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포커스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대한민국 주사파를 말하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1/3
  • ● 인물로 본 주사파의 과거와 현재
  • ● 임수경, 하태경의 엇갈린 인연
  • ●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이 굉장했다”
  • ● 구학련<김영환> 반미청년회<조혁, 안희정> 자민통<구해우>이 3대그룹
  • ● 구학련→반제청년동맹→민혁당 흐름이 통진당 당권파로 이어져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평양거리. 대동강 너머로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북한이 1990년대 초반 한국으로 뿌린 삐라(작은사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1987년 학력고사에서 인문계 여자수석을 차지했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면서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후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올해 4·11 총선 전후로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의 의견을 대변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주사파의 얼굴이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들어야 했다.

한때 북한에 애정을 가졌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정희 전 대표 못지않은 수재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학력고사 성적은 자연계 전국 100등이다. 주사파 시비, 종북 논란 덕분에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1990년대 중후반 우파로 옷을 갈아입은 후 북한 인권 및 북한 민주화운동에 천착해왔다.

이 전 대표가 추락했다면 초선인 하 의원은 떴다.

종북 논란, 주사파 시비가 점입가경이다.

북한마저 끼어든다. 역(逆)종북 공세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인사를 향해 “종북 행태를 까겠다”고 했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종북 논쟁에서 검증의 도마에 올려야 할 기본 인물은 박근혜”라고 주장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근혜만 봐도 2002년 5월 장군님을 접견하고 주체사상탑 등을 참관하면서 ‘친북 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 정몽준 김문수 등이 우리에게 와서 한 말을 모두 공개하면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역(逆)종북 공세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박 전 위원장이 2002년 방북 당시 왜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는지 답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쥐고 있던 이른바 종북파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 부정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종북 논란이 임수경 의원의 막말 파문으로 민주당으로 옮겨 붙었다가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까지 번진 꼴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사안이 희화화하고 있다. 배가 산으로 간다”고 꼬집었다.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은 얼마나 될까? NL 운동권 출신인 하태경, 임수경 의원의 엇갈린 삶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때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사람’들의 현재를 들여다보자.

임 의원은 하 의원의 옛 동지다. 서로를 ‘태경아’ ‘수경아’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1968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한 둘은 20대 때 민족해방(NL) 진영에 투신했다. 임 의원은 1989년 방북해 통일의 꽃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임 의원 방북은 주사파가 ‘기획한’ 것이다. 하 의원은 1991년 대학생이던 박성희·성용승 씨를 북한에 보내는 ‘기획’에 관여했다. 박 씨, 성 씨는 ‘임수경 루트’대로 베를린을 거쳐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 참석했다. 북한 쪽과 상시적인 연대 기구(범청학련)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임 의원은 밀입북해 옥살이를 했고, 하 의원은 박 씨, 성 씨 밀입북 때 북한 쪽과의 연락을 맡아 구속됐다. 둘은 고 문익환 목사가 꾸린 ‘통일맞이’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친구로 지냈다. 하 의원은 문 목사가 사망한 후 우파로 전향했다.

‘신동아’는 2010년 6월호에서 하 의원의 곡절 많은 삶을 다룬 적이 있다.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 문익환 목사 북한에서 안기부 프락치로 몰려 화병으로 죽었다’는 제목이 달렸다. 그는 2010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프락치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북한은 늘 그런 식이죠. 저도 순진했죠. 그런 말 안 되는 상대와 통일을 논했다니. 문 목사가 그것 때문에 화병에 걸리셨어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요. 친북(親北)세력은 그런 사실을 숨기려고 하죠. 친북 하는 사람들, 문 목사 존경하죠. 저 역시 지금도 문 목사 존경합니다. 저처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안기부 프락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사람들과 싸웠거든요. 주사파도 아니셨고요. 살아계셨다면 저처럼 바뀌셨을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임수경, 하태경의 삶은 대조적이다. 임 의원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혼 후 홀로 키우던 아들이 익사하는 아픔도 겪었다. 전향 이후 하 의원의 행로는 비교적 둥글었다. 중국 지린(吉林)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SK텔레콤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했다. 북한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얻었다. 친구 사이인 둘은 4·11 총선 때 “축하한다. 잘 해보자”는 내용의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하 의원은 6월 13일 전화통화에서 “섭섭하다” “화도 난다”고 했다.

“임수경 의원이요? 섭섭하죠. 화도 나고요.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변절자’라고 규정하다니요. 사과해야 해요. 탈북자에게도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고요.”

임 의원은 취중에 탈북자와 하 의원을 변절자라고 규정하면서 상소리를 했다. 취중진담인지, 음주실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이 굉장했다”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이 굉장했다”고 스스로 밝히는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도 1968년생이다. 19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4·11 총선 때 서울 은평갑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냈다. 북한 민주화운동을 한다. 대북관(觀)이 강경하다.

최 대표는 ‘대학생 기획 방북’의 또 다른 주역이다. 박성희·성용승 씨를 북한에 보내는 일에 관여했다. 1994년 방북한 최정남 씨는 그가 직접 선발한 인물이다 임수경, 하태경 의원의 옛 동지인 그는 종북 논란이 불필요한 정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1/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전향한 김영환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못해”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