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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배우 열전 ⑧

80년대 신여성 아이콘 심혜진

섹시한 커리어 우먼 이미지로 영화판 ‘올킬’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80년대 신여성 아이콘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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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신여성 아이콘 심혜진

심혜진, 최민수가 주연한 영화 ‘결혼이야기’.

1970년대 말부터 한국 경제는 발전을 거듭해 1980년대에는 호황기로 접어들었다. 돈을 주고 여성을 사는 성매매 문화는 ‘빠’에서 ‘룸싸롱’으로 옮겨갔고, 무교동 유흥가는 강남 유흥가에 자리를 내줬다. 1980년대 중반 ‘꽃피는 남서울 영동’이란 가사의 노래가 나올 정도로 강남은 유흥문화의 중심이 됐다. 성매매 여성이 부족해지자 인신매매라는 극악한 수법으로 여성을 매춘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범죄가 사회 전반에 퍼진다. ‘매춘’이란 영화는 인신매매에 걸려든 불행한 여성들을 다룬 영화였지만, 그녀들의 고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녀들을 벗겨서 눈요깃감으로 만드는 데 급급했다.

에로영화가 넘쳐나던 이 시기에 임권택 감독은 인간의 고통과 한국 사회의 갈등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의 노력에 대한 작은 보답이 베니스 영화제 수상이었다. 조선시대 여인 수난사를 다룬 이야기인 ‘씨받이’(1986)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강수연. 아역 배우 출신인 강수연은 이 영화로 월드 스타라는 칭호를 받았고, 일약 충무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여배우로 등극했다.

하지만 1980년대 한국 영화의 화두는 역시 노출의 수위였다. 검열에 걸리지 않고 여배우를 얼마나 벗기는가, 이것이 ‘애마부인’ 이후 한국 영화의 목표였고, 남성 관객들은 여배우의 가슴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이 시기의 여배우들은 오로지 남성 관객과 공모한 남성 영화 제작자들의 볼거리로 소모되고 말았다.

1980년대에 등장한 여배우들은 모두 고만고만했다. 1970년대의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었다. 영화도 다 그렇고 그렇다. 그 시기 한국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교양과 품위를 지닌 사람들은 한국 영화를 보지 않았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배용균 감독) 같은 영화가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면 입에 올리는 정도였다.

신세대 여왕벌의 등장



한국 영화가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받던 1980년대, TV 광고 속의 한 여성이 젊은 남성들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몸에 착 달라붙는 짙은 청색 투피스를 입은 회사원 여성이었다. 그녀는 키가 또래의 남자들보다 조금 더 크거나 대등했고, 팔꿈치로 옆자리의 남자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의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아, 알았어!’라는 뜻을 전하곤 다시 일에 몰두한다. 미모와 지성, 섹시함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자기 힘으로 돈을 번다. 바로 커리어 우먼의 등장이었다.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던 여성이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광고를 본 수많은 여성은 광고 속의 여성과 닮으려고 노력했고, 당시 나이 어린 여자들은 커서 이 여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적이고 세련됐으며 섹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 앞에서 당당하고 존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 옆의 남성들도 모두 한가락 하는 멋쟁이이지만, 이 여자 앞에서는 뭔가 모자라 보였다. 매혹적인 신세대 여왕벌, 그녀는 심혜진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여자 연예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영화계다. 그녀는 바로 영화에 진출했다. 첫 출연작은 ‘물의 나라’(1989, 유영진 감독). 이 영화에서 심혜진은 사장의 내연의 처 역을 맡았다. 그 후 ‘그들도 우리처럼’(1990, 박광수 감독)에서 다방 레지로 출연했고, ‘하얀 전쟁’(1992, 정지영 감독)에서는 스트립걸로 나왔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은 코카콜라 광고에서 보여준 것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했다. 자칫 한때 반짝하고 지나가는 그런 여배우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던 중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1992)가 개봉됐다. 스태프와 영화 제작자 모두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힘을 뭉쳐 만든 영화였다. 심혜진은 이 영화에서 몇 해 전 코카콜라에서 보여주었던 그 당당한 여성,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완결짓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공동묘지의 묘비가 보인다. 묘비명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 앗! 이게 뭐지? 공포영화인가?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여 묘지 앞 커다란 나무로 다가간다.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남녀가 옷을 벗어 집어 던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결혼을 앞둔 최민수에게 이미 결혼한 직장 동료와 선배들이 한마디씩 한다. “결혼은 뜨거운 감자, 차라리 감옥이 낫다. 마누라가 없는 곳, 그곳이 천국이다.” “좀 더 신선하고 스릴 있는 자살 방법을 생각해라. 결혼은 초라하고 냄새나는 진부한 자살 방법이다.” 최민수는 그들이 하는 말이 실감이 안 난다. 그냥 질투하는 것 같다.

남자 엉덩이를 토닥이는 여자

장면이 바뀌면 심혜진이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중 한 여자는 화를 내며 심혜진에게 “네가 결혼하면 당장 절교다”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러나 동료와 선배들의 협박과 위협에도 최민수와 심혜진은 결혼에 돌입한다.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최민수는 PD이고, 심혜진은 단역 성우다. 두 사람이 복도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이 서고, 서로의 엉덩이로 손이 간다. 최민수가 심혜진의 엉덩이를 톡톡 치자, 심혜진도 지지 않고 최민수의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그러고는 춤을 추듯 서로의 엉덩이를 부딪치며 애정공세를 펼친다. 남녀의 대등한 애정 표현이 이만큼 발랄하고 상쾌했던 한국 영화가 있었을까.

영화는 단숨에 관객의 호응을 얻어냈고 새로운 세대,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최민수는 1960년대 한국 남성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런 남성이다. 다만 그때의 남성들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착하고, 여유롭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은 어머니다. 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랑으로 부부관계의 험난함을 극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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