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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슈

“우리는 의사다 환자를 돕고자 탈레반과도 손잡는다”

분쟁지역의 의료봉사자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우리는 의사다 환자를 돕고자 탈레반과도 손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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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들의 고귀한 노력, 희생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을 살려내고 있다. 의료진은 반군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의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납치다. 고수입 직업군이라는 인식 탓에 표적이 된다. 일부 무지한 부모는 아이가 주사를 맞으면 기독교 신도가 된다고 믿는다. 종교, 이념을 초월해 병자를 돌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천사들의 이야기.
“우리는 의사다 환자를 돕고자 탈레반과도 손잡는다”

2010년 4월 2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화상을 입고 병원을 찾은 생후 6개월 된 여아를 한국 의료진이 정성스럽게 치료하고 있다.

2008년 12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방이 아수라장이다. 전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시파병원으로 부상자가 밀려든다. 머리와 팔을 다친 채 피를 뚝뚝 흘리는 어린아이, 하반신이 사라진 젊은 청년이 병원 복도에 널브러진다. 환자가 이 병원으로 밀려든 건 외국인 의사들이 일하는 터라 전쟁 통에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노르웨이 출신 의사 한 명이 복도에서 피를 흘리는 아이의 머리를 치료한다. 밖에선 포성이 요란하다. 의사를 찾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중상 환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진다. 의사들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병원과 구급차를 폭격한다. 구급차 4대가 부서진다. 의사, 자원봉사자가 각각 3명 숨졌으며 폭격으로 인해 응급실이 무너졌다. 그래도 의사들은 흔들리지 않고 단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하려는 듯 동분서주한다. 노르웨이에서 온 에릭 포쉬의 가운은 피로 얼룩져 있다. 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며칠째 폭격이 멈추지 않아요. 이대로 가단 의약품이 동날 텐데 외국으로 가는 국경마다 전투가 벌어져 약품 수송이 원활치 않아요. 의약품 수급이 걱정입니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이 병원에는 10명 넘는 외국인 의사가 일한다. 어느 나라건 의사는 먹고사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안정된 직업이다. 보장된 길, 편한 인생을 마다하고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적지 않다. 전쟁 지역은 의사가 절실히 필요하게 마련이다. 2000년대 들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두 곳에서 충돌이 동시에 일어나 의사 수요가 폭발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전부터 의료 환경이 좋지 않았던 데다 전쟁 중 부상자가 늘면서 의료 환경이 최악인 곳이 됐다. 구호단체를 통해 입국한 의사들의 노력으로 수도 카불에는 의료시설이 늘어났으나 의약품, 의사는 지금도 부족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의료와 교육 서비스는 여전히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고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아프가니스탄 구호조정기구(ACBAR)에서 일하는 안네 가렐라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의사와 의약품은 부족한데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구호단체의 전설 탐 리틀

카불 같은 대도시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지방은 눈뜨고 보지 못할 만큼 참혹하다. 아프가니스탄 14개 주에서 실시한 면접조사는 병원에서 출산을 위해 필요한 비용 5달러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집에서 아기를 낳다 죽은 산모와 신생아가 적지 않다고 밝힌다. 아프가니스탄 산모사망률(MMR)은 10만 명당 1600명(이하 2010년 기준). 카불은 산모 10만 명당 400명이 사망하지만 바닥샨 주 같은 곳은 10만당 6500명이 죽어 지금껏 통계로 기록된 산모사망률 중 세계 최악이다. 아프가니스탄 보건복지부 국장급 간부 하미온 사피르의 설명이다.

“의사와 의약품, 의료 장비 부족 탓이다. 숙련된 산부인과 전문의와 초음파 장비가 필요하다. 카불에서조차 산모를 돌보는 의사가 부족하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긴 하지만 밀려드는 총상 환자, 폭탄테러 환자를 돌봐야 하는 처지여서 산모, 신생아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미국인 안과의사 탐 리틀(61)은 40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베테랑. 그는 IAM(International Assistant Mission) 소속 의사인데, 이 단체는 1966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의료와 교육 봉사 활동을 해왔다. 탐은 40년 넘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온갖 험한 일을 겪으며 환자를 돌봤다. 아프가니스탄 구호단체의 전설이자 대부로 통한다. 현지어도 능통하다. 100여 발의 로켓포가 떨어질 때도 그는 진료를 멈추지 않았다. 2007년 초 카불에서 만난 그는 “나는 거의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다. 가족 모두가 이곳에 살고 있다. 환자를 돌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키웠다”면서 이렇게 청했다.

“누구라도 좋아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어떤 것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진통제 한 알이 귀해요. 이곳에 오고 싶은 의사가 있다면 꼭 소개해주세요.”

그는 아프가니스탄 오지에 살면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카불에 사는 사람들은 병원이 가까이 있지만 산간이나 오지의 가난한 이는 진료를 받으러 카불까지 올 수도 없거니와 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면 그저 알라가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그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려 왕진 가방을 들고 지방으로 간다. 동료 의사와 함께 시골 지역을 방문해 진료를 해왔다. 2010년 8월 6일의 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시골 진료를 마치고 카불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산악 지역에서 2주간 병자를 치료했다. 동료 의사 아홉 명과 함께였다. 의료진이 바닥샨주-누리스탄 주 경계에 이르렀을 때 두건을 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탄 차량이 나타났다. 그들은 탐 일행의 차를 세우고 모두 내리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의료진을 숲으로 끌고 가 한 줄로 서게 했다. AP에 따르면 총을 겨눈 괴한에게 탐은 현지어로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는 의사예요. 진료하고 오는 길입니다.”

탐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한은 즉결 처형을 시작했다. 여성 3명을 비롯한 의료진은 모두 사망했다. 미국인(6명)·영국인(1명)·독일인(1명)·아프가니스탄인(2명)이 죽었다. 여느 나라 분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의사 사망 사건이다. 의사를 죽인 괴한들은 탈레반. 사건 발생 직후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헤드는 “어제 오전 8시쯤 우리 순찰대가 스파이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를 발견해 모두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은 탐과 그 일행을 성경을 들고 다닌 스파이라고 규정했다. 의료진이 성경책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기독교인이 대체로 그렇듯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위안을 얻고자 성서를 소지한 것으로 보인다. 탐이 속한 IAM의 더크 프랜스 사무국장은 “봉사단은 진료를 했지 스파이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탈레반은 탐 일행이 스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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