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이색 실험

허름한 차림엔 ‘투명인간’ 말쑥한 복장엔 ‘3초 환대’

백화점 명품매장의 ‘고객 외모 차별’

  • 신연수 |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4학년 love0mandoo@naver.com

    입력2016-11-09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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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백화점에 갈 땐 잘 차려입고 가야 무시 안 당한대.”

    “에이, 설마요.”

    필자가 서울시내 유명 백화점에 갈 때 어머니와 나눈 대화다. 백화점 직원들도 누군가의 겉모습을 보고 짐짓 어떤 인상을 가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고객의 옷차림에 따라 태도를 달리할까.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실험 대상은 서울 소공동 L백화점 본점, 목동 H백화점, 영등포 S백화점의 24개 명품 브랜드 매장. 허름한 차림으로 매장들을 방문한 다음에 말쑥한 차림으로 같은 매장들을 다시 방문해 직원들의 태도를 관찰했다.

    허름한 모습을 연출하려고 필자는 긴 머리를 묶고 검은 군모를 썼다. 다시 방문해도 알아보기 힘들게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목이 늘어난 반팔 티셔츠에 모자 달린 진회색 후드집업을 입었다. 옷 전체에 보풀이 있어 한눈에 봐도 촌스러웠다. 하의는 무릎이 튀어나오고 통이 넓은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신발은 중년여성이 주로 싣는 운동화. 휴일에 집에서 뒹굴다 슈퍼마켓에 라면 사러 가는 차림이었다.



    이렇게 입고 소공동 L백화점 본점의 L 브랜드 매장에 들어섰다. 평일이라 백화점은 한산했고 이 매장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직원 두 명이 즉각 필자를 쳐다봤지만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이리저리 천천히 둘러보며 매장의 가장 안쪽 진열대에 도달했다. 그제야 직원이 다가와 “찾으시는 것 있으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매장에 들어선 지 한참 지난 뒤였다.



    휴대전화만 보는 직원

    B 브랜드 매장은 규모가 작았다. 남자 직원 한 명이 안쪽 진열대에 서 있었다. 그는 필자가 들어온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전화만 계속 보고 있었다. 다른 직원이 잠시 나와 “어서 오세요”라고 했지만, 그도 이내 다른 데로 가버렸다. 휴대전화를 보던 직원은 그제야 인사를 했다. 필자는 입구에 진열된 가방을 둘러본 후 그가 있던 진열대로 향했다. 스카프를 보려고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필자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이날은 비가 내렸다. P 브랜드 매장의 입구에서 한 직원이 손님이 들고 온 우산을 일일이 받아서 우산꽂이에 넣어주고 있었다. 손님들은 세련돼 보이는 옷차림의 여성들이었다. 손님이 매장을 떠날 때 이 직원은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꺼내 공손하게 건넸다. 이 직원은 필자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까. 우산을 들고 매장에 들어서자 이 직원은 “어서 오십시오, 프라다입니다”라고 사무적으로 인사했다. 그게 끝이었다. 필자의 팔뚝에 5000원짜리 비닐우산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지만 직원은 우산을 받아주지 않았다.  



    먼저 왔지만 뒷전으로

    옷을 허름하게 입고 백화점 명품매장에 가면 늦게 온 손님보다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L백화점 방문 때와 같은 복장으로 목동 H백화점 Z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옷을 살펴보고 있으니 점원이 다가와 “혹시 찾는 것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필자는 “아, 저, 블라우스 보고 있는 데요”라고 답했다. 그때 필자의 등 뒤에서 “흰색에 무난한 상의요”라고 말하는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점원은 필자가 아니라 필자보다 한참 뒤에 들어온 이 손님에게 질문한 것이었다. 그는 필자를 스치듯 지나 그 손님에게 다가서더니 환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옷을 권했다. 무안해졌다. 곧 다른 점원이 안내해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이후 한 직원이 장내방송을 하듯 허공에 대고 “천천히 보세요”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며칠 뒤 말쑥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같은 백화점 매장들을 찾았다. 상의는 깃털 모양 반짝이가 박힌 검정 블라우스를 걸쳤다. 유명 배우가 광고한 검정 스키니 바지를 받쳐 입었다. 아이브로에 섀도우, 붉은 립스틱까지 화장도 정성스럽게 했다. 긴 머리는 풀어 앞에만 웨이브를 줬다. 요즘 유행한다는 핑크골드 귀고리와 목걸이를 세트로 맞춰 착용했다. 신발은 차분하게 워커힐로 마무리했다. 여기에 명품 가방을 들었다.

    주말이라 L백화점 본점은 쇼핑객으로 넘쳤다. L 브랜드 매장에 들어갔다. 이전에 허름한 차림으로 들렀을 땐 손님이 없어도 인사조차 못 받은 곳이다. 이날은 사람들로 북적여 누가 직원이고 누가 손님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15초 만에 직원이 다가와 “안녕하세요.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매장은 더 혼잡했지만, 직원은 더 빨리 왔고 더 친절했다.

    이어 B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섰다. 3초도 안 돼 여직원으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필자가 가방에 관심을 보이자 바로 다가와 색을 추천했다. 예전에 겪은, 필자를 흘끗 쳐다본 뒤 계속 휴대전화만 보는 일은 없었다. 여직원은 가방을 메어보라고도 권했고 수납 공간도 보여줬다. 매장을 나설 때는 자신의 명함도 건넸다.  

    어느 날엔, 필자는 단정한 옷을 입고 대학생 남동생은 추레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함께 목동 H백화점을 찾았다. 유명 시계 브랜드들을 파는 매장에 남동생이 들어가 진열대 안 시계를 살펴봤다. 직원은 동생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잠시 후 필자가 들어가자 직원은 즉각 다가와 “이쪽부터 저기까지 세일 중이에요. 착용해보세요”라고 환대했다. 그의 시선은 줄곧 필자에게 고정됐다. 필자가 매장에서 나온 뒤에도 동생은 그 직원으로부터 별다른 안내를 받지 못했다.



    “잘 사실 것 같은 분에게…”

    실험 결과, 3개 백화점 24개 매장의 80%인 19개 매장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필자와 말쑥한 옷을 입은 필자를 차별적으로 대했다. 방문한 매장의 직원들 중 적어도 한 명은 남루한 복장의 필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많은 직원은 다른 손님에겐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인사했지만, 허름한 복장의 필자에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런 실험 결과와 비슷한 경험을 한 백화점 고객이 더러 있다고 한다. 이영덕(54) 씨는 1월 노란색 안전조끼를 입은 채 신발을 급히 구매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 A백화점을 방문했다. 그는 백화점 정문 입구에서 입장을 저지당했다. 백화점 직원이 그에게 “후문으로 돌아서 들어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씨는 “작업복과 낡은 신발 차림 때문인 것 같았다”고 했다.

    H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직원도 사람이므로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태도를 취하긴 어렵다. 용모가 단정한 손님을 더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아무래도 판매 실적 부담이 크다 보니, 잘 사실 것 같은 분에게 더 쏠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S백화점에서 명품잡화를 판매하는 B씨는 “우리는 서비스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고객 외모 차별은 직원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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