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이슈

직장 내 성희롱 징계의 ‘덫’ 여기선 ‘감봉’, 저기선 ‘해고’?!

  • 입력2018-04-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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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 내 미투 고발 폭증…‘징계 수위’ 들쑥날쑥

    • ‘징계해고’ 마땅한 사안? “기업 재량권”

    • 고무줄 징계가 ‘2차 피해’ 부르는 요인 되기도

    • 가해자에만 있는 ‘구제’ 권한, 피해자도 보장 필요

    서울 소재 중소제조업체 대표 A씨는 지난해 사내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 때문에 한참 골머리를 앓았다. 한 중견 간부가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을 하며 두 명의 부하 여성 직원과 신체 접촉을 했다. 창사 5년 만에 처음 벌어진 사내 성희롱 사건이었다. 피해 직원들은 사측에 해당 간부를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노무사마다 조언이 달랐다. 한 노무사는 “일회성에 불과한 일이라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노무사는 “신체 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 재량으로 해고할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규모가 작은 회사라 징계가 가볍다는 피해 직원들의 항의나 해당 간부의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 모두 부담스러웠다”며 “결국 해당 간부를 설득해 자진해서 사표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는데, 어떻게 징계해야 문제 되지 않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사업주는 곧장 가해 근로자에 대해 징계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제14조). 대개의 회사는 사안의 내용을 파악한 뒤 사내 징계위원회 등을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그런데 회사마다 징계 수위가 들쑥날쑥하다. 노무법인 가을의 김건우 대표(공인노무사)는 “과거에 비해 성희롱 행위에 대한 사내 징계 수준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도 회사마다 징계 수위가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직장에 비해 징계가 과도해 가해자가 부당하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징계가 과소해 피해자가 불만족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일례로 술에 취해 부하 직원을 껴안았다고 했을 때, 어떤 회사는 감봉에 그치지만 일부 회사는 징계해고를 한다”고 했다.

    노동위, “성희롱 사안 무겁게 본다”

    최근 노동위원회가 신체 접촉을 동반한 성희롱 행위에 대한 징계해고가 적합하다고 결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동아DB]

    최근 노동위원회가 신체 접촉을 동반한 성희롱 행위에 대한 징계해고가 적합하다고 결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동아DB]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다. 모 기업 정직원이 인턴사원을 데리고 출장을 가서 차 안에서 인턴사원을 한 차례 신체 접촉을 동반한 성희롱을 했다. 이 기업은 가해 직원을 징계해고했다. 



    지난해 7월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공무원 징계사례집: 반듯한 공무원, 신뢰받는 정부’에 실린 사례다. 한 공무원이 차 안에서 부하 직원의 손을 잡거나 포옹을 시도하고, 사무실에서도 같은 부하 직원의 손을 잡고 등을 두드리며 가볍게 포옹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이 공무원은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해고와 감봉 2개월 사이의 간극은 크다. 해고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이직할 때도 해고 사실은 불리한 요건으로 작용한다. 한편 감봉의 금액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엄격히 제한돼 있다. △감봉(감급) 총액은 월급여(임금총액)의 10분의 1을 초과할 수 없고 △1회 감봉액은 1일 평균 임금의 절반을 초과할 수 없다. 만일 월급여가 300만 원이고 1일 평균 임금이 10만 원인 사람이 2개월 감봉 처분을 받는다면, 매달 최고 5만 원(10만 원×0.5)씩 두 달간 급여가 깎인다는 뜻이다. ‘벌금 10만 원’인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위원회는 직장 내 성희롱 징계 수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까.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성희롱 사건은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해고할 수 있다’ 등으로 항목을 열거할 순 없지만, 노동위는 성희롱 가해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보는 편”이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거나, 사회적 책임이 중한 공공기관의 경우 책임을 더욱 무겁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공공기관의 부서장이 소속 부서원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하고 반복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며 2차 보복성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징계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사건번호 2017부해2411). 한편 모 기업이 어린 여직원에게 성희롱적 언동을 수차례 한 부서장을 징계해고한 것에 대해서는 양정(量定)이 과하여 부당하다고 판결했다(사건번호 2017부해2216). 

    기업마다 성희롱 행위에 대한 징계 수위가 다른 이유는 각 기업이 징계에 대한 재량권을 갖고 자율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낼 수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로, 2013년 370건에서 지난해 728건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고용부는 해당 기업을 조사해 시정을 지시하거나, 이를 어겼을 경우 과태료 부과, 형사처벌 등 추가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해당 기업이 내린 징계 내용에 대해서 고용부가 문제 제기를 하진 않는다. 고용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징계 결정은 각 기업의 재량권에 속한다”며 “그것에 대해 고용부가 부족하다거나 넘친다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하기 전에 피해 근로자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권박미숙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장은 “피해 근로자에게 가해자 징계 수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오히려 피해 근로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일부 기업은 성희롱 사안에 대해 무조건 징계해고를 결정하는데, 그 또한 피해 근로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회사와 근로자 모두가 납득할만한 징계 기준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희롱 행위에 대한 들쑥날쑥한 징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 노무사는 “회사가 성희롱 가해 직원을 다른 부서로 보내는 정도로 마무리하자, 주변 동료들이 ‘별일도 아닌데 괜히 분란만 일으켰다’며 피해 직원을 비난하는 결과로 이어진 경우가 왕왕 있다”고 전했다.

    고용부의 ‘사후 모니터링’ 필요

    3월 15일 여성가족부가 직장 내 성폭력 근절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통일된 징계양정 기준 마련 요구가 나왔다. 최우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여성위원장은 “인사위원회에 노사가 함께 참여해 사건 조사와 징계 등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권박미숙 팀장은 “성희롱 사건의 특성상 일률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어렵다면, 고용부가 성희롱 징계 이후 해당 기업에서 유사한 일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가 좋은 여건이 됐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 등 사후 모니터링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성희롱 가해자는 노동위원회에 ‘과도한’ 징계에 대해 구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는 ‘과소한’ 징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창구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희롱 피해자가 직장 내에서 불이익한 인사 조치 등 2차 피해를 입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과 노동위원회법 등의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그러한 법안 개정에 더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려진 징계 수준에 대해서도 사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노동위에 신설할 것을 성폭력 대책 범정부 협의체에서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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