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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수 살해사건’ 추적했던 ‘독종 기자’의 단상(斷想)

범인의 살해 동기는 ‘다른 여자’ 였다는데 그녀는 ‘내게 그 이상 묻지 않으면 좋겠다’고…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배병수 살해사건’ 추적했던 ‘독종 기자’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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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5월, 배병수 살해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최진실을 만났다.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여의도까지 그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28세의 최진실은 생기가 넘쳤다.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미소는 기자를 무장해제하기에 충분했다. 얼굴 한구석에 쓸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긴 했지만, 그는 여전사처럼 씩씩했다
‘배병수 살해사건’ 추적했던 ‘독종 기자’의 단상(斷想)
가끔 영화평론을 하다가 성에 안 차 직접 영화까지 만든 시인 유하씨는 언젠가 최진실씨에 대해 “현대 대중이 원하는 욕망의 모델에 가장 가까운 상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의 말마따나 최씨는 오랫동안 한국 연예계 최고의 ‘상품’이었다. 시청자와 관객이라는 소비자가 연예계라는 시장을 기웃거릴 때 별 망설임 없이 손길이 가는, 매력적인 상품임에 틀림없었다. 선뜻 다가서기 부담스러운 고가품이 아니면서 싸구려 상품이라는 느낌도 주지 않는 적절한 수준의 만만함. 최진실 매력의 비결은 바로 이 만만함이었다.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한.

그래선지 최씨에게는 유난히 친한 기자가 많았다. 그는 친한 기자들과 순댓국집에서 소주를 즐기곤 했다. 죽기 전날 밤 술자리에도 친한 기자가 동석했다. 연예기자가 아닌 나는 물론 그 축에 끼지 못한다. 딱 한 번 인터뷰한 인연밖에 없다.

최씨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놀랐다. 한때 연예계 최고의 기자로 날렸던 B에게 전화하니, 그날 지방 소재 대학에 강의하러 가야 하는데 포기하고 망연자실 집에서 TV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최씨와 언니-동생 사이로 지낸 그는 “내가 아는 진실이는 절대 자살할 애가 아닌데…” 하고 넋두리처럼 읊조렸다. 최씨를 여러 차례 인터뷰하면서 친밀감을 쌓았던 전직 주간지 기자 K에게 전화하자 “세상이 왜 이러느냐…” 면서 탄식을 거듭했다.

내가 최씨를 인터뷰한 것은 1995년 5월14일이다. 나흘 전 그가 배병수 살해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게 인터뷰 동기였다. 당시 항간에는 그의 매니저이던 배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소문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최씨는 그 유령 같은 안개의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배씨가 죽은 직후 살해범 전모씨를 서울구치소에서 면회했던 나는 사건의 ‘진실’에 근접한 상태였다.

13년 전이니 28세쯤 됐을 것이다. 최씨는 깜찍한 외모와 감칠맛 나는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의 청순한 연기는 청량음료와도 같았다. 한창 물 오른 버드나무의 싱그러움이라고 할까.

‘배병수 살해사건’ 추적했던 ‘독종 기자’의 단상(斷想)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 ‘질투’(1992년, MBC).

그날 오후 6시 최씨는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 있었다. 서울방송의 전국 민방개막 축하쇼에 등장해 드라마 ‘아스팔트’ 출연진과 함께 인사말을 했다.

쇼가 끝난 뒤 공원 주차장 앞에서 최씨를 만났다.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미소. 그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다. 나는 그의 뉴그랜저 승용차에 올라 여의도로 향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그가 여의도 근처에서 다음 약속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의 차 유리는 밖에서 안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짙게 선팅 처리돼 있었다. 앞유리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최씨의 매니저 노릇을 했던 이모(친이모가 아님)와 함께 탔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최씨가 운전대를 잡았고, 내가 조수석에, 이모가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 차 안에서 최씨와 나눴던 얘기는 내 기억 속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 오래다. 다만 최씨가 스케줄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며 이모와 말다툼했던 것이 빛바랜 사진처럼 머릿속에 인화돼 있을 뿐이다. 생각보다 성격이 사납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스타는 무슨 짓을 하든 매력적으로 비치는 법. 나는 그것을 최씨의 가식 없는 성격, 솔직함으로 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최씨가 몇 차례 내게(말다툼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길이 막혀서 여의도까지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듯싶다. 내릴 때쯤 최씨와 이모 두 사람은 언제 다퉜냐는 듯 다정한 사이로 돌아가 있었다. 최씨와 나는 여의도의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받으러 온 여종업원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개방된 자리라 한 시간 남짓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최씨는 다른 자리에 있던 팬들로부터 몇 차례 사인공세를 받았다.

당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아직 한 번도 벗는 연기는 하지 않았다. 작품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벗을 수도 있지 않나.

“몸매가 안 좋아서…(최씨는 한참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라. 최진실이 벗었다, 그러면 그 영화는 망할 것이다. 이때껏 내가 지키고 싶었던 부분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내 연기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도 안다. 작품성은 좋은데 벗는 장면이 있어 포기한 작품도 몇 편 있다. 하지만 나만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고 사람들 기억 속에도 그렇게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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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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