정도로는 가솔린자동차를 쉽게 위협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지금 전기자동차는 상용화의 ‘문턱’에 와 있어요. ‘획기적인 배터리 기술’이 나온다면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어요. 그 기술이 바로 내가 업계 사람들에게 강조해 온 ‘2·2·2’입니다. 즉 배터리의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고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용량을 두 배로 늘리자는 거죠. ‘어떤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느냐’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되면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 2030년 전기자동차가 세계 자동차시장의 10%를 점유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친환경 자동차의 득세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연비와 가격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리터당 100㎞를 달리는 친환경 자동차와 주행거리가 리터당 10㎞ 안팎의 가솔린자동차가 같은 가격이라면 게임은 끝난 거죠.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경쟁력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보나요.

    “완성차 조립 기술은 현대차가 최고입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 부품 기술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세계 선진 수준에는 뒤처진다고 봐야죠. 배터리는 LG화학, 전기모터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자체 개발하거나 아웃소싱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주행거리 400㎞의 전기자동차 E6를 올해 내놓겠다고 발표한 중국 BYD사는 원래 배터리회사였는데 국영 자동차회사를 인수해 전기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케이스다. 서 센터장은 “자, 계산을 한번 해보자”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의 가솔린자동차의 경우 현대자동차는 핵심부품인 엔진을 직접 만들죠. 좋은 엔진 하나 개발하면 이후 대량생산에서 엔진 원가가 150만원 정도밖에 안 들어요. 수천만원 하는 차량을 판매했을 때 회사가 얻는 수익이 그만큼 크죠.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전기자동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제조 기술력이 없어요. 배터리 제조회사로부터 공급받으면 배터리 원가가 차량 가격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전기자동차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되는 거죠. 이런 점이 전기자동차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약화시킬 수 있어요. 반면 배터리를 직접 개발한 중국의 전기자동차 회사는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거고요.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는 거죠.”

    그린 카 망설이는 속사정?

    ▼ 도요타는 최근 리콜사태를 겪기는 했지만 크게 봤을 때 기존의 가솔린자동차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고, 떠오르는 친환경 자동차시장에서도 독보적인 하이브리드카 기술로 선두권에 서 있는 것 같은데요. 현대자동차는 실적으로만 봤을 때는 가솔린자동차에 역량이 치우쳐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문제는 친환경 자동차 분야의 기술을 따라잡겠다는 의지인데 가솔린자동차의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그 쪽에서의 승부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전기전자 쪽 전공보다는 기계 쪽 전공이 이 회사를 이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막대한 투자로 람다엔진, 세타엔진, 타우엔진 등 신형 엔진을 계속 개발하고 있는데 그게 다 가솔린 엔진이잖아요.”

    ▼ 세계 주요 자동차시장에서 자동차의 연비향상과 온실가스 저감을 유도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준에 맞추려면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친환경 자동차 개발뿐만 아니라 기존 가솔린자동차의 연비향상과 배기가스 감축도 중요할 것 같군요.

    서승우 서울대 자동차IT센터장의 苦言과 지식경제부 문건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9월8일 경기 화성시 장덕동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제33차 비상경제대책 회의를 주재한 뒤 연구소 로비에 있는 전기자동차(모델 i10EV)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그런 추세와 관련해, 과거에 큰 차를 선호하던 미국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아반떼에 해당하는 B(소형차)급 시장의 성장세가 뚜렷해요. 반면 쏘나타와 제네시스에 해당하는 C급, D급은 판매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즉 세계 자동차시장은 고연비, 친환경, 소형차 위주로 가고 있다는 거죠.” 이 말은 현대자동차가 최근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 개발한 엔진들이 소형차에 비해 아무래도 화석연료를 많이 먹는 중형차 이상급이었다는 점에 대한 간접적 일침으로 들렸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양산 시점을 2013년으로 잡고 있다 2011년으로 앞당겼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려가 크게 작용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당부했는데…”

    이 대통령은 2009년 9월8일 매우 이례적으로 특정 회사인 현대·기아자동차의 기술연구소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식경제부가 전기자동차 양산 시점을 2년 앞당기는 방안을 보고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온 세계가 지금 자동차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세계적 과제에 대응해야 하는 이때 전기자동차는 중요한 역할 할 것임이 분명하다”며 현대차의 분발을 재차 촉구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10일 열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 주최 ‘지능형 전기자동차 워크숍’에선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이 자리엔 친환경 자동차 업계와 연구 분야의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닛산자동차는 초청을 받자 일본 본사에서 전기자동차 담당자가 달려와 발표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측은 오지 않았다. 대신 자회사 격인 현대모비스 측이 왔다.

    현대차, 사회적 책임감 가져야

    이 워크숍에서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전기자동차는 요원하다. 조기 상용화 가능성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현대자동차를 직접 찾아가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현대자동차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청중 앞에서 밝혔다. 정부 측에서 오죽 답답했으면 이럴까 하고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현대자동차 측은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는 내용의 TV 기업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 보통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세계 자동차시장은 3년, 5년,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맞고 있다. 3년 전 도요타가 세계 1위를 향해 질주할 때 지금 겪고 있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월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박람회 ‘CES 2010’에 참석한 자리에서 “10년 전 삼성은 지금의 5분의 1 크기의 구멍가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서 센터장은 이 말에 빗대어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 변화와 적극성 없이 이대로 가단 우리나라 완성차 회사는 구멍가게로 전락할 수 있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낼 때가 신기술 확보 및 구조 조정에 최적기다. 국내 친환경차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기금마련의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사회적 책임감을 지적한 그의 말에 현대차가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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