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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쓰촨성

과시보다 실속 지위보다 여유

川 ‘하늘의 곳간’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과시보다 실속 지위보다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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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덩샤오핑과 쓰촨 요리의 공통점은 ‘실속’에 있다. 쓰촨 출신 덩샤오핑은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그저 ‘쥐 잘 잡는 고양이’가 되고자 했고, 쓰촨 요리는 돼지고기 · 두부 · 가지 등 흔한 재료로 한 끼 식단을 푸짐하게 만든다. 쓰촨의 ‘실용’은 효율보다는 삶의 ‘윤택’에 가깝다. 내일의 중국에 중요한 힌트를 주는 것은 분명 쓰촨이리라.
과시보다 실속 지위보다 여유

청두시장 푸줏간에서 만난 상인.

쓰촨 아가씨들은 무척 사랑스럽다. 미모도 미모지만 잘 웃고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더 예뻐 보인다. 게다가 어떤 주제든 대화를 계속 즐겁게 이어가는 재주가 있다. 숙소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그녀는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쯔궁(自貢)’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웃어요?”

“우리 고향은 공룡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한데, 중국에서는 못생긴 여자를 공룡이라 부르거든요. 그래서 우리 동네 여자들에겐 못생겼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 말이 겸손한 농담으로 들릴 만큼 그녀는 예뻤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보다.

“베이징에 가면 자신의 지위가 낮음을 깨닫게 되고, 쓰촨에 가면 자신이 너무 빨리 결혼했음을 깨닫게 된다.”

天府之國

과시보다 실속 지위보다 여유
쓰촨 여자를 ‘촨메이쯔(川妹子)’라고 한다. 강가에 사는 누이동생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 별칭이 아깝지 않게 쓰촨 여자들은 강물이 흐르듯 활달하고 냇물이 흐르듯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쓰촨성의 약칭 ‘내 천(川)’과 참 잘 어울린다. 쓰촨(四川)은 송대 행정구역인 천협사로(川陝四路)의 줄임말이다. 장강(長江), 민강(岷江), 타강(타;江), 가릉강(嘉陵江)의 4줄기 강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쓰촨은 험준한 산속에 거대한 평야가 있는 분지다. 풍부한 강물이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기후가 온화해 온갖 동식물이 잘 자란다. 굳게 닫혀 있지만 막상 문을 열면 풍부한 물산이 넘쳐나는 곳이라 천부지국(天府之國), 즉 ‘하늘의 곳간’이라 불렸다. 얼마나 물산이 풍부해야 하늘의 곳간이 될 수 있을까. ‘전국책(戰國策)’은 말한다. “전답이 비옥하고 좋으며, 백성이 많고 재물이 풍부하며, 만 승의 전차를 구비해 떨쳐 일어나면 백만대군을 일으킬 수 있고, 비옥한 광야가 천 리나 뻗어 있고, 축적된 재물이 넉넉하며, 지세가 편안한 곳을 일러 천부(天府)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좋은 땅에 촉인(蜀人)들이 살았다. 쓰촨의 또 다른 약칭 ‘나라이름 촉(蜀)’은 벌레가 머리로 실을 토해내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원래 누에를 뜻했다. 촉인들이 누에를 숭상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촉에선 일찍이 양잠업이 발달했다.

풍요로운 경제 덕분에 촉은 상주(商周) 시대에 이미 고도의 청동문명을 발달시켰다. 촉의 삼성퇴 도성은 상나라의 초기 도성보다 크고 중기 도성과 비슷하다. 삼성퇴의 유물은 중원의 유물과 판이하다. 상의 유물이 추상화한 기하학적 문양의 제기(祭器)인 데 반해 촉의 유물은 사람, 새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높이 2.6m, 무게 180kg의 청동상 등 규모도 크고 조형미도 뛰어난 삼성퇴 유물을 보면 촉의 탁월한 예술과 정교한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부리부리한 눈의 청동상은 중원보다는 오히려 마야 문명을 연상케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촉의 국력은 중원을 능가할 정도였고, 독창적 문명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잠총과 어부, 나라 세운 지 얼마나 아득한가. 그로부터 사만팔천 년 동안 진나라와 서로 왕래하지 않았네.” 이백의 노래가 과장되기는 했지만, 촉이 독자적인 긴 역사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항우를 죽인 땅

상나라는 주변 나라에서 약탈을 일삼아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신흥 강국 주나라는 이들과 동맹을 맺고 상을 정벌한다. ‘상서(商書)’에 따르면 “무왕이 상을 정벌하는 데 파촉의 도움을 받았다. 파촉의 군사들이 앞과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상군은 창을 거꾸로 들고 항복했다.”

그러나 중원을 장악하자 주나라는 지척에 있는 강국 촉이 불편했다. 주는 상을 정벌한 지 불과 37일 만에 촉을 공격한다. 그러나 정벌하지는 못했고, 800년 뒤에 오히려 먼저 망한다. 촉은 춘추전국시대까지 이어져 진나라 때에야 복속된다. ‘천하가 어지러워지기 전에 촉에 먼저 난리가 나고, 천하가 다스려져도 촉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전통이 이미 이때부터 확립된 듯하다.

강병을 자랑하던 진도 촉을 정벌하기는 쉽진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진은 촉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소 석상을 만들고 꼬리에 금을 입혀 ‘금똥을 싸는 소’라고 소문을 내며 촉의 국경 앞에 갖다놓았다. 촉왕이 소를 가져오느라 진나라까지 길을 뚫자 진은 이 길을 통해 촉을 정벌했다. 촉이 스스로 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외부에서 뚫고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촉의 풍부한 물자는 진이 천하통일을 이룩한 원동력이 됐다. 사서에 따르면 “촉나라가 귀속되자 진나라는 더욱 강력해졌고, 재원이 풍부해 제후들을 우습게 여겼”으니 “진나라의 6국 병합은 촉나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중원인은 촉을 산속의 오지로만 여겼다. 항우는 천하를 장악한 뒤 눈엣가시인 유방을 촉으로 보냈다. 촉은 ‘산세가 험하고 낭떠러지에 에워싸여 나는 새들도 쉬지 않으면 넘지 못하는 곳’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땅이니 아마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유방은 오히려 촉에 숨어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항우가 팽성전투에서 3만 정병으로 유방의 육십만 대군을 박살냈을 때, 소하는 촉의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 유방이 빠른 시간 내에 재기하는 것을 도왔고, 유방은 해하전투로 기어이 항우를 제압했다. 유방을 죽이려고 보낸 땅이 도리어 항우를 죽인 꼴이 됐다.

항우에게 연전연패하다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대세를 뒤집자 후한 말에 ‘어게인(again) 해하전투’를 꿈꾼 영웅들이 등장한다. 바로 제갈량과 유비다. 일세의 효웅으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변변한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떠돌던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만난다. 물산이 풍부한 익주(쓰촨)와 전략적 요지인 형주(후베이)를 얻으면 조조, 손권과 능히 견줄 수 있다는 천하삼분지계에 따라 유비는 촉한(蜀漢)의 황제가 됐다. 훗날 촉한은 형주를 잃고 세력이 크게 꺾였지만, 쓰촨 하나만으로도 중원을 차지한 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내륙 깊숙이 위치한 ‘하늘의 곳간’은 근현대 중국에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만주, 상하이를 시작으로 중국을 급속히 잠식해오자 국민당은 충칭(당시 쓰촨성)에 임시정부를 세웠다. 쓰촨은 일본군이 쳐들어오기 힘들고 물산이 풍부하기에 든든한 후방이었다. 올해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은 것도 쓰촨의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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