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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인터넷산업 판도 바꾼 ‘SNS 황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인터넷산업 판도 바꾼 ‘SNS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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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잣집의 똑똑한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컴퓨터만 끼고 사는 괴짜 대학생으로 지내다 틀에 박힌 학교생활이 지루해 교내 ‘퀸카’를 뽑는 투표 사이트를 만들었다. 학교로부터 혼쭐이 났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뜨겁자 아예 이를 응용해 인터넷 커뮤니티 회사를 차렸다. 10년 후 괴짜 대학생은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됐고 회사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로 성장했다. ‘제2의 빌 게이츠’ ‘하버드가 배출한 최고 천재’라는 별명이 붙은 마크 저커버그(30) 페이스북 창업주 이야기다.
2014년 2월 4일 전 세계 인터넷 세상이 난리가 났다. 페이스북이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회상하기(look back)’ 기능 때문이다. ‘회원님을 주인공으로 한 동영상이 준비됐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1분짜리 동영상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나의 페이스북 가입 첫날, 그간 올린 글과 사진, 다른 이용자들이 ‘좋아요’ 버튼을 많이 누른 게시물들을 보다보면 나조차 잊고 있던 지난 몇 년간의 내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자녀나 가족의 사진을 많이 올린 이용자는 이 동영상을 보고 폭풍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여기도 갔었지”라며 회상에 잠기자마자 어느새 동영상이 끝난다. 마지막에는 ‘감사합니다. 마크와 페이스북 팀으로부터’란 글이 뜬다.

고객 맞춤형 감성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준 이 ‘회상하기’ 기능은 한낱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과한 페이스북이 왜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문명사학자 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의 본성은 호모 엠퍼티쿠스(homo empathicus)”라고 정의했다. 페이스북은 바로 이 공감(empathy), 즉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파는 기업이다.

프로그래밍에 재능 보인 ‘엄친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데다 낯선 타인과 관계 맺는 일도 쉽지 않다. 이때 간단한 글 몇 줄, 사진 한 장으로 그간 몰랐던 사람들과 쉽게 친구가 되고,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지인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창구가 바로 페이스북이다.

설립 10주년을 맞은 페이스북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다. 현재 페이스북 이용자 수는 12억3000만 명으로 인도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세계인 6명 중 1명꼴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셈이다. 올해 갓 서른 살이 된 창업주 저커버그의 재산은 274억 달러(약 29조3000억 원)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130억 달러보다 2배 이상 많다. 2013년 기준 매출과 순이익도 각각 78억7200만 달러, 15억 달러에 달한다.

휴대전화나 자동차처럼 손에 잡히는 물품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정도 규모로 회사를 키웠을까. 과연 저커버그는 어떤 인물일까. 대학생 저커버그와 페이스북 창업 초기 시절을 파헤친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자연인 저커버그’는 일종의 강박증과 편집증을 앓고 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한 외골수다. 절친 겸 창업 동지들과 잇따른 소송을 벌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영자 저커버그’의 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의 싸이월드, 미국의 마이스페이스 등 페이스북과 비슷한 콘셉트를 지닌 수많은 SNS가 있었음에도 현재의 위치에 오른 기업은 페이스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 비결을 탐구해보자.

저커버그는 유대계 ‘엄친아’다. 그는 1984년 미국 뉴욕 주에서 모두 유대계인 치과의사 아버지와 정신과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1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3세 때 유대교 성인식 바르 미츠바를 치렀지만 이후 무신론자임을 자처해왔다.

저커버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소년시절 이미 부친의 치과와 집에 있는 컴퓨터를 서로 연결하는 ‘저커네트’라는 이름의 프로그래밍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들의 능력을 눈여겨본 그의 부친은 현직 프로그래머에게 아들의 프로그래밍 과외를 부탁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명문 프렙 스쿨(아이비리그대 진학을 위한 예비학교)로 유명한 뉴햄프셔 주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를 다녔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비롯한 고전문학, 수학, 물리학 등 각종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학교 펜싱팀 주장으로 활동했다. 이 와중에 인공지능 음악 재생 프로그램인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도 만들었다.

퀸카 뽑는 사이트가 페이스북 시초

그의 전기를 쓴 작가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는 “그때 다른 10대들은 컴퓨터 게임을 즐겼지만 저커버그는 이를 만드는 일을 즐겼다”고 말했다. 저커버그 본인은 “당시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많았는데 이들이 이것저것 그려놓으면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프로그래머 저커버그의 능력을 눈여겨 본 마이크로소프트(MS), 아메리카온라인(AOL) 등의 대기업에서 입사를 제의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2002년 9월 하버드대에 입학한다.

저커버그의 전공은 컴퓨터공학과 심리학. 대학 생활을 무료하게 보내던 저커버그는 2003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교내에 널리 알린다. 하버드대 여학생들의 얼굴을 비교해 누가 더 예쁜지를 고르게 하는 사이트 ‘페이스매시(facemash)’를 만든 것이 계기였다. 순간 접속자가 5000명에 달할 정도로 공부벌레 하버드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교는 하루 만에 사이트를 폐쇄했다. 하버드대 교내 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점잖지 못한 여성비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일부 여학생은 얼굴 사진을 도용당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인터넷산업 판도 바꾼 ‘SNS 황제’

2013년 6월 1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마크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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