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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 감정 뿌리는 ‘한국 대국화’ 두려움

‘천년 恨’에 대한 일본의 오해

  • 김영림 일본 통신원 | c45acp@naver.com

혐한(嫌韓) 감정 뿌리는 ‘한국 대국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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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구’와 ‘무쿠리 고쿠리’

혐한(嫌韓) 감정 뿌리는 ‘한국 대국화’ 두려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이 한반도를 통한 외침(外侵)을 두려워한 역사는 대단히 길다. 기원은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한반도와의 연고가 끊기자 일본은 나당연합군의 일본 침공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서 규슈지역에 대규모로 산성을 쌓고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옮겼다.

이 위기는 신라에 의해 정리됐다. 당이 영토 야욕을 드러내자 신라는 고구려·백제의 부흥군과 함께 당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해, 한중일 3국의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다. 3국 공존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리고 신라 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해상왕 장보고가 암살당하며 해양 질서가 무너지자, 중앙정부의 조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신라 지방세력이 일본으로 눈을 돌려 규슈와 쓰시마 등지를 약탈한 것.

이들이 바로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한 대규모 해적 ‘신라구(新羅寇)’다. 그중에는 현춘(賢春)처럼 2500여 명을 태운 100척의 선단을 이끌고 쓰시마를 습격(894년)한 이도 있었다. ‘일본기략(日本紀略)’ 등에는 ‘(신라구의 출몰로) 규슈 지역은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초토화됐다’는 기록이 있다.

수백 년 뒤 일본은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강한 공포를 안긴 사건에 직면했다. ‘원구(元寇)’라고 칭하는 두 차례에 걸친 여몽(麗蒙)연합군의 일본 침공(1274, 1281년)이다. 여몽연합군은 ‘철포’라고 기록된 화약병기를 일본에 처음으로 선보여 충격을 줬다.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연합군은 상륙지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해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고려군은 몽골군의 부속병력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나, 일본은 고려와 몽골을 동등한 침략자로 인식했다. ‘가미카제(神風)’라 불리는 폭풍으로 상륙 선단이 괴멸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국가 존망의 위기까지 몰리는 상황이었다. 그후 여몽연합군은 ‘무쿠리 고쿠리(몽골 고려)’로 불리며 20세기 초까지 우는 아이를 겁줘서 달래는 공포의 대명사가 됐다.

그 공포가 현대까지 남은 증거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 현장의 생존자들을 다룬 이부세 마스지의 소설 ‘검은 비(黑い雨)’를 예시할 수 있다. 소설에서 저자는 원폭 버섯구름을 ‘무쿠리 고쿠리의 구름’이라고 표현하며 ‘지옥의 사자’에 빗댄다.

따라서 천년이란 시한까지 제시하며 우리를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한 박 대통령 연설은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 것이 된다. 일본인들이 ‘우리도 ‘원구’에게 당한 지 천년도 지나지 않았는데…’라고 불평하는 데는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류가 있는 박 대통령 연설을 일부 일본 언론이 ‘천년의 한’이라는 자극적인 표제어로 뽑아 올리면서 그 오류가 확대 재생산됐다.

사적 보복을 인정하는 문화

그들은 우리의 ‘한’을 ‘우라미(恨み)’로 번역했다. 한과 우라미는 같은 한자를 쓰지만 개념은 사뭇 다르다. 한국인의 ‘한’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강렬한 아쉬움과 분함, 그리고 인내를 우선하며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인의 ‘우라미’는 타인의 처사에 ‘분개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강조된다. 당했으면 반드시 되갚아야 하는 ‘원한’에 가까운 개념이다.

양자의 해결 방식도 다르다. 이는 양국의 대표적 고전을 읽어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장화홍련전’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자매의 한을 새로 부임한 지방관이 살인자 계모와 이복형제를 처벌함으로써 해결하는 구조다. 자매의 원혼은 신임 관리의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정당함이 증명됐기에 한을 푸는 것이다.

한국은 중앙집권체제와 주자학적 윤리관에 젖은 탓인지 합법적 절차가 결여된 직접적인 복수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참회하고 그것을 피해자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구조도 많다. 그러나 일본식 이야기 구조라면 크게 달라진다. 자매의 원혼이 계모와 이복형제를 직접 응징해 ‘끝장을 보는’ 스토리가 됐을 것이다.

우라미와 관련된 일본의 대표적 고전에 ‘주신구라(忠臣藏)’가 있다. ‘주신구라’의 주인공인 무사들은, 막부의 관리에게 모욕당한 것에 항거한 그들의 주군이 할복을 명받고 영지가 몰수당하는 사건을 겪자, 주군의 한을 풀기 위해 막부의 관리에게 직접 복수를 하고 자수한 뒤 할복한다. 우리였다면 끝까지 중앙정부에 직소해 왕명을 기다리고 그것으로 인해 당쟁이 일어나는 구도였을 것이다.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사법체제가 무너졌기에, 개인의 직접적인 복수를 ‘자력구제’라는 논리로 찬미하는 문화가 생겨 위와 같은 작품이 호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본적 의미와 해결방식이 다른 한국인의 한을 일본어의 우라미로 직역한 것은 오역(誤譯)이 된다.

일본의 혐한 언론은 한국인을 ‘우라미의 민족’이라고 강조하며,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불안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한다. 한국인이 과거사의 한을 풀기 위해 다시 원구가 되어 복수할 것이라는 논리 비약까지 감행한다. 한국인의 한 해결 방식을 그들의 우라미 해결 방식과 동일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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