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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칼럼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패션 탐닉 여기자의 눈으로 본 여의도 풍경

  • 김민경 기자│holden@donga.com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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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2011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여사가 한인 디자이너 정두리 씨가 디자인한 한쪽 어깨 끈이 없는 드레스를 입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의 패션스타일로 보자면, 지금은 퇴행과 위선의 시대다. 현 정국의 드레스코드는 ‘카무플라주(은폐와 위장)’다. 남성 정치인들은 검은색 정장과 헐렁한 바람막이를 유니폼 삼아 입고, 여성 정치인들은 촌스럽게 옷을 입는다. 민생 현장을 살피는 정치인이 입은 퍼런색 공무원 바람막이 아래로 길고 두툼한 다운 패딩이 비죽 나온 모습은 ‘워스트 드레서’란 말로도 부족하다. 제대로 위장하지 못할 바엔 명품 패딩을 입고 나오는 게 낫다. 이런 현상은 ‘부자 정권’에 대한 국민의 혐오에 대응하는 정치인 나름의 보호방식일 것이다. ‘부자 정권’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여권 여성 정치인들은 블랙·화이트 또는 블랙·블루 일색이다.

베스트드레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나경원, 정옥임, 조윤선 (전현직) 의원도 최근엔 무채색 유니폼 의상 일색이다. 특히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시장선거 캠페인 기간에 검은색 정장과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었다는 헐렁한 점퍼에 납작한 일명 간호사 신발을 신어 베스트드레서에서 ‘패션 테러리스트’로 변신했다. 피부과 진료비가 정책 공약보다 표심에 더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가 ‘몸뻬’에 고무신을 신었다고 해서, 개인사적 배경과 당적이 바뀌진 않는다. 차라리 그녀가 가진 좋은 취향으로 우아하고 개성 있는 ‘여성 시장 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계층을 배려하는 여유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위선적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부과 사건’이 여권에 치명상을 입히자, 정권에 비판적인 여성 작가 공지영의 백이 ‘샤넬’이냐 ‘샤넬풍’이냐를 놓고 전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 치의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그 전투에 대통령 손녀딸의 ‘몽클레르’ 패딩이 끌려오기도 했다.

‘강부자 정권’ ‘고소영 내각’을 공격하는 야권 여성 정치인의 스타일은 ‘여성성의 배제’와 ‘공주 스타일’의 혼란스러운 믹스매치라고 하겠다. 때로는 옷을 입은 의도가 너무 명백해서 사람과 옷이 겉도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요 행사날 야권 여성 정치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귀여운 레이스나 러플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 재킷을 매치하거나 단순한 이너웨어에 노랑, 빨강, 분홍 등 원색 재킷을 매치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니라 야성 강한 국회의원으로 보이겠다는 목적과 여성성으로서 얻을 수 있는 대중적 지지도 잡겠다는 욕심이 빚어낸 패션이다.

공주풍 투사의 역설



최근 두 차례의 경선을 거치며 대중 정치인으로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박영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일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하늘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롱재킷을 입었고, 당대표 경선일엔 흰색 레이스 블라우스에 빨간색 롱재킷을 입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정부 여당에 대한 강력한 투쟁의 변을 외치면서 공주풍 블라우스를 입었을까(추미애 의원 역시 꽃분홍색 재킷을 입고 열변을 토했다. 그 역시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표직을 놓고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에 어린이 같은 빨간 재킷에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나온 이유는 뭘까. 그녀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다음 날 첫 회의석상에도 같은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다. 앵커우먼 시절 박 최고위원의 시크한 스타일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스타일리스트가 안티로 여겨질 정도였다.

몇몇 패션 전문가는 이 ‘사건’에 대해 ‘요즘 여성 정치인의 스타일이 경직된 정치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서 “패션 이야기하면 욕먹기 딱 좋다”고 자조했다. 한 패션디자인 전공 교수는 “개성과 스타일 있는 정치인이 각광받는 시대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공격받기도 하니까 정치인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국민이 등 돌린 ‘부자 정권’의 일원으로 비칠까봐, 혹은 ‘부자 정권’ 공격에 소홀한 것으로 보일까봐 최대한 촌스럽고 ‘없어 보이게’ 스타일링을 하는 것이다. 한 진보 진영 여성정치인의 의뢰를 받아 스타일링을 맡았던 H 씨는 “운동권과 아마추어적인 이미지가 강해 세련되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 콘셉트를 바꿔 홍보물 사진까지 촬영했다. 여성 정치인 당사자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사진을 본 당직자, 보좌진의 반대가 극심했다. 순박, 투박해야 한다는 거였다. 결국 그 사진은 폐기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정치인이 한두 번은 이미지메이킹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지 연구가 제대로 된 적 없다 보니 조언 자체가 도식적이다. 초등학교 미술 수업 수준이다. 빨간색은 정열·젊음이고, 파란색은 이성과 차가움이니, 젊고 강해보이려면 빨강 넥타이를 매라고 가르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게 꿈이었는데 젊은 의원도 너무 보수적이라 절망적인 경험을 한 셈이다.”

박 최고위원은 여성성을 배제하고 검소함을 강조하는 정장 재킷 디자인을 선택하되 부드러운 여성 정치인으로서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꼬불꼬불 레이스와 빨간색을 골랐을 것이다. 한 디자이너는 내게 “박 최고위원이 우리 매장에 온 적이 있는데, ‘점잖게 촌스러운 옷’을 고른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귀띔해주었다.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에게는 ‘점잖게 촌스러운 스타일’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옷 입기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 정치인, ‘쫄지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 없이 ‘정치공학적’으로 맞춰 입은 옷은 종종 재난이 되곤 한다. 미국의 대선후보였던 사라 페일린은 지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늘 무채색 단정한 정장에 올려붙인 머리를 하고 모범생 안경을 쓰고 나왔지만, 미국 내에서는 ‘에로 여배우 스타일’-에로 여배우가 변신 코스프레한 것 같다는 의미-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솔직하지 못한 아마추어 정치지망생’이라는 인상만 남겼다. 이에 비해 미셸 오바마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화려한 드레스, 꽃무늬 원피스, 정장 등 연일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지만, ‘고급스러운 패션 테이스트를 가진 미국 엘리트 여성 스타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스타일이란 단지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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