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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김정은 옥죄는 최대 압박”

형사 기소? 닮은 듯 다른 김정은과 밀로셰비치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김정은 옥죄는 최대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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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국가원수 기소 전례 남긴 ‘발칸의 도살자’
    ●국제법상 현직 국가원수도 면책은 없어
    ●리비아, 수단은 안보리 결의로 ICC 회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김정은 옥죄는 최대 압박”
“미스터 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은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서 재판관을 이렇게 칭했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대(大)세르비아를 기치로 내걸고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한때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한 지도자다. 1997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에도 당선됐다. 10년간 발칸반도를 증오와 살육의 땅으로 만들어 ‘발칸의 도살자’라고 불렸다. 

밀로셰비치는 6개 공화국으로 이뤄진 유고슬라비아가 1990년대 초 분리될 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반군을 지원했다. 1999년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학살했다. 1999년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소로 기소됐다. 2000년 10월 세르비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으며 밀로셰비치는 2001년 4월 세르비아에서 체포돼 ICTY에 넘겨졌다.


민중봉기 후 체포… 재판 중 사망

발칸의 도살자 재판은 ICTY가 위치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다. 재판관들을 각하(Your Excellency)라고 호칭한 라도반 카라지치(40년형 선고) 등 다른 피고인과 달리 밀로셰비치는 법정에서도 반성하기는커녕 염치없이 태연했다. 증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단식투쟁도 벌였다. 재판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요구해도 앉은 채로 있었다. 

밀로셰비치가 수감 중이던 2006년 사망하는 바람에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발칸의 도살자 재판은 현직 국가원수가 임기 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된 첫 사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밀로셰비치의 기소→체포→재판→(단죄) 과정은 뜻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2월 19일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5년부터 12년 연속으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인권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2016년 북한인권 결의안’에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인권 유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3년 연속 담겼다. 

북한 인권 유린 사안의 최종 책임자는 김정은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도 각각 12년, 32
년간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했으나 히틀러와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독일과 소련의 정치범수용소는 사라졌다. 반면 북한은 3대 세습을 거치면서 60년 넘게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한다. 김정은은 고모부(장성택)를 처형했으며 이복형(김정남)을 암살했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회부하는 것만이 노예 상태의 북한 주민을 구출할 유일한 길이다.” 

프랑스 인권운동가 피에르 리구로는 1월 ‘라 리브르 벨지크’ 기고문에서 위와 같이 썼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견해도 비슷하다. 

“북한 외교를 곤란하게 하는 게 인권 문제다. 핵은 자위적 수단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나 인권 문제는 그렇지 않다. 논쟁할수록 북한이 수세에 몰린다. 평양은 유엔 결의안에 김정은 이름 석 자가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는 결의안이 나와야 한다. 북한 주민은 ICC가 뭔지도 모르나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범죄자라는 건 아이들도 다 안다.”


斷罪받지 않은 日王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운데)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이 2002년 2월 13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재판 도중인 2006년 3월 사망했다.[REX]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운데)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이 2002년 2월 13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재판 도중인 2006년 3월 사망했다.[REX]

밀로셰비치가 법정에서 “미스터 권”이라고 호칭한 이는 권오곤 전 ICTY 재판관(현 ICC 당사국총회 의장·한국법학원장)이다. ‘발칸의 학살자’ 라도반 카라지치에게 40년형을 선고한 이도 그다. 

세르비아계 지도자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1992~1995) 때 보스니아인을 학살해 단죄됐다. 카라지치는 1급 지명수배자로 ICTY에 회부된 지 13년 만인 2008년 7월 붙잡혀 2009년부터 재판을 받았다. 지난해 3월 4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카라지치 재판은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되면 종국엔 단죄를 피할 수 없다는 전례를 남겼다. 

밀로셰비치가 사망하지 않아 선고가 이뤄졌다면 카라지치처럼 중형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권 전 재판관은 “잡혀온 것은 나중이지만 국가원수 재직 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돼 결국 재판에 회부된 예는 밀로셰비치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법상 의미가 매우 크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사법 역사에 전례를 남긴 사건이다. 국제법적으로 특정 국가의 원수를 기소하는 것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었다. 밀로셰비치 이전까지 국가원수를 국제법적으로 기소한 예가 단 한 번도 없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중립국 침략, 중립의무 위반, 화학무기 사용 등 혐의로 형사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었으나 미국이 반대했다. 국가원수는 그 나라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고 외국에는 손해배상만 하면 되지 형사 처벌로 징역을 보내는 것은 국민주권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지였다. 이렇듯 100년 전만 해도 주권자(국민)의 대리인(agent)을 처벌하는 것은 국제법 이론에 어긋나는 것으로 봤다. 

결국 빌헬름 2세에게 형사 책임이 아닌 정치적 책임을 묻기로 하고 조약의 신성함을 위반했다는 죄로 정치적 선언을 하는 재판을 열기로 했으나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도피한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신병 인도를 거부하면서 무위로 끝났다. 네덜란드는 자국에는 그런 법이 없다면서 빌헬름 2세를 넘기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국제법으로 국가원수를 처벌하지 못했다. 독일의 히틀러는 사망했고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처벌할 수 있었으나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에 미안함을 느낀 데다 일본인과 화해한 후 일본을 동아시아 교두보로 삼으려 하면서 일왕을 기소하지 않았다. 

밀로셰비치는 법정에서 ICTY를 사후에 만든 불법 재판소로 규정했다. 소급입법인 데다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항변한 것이다. 밀로셰비치 재판은 현직 국가원수라도 면책은 없으며 종국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전례로 남긴 중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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