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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간쑤성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甘 中華의 끝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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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쑤성은 중화(中華)의 끝이다. 천하의 경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이자 모험이 시작되는 곳.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만나니 문화가 오가고 무역의 문이 열린다. 그러나 사막과 고원으로 둘러싸인 극한의 생존 공간은 ‘서북의 늑대’ 목을 조른다.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란저우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지난 4월 사막지대인 간쑤(甘肅)성의 공기는 탐욕스러웠다. 젖은 수건을 걸어두면 순식간에 바싹 말랐다. 조금의 습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바싹 마르다 못해 뻣뻣하게 굳어버린 수건은 흡사 흡혈귀가 피 한 방울 안 남기고 빨아먹은 말라 비틀어진 시체 같았다.

정원에서 노트북을 펴놓으면 금세 노트북 화면에 ‘모래 코팅’이 입혀졌다. 매년 고비사막에서 일어난 황사는 광활한 대륙과 바다를 지나 한국과 일본을 덮친다. 2000km 떨어진 한국의 황사가 성가신 정도라면, 황사 발원지가 코앞인 간쑤성의 황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모래폭풍이 부는 명사산(鳴沙山)은 ‘모래가 우는 산’이란 뜻이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극도로 건조하니 마음도 황량해지고 생활도 피폐해진다. 나오느니 탄식뿐이요, 느는 건 한숨뿐이다. 낭만적인 시를 읊으며 기분을 전환해보려 해도 떠오르는 시는 간쑤성의 황량함을 한탄하는 시뿐이다.

“오랑캐의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봄이 오지 않는 것은 봄바람이 옥문관을 못 넘기 때문이라.”

중국에서 가는 곳마다 온갖 호들갑을 떨며 찬사를 늘어놓던 마르코 폴로조차 1년이나 머문 간쑤성의 성도 란저우(蘭州)를 “지저분한 도시”라고 짤막하게 평했다. 그때에도 간쑤성은 척박하고 황량했으리라.



천하의 경계가 끝나는 곳

굶주리고 목 졸린 서북의 늑대들
간쑤성의 약칭은 ‘달 감(甘)’자다. 간쑤는 성 서쪽 끄트머리의 두 지역인 간저우(甘州)와 쑤저우(肅州)를 합친 이름이다. 현재 이 지역은 장예(張掖), 주취안(酒泉)으로 불린다. 이 곳이 ‘다디단(甘) 술 같은 샘물(酒泉)’이라니. 황량한 사막으로 뒤덮인 간쑤성의 자연환경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이름이다. 하지만 죽음의 사막에 둘러싸여 있기에 이 지역 사람들은 물의 고마움을 잘 안다. 수질과 상관없이 물만 있다면 그 자체로 다디단 감로수 같았으리라.

이곳이야말로 중화(中華)의 끝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양관(陽關) 밖에 나서면 아는 이 하나 없다”며 절절하게 막막함을 토로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을 비관하며 술에 취했다.

“취해서 모래밭에 누운 병사를 비웃지 말게. 예부터 몇 명이나 전쟁에서 돌아왔던가.”

그러나 한 세계의 끝은 다른 세계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곳을 나선 장건은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현장은 천축국에서 불경을 구했으며,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남겼다. 사막과 고원으로 둘러싸인 간쑤성은 극도로 위험한 곳인 동시에 천하의 경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이 열리며 모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만나니 문화가 오가고 무역의 문이 열린다.

간쑤성 지형은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 보통 한 영역은 중앙으로부터 고르게 세력이 퍼져 원 또는 사각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쑤성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길고 가늘게 삐죽 튀어나왔다. 간쑤성은 왜 이처럼 독특한 영역을 갖게 됐을까. 간쑤성 동북방에는 내몽골 고원이 있고, 서남방에는 티베트 고원이 있다. 이 지역들은 오늘날 다 같은 중국 땅인 네이멍구(內蒙古)와 칭하이(靑海)성이지만, 예전에는 몽골족과 티베트족이 강력한 세력권을 형성한 곳이다. 양대 고원 사이의 골짜기인 간쑤성은 두툼한 빵 사이에 끼인 치즈 한 장과 같은 땅이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간쑤성을 “호(胡, 몽골족)와 강(羌, 티베트족)이 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호전적인 유목민족 사이에 끼인 가냘픈 길. 아슬아슬하게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길. 폭이 좁고 긴 간쑤성은 생긴 모양대로 ‘길’이다. 동서로는 중국과 서역을 잇고, 남북으로 몽골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이 길은 ‘황하의 서쪽에 있는 복도’라는 뜻으로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 불렸고, 중세 시대 세계 최고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였다.



묵특선우와 유방

중원의 황토 고원은 간쑤성에 이르러 사막이 된다. 그러나 평균해발 4000m, 길이 2000km인 기련(祁連)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은 간쑤성 군데군데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우웨이(武威), 장예, 주취안, 안시(安西), 둔황(敦煌) 등 간쑤성의 대표적인 5개 도시는 모두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 도시들은 걸어서 닷새 거리마다 놓여 있어, 기나긴 간쑤성을 지날 수 있게 해줬다. 길고 긴 사막길에 점점이 놓인 5개의 오아시스 도시는 고달픈 나그네의 생명을 구원해주는 진주 목걸이였다.

간쑤성은 서역, 중국, 티베트, 몽골 등 다양한 세력과 접하지만, 동시에 어느 나라에서 봐도 중앙으로부터 먼 변방이었다. 광활한 사막으로 둘러싸였고 독자적 생활이 가능한 오아시스가 있어 폐쇄적인가 하면, 활발하게 무역할 수 있는 개방성이 공존한다. 따라서 간쑤는 어느 한 나라가 강해지면 그 나라에 예속됐고, 사방이 혼란해지면 독립적인 소국이 됐다. 간쑤는 중앙아시아 일대의 패권국이 어디인지 가르쳐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중앙아시아를 정탐하는 안테나였다.

중국 북방에는 여러 유목민이 살았고, 간쑤성 일대는 흉노와 월지 사이 지역이었다.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한 뒤 변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몽염 장군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군을 격파한 뒤 만리장성을 세웠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으며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져들 때 흉노에선 묵특선우(冒頓單于)라는 영걸(英傑)이 등장했다. 묵특은 동으로 동호(東胡)를 멸망시키고, 서쪽의 월지(月氏)를 제압해 북방의 패자로 떠올랐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마침내 천하를 재통일했지만, 당시 중국은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흉노는 쇠약한 한나라 변경을 마음껏 휘저었다. 흉노의 기세를 꺾기 위해 황제 유방이 친정(親征)했으나, 천하를 통일한 유방조차 흉노의 40만 대군에 7일이나 포위돼 북방 동토(凍土)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 기고만장한 묵특은 훗날 유방이 죽자 홀몸이 된 여태후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그대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겠다”는 음담패설을 버젓이 국서로 보냈다. 이런 치욕을 겪고도 한나라는 자그마치 90여 년이나 힘을 기르고 나서야 흉노를 상대할 수 있게 됐다.

한무제는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장건을 대월지에 사신으로 파견해 흉노를 양면에서 협공하고자 했으며, 위청, 곽거병, 이광 등 많은 명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마침내 기원전 121년 곽거병이 간쑤 일대 하서주랑을 장악하고 오늘날 몽골공화국 지역까지 흉노를 추격해 토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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