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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5화. 他者로부터의 신호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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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은 듯 따뜻한 밥상 때문에 밤샘으로 깔깔한 입안이지만 반 넘어 그릇을 비우고 일어나는데, 화사하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왠지 좋게 보이는 얼굴로 건넌방에서 나왔다. 뒤로는 유치원에 다니는 큰아이가 할머니 치마꼬리를 놓칠세라 따라붙고 있었다. 

“곧 점심때인데, 어딜 가시려고요?” 

“오늘 옻골(漆谷) 힝아(형님) 칠순 잔칫날이따. 토요일이다마는 니는 거다 갈 시간 없제?” 

“아 예, 오늘은 좀…. 오후에 찾아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는 얼른 그렇게 대답하고 어머니를 문간까지 바래다주었다. 거실로 돌아가 소파에 앉으니 언제나처럼 탁자 위에 중앙지 둘과 자신이 다니는 지방 신문사 그날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전날 편집한 스포츠 면과 금요 특집판을 펼쳐 대강 훑어본 뒤 중앙지로 넘어갔다. 언젠가부터 머리기사가 엇비슷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그날은 제목까지 같았다. 

<崔 代行 ‘평화적 정권이양이 내 사명’> 

10·26 사건이 있고 벌써 한 달, 무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정국 이면과 달리 태평스러운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그런 원론적인 다짐이 그랬고, 기사가 크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길 가는 신군부 실세와 기자들의 면담 같은 것도 그랬다. 그리고 무슨 수군거림 속에 진행되는 것 같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과정이 풍문과 억측 속에 온갖 야살을 떨고 있을 뿐. 

신문은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는 듯 아직도 잘 알아들 수 없는 말을 호외로 전하는 느낌이다. ‘괴물’은 아직도 엘바 섬을 탈출하지 않았는가. 그 ‘살인마’는 언제 주앙에 상륙할 것인가. 그 ‘찬탈자’는 언제 60시간이면 서울로 들어오는 거리에 이를까. 그리하여 다시 ‘우리 대통령 각하’는 언제 청와대로 돌아오실 것인가.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단정도 있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은 가동되기 시작했고, 순서가 바뀌고 시차가 있었지만 결국 왕과 왕비는 단두대에서 나란히 처형되었다. 울고불고하며 장례를 뒤따르는 국민들도 있지만, 200년 전 파리에서도 그랬다.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패륜의 자식들처럼 많은 파리 시민이 울고불고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민중의 날이 온다. 시민의 날이 온다. 권력은 모두 그들에게로. 모두가 한배에서 난 개새끼 같은 그들의 지도자에게로. 

벌써 몇 달째 이란 사태를 중심으로 기사를 쏟아 내고 있는 국제 면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엔테베式 기습 검토’는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 방안을 놓고 하는 논의에서 뽑은 제목 같고, ‘호메이니는 소련諜者’는 회교혁명을 바라보는 미국 정보기관의 인식을 단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제목인데, 전체적으로 신문마다 들려주는 게 그 소리가 그 소리인 듯했다. 

그가 공연히 못마땅해하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아내가 막 잠에서 깨어나 칭얼거리는 둘째를 안고 나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늦은 제대 뒤에 얻은 아이라 둘째는 이제 겨우 두 돌을 넘긴 터였다. 잠에서 막 깨어나 그리 좋은 심사는 아니었으나 어미가 제때 안아주었고, 맞은편에는 아비까지 있어선지 아이는 곧 칭얼거림을 멈추었다. 아내가 그런 둘째를 따로 떼어 곁에 앉히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어제 청계(靑溪) 이모님 왔다 가셨어요. 둘째 교육보험을 들어달라고 왔는데….” 

“작년에 큰애 보험 하나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어? 둘째 이제 겨우 두 돌인데, 벌써 무슨 교육보험이야?” 

“그렇지만 안 들어줄 수도 없었어요. 할 수 없어 적금(積金)식으로 했는데, 좀 비싸네요.” 

“적금식이 뭔데? 그렇다고 왜 비싼 거야?” 

“2년만 넣으면 중도해지해도 우리가 낸 원금을 다 돌려준대요.” 

그 무렵은 때 아닌 보험의 계절이었다. 있던 것이든 새로 생긴 것이든 보험회사마다 서투른 설계사를 양산해 친인척과 연고 판매로 직장마다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도 신문사란 직장과 그사이 책권 팔아 얻은 이름 때문에 아내가 새로 넣은 보험을 합치면 그해만 보험이 다섯 계좌 늘었다. 

“그럼 그사이 불입한 돈의 이자만으로 이모님 수당 계약 수수료, 저희 해당직원 임금까지 다 나온다는 얘기군. 차라리 그냥 교육보험 싼 걸로 하나 넣지 그랬소.” 

귀찮기는 하지만 아주 못 견딜 액수도 아니라 그가 그렇게 마무리를 짓는데, 아내가 다시 풀죽은 소리를 보탰다. 

“어제는 포항 원길 아주버님이 왔었어요.” 

원길이라면 집안 아재비뻘이지만 동갑내기에 어릴 적 한때 이웃에서 함께 자라 족친이라기보다는 고향 친구처럼 여기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포항으로 나간 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연고도 많아 아내는 그를 ‘포항 아주버님’이라 불렀는데, 예전 대학을 그만두고 잠시 고향에서 어정거릴 때는 그와 좋은 술동무로 어울리기도 했다. 제대 뒤 대구로 나올 때 보니 아직도 반건달로 고향을 떠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구로 찾아 왔다는 게 좀 난데없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대? 우리 집에는 어떻게 온 거고?” 

그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해서 그렇게 들떠 묻자 아내가 조금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어머님과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요즘 아주 고단하게 지내시는 것 같네요. 작년에 다시 포항으로 나갔는데 이것저것 해봐도 잘 안 돼 여름에 부산으로 옮겼다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거기서도 일자리를 못 얻어 이리저리 겉돌다가 요즘은 월부 책을 판다네요.” 

“부산서 월부 책 판다며 대구 우리 집까지는 어떻게?” 

“월부 책 좀 사달라고 오신 것 같아요. 아주버님께 책을 대는 출판사가 아주 커서 전국구로 영업이 가능하다나요. 내일 다시 온다고 했는데, 여기 광고 팜프렛 한 자락 두고 갔어요.” 

아내가 그러면서 재떨이로 눌러두었던 할부서적 판매 선전 전단과 전집류 도서목록 같은 것을 한 묶음 펼쳐놓았다. 그가 보니 알만한 출판사고, 도서 목록에는 장서로 받아두어도 될 만한 전집류도 있었다. 그가 특별히 성가시다는 기분 없이 도서목록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데, 아내가 다시 둘째를 안으면서 가벼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이 집 일, 이거 너무 일찍 벌였는가 봐요. 우리한테는 두 칸 전세방이나 주방 넣고 방 두 개 뽑은 차고 방 전세가 제격인데.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일을 크게 벌여놓았으니….” 

그는 아내가 뭘 후회하는지 금방 알아들었다.

지금 그가 있는 집은 그전에 살고 있던 범어동 골짜기에서 로타리 쪽으로 많이 나온 곳에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 안의 한 동(棟)이었다. 여남은 집 되게 단지를 만들고 정원까지 제법 모양 나게 꾸며 고급 주택단지 흉내를 냈지만, 그 지역이 아직은 도심에서 멀고, 주변 개발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일반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자 건설회사는 한없이 늦어지는 분양을 기다리지 못하고, 분양 못한 집을 1년 단위로 전세를 놓게 되었는데, 그리 되다보니 일반 전세보다 전세금이 터무니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분양에 대비해 전세 기한을 1년 단기로 한 게 주거의 안정성을 해쳐 전셋집을 찾는 이들이 선뜻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시원하게 뽑은 거실과 주방에다, 일곱 평이 넘는다는 안방 말고도 제대로 된 방이 둘이나 더 있는 주택 규모나, 아직 자리 잡지는 못해도 예순 평은 넘어 보이는 정원이 잠시 살 전셋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부담이 된 듯했다. 

수습 끝나자마자 경제부에 떨어져 그때는 주택건설과 부동산 쪽을 출입하는 동기 하나가 전셋집을 구하는 그에게 처음 그 집을 소개했을 때, 갑자기 배로 치솟을 전세금에 겁부터 먹은 그는 한번 구경이나 한다는 기분으로 따라가 보았다. 몇 년 불편 없이 살던 부엌 딸린 두 칸 방 전셋집에서, 거실 주방 화장실이 따로 갖춰진 단독주택이나 다를 바 없는 2층 전셋집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집 구경을 하면서 안방 말고도 거실 건너 있는, 서재 또는 집필실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널찍한 방 한 칸이 먼저 마음을 끌더니, 모든 게 시원스럽게 빠진 집 구석구석과 아직 지주목을 대고는 있어도 제법 저택의 정원같이 설계된 조경 배치에 정원수라고 할 만한 품종과 수령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게, 진작부터 마음 들어 하며 살아온 집 같은 애착까지 느끼게 했다. 

“그래봤자, 한 해 살고 어찌 될지 모르는 전셋집인데 뭘 그리 서둘러요?” 

나중에 함께 집을 보러 온 아내가 턱없이 반해 계약에 매달리듯 서두르는 그에게 핀잔처럼 그렇게 말했다. 머쓱함을 감추느라 그는 갑자기 무슨 대단한 영감이라도 받은 것처럼 멀쩡한 얼굴이 되어 되받아쳤다. 

“살다보면 우리 집이 되는 수도 있지, 사람마다 달팽이처럼 날 때부터 제집을 달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날부터 터무니없고도 엉뚱한 내 집 마련에 들어갔다. 먼저 배로 늘어난 전세금은 은행 출입하는 선배기자에게 부탁해 대부를 얻고, 때마침 들어온 첫 번째 인세는 집을 꾸미고 그 집에 맞는 가구를 들이는데 썼다. 그러다 여름 늦게 은행 빚의 배는 되는 두 번째 인세가 들어와 우선 은행 빚부터 갚으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건설출입 동기가 다시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어차피 잘 팔리지도 않는 눔의 집, 차라리 명신주택 그놈아들한테 그따우 각박한 단기 전세 말고 아파트처럼 분납으로 그 집 분양해줄 수 없는가 함 물어보까요? 봄에 낸 전세금을 계약금하고 선급금으로 돌리고, 차라리 은행 빚 갚으려는 이번 인세 그거 몽땅 주택 분양 중도금으로 돌리면 어떻겠십니꺼? 그러면 잔금이 한 1500 남게 될 낀데, 그걸 내년 말까지만 완납하면 일반 아파트 분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대금 완납이 되니까는 그렇게 함 해보시지요. 내가 잘 아는 그 회사 전무한테 말해보믄 우째 될 것도 같십니다마는.” 

따져 보면 그 제의는 전에 살던 방 두 칸짜리 2층 전세금에다 은행 빚 얹은 1800만 원을 계약금 및 선급금으로 시작해 2년 만에 4500만 원짜리 신축 주택을 분양받겠다는 어림없는 계획인데, 이상하게도 그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그 무렵 한꺼번에 들어온 책 10만 부 인세가 그의 간을 키운 듯했다. 

“그럼, 한번 그래볼까요? 좀 떨리기는 합니다만.” 

그가 엄살 섞어 그렇게 말끝을 흐리자 뭐가 신이 났는지 건설출입 동기가 더 호기를 내어 일을 굳혔다. 

“까짓 거. 마 그라입시다. 모 아이믄 때(도)지 뭐. 내 보이 이형 같으면 우째 잘 후아(휘어)낼 거 같구마는.” 

다음 날 명신주택 쪽에서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여주어 그가 낸 전세금은 분양대금 선급금으로 바뀌고, 그 무렵 들어온 인세는 은행 빚을 갚는 대신 모두 명신주택 쪽에 중도금으로 지불되었지만, 아직 그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아내는 그렇게 큰 주택을 전세 내어 겉만 번지르르 해 보이게 된 것만으로도 걱정이 태산 같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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