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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재원 부산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

“심장 없는 도시, 더는 안 돼”

  •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천재원 부산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

  • ● “스마트시티는 문재인 정부의 야심 찬 프로젝트”
    ● 13개 유니콘 스타트업 키워낸 투자 전문가
    ●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핵심? “원도심과의 밸런싱”
    ● “백지에서 재검토하라는 게 청와대 의지”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뇌 과학자와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가 ‘도시의 지휘자’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선도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위원장 장병규)는 4월 말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를 이끌 총괄책임자(마스터플래너·MP)로 정재승(46) 카이스트 교수와 천재원(46) 영국 엑센트리 대표를 추천했다. 정 교수는 세종 5-1 생활권(세종시 연동면 일원), 천 대표는 부산 에코델타시티(부산시 강서구 일원)를 맡아 2022년까지 마스터플랜을 완성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스마트시티를 “신성장 동력의 핵심 플랫폼”으로 정의하며 “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야심 찬 프로젝트”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국가적 중요 사업에 토목이나 건설과는 하등 관련 없는 두 남자가 지휘관으로 왔다. 어찌 됐건 빈 땅에 신도시를 짓는 일인데도 말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4차위는, 청와대는 과연 무슨 복안을 가진 걸까. 각각 세종과 부산 스마트시티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이방인’과 제대로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MP 낙점 나흘 후인 4월 27일, 이런 궁금증을 안고 천재원 대표를 만났다.


한국 스타트업, 잠재성은 있지만…

국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로 선정된 세종 5-1 생활권과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기본 계획. 정재승, 천재원 마스터플래너가 새로 투입됨에 따라 기본 계획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로 선정된 세종 5-1 생활권과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기본 계획. 정재승, 천재원 마스터플래너가 새로 투입됨에 따라 기본 계획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인입니까? 

“그런 질문 자주 받는데, 아니에요. 한국인이에요(웃음).” 

엑센트리(XnTree)는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영국의 투자기업이다. 유럽 최대 오픈테크 클러스터 ‘레벨39’의 회원 업체로, 레벨39 소속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투자 대상은 주로 스마트시티, 블록체인, 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지금까지 레벨39와 엑센트리가 배출한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유니콘 회사가 13개에 달한다. 천 대표는 이러한 엑센트리의 공동창업자이자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군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의 투자금융업계에서 일한 것이 투자 전문가 경력의 시작. 이후 한국에 들어와 경영컨설팅회사를 창업해 활동하다 이스라엘로 건너가 7년간 스타트업을 발굴 및 투자하는 일을 했다. 이때 쌓은 유대계 인맥이 유대계 파워가 강한 런던 금융업계로 연결돼 런던에서 엑센트리를 창업했다. 2015년 엑센트리는 핀테크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금융위원회와 협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이듬해 서울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후 엑센트리는 서울시, 부산시, 한국전력, 중견기업연합회 등 다양한 한국 지자체 및 기관들과 공동협약(MOU)을 맺고 국내에서 스타트업 발굴·투자·육성 등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영국을 오가며 5분의 3은 런던, 5분의 2는 서울에서 지내왔다”고 했다. 

그가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MP가 된 것은 엑센트리가 부산에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한 글로벌 기업 양성소라 할 ‘엑센트리 아시아 스마트시티 테크샌드박스’를 세운 것과 무관치 않다. 이는 런던 레벨39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해운대 아이파크 상업동에 마련한 공간에 국내외에서 엄선한 스타트업을 입주시켜 투자 및 양성하는 것이다. 5월 25일 공식 오픈 예정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들어와 무슨 일을 하나요. 

“스마트시티와 관련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입주합니다. 국내외 기업 비율을 6:4로 맞출 계획인데, 우선 15개 해외 기업이 입주를 확정했어요. 이들의 사업 영역은 블록체인, 핀테크, 사이버안전, 인공지능(AI), 신재생에너지 등입니다. 앞으로 부산을 테스트베드 삼아 스마트시티를 향한 다양한 시도를 할 거예요. 부산 에코델타시티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 부산을 아시아 스마트시티 사업의 거점으로 삼기로 했나요. 

“사실 여러 후보 도시를 놓고 오래 고민했어요.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용어인 데다 관료 조직이 매우 혁신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인구가 60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시장인 데다 좋은 스타트업이 별로 없습니다. 홍콩은 국제도시지만 중국 정부라는, 정책 예측이 어려운 리스크가 있고요. 일본의 경우 자본은 풍부하지만 자국 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IT 인력도 부족하고요. 반면 한국은 각종 규제가 많긴 해도 IT 분야 인재가 풍부해 성공 잠재력이 높습니다. 결국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부산은 서울과 비교해 스마트시티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제2도시로서 서울과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데, 고령 인구 비율이 점점 높아져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 기회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한편 테스트베드의 중요 조건 중 하나가 인력을 공급할 대학 인프라인데, 부산이 그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요.”


각 도시마다 해법 달라

한국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혁신 스타트업을 낳을 잠재력이 높다니, 반가운 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천 대표는 “초기 단계 잠재력만 높다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에서 유니콘 스타트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합니다. 영어를 못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레벨39에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이 모여 있는데, 영어 못하는 사람이 흔합니다. 영어가 서툴더라도 설득력 있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되는 건데, 그런 능력이 한국인에겐 부족하다고 느껴요. 둘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가 없기 때문이죠.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도 ‘구글에 팔겠다’고 큰소리치며 다닙니다. 실패도 자산(asset)으로 여기고요. 셋째로 네트워크가 없습니다. 유대계 자본처럼 돈줄 역할을 하며 확실하게 이끌어주는 투자자가 드물어요.” 

천 대표는 “지난 정부가 ‘융합’을 강조했는데,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은 융합이 아닌 교류”라고 강조했다. 

“레벨39에서 성공한 스타트업들을 보면 자기 혼자 죽 올라간 케이스가 없습니다. 외부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도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을 선보입니다. 일례로 핀테크업체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 창업자는 ‘억울해서 해외송금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 창업자가 에스토니아 출신인데, 런던에서 번 돈을 고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보내려고 하자 은행이 수수료로 7%를 떼가고, 시간도 사나흘이나 걸리더란 겁니다. 트랜스퍼와이즈가 시장에서 대박을 내자 웬만한 런던 은행들의 해외송금 실적이 반 토막 났습니다. 

이러한 트랜스퍼와이즈도 혼자 큰 게 아니에요. ‘다 쓸어버리겠다’는 마인드를 가지면서도 열린 자세로 외부와 교류하며 성공했어요. 그런데 한국 스타트업들은 ‘교류하면 뺏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간 대기업의 횡포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융합으로 이도저도 안 되는 걸 하지 말고, 교류를 통해 성장해야 해요. 스타트업 시장에서 경계란 없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전 세계를 떠돌아요. 내 것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승산은 없습니다.”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는 어떤 스마트시티를 그릴까. 그는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도시가 스마트시티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 중심의 환경을 추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양질의 삶을 살도록 하는 도시. 그것이 스마트시티”라고 정의했다. 

“인도 콜카타의 인구가 2000만 명인데, 도시 인프라는 몇 백만 인구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자동차 검사는 매우 형식적이고, 하수구 시스템은 미비해요. 쓰레기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요. 콜카타의 스마트시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각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스마트시티입니다. 또 주민들이 적은 비용으로 최신 기술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고요.”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는 김해공항에서 5km 남단에 위치한다.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던 데다 남해와 동·서낙동강 사이에 자리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제2남해고속도로, 부산 신항만 등과도 가까운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면적은 여의도(2.9㎢)보다 다소 작은 2.2㎢.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빈 땅에 짓는 신도시입니다. ‘필요’를 제기할 주민이 없는, 무(無)의 땅인데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MP로 발탁됐다고 봅니다. 여기에 사는 사람이 아직 없는데, 구역별로 미리 용도를 다 정해놨어요. 그걸 백지 상태에서 다시 들여다보라는 것이 청와대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스마트도시를 만든다고 할 때 근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누가 와서 살까’입니다. 제가 가진 기본 철학은 원도심과의 밸런싱(Balancing)이에요. 따라서 원도심 주민들과 공청회, 해커톤 등을 열어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주민, 청년, 기업들과 함께 도시를 만들어나가려고 해요. 단순히 외주 하도급을 주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 스타트업에 사업을 맡기는 식으로 진행해나갈 겁니다.”


‘규제프리존’ 추진 중

천재원 부산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는 “아이디어가 상생을 낳고, 그것이 사업이 되어 스마트시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천재원 부산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는 “아이디어가 상생을 낳고, 그것이 사업이 되어 스마트시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사업 시행 쪽에서는 분양 계획 등을 잡아놓은 것 같던데요. 

“분양 안 하고 임대 줄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에코델타시티만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수익을 내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간 신도시 사업의 핵심은 톱다운 방식의 분양이었어요. 진짜 거기 살 주민들이 아닌, 시세 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분양을 받고, 점차 비싸져서 결국 외면받고요. 그리고 또 다른 데서 새로운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 반복됐습니다. 이제는 도시를 만드는 관점이 달라져야 해요.” 

천 대표는 “인구 50만 규모의 분당 신도시에 글로벌 레벨의 호텔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럽 도시들은 인구가 20만 명만 넘어도 큰 도시에 속합니다. 역사, 문화, 경제 등이 활발하게 돌아가며 외지인들이 오가고 호텔이 알아서 들어옵니다. 분당, 일산 등에 다녀간 외국인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어디냐고 물었더니 모르더라고요. 한국 신도시들은 베드타운일 뿐이에요. 스카이라인이나 분위기가 다 비슷해요. 심장 없는 도시만 만들어온 겁니다. 혁신도시들도 외곽 말고 원도심 안에 만들었더라면 시너지 효과가 났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한편 그는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어트랙션 포인트(Attraction Point)로 ‘글로벌’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에코델타시티 내에 해외 유수의 스타트업들을 유치해 글로벌한 혁신이 벌어지는 물리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4차위와 국토교통부 발표안을 보면 에코델타시티에 ‘수열에너지’ ‘분산형 정수시스템’ ‘5G 프리 와이파이’ ‘에너지 크레딧 존 조성’ 등을 한다고 돼 있던데요.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거니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다양한 실험을 한다고 하는데,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현재 4차위에서 스마트시티를 ‘규제프리존’으로 지정하는 특별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규제를 피하게 되면 스마트시티 내에서는 우버(Uber)와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거죠.” 

천 대표의 관심은 비단 에코델타시티를 스마트시티로 만드는 데 한정돼 있지 않다. 그는 부산 해운대에 입주할 스타트업들과 함께 부산시 전체를 대상으로 스마트시티를 향한 실험을 하고자 한다. 

부산에는 어떤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나요. 

“노인 인구가 많은데 그들을 케어할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교통 시스템도 개선할 필요가 있고요. 부산에서 낙후된 원도심을 살리려는 여러 시도가 있는데, 몇 가지 안타까운 대목이 있어요. 그런 점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는 주민과 관광객 간 갈등을 예로 들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낙후된 달동네가 벽화마을로 재단장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고 있다. 관광객들로 인해 생활하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천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가 주민과 관광객을 공생하게 하고, 사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예를 들게요. 페이브젠(Pavegen)이란 스타트업은 런던 금융 중심지 캐너리워프(Canary Whalf) 지하철역 주변 인도에 에너지 스토리지 시스템(ESS)에 연결되는 센서를 깔았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많은 인파가 길을 오가면, 그 운동에너지가 전력에너지로 바뀌고, 그 전력을 그 일대 건물주가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전기료를 40%가량 감축했어요. 이 수익의 일부를 이 지역 커뮤니티로 환원해 주민들을 위해 쓰고요.”


‘Connecting the Cities’

스마트시티가 잘되려면 각 주체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정부는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사업 시행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치워주고 길을 닦아줘야 합니다. 대기업은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보다는 역량 있는 스타트업에 재무적인 투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스마트시티는 혁신 스타트업들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구현하는 플랫폼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미래적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고 이번에 제대로 된 스마트시티를 만들어야 통일 후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북한에 혁신적인 도시를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미래 먹거리가 될 수도 있고요. 스티브 잡스가 앱스토어로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었듯, 스마트시티로 스마트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커넥팅 더 닷’(Connecting the dots·스티브 잡스가 연설에서 한 말)이 아닌 ‘커넥팅 더 시티’(Connecting the cities), ‘커넥팅 더 피플’(Connecting the people)에 나서야죠.”


신동아 2018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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