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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6·3항쟁 ‘프락치 폭로 보복 사건’ 송철원 父子 이야기

눈물로 모은 6·3의 기록, 40년 만에 드러난 진실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1964년 6·3항쟁 ‘프락치 폭로 보복 사건’ 송철원 父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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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년 6·3항쟁의 ‘방아쇠’가 된 ‘학원 프락치 폭로 및 보복 린치 사건’의 주인공 송철원(宋哲元·65·신시대21 회장)씨가 ‘신동아’에 귀중한 자료를 보내왔다. 그의 아버지 송상근(宋相根·94)씨가 1964년 3월25일부터 1969년 4월30일까지 모은 이 자료에는 당시 학생운동과 관련된 각종 보도물과 선언문, 재판 기록, 서신, 운동권 내부 문서 등이 망라돼 있다. 이들 살아 숨쉬는 기록이 보여주는 역사의 진실과 암울한 시대에 피어난 애틋한 부자(父子)의 정.
1964년 6·3항쟁 ‘프락치 폭로 보복 사건’ 송철원 父子 이야기

6·3항쟁 스크랩북을 보고 있는 송철원씨 부자. 아래는 아버지 송상근씨의 일기장.

‘1961년 3월10일(금) 맑음 : (경기고등학교에서) 새벽 2시 전후 해 700점 만점에 최저 498점(입시 커트라인)이며 철원이는 526점이라는 연락이 왔다. 정치학과의 약 10:1에 가까운 난관을 돌파한 셈이다. 온 가족이 자지 못하고 환호성을 치며 기뻐하였다. 이 환호감을 두고두고 되살리어 앞날의 힘이 되고 살이 되도록 마음속으로 빌며….’

1961년 3월10일, 서울시립 영등포병원장 송상근씨는 셋째아들 철원의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입학 소식에 하도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씨는 일기장에 아들의 서울대 입시 본고사 점수와 경쟁률까지 기록할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까지 쓴 그의 일기는 암울한 군사독재 치하의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역사적 기록 그 자체다.

송철원씨는 1960년 4·19혁명 이래 학생운동을 주도한 서울대 문리대 내 학원 프락치(사찰요원) 사건을 폭로한 뒤 중앙정보부로부터 보복 린치를 당해 1964년 6·3항쟁의 기폭제가 된 인물.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이후락 중정부장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특히 송씨는 공화당에서 자금을 대며 뒤를 봐준 것으로 알려진 극우파 학생 집단 YTP(Youth Thought Party, 靑思會)의 존재를 ‘동아일보’에 연일 폭로함으로써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로 인해 송씨의 대학생활은 도피와 은신, 투옥의 연속이었고, 졸업 후의 인생항로도 저항과 연행으로 점철됐다. 아버지의 일기장이 아들에 대한 걱정과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버지 송씨는 시립병원장과 철도병원(서울교통병원)의 장을 겸임한 국가공무원 신분이었다.

운동권 주치의이자 代父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지난 5월4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실버타운 클라시온 로비에는 근 40여 년 만의 만남이 이어졌다. 송씨와 함께 6·3항쟁에 참가했던 6·3동지회 회원들이 송상근씨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송씨에게 큰절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송씨는 고희(古稀)에 가까운 아들의 친구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님 저희들 기억하시겠습니까. 원범이와 성섭입니다.”

“그럼 기억하고 말고…얼굴이 옛날 그대로인데 뭘.”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아니었으면 우린 벌써 죽은 목숨인데.”

“다 내 아들들이고 옳은 일을 했는데 당연하지.”

6·3동지회 상임고문 이원범(68·11·15대 국회의원)씨와 사무총장 오성섭(68·전 동명기술공단 부사장)씨는 1964년 5월20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경찰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한 뒤 송상근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특히 이씨는 잦은 부상으로 송씨의 신세를 많이 졌다. 이씨는 “아버님이 집에 가나 병원에 가나 늘 숨겨주고 치료해주며 자식처럼 대해 주셨다”며 “가난한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병원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학생운동권의 전담 의사나 다름없었다. 지방 출신 학생들에겐 아버지 노릇도 톡톡히 했다. 송씨의 집안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어서 형편이 어려운 지방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송씨는 공무원이었지만 비판적 시대의식이 남달랐다. 다시 그의 일기를 보자.

‘1961년 4월19일(수) 맑음 : 젊은 사자들이 부정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한 돌이다. 역시 과(科)가 과인 만큼 철원이는 3일째 행사준비로 귀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젊은이의 앞날에 광명이 있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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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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